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십경 중 제1경인 일출장관日出莊觀
- 빼어난 풍광에 넋을 놓다-
글/이승익
성산일출봉은 오늘도 관광객으로 만원이다.제주도 관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장소이기 때문에
외국인 비중도 만만치 않다. 제주도내 다른 관광지에 비해 비수기나 성수기를 따지지 않고 성황이다.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이 뜸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중국인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밀려드는 중국인들로 인해 일출봉 입구 넓은 주차장이 넘쳐 관광버스 행렬이 터진목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성산일출봉은 예나 지금이나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예전에 필자가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시절 성산일출봉은 학생들 소풍 코스였다.지금처럼 관광이란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니 5~60년 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우리지역 주민들 마음속엔 일출봉의
웅장한 경관보다는,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으로 '시작'의 의미,다시 말해 '새 출발'의 의미를 마음속에
두는 것 같다.
성산일출봉은 어디서 어느 곳에서 감상하든 그 경치가 가히 일품이다. 일출봉 뒤쪽(속칭 새끼청산)으로
배를 타고 나가 일출봉 뒤태를 보는 맛이나 종달리 해안도로 쪽에서 보는 맛이나 신양리 섭지코지에서
혹은 광치기 해변에서 감상하는 맛이 제 각각으로 다가선다.어디서 보든 그 웅장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 가슴 울렁이게 한다.
아마도 그 빼어난 모습 때문에 영주십경중 제일경으로 선정됐으며,아울러 성산십경중 제일경으로
일출장관日出莊觀이라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영주십경은 조선 말엽 제주의 대표적인 지식인 매계梅溪 이한우(1818~1881)가 선정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제주에 부임한 몇몇 목사에 의해 제주팔경 혹은 제주십경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의 영주십경은 이한우에 의해 선정됐다.
해발 182m인 성산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제주도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얕은 바닷가에서 폭발하여
만들어진 화산체이다.뜨거운 마그마가 물과 섞일 때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마그마와 주변 암석이 가루가
쌓여 일출봉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출봉 정상에는 산 전체가 하나의 움푹한 분화구로 형성되어 있으며 분화구 주변으로 구구봉이라 불리는 99개의
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다.그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아 성산城山이라 하며 일출을 볼 수 있어 일출봉이라고 부른다.
푸른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벌건 태양이 이글거리며 솟아 오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다.드 넓은 바다를
물들이며 떠 오르는 일출은 보는이로 하여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자연의 위대함 앞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지방기념물로 관리하다 2000년 7월 천연기념물로 지정 됐으며,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07년
7월 2일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등재 됐으며,2011년 10월 1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선정 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 받게 됐다.
여타의 사람들은 일출봉 정상을 오르내리는 곳만 일출봉 전체를 본듯 착각하지만 일출봉 몸통 아래로 내려 가면
슬픈 역사를 간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론 일출봉을 노래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비詩碑도 일출봉
아래 속칭, 오정개 해안 산책로에 터를 잡아 오가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시인이 되어 성산포바다를 시로 읋조리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였다.
모슬포에 있는 송악산 진지동굴과 더불어 태평양 전쟁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곳,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본토 사수를 위해 최후의 보루로 삼아 해안절경의 아름다움에 상관없이 일출봉 바닷가 절벽에 파놓은 진지동굴,
세계적인 지질학적 가치나 빼어난 경관과는 무관하게 일제는 일출봉 곳곳에 상체기를 남겨 놓았다.
일제강점기 패망을 향해 질주하던 일제는 제주도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 했다. 특히 성산일출
봉에 구축한 진지는 제주섬으로 접근하는 연합군 함대를 향해 자살폭파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수상특공 병기인
'신요'의 격납고를 설치 했다. 진지동굴 입구인 '수뫼밑' 포구에서 일출봉 동쪽 '새끼청산' 까지 이어지는 일출봉
바위에 만들어진 18곳 진지동굴이 그것이다.
그당시 동굴 구축 작업은 일본군의 지휘 아래 제주인 (우리지역 나이드신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성산면 인근 마을
에서 징용 비슷하게 젊은이들을 동원 했다고 함) 과 전남지방 광산노동자들을 동원해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왕(王)자형 한곳과 일(一)자형 17곳 등 총 18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그들의 만행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결코 잊어서는 아니된다. 그 아픈 과거를 거울 삼아 일본의 만행을 후세에 알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어디 그뿐이랴. 일출봉 아래 속칭 '오정개' 해안 산책로변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비거리가 조성
됐다.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시비가 세워졌다고 여기는 바다. 2009년 성산
마을회에서 서귀포시와 협의하여 이생진 시비 거리를 조성하여 2009년 12월 31일 '성산일출제' 행사 일환으로
성황리에 제막식을 치루어 세상에 알렸다.
섬시인으로 알려진 이생진 시인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우리나라 섬 1000여 곳을
다니며 시를 썼다고 한다. 특히 제주섬을 무척 좋아하여 불후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발간하여
스테디셀러가 된다. 2001년 제주도 명예 도민이 되였으며 2008년 '성산포문학회' 명예 회원으로 위촉 됐다.
이렇틋 성산일출봉은 아픈 역사도, 아름다운 문학도, 각양 각색의 탐방객도 말없이 껴않아 일년 365일
둥근해가 떠 오르는 명산 중에 명산이다. 이 아름다운 일출봉을 행정당국과 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지키고
가꾸는데 힘을 기우리기 바란다. 아름다운 퐁광을 간직한 일출봉 하나가 우리 지역을 아우르는 자존심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