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65년 풍산개를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하고 1975년에 풍산개종견장을 내왔다. 그러나 실은 1959년에 조직된 ‘조선자연보호연맹’이 순 혈종 보존을 위해 양강도 김형권군 광덕리에 대규모의 목장을 만들고 풍산개를 보호하고 있었다.
동물들 싸움 장면, 기록영화 만들어
김정일은 단순한 욕심으로 우량종 풍산개 한 쌍을 자신의 사무실 주변에서 키웠는데 나중에는 다른 품종의 개들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아졌다. 당시 북한의 사회안전부(경찰)와 국경경비대에서 외국산 품종의 감시견을 많이 키웠다.
북한주민들은 이런 감시견을 ‘추격용 개’라는 의미에서 ‘추격개’, 빠른 발음으로 ‘추깨’라고 불렀다.
김정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풍산개의 실력을 알고 싶은 충동에서 당시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가 키우던 감시견 몇 마리를 가져오도록 했다.
1980년대 동물원에서 키우던 동물들을 싸움시켜 서로가 물고 뜯는 잔인한 장면의 기록영화(다큐) ‘동물들의 싸움’을 여러 편으로 나누어 만들었는데 이는 개들끼리 싸움을 시키고 이를 즐기던 김정일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순수한 충동 욕구에서 시작된 풍산개와 다른 감시견, 사냥견들의 싸움에서 김정일은 남다른 쾌락을 느끼게 되었다. 김정일은 평양시 중이목장에 개들의 싸움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까지 따로 마련해 두고 주말마다 개들의 싸움을 즐겼다.
1960년대 조총련 귀국자들 중에는 돈 많은 부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김정일은 이들을 불러들여 개들의 싸움에 달러를 걸고 도박판을 벌렸다. 도박판에서 이긴 귀국자들에게는 풍산개나 원하는 다른 원하는 종의 개들을 선물로 주었다.
당시 원산시나 함흥시에 살던 돈 많은 귀국자들이 풍산개와 감시견들을 많이 키웠는데 이것들은 김정일이 벌려 놓은 도박판에서 선물로 받은 것들이었다. 이러한 도박판은 귀국자들을 통해 일본에 있는 총련의 간부들에게도 알려졌다.
1970년대 조총련의 간부들이 주말마다 무리를 지어 평양엘 드나들었는데 개들의 싸움을 이용한 도박을 위해서였다고도 알려졌다. 일본에서 싸움용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도박판을 짐작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성공할 때까지 목표부위만 계속 공격
김정일은 개들의 싸움에 달러를 더 많이 거는 총련의 간부들에겐 풍산개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조총련을 통해 풍산개는 더 잘 알려지게 되었는데 김정일은 풍산개의 종자가 번식하지 못하도록 선물용은 반드시 수컷으로만 주었다고 했다.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는 ‘조선자연보호연맹’ 소속으로 되어있던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을 ‘아미산 총국’ 산하로 끌어들이고 싸움을 잘하는 개들을 따로 교잡시켜 우량종의 풍산개들을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늘여 나가기 시작했다.
풍산개는 우리가 모르는 중요한 기질이 있었는데 이러한 기질 때문에 김정일은 풍산개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냥견은 사람이나 동물을 공격할 때 목을 물어뜯는 특징이 있다. 일단 목을 물려다 실패해 팔이나 다리를 물었다고 해도 한번 문 것은 죽으면서 까지도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러나 북한이 자랑하는 풍산개는 정해진 목표를 물려다 실수를 할 경우 아무데다 물고 뜯는 일반 사냥견들과 다르다고 한다. 진짜 풍산개는 한번 실수를 하면 재빨리 방향을 바꿔가며 성공할 때까지 목표부위를 끈질기게 공격한다.
중형급에 속하는 풍산개가 대형견들과 서슴없이 맞붙어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이렇게 치명적인 목표부위를 향해 성공할 때까지 방향을 바꿔가며 공격을 하는 끈질기고 무서운 기질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냥견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풍산개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김정일은 노동당 38호실을 내오고 자신의 비밀자금을 관리하면서 풍산개를 이용해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고 한다.
북한은 외래종의 대형견들과 토종견이고 중형견인 풍산개를 싸움을 붙였는데 풍산개는 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동물들의 싸움에 쾌락을 느끼는 도박꾼들도 중형견인 풍산개 앞에서 사나운 대형견들이 발버둥을 치며 죽어나가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김정일은 이런 도박이 외부에 발설되지 않도록 입단속에 만전을 기했다고 한다.
경비는 평양시 ‘8호 안전부’서 맡아
풍산개에 대한 조총련 간부들 욕구는 갈수록 커졌지만 그럴수록 김정일은 풍산개 종자가 외부에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통제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광덕풍산개목장의 경비를 평양시 ‘8호 안전부’에서 선발했다.
‘8호 안전부’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호위사업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특별 계층들 가운데서 경제관련 범죄를 지은 사람들을 취급하는 특수 안전부로 사회안전부, 지금의 인민보안성과 군복은 꼭 같게 입지만 소속은 호위사령부였다.
‘8호 안전부’ 말고도 호위사령부에는 장성택과 김원홍을 가두고 조사를 했던 보위부가 따로 있다. 호위사령부 보위부로 불리는 이 조직은 김일성과 김정일 서기실에 소속돼 북한의 국가보위성과 이름만 같을 뿐 소속은 완전히 달랐다.
1980년대 ‘8호 안전부’ 경비과에서 광덕풍산개종견장의 경비를 맡으면서 주변의 일반 주민들의 살림집까지 모두 허물어 버렸다.
외부로 종자가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북한 당국이 풍산개를 얼마나 비밀리에 키웠는지는 양강도에 살던 주민들조차 풍산개라는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을 통해 잘 드러난다.
당시 풍산군으로 불리던 김형권군은 풍서군과 인접해 있다. 풍서읍에서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까지는 약 30km정도 떨어져 있다. 광덕풍산개종견장에는 다 자란 어미 풍산개 약 300여 마리가 있었다.
이곳에는 정전이 되면 따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대용량의 디젤유발전기가 설치돼 있었다. 사료는 자체로 생산하지 않고 ‘아미산 총국’에서 공급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풍산개종견장이 곧 지옥으로 변할 것이며 북한이 자랑하던 우량종 풍산개도 자취를 감추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첫댓글 상당히 사실적이라
신기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