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민정은 2018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대상 수상작인 「세실, 주희」에서는 성별, 인종, 민족 간 갈등과 미묘한 권력 관계를 주희, 세실, J라는 세 인물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냈다.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가 소설가로서 겪는 고통과 다를 바 없다는 박민정 작가.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읽으며 쓰라림을, 비참함을, 부끄러움을, 통쾌함을 느꼈다. 한국소설의 오늘이자 내일인 소설가 박민정과 나눈 서면 인터뷰를 전한다.
“일인칭에서 벗어나 부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글자를 읽어 내며 여기 없는 것을 있다고 실감하면서, 일종의 고통스러운 추상의 과정을 통해 세상 구경하는 것, 그것이 아마 독서, 소설, 문학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제공= 문학동네 ⓒ이천희
- 먼저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격려받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로 인해 조금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습니다. 특히 ‘대상’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껏 소설집 두 권을 출간하면서 많은 독자 분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작가이기에, 제 작품이 젊은작가상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주눅도 들고 ‘왜 이 작품이 대상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라는 반응을 보면 가만히 무너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시, 칭찬 못지않게 질타를 많이 받는다는 것조차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라는 걸 알기에 기쁩니다.
-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해,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등을 펴냈어요. 작가님께 소설은 어떤 의미인지요?
저는 항상 소설 생각을 합니다. 소설가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그 어떤 관심과 탐구도 전부 소설로 회귀되고, 한 인간으로서 겪는 모든 경험과 공부가 전부 소설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을 원하고 소설적 방식을 추구하는데 그것이 직업이 되어 일로서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혼자 있는 집에서 공들여 밥을 차려 먹듯, 누구도 내 작품을 읽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에도 소설을 썼습니다.
-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부터 최근 젊은작가상까지 다수 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소설가로서 영역을 구축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소설가로 살아가는 현실적인 문제는 녹록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작가노트에서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며 버틴 어느 여름을 회고하시기도 하셨지요.
저에게는 시민으로서 겪는 문제,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가 소설가로서 겪는 고통과 거의 다름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뭔가 깊게 생각하는 방식에 길들여졌기에 실체적 징후로서의 질병을 겪기도 했습니다. 강박, 불안, 조울 같은 것들…… 가까운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상처를 준다고 여길 때면 이게 다 소설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다른 청년들과 다를 바 없었고 소설가가 처한 특별한 현실적 문제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소설을 쓰는 삶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바로 그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 「세실, 주희」는 성별, 민족 간 혐오, 권력 관계가 예민하게 교차돼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 남성과 여성, 전범국과 피해국… 이 사이에 서 있는 주희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마무리 짓기 보다는 그대로 펼쳐둔 채로 끝맺으셨습니다. 「세실, 주희」로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주희가 그러했듯, 또는 세실이 그러했듯,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파열하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반드시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고, 그 중층적인 정체성이라는 것은 둘러싼 현실적, 물리적 조건들로 인해 우연적으로 형성되어 가기도 한다는 것이 저의 각별한 관심사인데 그 부분이 많이 드러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르디 그라, 참회의 화요일이 육박해오는 순간이었다. 행렬은 어느덧 소녀상 근처에 도착했고 세실은 동상의 의미를 몰랐다. (「세실, 주희」 中)
- 작품에 드러나 있는 다양한 문제 중에서도 ‘여성 혐오’가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벌어지는 여성 혐오와 성별 갈등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여성이라는 비국민, 비시민으로서(이 말에 과장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물화되고, 대상화되고, 사회의 고통을 떠안는 대상이 되어 왔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여성혐오는 유구한 전통놀이였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성별 갈등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여성적 시각으로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놀라워하고 난처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 사실만을 거듭 확인할 뿐입니다.
유경은 샤워를 마치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있었다. … 유경은 초침을 따라 눈을 굴리다 문득 고정 핀에 시선을 멈췄다. 고정 핀은 유경과 함께 한동안 멈춰 있었다. 유경은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고정핀은 유경을 따라 아래로 기울었다. … 고정핀을 뽑자 카메라가 딸려 나왔다. (「버드아이즈 뷰」, 『아내들의 학교』 中)
- 「당신의 나라에서」는 “나는 라이너스의 악몽에서 깨어났고, 당신의 나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로 끝맺습니다. 어떤 각성과 연대의 시작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떤가요?
네, 그 작품에서는 특별히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 예술적 동지로서 작업실을 나눠 쓰며 고민을 나누는 부분도 그랬고, 자신으로서는 기억에도 없고 모호한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제껏 몰랐던 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고통을 수반한 각성의 순간들이 있었고, ‘도와주는’ 연대가 아니라 함께하는, 그러니까 그게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요.
사진제공= 박민정
朴과 木下가 왜 닮아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결혼하기 전 어머니의 성이 아라이新井였다는 것도.
그건 신라의 우물이란 뜻으로, 한국 밀양 박씨의 시조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어쩌면 나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자이니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두려웠습니다.
(「행복의 과학」, 『아내들의 학교』 中)
-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2014), 『아내들의 학교』(2017)에 이어 「세실, 주희」까지 작중 세계와 작가님의 문제의식이 점차 확장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자식 세대 간 문제에서부터, 성별, 시대와 국가를 넘나들고 계신데요. 그동안 작가님께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 더 들면서(아직 젊기는 하지만요), 문제의식의 폭이 더욱 넓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첫 작품집은 20대 젊은이로서 겪는 가까운 고통을 내밀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현실적인 고통에 대해 실제의 저는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소설을 발표하는 일 자체의 긴장감이 조금 줄어들었고, 작품을 좀 더 ‘갖고 노는’ 방식을 추구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여성적 글쓰기’의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덕을 본 것도 있습니다.
“조교라는 게, 대단한 건 줄 알았던가? 일전에 너는 내가 너를 데려왔다고 표현했지. 정말 데려오기라도 했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면 내가 너의 학비를 전부 대납하고, 너의 생활을 부양하고, 너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어야 한 건가? 너에게 그런 가치가 있나?” (「굿바이 플리즈 리턴」,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中)
-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속 작품들은 동일한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1980년대 태어나 1990년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청년과 부모 세대 간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부모 세대의 방임과 폭력, 청년 세대의 반감과 무력. 중간자 역할을 하는 인물들도 부모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실감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네, 살아오면서 수없이 실감한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1980년대생으로서 한국사회에서 보다 예민하게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특히 ‘중간자’역할에 대해,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썼는데요. 부모가 아니라 언니, 형, 이모, 삼촌에 가까운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았던 사람들’의 배신, 이를 실감하게 된 데에는 제가 조금 이른 나이에 학교에 출강을 하면서, 내가 어른에도 아이에도 가깝지 않은 중간자적 위치에 있고, 죽도록 싫어하던 선배들의 모습을 닮아 가는 자신을 발견하던 순간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코 정의롭지 않고 너무나 비겁하기만 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중간자’의 위치와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너희들 먹여 살리려고 징역 갈 수도 있었어. 그렇지만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아니, 유진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범죄라도 저질러야 했다. 아버지에게는 범죄를 저지를 만한 근면이 부족했다. (「굿바이 플리즈 리턴」,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中)
- 대학원에서 문화연구학을 공부하셨어요. 다양한 국가, 세대, 계층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전공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거나 도움이 되는 때가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전공한 문예창작, 문화연구 모두 작품을 쓰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요. 두 전공 모두 어떤 지점에서 ‘백치’에 가까웠던 내게 일종의 세례를 내려 주었고, 교수님들과 선후배 동기들과 나눈 고민을 지금도 되새기면서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 작가님의 작품 속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떠올리는 시간이 괴로웠지만 즐거웠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한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짧고 자신의 위치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그러니까 우리 자신의 얼굴조차 거울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볼 수 없듯 일인칭이라는 맹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인칭에서 벗어나 부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글자를 읽어 내며 여기 없는 것을 있다고 실감하면서, 일종의 고통스러운 추상의 과정을 통해 세상 구경하는 것, 그것이 아마 독서, 소설, 문학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을 동반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요. 길티 플레져 같은 소설을 힘 닿는 데까지 써 보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를 포함해서 여전히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소설을 읽고 토론하고 리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면 벅찬 일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소설의 기쁨을 계속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박민정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가 있다. 제22회 김준성문학상, 제7회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 Editor - 조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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