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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철도문학상 산문부문 당선작 / 3편]
권민영 채민우 조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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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그 곳 / 권민영
나는 비를 ‘ 맞고 있는 과거의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것이 이 소설, 이지연의 ‘그곳’의 마지막 문장인데도 나는 책을 바로 덮지 않았다. 대신 그 문장을 속으로 곱씹었다. 어디쯤 왔을까. 책을 덮고 커튼을 걷자 잿빛 털을 가진 양떼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 같은 흐린 하늘이 보였다. 출발할 때쯤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될 정도였는데. 이렇게 흐린 날씨에 커튼을 친 것이 괜히 멋쩍게 느껴져서 커튼을 걷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저 비디오를 빠르게 돌리는 화면을 보듯 별생각 없이. 계속 그것을 바라보다가 눈의 초점이 흐려지려 할 때쯤 무릎에 올려둔 가방에서 진동이 느껴져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꺼냈다. 아빠였다.
“도담아, 대전에는 잘 도착했냐”
“아직 도착 안했어.”
“광주에는 언제 오냐”
“오늘 밤에 갈 거야.”
“그러냐. 대전 오늘 비 온 댄다.”
“비?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와라.”
“응.”
아빠와의 통화는 항상 1분 내로 끝난다. 게다가 이번 통화에서는 곤히 자고 있는,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옆 좌석 아저씨의 눈치를 보느라 평소보다 배로 내 목소리가 무미건조하게 나온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전화해준 다는 것 자체가 아빠로서는 큰 발전이다. 새엄마를 만나기 전에 아빠와 나눴던 대화는 대화라고하기도 민망한,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비가 온다니. 우산 없는데, 뭐 괜찮겠지, 날도 더운데 그냥 맞고 가지 뭐. 분명 나는 막상 그 일이 닥치면 축축해져 살에 들러붙는 옷의 느낌에 짜증내고 젖은 옷 때문에 앉은 자리까지 젖을까봐 걱정하고 남들이 이런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를 살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잠시만이라도 갑작스러운 불행에 태연하고 자유로운 사람인 척 해보고 싶었다.
기상학에 대해 무지하지만 먹구름의 양을 보고 비가 어느 정도 내릴 것인가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시도하고 있을 때 기차가 곧 서대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아직 기차라는 교통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을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차가 내가 내리기도 전에 서대전역을 지나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옆 좌석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저씨의 발이 내 앞길을 막고 있었다. 아저씨가 깨어있었다고 해도 내 성격상 비켜달라고는 말 못했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최대한으로 다리를 뻗어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드디어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원래가 여행을 갈 때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을뿐더러 알아보더라도 지도를 볼 줄 몰라서 길을 잃는 일이 더러 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발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멀리서 어린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잃어버렸나? 누군가가 도와줘야 할 텐데...’
아 또 초점을 잃을 뻔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자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의자들의 대열이 보였다. 나는 그 중에 맨 마지막 줄의 구석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수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도담아. 대전 도착했어”
“응. 지금 서대전역인데 거기 소극장으로 어떻게 가”
“서대전역? 기차타고 왔어? 내가 기차로는 대전 와 본적이 없는데... 아, 근처에 지하철 타는 곳 있을 거야. 지하철타고 시청역에서 내리면 연락해. 데리러 갈게.”
수정이의 밝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렸다. 내 목소리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그 목소리에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
“응. 알았어.”
수정이는 고등학교 때 연극부에서 같이 활동했던 친구다. 나는 연극부에서 극본을 담당했고 수정이는 배우였다. 여배우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예쁜 외모는 아니지만 특유의 눈웃음과 밝고 살가운 성격으로 연극부에서나 반에서나 인기가 많았던 수정이. 나는 그 애를 동경하고부러워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 나는 연극부의 길을 이어가는 대신 소규모로 진행되는 독서 모임에 들어갔지만 수정이는 대학 내의 극단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로는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가 수정이 쪽에서 연락이 왔다. 1학기 활동에 대한 발표 공연으로 이지연의 ‘그곳’을 각색해 공연을 하니까 관심 있으면 보러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수정이의 수많은 친구 중 한명이라 잊혀진지 오래일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연락을 받고 매우 기뻤다. 그래서 꼭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나저나 지하철이라니. 항상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은 설렘과 함께 불안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근처라고 했으니까 잘 찾아갈 수 있을 거라며 자신을 다독이고 역에서 나왔다. 하늘에서는 아직 양들이 모임을 열고 있었지만 당장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았다가 도리어 길을 잃을 것이라는, 경험으로부터 나온 생각에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가기로 했다. 그런데 길을 물을 사람을 찾으려니까 내가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물색하다가 내 또래로 보이는 귀여운 인상의 여자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그 여자는 내게 이 길로 죽 가서 길을 건너 좀 걸으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여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신호등의 깜빡이는 초록 불에 자동 반사된 듯 재빨리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좀 걷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를 걷는 것일까. 마냥 앞으로 걷고 있는데 지하통로가 보였다. 언뜻 광주에서 봤던 지하철로 가는 통로랑 비슷해보여서 한번 내려가 봤는데 지하통로는 지하에 있는 통로일 뿐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니 기운이 빠져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지하철 표시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니 지하철 타는 곳이 나왔다.
바람이 은은하게 불면서 등딱지에 달라붙은 옷 사이로 통과하는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지하철 타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해서 금방 시청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수정이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는데 부재중 전화 한통이 와있었다 . ‘엄마’. 새엄마한테서 온 전화였다. 엄마라고 저장은 해놓았지만 나는 아직은 그 앞에 ‘새’라는 글자를 빼고 이 사람을 연상할 수가 없다. 새엄마를 생각할 때는 내가 살가운 성격이었다면 진작 친해졌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새엄마 쪽에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내 쪽에서 연락해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수정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담아, 어디야”
“시청역에서 내렸어.”
“아 그럼 8번 출구로 나와. 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응. 알았어.”
곳곳에 보이는 표지판 덕분에 쉽게 출구를 찾아 나갈 수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수정이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수정이였다.
“도담도담! 잘 지냈어? 고등학생 때 그대로네. 꾸미면 더 예쁠 텐데.”
“내가 워낙 꾸미는 걸 잘 못해서... 귀찮기도 하고. 그런데 공연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이렇게 나와 있어도 돼”
“응. 난 신입생이라서 아직 배역은 못 받았고 공연 시작 전에 주의사항 알려주고 분위기 띄우는 역할이야. 사실 나올 때 살짝 눈치 보이긴 했는데, 이렇게 귀여운 친구를 데려왔으니 봐주지 않을까”
“귀엽기는 무슨...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졸업한지1년도 안됐는데.”
“그러네. 다른 애들이랑은 sns 같은 걸로 소식 듣고 연락하는데 도담이 넌 그런 거 잘 안하니깐 어떻게 지내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생존 확인하려고 비싼 공연 보여주는 거야.”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할 까봐 걱정했는데 수정이가 알아서 분위기를 띄워주니 고마웠다. 그동안 지냈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소극장에 도착했다. ‘즐거운 아트홀’ 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 밑으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어두침침한 곳일 줄 알았는데 벽에 꽃과 나비를 그려놓은 벽화가 있고 그것을 밝은 전등이 비춰주어 생기 있게 느껴졌다 어렴풋하게 . 지하통로에서 맡은 냄새와 찬 공기가 느껴졌다.
“야 전수정! 이게 군기가 빠졌구만. 신입생이 말이야. 선배들 일하고 있는데 농땡이나 치고 있어.”
수정이의 선배로 보이는 남자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수정이에게 꿀밤을 주는 시늉을 했다.
“농땡이라니요! 이렇게 귀여운 친구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납치라도 당할까봐 걱정이 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친구? 아,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극회 2학년, 조명담당하고 있는 진유한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수정이 친구 이도담이에요.”
“되게 동안이시네요. 아니, 수정이가 늙어 보이는 건가.”
“오빠!”
두 사람은 끊임없이 능청스럽게 장난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공연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관객석에 앉아있기로 했다. 앞자리에선 배우들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어 감정적 몰입이 잘되겠지만 나는 극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서 뒤쪽 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3시 39분이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관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극회 사람들의 지인들이 많이 왔는지 꽃다발이나 작은 선물을 안고 오는 사람이 꽤 보였다. 선물이라도 사올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고 있는데 잔잔하게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고 조명이 꺼졌다.
다시 조명이 켜지고 등장한 것은 수정이였다. 수정이는 남의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이웃집 아줌마로 캐릭터를 잡은 듯 했다. 말이 빠르고 호들갑스러운 그 아줌마는 앞으로 등장할 인물들의 특징과 과거의 사건을 누가 들을까 조심스럽게, 그리고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관람 시 지켜야할 사항들을 알려주고는 퇴장했다. 연극 ‘그곳’은 상상과 꿈속에서만 살던 소년이 시각 장애인인 아버지에게 책읽어주는 봉사를 하러온 소녀를 만나 결국에는 과거의 자신과 화해를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소설과 다를 것은 거의 없었지만 표현방식은 흥미로웠다 과거의 . 나는 연극을 보기 전부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환상적 도피공간을 어떻게 연극에서 표현할지 궁금했었다. 연극에서는 소품을 활용하여 무대를 꾸미는 대신 스크린에 환상적인 영상을 띄우고 몽환적인 배경음악을 들려주면서 관객들이 주인공과 함께 환상적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주인공이 도피처를 만들어낸 계기를 회상 장면으로 보여줬을 때 관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연극은 소설에서처럼 빗속에서 소년과 어린시절 소년이 안는 장면으로 막을 내렸다.
‘나는 비를 맞고 있는 과거의 나를 꼭 안아주었다.’ 독백을 읊는 목소리가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문장을 속으로 되뇌고 있는데 꺼졌던 조명이 켜지면서 커튼콜이 이어졌다. 문득 박수갈채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수정이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 안은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과 배우들에게 꽃다발이나 선물을 전달하는 사람들, 배우들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나뉘어 부산스러웠다. 나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관객과 사진을 찍는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 때 수정이가 자기 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도담아, 같이 사진찍자.”
수정이와 나는 팔짱을 끼고 수정이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나는 억지로 끌려나온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수정이의 핀잔을 들었다. 수정이가 자신의 일행과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하고 극장을 나섰다. 아쉬워하는 수정이의 표정이 마음에 걸리지만 대화에 제대로 끼지 못하고 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을 모습이 떠올라 혼자 괜히 무안해졌다.
6시 10분. 여름이 가까워져 평소 같았으면 아직 밝을 시간인데 비가 오기 전이라 꽤 어두웠다. 비가 내리기 전에 얼른 역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주변이 낯설게 느껴졌다. 올 때는 수정이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을 눈여겨보지 않아서 어디를 지나 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일단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 눈에 ‘그곳’이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언뜻 보면 꽃가게인 줄 착각할 만큼 화분이 많이 놓여있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카페였다. 나는 얼른 그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가게에 들어서자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나를 맞아주었다. 중년 여자의 느낌이었지만 겉모습은 매우 젊어보였다. 나는 가장 안쪽자리에 앉아 가게 밖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어느새 바닥을 뚫어버릴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도 꽤나 부는지 건너편 가게에 걸어진 현수막이 무서운 기세로 휘날렸다. 집에 갈 수 있을까. 창밖을 보며 걱정을 하고 있는 내게 주인이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 카페 아니에요”
“저희 가게 처음이신가보네요. 카페 겸 레스토랑이에요. 메뉴 정하시면 불러주세요.”
화분이 많아서 그런지 가게 내부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재생지로 만든 책자에 직접 글씨를 쓴 메뉴판을 넘기는데 ‘도담 오믈렛’이라는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내 이름과 오믈렛의 조화가 흥미로워서 도담 오믈렛을 주문하기로 했다.
“도담 오믈렛 주세요.”
“어린이 메뉴인데 괜찮으세요”
어린이 메뉴?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 내가 주문한 음식은 어린이 메뉴에 포함되어있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먹기로 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귀가가 늦어질 것 같다고 아빠와 새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져온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었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작가의 소감과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적힌 글을 다 읽자 오믈렛이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궁금해도 그냥 넘어 갔을 테지만 가게에 오래 머무르게 될 것 같아서 주인에게 왜 도담 오믈렛이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물었다.
“도담도담이 어린아이가 잘 놀며 자라는 모양이라는 뜻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예전에 제 딸한테 자주 해주던 음식이라서 도담 오믈렛이라고 지었어요.”
“제 이름도 도담인데...”
내 말에 잠시 주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쓸데없는 말을 했다싶어 실실 웃어보였다. 어색한 기운을 지워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잡담소재의 대명사인 날씨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
“비가 꽤 많이 오네요. 오늘 안에 광주로 돌아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광주에선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친구가 공연한대서 그거 보러왔어요. 공연만 보고 집에 가려했는데 날씨가...”
“그럼 여기서 하루 묵고 갈래요”
“네? 그게...”
주인의 제안은 나를 무척이나 당황하게 만들었다. 카페 겸 레스토랑인데 숙박이라니, 보기와는 다르게 수상한 사람인 것일까. 거절할만한 변명거리를 찾아야하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잔머리가 작동을 멈춰버렸다.
“여기 지하를 소극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궂은 날씨거나 공연 준비로 일이 늦게 끝났을 때는 소극장에서 잠을 자기도 하거든요. 숙박비는 안 받을 테니까 하루 묵고가세요.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도 않은데.”
달콤하면서 의심스러운 그 제안을 들으며 쉴 새 없이 바람에게 공격당하는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수막이 항복하는 듯 날아가 버렸다. 그것이 내 결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도담 오믈렛은 어린이 메뉴답게 양은 적었지만 부드럽고 맛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토끼모양으로 장식된 아이스크림도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먹기 전에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음식을 다 먹은 후 접시를 카운터 쪽으로 가져다주었다. 맛있었냐고 묻는 주인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는데 주인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목걸이가 예뻐요.”
“아, 이거요? 프리즘 목걸이에요. 이렇게 빛에 비추면 무지개가 나타나요.”
“우와 신기하다.”
예전에 과학실에서 프리즘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목걸이를 응시했다. 목걸이에 대한 감상을 말한 후 딱히 할 말이 없던 나는 가게를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사이코드라마’라는 문구와 함께 소극장 내부에서 연극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크게 나와 있었다.
문구가 식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연극을 통해 심리 치료를 한다는 것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코드라마 관심 있어요”
포스터를 유심히 보는 내 모습이 주인의 눈에 들어 왔나보다.
“연극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한다는 게 신기한 것 같아요.”
“한번 해볼래요? 지금이라도 간단히 해줄 수 있는데... 많은 분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하고나서 과거에 있었던 상처를 치료하고 현재의 문제점까지도 해결하곤 하거든요.”
“아니에요. 저 사실은... 어린 시절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그리고 잊어버린 기억을 굳이 되찾고 싶지도 않아요. 잊어버린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이 얘기를 새엄마한테 한 적이 있었다. 새엄마는 내게 안쓰럽다는 듯 슬픈 표정으로 반응했었다. 나는 그게 싫어서 새엄마한테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미리 그때 지었던 밝은 표정을 하려고 준비했는데 주인의 표정은 나를 안쓰럽게 본다기보다 쓸쓸해보였다.
설거지를 마친 주인은 가게 문을 닫고 불을 모두 껐다. 길가에 있는 가로등이 아니었다면 우리 둘이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어두웠을 것이다. 나는 주인의 안내를 따라 핸드폰 조명에 의지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스릴러 영화 속의 비밀공간으로 안내 받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면서 모험가가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재밌기도 했다. 계단 끝에는 문이 있었다. 주인이 문을 열자 낮지만 넓은 그 문은 끼익 소리를 조심스레 토해내었다. 주인은 핸드폰으로 바닥을 비추며 조심스레 어딘가로 가더니 조명을 켰다. 소극장 내부는 수정이의 연극을 봤던 곳보다는 좁았지만 그래도 100석은 되어 보였다. 주인은 관객석 쪽으로 가더니 의자를 하나하나 포개기 시작했다. 나도 가서 거들었다.
의자를 모아 한쪽에 두니 공간이 더 넓어져 두 명이서 자고도 남을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주인은 소극장 구석 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이불과 베개를 들고 왔다. 나도 도와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들어갔는데 창고가 아니라 분장실이었다. 갖가지 의상과 가발, 화장도구들이 신기해서 보고 있는데 주인이 들어왔다.
“침구는 내가 옮길 테니까 옷장에서 잠옷으로 입을만한 거 골라 봐요.”
옷장에는 연극에 쓰일만한 의상이라기보다는 평상복에 가까운 옷들이 걸려있었다. 주인이 평소에 입는 옷인 듯 했다. 나는 그 중에서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와 흰 반팔티를 꺼내어 갈아입었다. 내 체구가 작아서인지 바지가 바닥에 끌려 한번 접어서 입어야했다.
소극장 바닥은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불을 바로 깔지 않고 연극에서 집 안이 배경일 때 쓰는 장판을 미리 깔아야했다. 장판을 깔고 이불을 까니 제법 숙박하는 곳 느낌이 났다.
“불 끌게요.”
조명이 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요란한 빗소리만 들렸다. 우리 둘은 각자의 이불 속에 누워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원래 남의 집에서는 편히 못자서 나는 눈을 감고 어둠에게 잠을 구걸해야했다.
꿈인가? 말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화가 난 듯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리 깐 목소리.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했다.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이제 엄마 찾아 오지마. 네 아빠 같은 사람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널 낳는 게 아니었는데...’
여자가 잔인한 말을 내뱉는 동안 옆에 앉은 아이는 울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울 듯 날카로운 울음이 아니라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그 상처에 억눌려 제대로 우는 소리조차 못 뱉어내는 듯한, 그런 울음이었다.
‘울지 마!’
여자의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잠에서 깨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내 베개는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꿈속의 아이처럼 무언가에 억눌린 조용한 울음이 아닌 마냥 엉엉 울고 싶어졌다. 소극장 내부가 너무 깜깜해서 마치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나는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 나 두고 가지마. 앞으로는 떼 안 쓸게. 아빠 허락 맡고 찾아올게.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좀처럼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울음소리에 깼는지 주인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 우는 소리를 멈추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당황해서 왜 우냐고 물어볼 줄 알았던 주인은 자연스럽게 내 엄마역할을 했다. 그 말에 왠지 편안해져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꿈속의 꿈같은 것일까. 장소는 소극장 안이 맞는 것 같은데 기차가 달리는 소리가 나고 비오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비오는 날의 축축한 냄새도 나고 기차 좌석처럼 폭신한 의자도 있다. 의자 옆에 펼쳐진 스크린에는 기차 안에서 본 창밖의 모습처럼 나무며 논밭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는 주인이 있었다. 잘 때 입었던 트레이닝복이 아닌 레이스가 달린 예쁜 원피스를 입고서.
‘우리 도담이가 어느새 이렇게나 컸네. 엄마가 미운소리하고 무섭게 소리 질러서 많이 서운했지‘
뭘까, 이 상황은. 꿈인데 아무렴 어때 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 상황에 몰입하기로 했다.
‘응. 너무 서러웠어. 어린 나한테 못된 말하는 엄마가 너무 미웠어.’
‘엄마가 미안해. 도담이 마음 이해 못해주고 도담이가 엄마 힘들게 한다고 원망해서 미안해. 나랑 안 맞는 사람하고 만나 섣불리 결혼해 놓고 꿈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린 거... 다 내 탓인데 도담이 탓으로 돌린 거 정말 미안해.’
나는 자신이 엄마라고 하는 주인의 볼에 흐른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눈물이 손에 닿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꿈인데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아니, 꿈을 인식한 것 자체가 처음이여서 신기했다.
‘엄마... 아직도 내가 미워’
‘아니야. 엄마는 내 딸이 너무 보고 싶었어.’
꿈속의 엄마 아니 주인은 나를 꼭 안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그렇게 안고 있었다.
눈을 떴다. 두 사람이 안고 있는 장면 뒤로는 기억나지 않았다. 곁에 두었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나는 내가 우는 소리를 주인이 들었던 것이 생각나 무안했다. 주인의 얼굴을 보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세를 져 놓고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안 하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급하게 다이어리 뒷장의 메모지에 고맙다는 인사말과 나중에 대전 오면 들르겠다는 말을 써서 입었던 옷을 개어놓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을 아주 가관이었다. 머리는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그렇듯 기름지고 부스스했고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서둘러 눈곱이라도 떼어내고 주인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소극장을 나왔다. 가게 문은 키가 닿지 않아서 의자를 딛고 올라가서 열어야했다. 가게에서 나온 뒤에 문을 다시 잠글 수가 없어서 주인에게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되뇌고 가게가 털리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이름 모를 신에게 빌었다. 가게 앞에서 그렇게 한동안 내적 실랑이를 벌인 끝에야 간신히 발을 뗄 수 있었다.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때 비는 그쳐있었다. 건너편 가게의 현수막이 사라진 것과 나뭇잎들이 거리에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간밤에 범상치 않은 비가 온 것은 사실이었다. 이른 시간에 길을 물을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나는 모바일 지도를 켜서 지하철역까지 갔다. 지하철 첫차를 타는 날이 올 줄 몰랐는데 그런 날이 오늘이 되었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버스 카드로 요금을 내고 지하철을 탔다 첫차의 . 내부 모습은 전날 탔던 몹시 붐비는 지하철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지하철에서 내려 서대전역까지 걸어가는데 여기 저기 널 부러진 나뭇잎이며 쓰레기들이 간밤의 비를 생각나게 했다.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다. 가게에서 하루 머무르지 않고 그냥 집에 가려했으면 나는 우산과 함께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수정이를 만나러 갈 때는 지하철과 서대전역과의 거리가 무척 길게 느껴졌는데 돌아올 때는 생각보다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대전역에 도착해 표를 사려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데 반짝이는 물건이 보였다. 꺼내보니 주인의 프리즘 목걸이였다. 남의 물건이 나도 모르게 내 가방에 있다니 뭔가 꺼림칙했다. 혹시 도둑으로 몰리는 건 아닐까. 광주에 가자마자 대전으로 다시 올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하는 과대망상적인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목걸이 줄에 꼬리표모양으로 붙여진 스티커가 있었다. 스티커의 앞면에는 ‘도담이에게’ 라는 말이, 뒷면에는 ‘그곳’이라고 가게 이름이 쓰여 있었다. 예쁘다곤 했지 선물해달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문도 못 잠그고 나왔는데. 왠지 뭉클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나오려 했다. 정말 나중에 꼭 다시 가야겠다.
열차가 타는 곳에 도착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일찍부터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 가운데 어린 아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를 안아주었다.
“엄마를 잃어 버렸어? 엄마 전화번호 알아”
아이는 대답대신 해맑게 웃더니 저편으로 달려가 버렸다. 순간 어리둥절해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혹시나 다른 열차를 탈까봐 열차표에 적힌 열차이름, 호차, 좌석 등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열차가 도착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도 나는 열차표에 적힌 좌석이 맞는지 계속해서 확인한 끝에 편히 쉴 수 있었다. 가방에서 프리즘 목걸이를 꺼내 손에 걸고 햇빛에 비춰보았다. 예쁜 무지갯빛이 내 바지에 비춰졌다. 각도를 바꿔가며 비춰보기도 하면서 일곱 가지의 빛을 관찰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서 온 전화다.
“간밤에 어디서 잤니? 아빠랑 걱정 많이 했어.”
“친구 집에서 잤어요. 걱정하게 해서 죄송해요.”
“아냐. 연극은 어땠니”
“대학 동아리 연극이라 기대안했는데 다들 수준급이여서 놀랐어요. 다음에는 엄마도 같이 보러가요.”
지금의 나는 왠지 기분이 편안하고 들떠서 전날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하며 즐겁게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이렇게 살갑게 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갑자기 이러는 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그래, 그러자. 그런데 우리 도담이 길치인데 길 안 잃고 잘 갔어”
“어? 저 길치인거 소문났어요? 저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저 이제 길 안 잃어버리고 찾아갈 수 있는 곳 생겼어요.”
“그게 어딘데”
“‘그곳’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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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고래와 떠나는 기차여행 / 채민우
구릉길을 따라 줄지어선 기와집, 초가집 굴뚝으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기세등등한 여름이라지만, 저녁 짓는 시간만큼은 잠시 열기가 누그러졌다. 동네 아이들은 무리지어 언덕길을 달려 내려간다.
평소 허풍이 많고, 말버릇에 항상 ‘막’이라는 추임새를 덧붙이는 경수가 역시 소문의 진원지였다. 아이들은 정보의 신빙성 따위야 진즉부터 상관없어 보였다. 하기야 사실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어머니들의 저녁밥 소환시간까지는 아직 삼십분이 더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의리 있는 녀석들 서넛이 잊지 않고 파란대문집 앞에서 내 이름을 합창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녀석들과 함께 뛰어나갈 처지가 아니었다. 편도선염이 도진 것이다. 어머니는 저녁바람 쏘이면 병이 더할 것이라며, 회초리 몇 가닥을 머리맡에 두시는 것까지 잊지 않으셨다. 사나운 눈초리로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회초리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매 보다 매서운 것이 엉덩이 주사였으니, 병세가 더해져 주사로 귀결될 사태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호기심만은 발동하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이들을 붙잡는다.
“어디들 가는데?”
“경수가 그러는데, 이만한 고래가 열차에 실려서 곧 건널목을 지나간단다.”
경수와 사촌지간인 호수는 ‘이만한’ 이라는 대목에서 양팔로 큰 원을 그리는 것도 모자라 흰자위까지 드러내며 나를 재촉했다.
고래라니...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이들 의리도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곧 기차 지나갈 시간이다. 안 갈려면 말아라. 나는 고래 보러갈란다.”
아이들이 골목길로 빠져 나가는 뒷모습에 안달하면서도 나는 끝내 주사의 위력에 눌려 꼼짝 못하고 말았다. 경수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녀석이니 이번에도 , 그럴 것이라고 믿어 보는 수밖에. 그때 저기 삼거리 기차 건널목에서 기차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흡사 고래가 내는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삼거리로 달려 내려갔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녀석들은 서로 앞 다투어 양팔로 더 큰 원을 그려 보이며 언덕을 올라왔다.
떠들썩하게 한 무리가 담장 옆을 지나가는 동안 나는 허망과 소외감으로 풀이 죽어있었다. 결국 동네 꼬마들 중에 나만 열차에 실려 가는 고래를 못 본 셈이다. 사람들 말을 종합해보니 그 고래는 그물에 걸려 인근 항구도시로 잡혀온 것이었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내게 이 사건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심지어 열차를 타고 여행 다니는 고래로까지 변신하여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
한번은 빈집 공터서 놀던 아이들끼리 설전이 벌어졌다. 고래가 본래 육지동물이었는데, 먼 옛날 바다로 나가 살게 되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그날도 역시 경수가 불을 지폈다. 패가 둘로 갈려 저마다 상대방 말꼬리를 쥐어 잡으며 왜 고래가 물고기인지? 반대편에서는 왜 물고기가 아닌지 겨루었다. 이쪽 말도 일리가 있고, 저쪽 말도 그럴싸했다. 바로 그때, 그간 억눌러둔 서운함이 튀어 나온 것인지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희들은 다 봤잖아! 어떻게 물고기가 기차를 탈 수 있어? 그러니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야,”
한창 격론을 벌이던 몇몇 아이들은 돌연한 내 행동에, 다른 녀석들은 가당치 않을 내 억지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쨌든 그날 일화는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고향 마을은 면소재지로, 주변 국도가 넓고 기차도 빈번히 오가는 곳이었다. 번화한 상가는 제법 활력이 넘쳤고, 때마다 도착하는 열차에서는 외지 사람들 얼굴도 자주 보였다. 버드나무가 있는 역 광장에서는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고, 꿈을 안고 상경했던 자식들은 철마다 양복을 빼입고 부모를 찾아 귀향했다. 열차가 역에 다가오면서 울려대는 기적소리는 누구에겐 출세를 다짐하는 출사표였을 테고, 또 누군가에겐 감격을 싣고 돌아오는 금의환향의 나팔이기도 했으리라.
열차는 쉬지 않고, 누군가의 꿈을 실어갔고, 또 누군가의 그리움과 기다림을 실어 왔다. 고래 사건이후에 나도 이 역 광장을 자주 배회하곤 했다. 고래를 태운 열차가 또 올까 요행을 바라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다만 키가 자라면서부터 열차와 역사(驛舍)가 풍기는 어떤 끌림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 우리 가족도 그 역 광장을 지나 열차에 몸을 싣고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멀리 멀리 휘돌아 여기에 이르렀다. 귀밑머리는 어느새 희끄무레해졌고, 앳되던 표정은 나잇살이 드문드문 끼어들면서 피로와 무표정이 어색하게 번져있다. 크게 설레어 할 것도, 가슴 졸이며 애틋해 할 일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십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상상력을 내어주고, 이해타산을 대가로 받아오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온 뒤로 나는 그 역 광장으로 돌아가 본 적이 없었다. 어미 품을 떠난 어린 새 마냥 의연히 떠나는 왔으되, 내내 마음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만져졌다.
정체를 알 것도 같지만, 나이 사십이 되도록 그 존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거슬러 돌아가 볼 때가 된 것일까?
철커덩 철커덩... 서울역을 떠난 열차는 도시풍경을 순식간에 밀어내고, 가을 들판을 가로지른다. 완행열차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 기적을 울린다. 어느 역 하나 빠트리는 법 없이 친절히 들러 안부를 물어주던 비둘기호 자리에는 급행열차가 달린다. 하지만 시절이 바뀌어도 여전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열차의 맥박소리다. 철커덩 철커덩, 이 소리야말로 기차의 내력이요, 그 고유한 전승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분절음으로 기억 속에 묵혀 있던 추억들도 차례차례 소환되어 떠올랐다. 그 좁던 구릉길을 뛰어 내려가는 동무들, 시골역 광장에서 분주히 교차하던 사람들. 그리고 버드나무 아래에서 역을 바라보고 서 있는 소년. 고래와 열차, 육지에서 살다가
바다로 이사 갔다던 그 이상한 포유동물과 맥박 소리를 지닌 열차를 꿈에서 조우하던 그 소년이 여전히 거기에 서 있다. 그는 왜 역 광장을 배회한 것일까? 그때, 열차가 곧 고향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고향역의 외관은 그대로였다. 거기 느티나무도 조금 더 늙은 것만 빼고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 광장은 예상만큼이나 좁게 느껴졌다. 시간을 거슬러 온 착시현상일 것이다. 역 주변은 진공 속에 놓인 것처럼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유년시절의 표정을 잃고 돌아온 내 모습과는 달리 고향역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듯했다. 그 시절, 소년이 서 있던 나무 그늘로 들어 가 광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던 것은 고래 몸집만큼 커져 버린 꿈을 가슴에 품고, 용기 있게 드넓은 세상을 향해 떠나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내게 열차는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상으로 뛰어 들라는 초대장이었으며, 언제든 원할 때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으로서, 회귀선(回歸線)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견고할 것만 같던 삶이 어디서부터인가 균열이 오고 있다고 불안해했다. 정체 모를 걱정과, 외로움이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사십대의 일상은 단맛도 별로 없고, 삼키기엔 약간 딱딱한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가슴 한쪽 언저리가 얼얼해져 왔다. 그 얼얼한 진동은 유년시절로 데려가려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완행열차가 나를 부르는 기적소리가 아니었을까. 이 너른 시간의 바다 속에서 나를 건져내어 열차지붕 위에 싣고, 다시 귀향하는 추억이라는 기차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열차는 언제나 순환선이다. 현재를 떠나 미래로만 향하는 편도편이 아니라, 언제든 추억을 싣고 과거로도 거슬러 올랐다가, 때 맞춰 현실위로 신나게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려 나오는 왕복편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가 . 살아왔던 모든 순간들은 추억의 간이역마다 거기에 오롯이 살아있다. 그러니 더 불안해 할 것은 없다.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대목마다 추억은 간이역을 만들어 놓았고, 또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길목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새겨둔 이정표를 세울 것이다. 인생에는 평범한 날도 있고, 비범한 날도 가끔은 찾아온다. 그렇게 이어지는 시간의 철로를 따라 우리는 숱한 마중과 배웅을 경험하며, 풍성한 추억과 생(生)의 참 의미를 쌓아가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자기만의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며, 들르게 될 간이역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의 풍미도 깊어진다는 것이리라. 여행이 계속되는 한, 충분히 설레고, 애틋하게 기대할 만한 일들은 다음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기적이 울리면 시간에 맞추어 나를 기다려주는 완행열차에 올라탈 것이다. 거기서 나는 어린 시절 편도선염으로 안타깝게도 서로 길이 어긋났던 고래와 함께 추억과 꿈들이 넘실대는 바다로 떠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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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기적소리 / 조미정
담장 너머 눈발이 날리는 기찻길에서 울컥 하고 기적이 운다. 대문 앞에 조등(弔燈)으로 내걸린 등불은 꺼지고, 썰물처럼 조문객들은 빠져나갔다. 홀로 앉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늙은 소의 워낭처럼 낮게 흔들리는 소리가 뻐근하다. 내 마음은 가슴 한 구석에 쟁여두었던 기억의 빗장을 열고 덜컹덜컹 침목 위를 달려간다.
친정으로 신행을 갔다가 시댁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날도 눈이 내렸다. 몇 십 년 만에 내린 대설에 텔레비전 화면은 종일 크고 작은 교통사고 소식을 전했다. 시댁으로 보낼 이바지 음식을 바리바리 싸며 흘끔거리던 엄마가 나를 붙잡았다.
“꼭 오늘 가야 되나?”
시댁이 있는 울산에서도 눈이 많이 내렸다. 하룻밤 더 자고 내려간들 뭐라 탓할 어머님도 아니었건만 나는 그날 내려가기를 고집했다.
시큰둥한 내 맘을 눈치 챘는지 엄마도 더 이상 붙잡지 못했다.
어렵사리 한 결혼이었다. 맞선 자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왔지만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었던 터라 나는 엄마와 팽팽한 힘겨루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학사장교로 군 복무 중이던 남편이 마뜩찮아 엄마는 좋은 혼처 다 놓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자리를 만들어 선을 보게 한 적도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성실하고 선한 남편의 됨됨이에 결국 엄마도 항복을 하고 말았다.
엄마는 내 결혼식에서 절대 울지 않는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잘 지내다가도 끝에 가서는 토라져 자주 얼굴을 붉히던 애물단지 딸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홀가분한 것처럼 보여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덤덤해 보이던 엄마가 막상 식장에서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한참 뒤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런 줄도 모르는 나는 친정에 오래 머물수록 엄마 애만 쓰이게 한다 싶
었다. 하룻밤 머물고서는 서둘러 떠나려고만 하니 얼마나 야속했을까.
눈은 핑계이고 사실은 하룻밤만이라도 딸과 함께 자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사춘기 이후로 한 번도 엄마와 한방에서 자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인가. 한때 바람을 피운 아버지 때문에 속이 상한 엄마가 곁에 누웠을 때도 등을 밀어냈다. 내 방에서 쫓겨난 엄마는 오도 가도 못하고 대문 앞에 쭈그려 울고 있었다. 달은 휘영청 하고, 쓸쓸해 보
이던 엄마의 등허리가 아직 눈에 선하다. 그 이후로 엄마는 늘 내게 생인손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엄마가 안쓰러우면 안쓰러울수록 말은 퉁명스럽게 나왔다. 밖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참한 아이가 엄마에게는 못된 딸이었을 게다.
수십 년을 살아도 고향은 나를 묶어두기보다 지긋지긋한 곳이었다.
가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집 앞 기찻길로 하루에도 몇 번씩 완행열차가 지나가면 내 마음은 냅다 달리기부터 하곤 했다. 언젠가는 노란 불빛이 엿가락 같이 새어나오는 새벽기차에 몸을 싣고 가난한 동네를 떠나버리고 싶었다. 기회는 그로부터 십여 년도 더 지난 후에야 찾
아왔으니 몸만 자란 나에게 엄마 마음을 헤아릴 깜냥은 없었다.
드디어 고향을 떠난다는 사실에 가슴이 먼저 벌렁거렸다. 내리던 눈은 잠시 소강 상태였다. 걱정 마시라 호기롭게 외치고 대문을 나섰다.
엄마는 기차 건널목 건너 큰길까지 배웅을 나왔다. 아무래도 못 미더운 눈치였다. 눈이 드문 지역이라 작은 눈발에도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던가. 나도 내심 긴가민가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다. 정류장은 떠나지 못한 차들로 미어터질 듯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발만 구르는 사람들의 애간장은 바닥까지 바짝 졸아들고 있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버스를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몇 시간동안 바지런히 발품을 팔아 겨우 기차표를 구했다. 다음 날 새벽녘에 떠나는 첫 완행열차였다. 덕분에 추운 겨울밤을 꼬박 대합실에서 새워야 할 판이었다 친정에서 . 잠시 눈을 붙이고 올까 생각을 했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당당하게 손을 흔들고 나온 터라 되돌아가기 멋쩍었다. 게다가 몇 시간쯤 후미진 계단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은 노숙을 고생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결혼과 함께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고 한다. 플랫폼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 같았다. 기차는 다른 세상으로 나를 실어 나를 것이다. 곧장 앞만 보고 달리다가 때로는 터널이 나오기도 하리라. 그리고 힘이 들 때는 간이역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리라.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으니 다가올 삶의 여정에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수북이 산야를 덮은 눈이 세상의 소리를 다 집어삼켜 버린 것일까.
새벽기차는 두런거리는 속삭임조차 없이 고요했다. 사람도, 풍경도 졸음에 겨워 눈을 감았다. 웬일인지 나는 두 눈이 말똥말똥했다. 기차는 동대구역을 떠나 동촌역을 지나고 있었다. 이쯤이다 싶어 내다본 차창너머로 고향 집이 눈 깜짝 할 새 지나가고 있었다. 공중전화기 말고는
마땅한 통신시설도 없던 시절이었다. 잘 도착했다는 전화 한 통화 제대로 못 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났다. 불 켜진 집 안에서는 밤을 꼬박 지새운 엄마가 집 앞을 지나는 기적소리에 몸을 뒤척였으리라.
삶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부간의 갈등보다 동서지간에 부딪히는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 형님과 시누이의 등쌀에 끼여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남편의 사업실패로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앞이 막막한 우리를 위해 어머님은 시골의 땅 한 뙈기를 팔았다. 그런데 그 돈을 어머님 몰래 형님이 가로채 갔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나에게 형님은 오히려 시숙 명의의 땅을 팔았으니 고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큰아들이 판검사가 될 것이라고 물심양면 지원했던 어머님은 어쩌겠냐며 우리보다 큰아들 걱정을 먼저 하였다. 그
후로 시댁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궤도가 하나뿐인 구간에서 기차가 지나다니는 방법은 여러 차선을 가진 도로와 다르다. 상행선과 하행선이 같기 때문에 선로는 붙었다
떨어졌다 자주 자리를 바꾼다. 마주 오는 기차가 있으면 달리던 기차는 잠시 멈추고 선로에서 비켜선다. 그리고는 반대편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리라 . 앞만 보고 달리다가도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어 비껴서면 될 것을 괜히 안달을 내며 또 한 번의 황소고집을 부렸다. 너무나 절박한 마음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삶은 부딪히는 일이 많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도 견
디기 힘들었다.
어려움에 놓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등을 돌리지만 진정한 관계는 손을 잡아준다. 내게 엄마가 그랬다. 삶의 파고에 이리저리 휩쓸릴 때마다 머무를 수 있는 작은 역과도 같았다. 다 큰 딸 때문에 속이 문드러져도 엄마는 다 받아주었다. 평생을 살면서 진정으로 위안을 주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이제 폐역이 되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라는 역이 새삼 그립다.
삶이라는 기찻길에는 숱한 이별과 만남이 공존한다. 떠나는 이가 있으면 돌아오는 이도 있다. 그 날의 기찻길에 나는 새로운 인생을 만나기 위해 떠나고 엄마는 품었던 자식을 떠나보내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거꾸로다. 엄마는 떠나고 내가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생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해주지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기적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철길을 달리는 기차는 엄마의 따뜻한 품으로 나를 실어 나를 것만 같다. 눈물 한 줄기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제 엄마를 영원히 보낼 시간이다. 길게 울음 울며 흩어지는 기적소리에 미안함과 그리움을 묻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