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0일 설교 연구 교재
오순절 후 스물두 번째 주일
성서정과 시 145:1-5, 17-21; 학 1:15b-2:9; 살후 2:1-5, 13-17; 눅 20:27-38
예배로 부름 Call to Worship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예배 기원 Invocation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과 같이 고달픈 인생길에서 방황하던 저희들이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손을 들어 기도합니다.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성소에서 주를 바라봅니다. 예배하는 우리에게 큰 은총으로 채우사 골수의 기름진 것을 먹음 같이 만족하게 하옵소서. 주님 곁으로 가까이 부르사 평안 중에 머무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주일의 찬송 Hymns
내 영혼아 주 찬양하여라 (41장) /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67장)(통 31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312장)(통 341장) / 위대하신 주를 (334장)
누가 주를 따라 (459장)(통 514장) / 내 주 하나님 (469장)
성시 교독 Responsive Readings | 시편 145:1-5, 17-21
인도자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회 중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인도자 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회 중 4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인도자 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회 중 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인도자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도다
회 중 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인도자 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회 중 21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고백의 기도 Prayer of Confession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넘치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사연만 가득합니다. 아무런 공로 없이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았지만, 저희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형통할 때에는 내가 능력이 있어 그런 줄 알고 교만했고, 부요할 때면 건강과 물질을 방종의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지 못해 더 많은 욕심을 채우려 하다가 형제와 불화하고 이웃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오, 주여!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했던 저희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부터는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말과 행함을 지도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고백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사함의 확신 Assurance of Forgiveness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겔 18:21-22)
오늘의 주제 : 부활이 필요 없는 사람들
본문의 접근
본문의 재경청 눅 20:27-38
27 부활(아나스타시스, ανάστασις, rising, resurrection)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남겨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를 맞아들여서 뒤를 이을 아들을 자기 형에게 세워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얻어서 살다가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고, 31 그 다음에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일곱 형제가 다 그렇게 하였는데,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니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지만, 35 저 세상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참여할 자격(카탁시오오, καταζιόω, to consider entirely)을 얻은 사람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는다. 36 그들은 천사와 같아서, 더 이상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들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37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보여주었는데, 거기서 그는 주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38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자오, ζάω, to live).” <새번역>
본문 개관
땅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사두개인들이었다. 그들은 영혼 불멸이나 운명, 최후의 심판 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남는 것은 현실 세계뿐이다. 율법과 그 준수, 현실의 치열한 다툼이 그들에게는 우선적인 관심 이었다. 결국 의회와 상류층에 다수가 포진하게 되었다. 현실의 배경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전개하니 바리새파와 같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불화했다. 오늘 본문은 이들이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주입하는 장면이다.
본문 분석
1.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은 성경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세 오경을 해석하다가 부활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2. 사두개인
제사장 사독의 후손으로 나름대로 유대교의 한 분파를 이루었다. 제사장에 국한되지 않고 관계에 진출하기도 했고 헬라 문화에 동조하기도 했다.
3.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계대결혼 제도를 말한다. 형이 죽는 경우에 그 부인을 동생들이 아내로 맞는 제도이다. 상속자를 세운다는 말은 창세기 38장 8절,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와 관련이 있다.
4.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부활한 사람,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35절)의 경우 다시 죽지 않는다.
5. 천사와 동등
부활한 사람이 천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천사와 같이 소멸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신학
1. 지식 권력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의 사회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더욱 자신 있게 논쟁에 임했을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이 정도 성공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니냐는 전제를 깔고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유대교 분파적인 신학도 나름 강 력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다툼이 일어났다. 지식에도 겸손이 있다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이나 다투지 않았을 것이다. 지식이 중립적이고 진리도 감정이 없는 이론이니 강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세상의 지식은 이렇게 권력 그 자체 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는 그 자체로 겸손이고 낮아짐이다.
2. 부활의 모순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율법이 정해놓은 논리로 부활을 공박한다. 계대결혼 제도가 있는데 그것을 따른다면 부활과 그 결과가 어처구니없다는 말이다. 사람을 위해서 부활이 있을텐데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전 제로 한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차원이 다른 문제임을 지적하신다. 부활은 사두개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에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돈을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겨야 감사하게 된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겨야 한다. 땅을 기는 곤충이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알기 어렵듯 차원을 달리해야 알 수 있는 일이다.
3. 율법에서 새 율법으로
율법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상으로 한다. 사두개인들이 말하는 계대결혼 제도도 이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정해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러나 부활은 이생에서의 삶과 단절됨을 의미한다. 사두개인과 달리 바리새파였던 바울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활에 대해 서신서에서 자신 있게 증거 한다(행 23:6).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미 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38절). 육신을 입고 있든지 아니든지 하나님은 그들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과거와 현재의 통찰로 말씀을 전하신다.
4. 부활의 소망
죽음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니 필연적이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여전히 소망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35절)이 따로 있음을 암시하신다. 누가복음은 나머지 부분에서도 이를 알려 주며 깨어 있으라 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활하는 사람은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36절)가 되는 특권을 누린다.
평행 본문
학개 1:15b-2:9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그 달 이십사일이다. 2:1 그 해 일곱째 달, 그 달 이십일일에, 학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였다.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과 남아있는 백성에게 전하여라. 3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 옛날 찬란하던 그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4 그러나 스룹바벨아, 이제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아, 힘을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5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맺은 바로 그 언약이 아직도 변함이 없고,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6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머지않아서 내가 다시 하늘과 땅, 바다와 뭍을 뒤흔들어 놓겠다. 7 또 내가 모든 민족을 뒤흔들어 놓겠다. 그때에,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다.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8 은도 나의 것이요, 금도 나의 것이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9 그 옛날 찬란한 그 성전보다는, 지금 짓는 이 성전이 더욱 찬란하게 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바로 이곳에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새번역>
바벨론의 포로로 살다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지어야 했다. 학개는 성전 재건의 중요성과 성전의 영광을 강조한 선지자이다.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1장 15절,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다. 얼마나 중요하면 그 날짜를 정확하게 기록을 했겠는가. 그로부터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났을 때인 2장 1절의 날짜에 성전의 영광을 강조한다.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하며 폄하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이 중요하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13-17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일과 우리가 그분 앞에 모이는 일을 두고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2 여러분은, 영이나 말이나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에 속아서,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3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어떤 방식으로도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 생기고, 불법자 곧 멸망의 자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4 그는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나 예배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그들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인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5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이런 일을 여러분에게 거듭 말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13 주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처음부터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14 이렇게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으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15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든든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새번역>
데살로니가전서가 된 첫 번째 편지를 보낸 이후 바람직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진리에 거하지 않고 주의 날에 대해서도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라면 성경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13절). 그리스도의 영광은 복음 가운데 믿는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러니 믿음 안에서 굳게 서야 한다.
설교를 위한 적용
오늘에 적용
• 부활을 알아야 한다. 사두개인은 부활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오히려 반박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반대하는 논리를 만들며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했다. 그래서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 부활을 체험해야 한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믿고 있었던 바리새인이었다. 그러던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했다. 아는 것과 부활의 능력을 힘입는 것은 체험적인 믿음에 달렸다.
• 예수님이 길이다. 율법을 들어서 부활을 부정하려던 사두개인들을 가르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부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모세 오경을 다시 들어서 그들을 일깨우셨다. 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면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다.
•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저 하루하루 생활을 하는 것을 살아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참된 진리를 품고 살 때에야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 소망을 지켜야 한다. 사두개인은 현세의 일과 복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부활은 미래의 일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누릴 소망에 관한 것이다. 바울의 삶과 가르침을 보라!
설교 개요
•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사두개인들은 복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거부감을 보였다.
• 그들은 자기들이 아는 것만을 인정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기들이 이해하는 논리로 부활을 거부하려 한다. 일곱 형제와 부인의 이야기는 그럴싸하다.
•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핵심을 놓쳤고 진리를 외면했다. 핵심은 부활이 이생의 재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는 혈통이나 노력으로 얻는 것 이 아니며 모두를 위해 열려 있다는 점이다.
• 부활은 지금이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이미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두개인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다. 복음이 불필요한 사람들이다.
• 예수님은 그들이 논리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한 것을 활용하신다. 그들이 인정하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칭한 것을 상기시킨다. 사두개인들의 생각과 다르게 부활이 있음을 증명하신다.
설교를 위한 예화
욜로족 열풍이 여전히 거세다. You Only Live Once, 즉 한 번만 살 수 있을 뿐이다. 혹은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 의미이다. 지금 사는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서구에서 먼저 시작된 생각인데 몇해 전부터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무한도전과 같은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서 이를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느냐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학업에 있어서도, 취업에 있어서도, 직장생활에 관해서도,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기르는 육아에 있어서도 자신을 지금보다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는 쪽으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욜로(YOLO)가 가지는 의미를 자신이 소모되고 희생되고 있다고만 해석하는 것은 원래의 뜻을 생각할 때도 너무 편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의미를 이 한 번뿐인 인생에서 귀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것으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기를 무조건 희생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