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자의 강의에서 가장 인상깊은 말은 '임팩트 있는 주제에 팩트에 근거한 토론'이 되어야 한다다는 것이다.
수 많은 토론과 대화를 우리는 해 오고 있다. 그러나 가끔 수박 겉 핧기, 반복되지 발전되지 않는, 방향이 어딘지 계속 돌기만 하는 토론이란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우선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고, 책 자체가 개론서, 입문서, 교양서의 취지여서 깊이 있는 토론이 될 수 없는 경우, 아주 부분적이지만 독서모임 구성원들이 책을 안 읽어 오거나 주제에 대해 흥미와 관심이 적은 경우등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하여 미리 고민과 토론의 주제를 정해 모듬원 톡에 올려 같이 일찍부터 궁구해 보는 것은 어떨지...저자의 칼럼 '칼럼 한 편이 책이 될까'(686)에서 '결국 길이가 아니라 얼마나 임팩트가 강한 이야기를 담아내는가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이 책은 1998년 부터 2018년 까지 저자가 쓴 책에 대한 칼럼을 모아 놓은 책이다. 저자 본인에게는 삶의 증거이고 자식 같은 애정이 묻어 있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나름 책을 죽 읽어 왔던 우리로서는 그의 글을 통사적으로 읽는 릉미가 자못 있다. 책 3-4권을 읽고 칼럼으로 스토리텔링을 한 것이라 저자는 강연에서 이야기했는데 실로 그의 글을 읽으면 내가 그동안 당시 읽었던 책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기도 한다. 마치 그의 글을 읽으면 소개된 책 3권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모든 칼럼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고 이해하고 공감하는데는 약가의 내공이 필요하다. 독서力과 독서歷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느낀점을 말한다.
첫째, IMF 이후 2003년 카드 대란 이전까지 경기는 호황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삶은 불안정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집행되면서 고용은 불안정해 졌고 업무의 외주화와 비정규직이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독서문화의 트렌드가 어쩌고 저쩌고 해도 경기는 세상은 어려웠다. 고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 어려웠다. 소설이 안 되는 이유가 현싱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원래 그랬다. 세상은.
둘째, 대중이 '전통가치의 규범과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다원적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관용과 포용의 문화는 널리 퍼지지 않았다. 나부터도 그렇다. 왜 그럴까? 우리는 살갑게 서로 잘 지내다가도 어떤 문제로 부딪치면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하고 싸운다. 정치와 사회, 문화영역에서 충돌한다. 바로 그 것은 우리가 사는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과거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북문제와 친일의 문제로 시작되는 사대성이 우리의 임팩트한 주제가 된다. 우리는 사실 이 문제가 핵심인 줄 알지만 외면하며 산다. 왜? 싸우니까. 만취되어서 부인을 깨워 "아~ 아직도 우리 세상에 빨갱이 새끼들이 있네~"하고 외친다. 귀가하는 도중 택시기사와 붙은 언쟁에서 나온 결론이다. 얼마나 분하고 답답했으면 자고 있는 부인을 깨서 한마디 질렀겠는가. 저자의 칼럼에는 이런 글이 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그 사안에 대해 책을 5권쯤 읽으면 윤곽이 보이고 이해도 따르며 10권쯤 읽으면 그 분야 전문가의 어깨쯤으로 수준이 높아진다"(404) 임팩트한 주제에 어느 정도 일가견을 팩트에 근거해서 가져야 한다면 이 정도의 궁구는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세째는 이런거다. 저자의 칼럼은 이런 단어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미래는 SMRT(통찰력, 종합.분석적 사고, 숙련돤 지식, 예술적 상상력, 친밀한 관계, 기술지능, 회복탄력성)한 인재가 요구된다. 지금은 CPND(contents, plarform, network, device)유통체계를 갖추고, ICBM(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체계로 일을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런 글도 있다. 허나 현실은 ‘저성장, 인구병, 재정악화’라는 큰 틀과 ‘빈곤, 질병, 고독’이라는 개인 틀에 내몰리고 있다. 1차 베이붐세대는 PIPA(가난하고, 고립되고, 아픈 세대)라 칭하고, 젊은 이들은 3포,5포,7포,나아가 9포, N포 세대로 불린다. 이런 문장들 사이에서 나는 이질감을 느낀다. 여기서 우린 임팩트한 주제를 건저내야 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미래의 스마트한 세상에 전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젊었거나 늙은 대중은 어찌 살란 말인가? 세계화의 덫이란 책에서 이야기하는 티츠테인먼트의 군상으로 살아가는 걸로 족할 것인가? 여기서 핵심은 기술과 양극화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여 주제는 '기술과 기술발전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양국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기술은 대세이면서 인류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지만 대중의 요구에 의해 기술도 취사선택할 수 있는것이다.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공룡들에 대항하는 블록체인혁명도 지켜볼 일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선 투기 대상으로 변질되어 들어 왔지만 그 혁명성 까지 부정하고 폐기해서는 안되겠다. 양극화는 정치와 제도로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노력하고 분투할 영역이 이 쪽이 아닌가 싶다. 기본소득 문제는 정치권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국민적 담론을 형성하여 정치권에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책마을에서도 기본소득 전문가가 나왔으면 싶다. 깊이 있는 독서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