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뭔 방학식날 까지 학원에 오래 "
투덜투덜 학원으로 향했다. 평소 가던 지름길이 아닌 조금 돌아가는 먼 길로. 올해도 여름이 찾아왔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표정만 봐도 불쾌지수가 높다는게 눈에 뻔히 보였다. 그렇게 더운가? 평소 더위를 타지 않던 성하는 오늘도 하복 위에 회색 후드집업을 걸쳐 입었다. 오늘 날씨 괜찮은데, 최대한 어떻게든 늦게 가보려고 걸음을 늦췄다.
" 확 그냥 학원을 째버려?! "
" 그건 안되죠 "
아 깜짝아,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 학원은 가야죠 "
갑자기 이마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헐 내가 땀이 나
" 주스 한잔 줄게요 마시고 가요 "
" 아, 아뇨 제가 돈이 없어서.. "
" 가게 홍보 기념으로 오늘만 그냥 줄게요 "
카페 직원의 손짓에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이 에어컨 바람에 의해 차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직 후끈 거리는 열 때문에 올 여름 처음으로 후드집업을 벗었다.
" 그런데 안 더워요? 후드집업을 입고 다니네 "
" 제가 더위를 안 타서 "
" 땀이 되게 많이 나는데.. "
그러니까요. 제가 왜 땀이 나는지. . 성하는 제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 찬 에어컨 바람도 싫어하던 저인데 지금은 찬 에어컨 바람이 반갑게 느껴졌다.
" 이 가게 사장님이세요? "
" 네 맞아요, 자- "
카페 사장은 성하에게 딸기 스무디 한잔을 주었다. 여름에도 차가운 건 싫다며 항상 미지근한 물을 마시던 성하였지만 스무디를 쪽쪽 빨아 마셨다. 스무디 너 오늘 따라 되게 맛있게 느껴지는구나. 차가운 딸기 스무디를 마시는 동안 카운터에서 일 하는 사장을 힐끔힐끔, 아니 대놓고 쳐다봤다. 흰 와이셔츠에 갈색 앞치마가 완전 잘 어울렸다. 대박 멋있어
" 저 음료수 감사했어요 스무디 사먹으러 매일 올게요! "
" 그래요 학원 잘 가요 "
카페 사장은 제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뜨거운 햇빛이 저를 반겼다. 재미없는 수학 시간 2시간은 흐른줄 알았더니 고작 2분 밖에 안 지났다. 아 집에 언제 가
" 쌤 추운데 에어컨 끄면 안돼요? "
다들 얇은 반팔을 입고도 땀을 흘리며 더워했지만 성하는 후드집업을 입고선 에어컨을 끄자고 했다.
" 선생님 더워 죽겠다 성하야 "
" 힘드시면 오늘 수업 여기까지만 할까요? "
" 너 오늘 늦게 와 놓고 그게 할 소리니? 너 오늘 왜 늦었어 "
왜 늦었긴요 카페에.. 순간 또 몸에 열이 올랐다.
" 헐 쌤 저 더워요 "
선생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왜 또 덥지? 선생님은 그 말에 에어컨 온도를 낮추곤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설명하는 쌤을 바라보는데 하얀 와이셔츠 때문에 아까 만난 카페 사장이 생각 났다. 진짜 잘 어울리던데 와이셔츠.. 잡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수업 시간이 끝이 났다. 더워서 잠시 벗어뒀던 후드집업을 가방에 꾸역꾸역 눌러담곤 지름길이 아닌 아까 지나온 길로 다시 돌아갔다. 유리창 너머로 카운터에 서있는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고 사장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성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해가 져서 그나마 시원해진 여름 밤 길을 걸었다.
" 성하 왔네? "
카페에 매일 출석도장 찍은지도 석달이 지났다. 가을이 찾아 오려는 듯한 날씨에 바람이 시원해졌다.
" 제가 매일 온다고 했잖아요 "
매일같이 찾아오는 성하는 아성과 많이 친해져 있었다.
" 왜 매일 딸기 스무디만 마셔 딸기 많이 좋아하나봐? "
좋아하냐고요..? 좋아.. 좋..
" 네 엄청 많이 너무 좋아해요 "
" 딸기 엄청 좋아하는구나 기다려 금방 해줄게~ "
" 아뇨! 딸기 말고 사장님 좋아해요 "
그리곤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큰일났다..
" 아, 저 그게 지금 제 대답에 당장 말 안 하셔도.. "
" 성하야, 성하는 아직 고3이잖아 "
저 말은 거부의 뜻 이겠지? 마음이 착잡했다. 역시 어른들 말은 틀린게 없어. 첫사랑은 안 이루어진다는 말 다 진짜였구나.. 뒷 말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나는 경찰서 가고 싶지 않은데~? 그니까 나중에 다시 와 "
내 사랑이 이렇게 끝..이 아니라 다시 오라고? 다시 오라고요? 그럼 나 차인 거 아닌거야? 지금은 차인건가? 하지만 다시 오라잖아..!
" 그게 무슨.. "
" 그런데 우선 학원은 가야지? 내일 또 와 "
성하는 알 수 없는 대답에 멍한 표정으로 학원에 도착했다. 이건 분명 엄청난 긍정의 말이야! 성하는 그 뒤로도 매일 카페에 출석 체크를 했고 카페 사장도 평소처럼 저를 반겨줬다.
3 . . 2 . . 1 . . 댕- 댕- 올해도 종이 울렸다.
" 여보세요? "
" 야 어디냐 집이겠지 나와 술 마시자 20살 된 기념 "
" 미안 오늘은 바빠서 너네끼리 마셔! "
" 야, 무슨일인데 야! "
성하는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섰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긴 통화 연결 소리에 발 걸음이 더욱 더 빨라졌다.
" 여보세요? 무슨일이야? "
" 어디에요? 잠깐 나올 수 있어요? "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거리 속 익숙한 형태가 보였다.
" 왜 불렀어? "
" 저 그게.. "
당돌하게 만나자고 불러냈던 방금과 달리 입에서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게..
" 올해 20살 됐네? "
" 네? 네.. "
" 그럼 나 이제 안 잡혀 가도 되는건가? "
" 네? "
저 말 지금 나 받아준 거 맞지? 진짜 나 받아준 거 맞지 이거? 아성이 성하에게 손은 내밀었다. 성하는 아성을 따라 손을 내밀었고 아성은 그런 성하의 손을 따뜻하게 꼭 잡곤 눈을 접혀가며 웃었다.
" 해피 뉴 이어 성하야 "
첫댓글 어머 사장님 되게 설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