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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 요엘서 : 여호와의 날의 선포와 환난과 부흥
요엘서는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가 있는 메시지들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선지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회개의 메시지 중심에 있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에 대한 말씀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면, 주님의 심장에서 나오는 열정까지 함께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엘서 자체만 얼핏 보면, 마지막 때와 주의 재림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만약 다른 선지서나 신약 성경에 있는 내용들과 비교하며 연구한다면, 놀라운 계시의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요엘서의 전체적 내용 요약
요엘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과 회개의 촉구"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혹은 "그날" 등으로 표현된 곳이 요엘서에 7군데나 나온다(욜 1:15; 2:1, 11, 31; 3:14, 18). 따라서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메시지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그 날이 가까웠기 때문에 강력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요엘서를 읽을 때에, 요엘 선지자가 살았던 그 당시에 이스라엘이 겪는 어려움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요엘서를 전체적으로 자세히 살펴본다면, 요엘서 전체가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예언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욜 1:2-3절에서, 요엘서의 메시지 자체가, "당시의 날들(days)이나 조상들의 날들(days)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를 "자녀들로부터 후세에까지 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요엘은 단지 그 당시의 일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시기에 있을 상황을 보면서 예언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다가올 미래적 사건은, "팥중이와 메뚜기, 느치, 황충이들이 농작물을 갉아먹어 버리는 일"(욜 1:4)과 "강한 민족이 이스라엘 땅에 침략하여 양식을 수탈해 가는 것"이다(욜 1:5-7).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될 것이지만, 더 어려운 문제는 "소제와 전제가 성전에서 끊어지는" 일이다(욜 1:9, 13; 2:14).
그래서 이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명하신다(욜 1:14; 2:15). 이러한 재앙들과 그리고 소제와 번제가 끊어지는 상황은, 그 백성들이 성전 앞에 모여 여호와께 회개하고 돌아가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하 7:13-16절 말씀처럼, 솔로몬 성전을 봉헌해 드릴 때에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회개하고 성회로 모여야 할 결정적인 이유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왜냐하면 그 날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과 멸망이 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욜 1:15).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욜 1:14-15)
요엘서 2장에서도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리도록" 하시면서, "그날에 나타날 일"과 그때 임하는 "여호와의 군대"에 대해서 계시하고 있다(욜 2:1-11). 이 구절들은 욜 3:9-16절과 같은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써,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일들의 긴박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작전 지시를 내리실 때 "큰 소리를 발하실" 것이고, "그의 군대의 수는 매우 많으며", "그 군대의 전투력은 굉장히 강력한" 것이다. 그 앞에 당할 자가 없을 것이기에, "여호와의 날이 심히 두려울" 것이다(욜 2:11).
이러한 긴박성으로 인해, "성회로 모여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라"는 말씀이(욜 2:12-17)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고 주께 돌아와야 할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는데(14절), 그것은 "성전의 제사를 회복"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방 나라들이 더 이상 주의 백성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시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비방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내용도 언급되고 있다(17절).
여호와께서는 전 민족적으로 성회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위기와 환난의 때에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의 "온전한 회개"의 부르짖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 때를 잘 알고 여호와의 날을 선포해야 할 초점인 것이다.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욜 2:15)
그때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회복을 허락하실" 것이고(욜 2:18-27), "북쪽 군대"를 멀리 쫓아내실 것이며(20절),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 떼로 인한 "기근의 피해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25절).
그리고나서 "그 후에" 영적인 대 각성"의 축복을 주실 것인데, "모든 육체에 하나님의 영을 부으실" 것이며, 예언적인 은사가 나타나고, 초자연적인 이적이 하늘과 땅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욜 2:28-30).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28-30)
이러한 회복의 과정과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일들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준비의 과정은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는 "천체의 징조"로부터 시작되고, 최종적인 날까지 "주의 백성들과 남은 자들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욜 2:31-3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욜 3:1-8절에서 먼저는 포로로 사로잡힌 이스라엘 족속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고(1절), 열방의 족속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모이게 하여 심판하실 것이라 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족속들을 흩어 버리고 그 땅을 나누었기 때문이다(2절).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등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도 유다와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야완(헬라) 족속에게 팔았기 때문에(6절), 이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7-8절).
욜 3:9-13절에서, 이러한 이방 민족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그들을 심판의 장소인 예루살렘 근처의 "심판의 골짜기"로 모이라고 명령하고 계신다(12-13절). 거기에 주의 용사들도 내려오게 하시는데(11절), 이는 부활한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주와 함께 심판하는 위치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욜 14:14-16절은 "여호와의 날에 그 현장에서 나타날 일들"을 말하고 있는데,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고 어두워질" 것이고, "여호와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소리를 내실" 것이며, "하늘과 땅이 진동하면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의 피난처와 산성이 되실" 것이다.
욜 14:17-21절은 "그 심판 이후에 있을 일들"로써,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될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 요엘서에 나타난 큰 부흥의 시기에 대한 단서들
요엘서는 "너희의 날"과 "너희 조상의 날"에 비해,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이 완전히 다른 차원인 것을 강조해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 요엘서의 시작 부분에서, 선지자가 전하는 이 메시지들을 자녀들과 그 자녀들에게서 "후세에까지 전하라"고 말하고 있다(욜 1:2-3). 따라서 요엘서 말씀이 전하고 있는 시대는, 요엘이 예언했던 그 당시가 아닌, 후대의 마지막 때인 것을 알 수 있다.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욜 1:2-3)
우리가 요엘서의 초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은 "여호와의 날"이고, 요엘서 전체는 바로 "그 날이 임박했음"을 지속적으로 선언하면서 전개되고 있으며, "그 날이 임박한 시기에 어떠한 일들이 있을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요엘서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욜 1:15; 2:1, 11, 31; 3:14).
요엘서 전체를 살펴 볼 떼, "여호와의 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 중에서, 그 시간적인 순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구절이 요엘서 2:31-32절이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욜 2:31-3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결정적인 사건"이고, 그전에 "해와 달의 커다란 변동"이 있는 일이 있는데, 이 두 사건 사이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얻고,"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와 주의 부르심은 받는 남은 자 중에서 구출함이 있게 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일단 이 본문 구절에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는 세 가지 일들은, 먼저 "천체의 징조", 그 다음으로 "주의 백성들의 구원" 그리고 최종적으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순으로 있게 될 것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주요 사건들이 "주의 재림"의 "전체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는 천체의 징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볼 때에, "천체의 징조"로서 해와 달의 빛이 어두워지는 일은, 전체적으로 두 번 일어나는 사건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비슷하지만, 각각 다른 표현과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욜 2:10절과 3:15절에서는, "해와 달이 캄캄하며((카다르) 별들이 빛을(노가흐) 거둔다(아싸프)"라고 표현하면서, 모두 "여호와의 날에" 일어나는 사건들로 언급되고 있다(욜 2:1, 11; 3:14). 반면, 욜 2:31절에서는, "해가 어두워(호셰크) 지고(하파크) 달이 핏빛(담)같이 변할 것"이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날 이전에"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요엘서 본문에서 이 두 사건이 각각 다른 시기에 일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여호와의 날 이전에" 일어날 "천체의 징조"로서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을 살펴보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리라" (마 24:29, 막 13:24-25)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계 6:12-14)
다음은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는 일"에 대한 구절들이다.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오리온 좌, 삼성)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 13:10)
"그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 (사 24:23)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암 5:18)
"여호와의 날은 빛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암 5:20)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합 3:11)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오" (습 1:15)
"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슥 14:6-7)
우리가 두 시점에서 나타나는 천체의 징조들이,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 여호와의 날에는 해와 달과 별 모두 어두워지거나 빛을 잃는다고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의 경우는, 해와 달의 경우는 어두워지는 변화가 있지만, 별의 경우도 "빛을 잃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욜 2:31절은 비록 "별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없을지라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서, 마 24:29절이나 계 6:12-14절과 같은 병행 구절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구원
그 다음의 중요한 사건으로써, 욜 2:32절에 나타나는 "주의 백성들의 구원"에 대해서 성경의 다른 곳을 비교하며 살펴보자.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단 11:15)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단 12:1)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슥 13:8-9)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계 15:2)
여기 언급된 구절들은 모두 요엘서 2:32절과 같은 시기에 해당되는 사건들을 제시한 것이다. 요엘서는 "주의 백성들의 구원"이 있을 때를 명확히 보여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기간은 "천체의 징조"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의 사건 사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체의 징조는 "구원을 위한 대 추수"를 위해 있게 되는 "큰 부흥"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본문 해석에 있어서, 기록된 순서대로 볼 때, 욜 2:28-30절의 주요한 3가지 사건들이 욜 2:31절의 "천체의 징조" 보다 앞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기 쉽다. 그러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육체에 성령이 부어지는 사건의 시기
요엘서 28~30절에 나오는 사건들은 크게 세 가지 주요 사건으로 언급되고 있다. 첫째, 28절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것"은, 29절 "그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앞의 일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요, 뒤의 일은 특별한 사역자들에 해당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사건들이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30절에서 "하늘과 땅에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의 이적"이 있을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바브;and)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바브;and)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28-30)
욜 2:28-30절 본문을 살펴볼 때, 각 구절은 접속사 '바브'(and)로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이 3가지 사건들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을 연결하는 31절 앞에는 접속사 '바브'(and)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31절부터는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욜 2:28절이 "그 후에"라는 연결어로 시작되는 것은, 그 앞의 "큰 환난"과 "거룩한 성회로 모이는 일" 이후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사건"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커다란 반전이 있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3가지 주요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1절부터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의도를 갖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천체의 징조"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사이에 "수많은 백성들이 구원받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31절의 "천체의 징조"가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의 이적"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욜 2:28절에서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게 부어지는 사건은, 다음 구절들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본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 12:10)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
슥 12:10절에서 "은총과 간구하는 영(spirit)"이 부어지는 시기는 바로 "하나님이 부으시는 영"을 부으시는 시기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그들이 찌른 주를 보면서" "애통과 통곡"이 일어나고, 계 1:7절에서도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주)를 보고 "그분을 찌른 자들" 즉 이스라엘 족속들도 "애곡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이 시기가 마 24:29절의 "천체의 징조"와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하고 설명해 왔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요한계시록 6장에서 "여섯째 인"이 떼어졌을 때 일어나는 사건과 연관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있는 사건과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게 부어지는" 사건은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볼 수 있고, 주로 "통곡과 애통"이 일어나는 것과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성령을 받은 모든 육체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 너희 자녀들과 젊은이들과 늙은이들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들이고 "회개와 연단"으로 나아갈 것이다.
둘째, 욜 2:2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이 "남종들과 여종들에게 부어지는" 사건은 다음 구절과 연관된다고 본다.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3-4)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이 그 이마에 인침을 받는" 이 사건은, "여섯째 인"이 떼어진 후에 "일곱째 인"과 "일곱 나팔"의 사건이 전개되기 전에 나타나고 있다. 이 일은 그 때로부터 일어날 재앙들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길 종들을 인쳐서 보호하시고 세우시는 사건이다(계 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계 9:4)
셋째,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의 이적들"은, 요한계시록 8-9장에 나오는 "일곱 나팔"의 사건들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첫째 나팔" 사건(계 8:7-9)을 보면 거기에 "피와 불의 재앙"이 나타나고 있으며, "다섯째 나팔" 사건(계9:1-11)을 보면, 특히 계 9:2절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욜 2:30절에서 언급하는 이적들은 "일곱 나팔"의 시기와 맞물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사건들은 모두 "천체의 징조"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31절에 언급하고 있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는" 일은 욜 2:28절의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으시는 사건" 직전에 있을 사건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천체의 징조"의 사건은 하나의 커다란 반전을 이루는 시작점에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는데, 마 24:29절에서도 "그 날(들의) 환난 후에 즉시"라고 하면서, 하나의 전환점으로서 천체의 징조 사건을 기록하고 있고, 계 6:12절 이하에 나타나는 여섯째 인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천체의 징조도, "커다란 전환점"을 이루어 주의 날까지 나아가는 중요한 반전의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요엘서에 나타난 큰 환난의 시기에 대한 단서들
이러한 시기적 구분을 통해 볼 때, 요엘서 2:28절 앞부분은, 큰 환난과 임시적인 회복이 있게 되는 시점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본문 안에서, 그 당시가 큰 환난의 때라고 하는 단서들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첫째, 요엘서에서는 "커다란 기근의 일"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 24:7; 막 13:8; 눅 21:11; 계 6:5-6(세째 인의 사건)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 때는 "진통의 시작"(마 24:8)과 더불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커다란 기근과 혼란은 커다란 전쟁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요엘서에서는 "이방의 군대가 침략"하여 농작물을 황폐케 했다고 말하고 있다. 세 군데에서 이러한 표현이 있는데(욜 1:6; 2:20, 25), 우리는 이것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욜 1:6절에 나오는 "다른 한 민족"이라 표현은 '고이'(민족)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이 경우는 "이방인들"의 군대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황폐하게 했다(욜 1:6-7).
다음은, 욜 2:20절에 나타나는 "북쪽 군대"는 '체포니'(북쪽의)로서, 원문에는 '군대'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단어가 1:6절에 나오는 "다른 한 민족"과 동일시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욜 1:6-7절에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그들로 인해 훼손되었다고 언급하는 한편, 욜 2:19절에서, 그들이 훼손한 "새 포도주와 기름"을 여호와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욜 2:20절에서, (북쪽에서 온) "그들을 쫓아내겠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욜 2:20절에 나오는 '체포니'(북쪽의)라는 단어를 "북쪽 군대"로 말할 수 될 수 있다.
또한 욜 2:25절에서, "큰 군대"라고 번역한 단어는 "헬(군대, 무리) 하가돌(큰, 많은)"로써, "메뚜기와 느치, 황충, 팥중이의 큰 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주께서는 이들이 먹어 치운 햇수대로 갚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이방인 군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다른 여러 곳에서, 큰 환난의 시기에, "이스라엘이 이방 군대의 침략을 받아서 큰 박해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단 8:11-13; 11:31, 33, 41, 44; 슥 12:2; 눅 21:20, 24; 계 11:2).
이 이방 민족이 "북쪽에서" 온 군대라는 것을, 다니엘서를 본다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일인데, 그 군대는 "북방 왕"이라고 언급된, 하나님을 대적하는 왕의 군대인 것을 알 수 있다(단 8:11; 11:17-19).
셋째, 요엘서에서는 "소제와 전제를 드리는 일이 끊어짐"에 대하여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데(욜 1:9, 13; 2:14), 민수기 28장을 볼 때, "소제와 전제를 드리는 것"은 "매일 드리는 제사" 및 "안식일과 다른 절기마다 드리는 제사" 등 모든 제사의 절차와 관계가 있다. 특히 민 28:3-8절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에 대해서도 그 절차와 내용을 상세히 말해 주고 있는데, 여기에 "소제와 전제"가 나오고 있다.
"해 질 때에는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리되 아침에 드린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민 28:8)
따라서 요엘서는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하여진 이후의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단 8:11, 13; 9:27; 11:31).
이 일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는, "커다란 기근"과 "북쪽에서 온 강하고 큰 민족"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일 때문이다. 그 "이방 민족들"(고임)은 "하나님의 기업을 욕되게" 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둘을 관할"할 것이며, 이스라엘에게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비방할 것이다(욜 2:17).
이스라엘이 겪게 될 고통은, 단지 "커다란 기근"이 그 땅에 있게 될 것만이 아니라, "북쪽 군대의 침입"으로 인하여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치게 되고, "큰 박해"를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단서들 즉 "극심한 기근", "북쪽 군대의 침입", "매일 드리는 제사의 폐지" 등의 내용을 볼 때, 요엘서의 앞부분의 내용은, "큰 환난을 당하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들임을 알 수 있다.
요엘서는 이러한 환난에서 회복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회개와 결단의 거룩한 성회"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백성들의 회개가 있은 후의 주님의 마음은 달라지신다. 욜 2:12-14절에서는 "회개에 대한 강력한 촉구"의 말씀이 언급되고 있으며, 욜 2:15-17절에 "거룩한 성회가 드려지는 장면"을 서술하고 있으면서, 욜 2:18절에 "주님의 변화된 마음과 태도"를 볼 수 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욜 2:18)
그리고 이어서 그 백성들의 "물리적인 영역"에서의 회복이 있을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제 북쪽 군대가 물러갈 것이고, 기근이 극복되어 백성들이 충분히 먹게 될 것이며, 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욜 2:20, 26). 이러한 실제적인 회복이 "천체의 징조"와 "인자의 징조" 그리고 "모든 육체에게 성령의 부으심"의 사건들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통해 완전한 구원과 회복이 있기 전에 "임시적인 회복"의 때가 있는 것이다.(욜 2:28-32).
이렇게 이스라엘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면에서 "임시적인 회복"이 있게 되는 때는, 다니엘서 11:32b-33a절과 스가랴 12:10-13:7절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회복과 부흥의 일들은, 계 11:3-5절에 나타나는 "두 증인의 예언 활동"이나 말라기 4:5-6절에서 언급된 "선지자 엘리야의 사역이 이 큰 부흥이 일어나는 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이러한 영적인 "대 부흥"과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는 "대 추수"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마지막 때는 "큰 환난"과 또한 "많은 재앙들"이 있지만, 또한 동시에 "대 부흥"과 "대 추수"가 있게 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때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압제와 박해 가운데 도망하고, 피해 다니는 수치와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놀라운 부어짐과 하나님의 영광의 기적들이 나타나서, 최종적으로 믿는 자들이 부활 승리에 이르는 연단의 과정인 것이다.
[4] 요엘서에 나타난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성경적 의미
요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여호와의 날"에 대해 선포하고 예언하고 있는 초점을 잃지 않고 있는 선지서임을 보게 된다.
요엘서 1장에서, 모든 환난들을 통해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음을 선포하면서, 성회로 모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말하고 있다(욜 1:14). 이는 단지 환난에서 건져 주시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날에 있을 심판과 멸망 때문에 기도하라는 것이다(욜 1:15).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욜 1:14-15)
요엘서 2장에서도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기에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경고하라"고 하신다(욜 2:1). 그리고 여호와의 날에 있을 일들에 대해 구체적인 예언적 전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날에 "캄캄하고 어두움"이 덮일 것이고, 이는 "해와 달과 별"이 "빛을 내지 않기" 때문이며,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 것이다(욜 2:2, 11). 또한 "많고 강한 백성"이 나타날 것인데, 그들은 "전무후무한 군대"이며(욜 2:2), 그들의 전투력은 탁월하다고 선언하고 있다(욜 2:3-9). "그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소리치고" 계시고, 심히 두렵고, 아무도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욜 2:11). 그 날은 정확히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욜 2:31)이 틀림없다!
요엘서 3장이 시작되면서 여호와의 날에 있을 일들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의 날이 있게 되는 시점 직전에 주께서 강림하시면서, 먼저 그의 백성들의 포로들을 돌리실 것이다. 1절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는데, 이는 성경의 해석의 문제가 있어서 오해를 빚는 구절 중의 하나이다. 원문을 볼 때, "슈브"(돌아오다)에 해당되는 동사가 두 번 나옴에도 불구하고 한번만 나오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번역본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았다. 그러나 본문을 충실하게 해석하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키; For) 보라 그(들의) 날(들에) 내가 돌아올(슈브; 칼-능동 미완료)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리라(슈브; 히필-사역능동 미완료)" (욜 3:1)
이 구절이 "왜냐하면"(키; For)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는 것은 그 앞 구절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욜 2:32절에 나오는 "피할 자가 있고 부름을 받을 자가 있는" 일들은 "주께서 돌아오실 때에" 일어날 일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욜 2:32)
그 다음에 주께서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이방 민족들을 심문하실" 것인데, 그들의 죄는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들 가운데 "흩어 버리고", 그분의 소유이며 그 백성들에게 유업으로 주신 "그 땅을 나누었으며", 그 백성들을 "성 노예로 팔아넘긴" 것이다(욜 3:2-3).
또한 주께서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등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을 심판하시는데, 그들이 "이스라엘을 노략질"했으며, "유다와 예루살렘 자손을 야완(헬라) 족속에게 팔아 버렸기" 때문이다(욜 3:4-6). 이에 대한 심판으로, 여호와께서는 반대로 그 족속들을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게 하실 것이다(욜 2:7-8).
여기까지의 요엘서의 내용은, 재판정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같다. 벌을 받기 전에 어떤 죄를 지었고, 어떤 벌칙을 받을지를 판사가 선언하는 것과 같다. 재판의 용어인 '심문하다'(욜 3:2) 그리고 '심판하다'(욜 3:13)란 단어들을 사용함을 통해, 여호와의 날에 "모든 민족들이 분명하게 심판받게 될"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그 심판의 장소로 모든 민족들을 불러 모으시는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반면, 선지자는 "주의 용사들"도 그곳으로 내려오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데(욜 3:11), 그들이 바로 욜 2:11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군대"이다. 주님은 이미 구원 받는 주의 백성들과 함께 심판하고 통치하실 것이다.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욜 3:14)은, 계 16:14절에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열국으로부터 모여 든 "천하의 왕들의 군대들"이다.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14)
여호사밧 골짜기는 어디인가?
그 심판이 이루어지는 심판의 골짜기를 "여호사밧 골짜기" 라고 지칭하고 있는데(욜 3:2, 12), 그곳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심판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신다"(욜 3:16)고 하셨기 때문에, 그 현장은 "예루살렘 근처"일 것이다. 또한 슥 14:4절에 보면, "주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산은 "기드론 시내"가 있는 골짜기를 두고 "성전 산"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실 때 건너셨고, 다윗이 반역을 피해 도망할 때 건넜던, 기드론 시내가 있는 골짜기가 바로 그곳이다(요 18:1; 삼하 15:23).
그렇다면 왜 "여호사밧 골짜기"일까? 여호사밧 왕은 역대하 20장에서 모압과 암몬 자손 그리고 세일산 주민들인 마온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인물이다(대하 20:1, 23). 이 전쟁이 치러진 장소를 살펴볼 때, 그곳이 예루살렘 동편 기드론 골짜기는 아닌 것 같다(대하 20:16, 26). 그렇다면 왜 "여호사밧 골짜기"라는 명칭을 사용하신 것일까?
첫째, 역대하 20장의 전쟁은 예루살렘을 치려고 수많은 이방 군대가 연합하여 모여 왔던 전쟁이었다(10-11절). 여호사밧은 이 적군들의 침입으로 인해,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그 백성들을 성전 앞 마당에 모이게 했다(3-5절). 그리고 여호사밧은 역대하 7:12-16절의 말씀을 그대로 의지하여 기도했다(6-12절). 바로 그것이, 욜 1:14절과 2:15절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거룩한 성회"였다. 요엘서의 내용들을 보면, 이와같이 이방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할 때, 거룩한 성회가 일어나고 금식이 선포되며 성전 앞에 모여 회개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모든 일들이 바로 여호사밧 왕 시대와 같은 성격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전쟁에서 유다 백성들은 싸울 것이 없었고(17절), 다만 "찬양의 군대"를 앞세워 행진해 갔으며(21절), 이 때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으로 복병을 두어 대적들을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고 전멸시켰다(22-24절). 요엘서에서 나타나는 모습도 이방의 적군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서 전멸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그것은 이방 군대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행"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는 사건인 것이다(슥 14:13).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슥 14:13)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여호사밧 전쟁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에 있을 심판의 전쟁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애 주의 날에 있을 그 심판의 장소를 "여호사밧 골짜기"라고 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의미에서도 그 장소가 주의 날에 있을 심판의 장소라고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 역대하 20장을 살펴보면, 2절에서 이스라엘을 쳐들어오는 이방의 군대들이 하사손다말 즉 엔게디에 있다고 했고, 16절에 야하시엘을 통해 주께서는 "그들이(대적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유다 백성들이)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에서 그들을 만날 것이라"고 하셧으며, 20절에 그 다음 날 아침에 드고아 들로 나갔다고 언급하고 있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 해변에 있고 남북으로 볼 때, 사해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여기서 올라가면서 시스 고개를 거쳐서 여루엘 들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북쪽 예루살렘 쪽으로 더 올라가면 드고아가 나온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있고 해발 1,000m 정도 되는 지역이다. 시스 고개는 엔게디에서 사해 해변을 통해 북쪽으로 가면서 있는 계곡을 말하는 것으로, 엔게디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곳이다. 이 계곡 끝 부분에 고원지대로 올라가면 여루엘 들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드고아 들에서 여루엘 들로 이어지는 고원 지대가 바로 여호사밧 전쟁에서 이방 군대가 전멸한 그 골짜기인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날에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는 군대들을 "모이게"(카바츠) 하시고, 여호사밧 골짜기로 "내려오게"(아라드) 하실 것이며, 또한 주의 용사들을 이 곳으로 "내려오게"(나하트) 하실 것이다.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카바츠; 모으다)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아라드; 그가 그들을 내려가게 하다)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욜 3:2)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나하트) 하옵소서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욜 3:11-12)
그 심판의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해와 달이 캄캄하고 별들이 빛을 거두었기 때문에 시야가 많이 가려질 것이다(욜 3:14-15). "여호와께서 큰 소리를 발하시되" 시온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부르짖을 것인데, 이 때 "하늘과 땅이 진동할" 것이다(욜 3:16a). 이것은 "군대를 향해 진두지휘하시기 위한 호령의 소리"이다(욜 2:11).
그러나 "그의 백성들은 보호하실"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피난처"와 "산성"이 되심을 확실하게 나타내실 것이다(욜 3:16b; 시 46편). 이후로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시고 예루살렘이 거룩케 되어 이방 사람들이 그 곳으로 통행하지 못할" 것이다(욜 3:17, 21). 그리고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 곧 사해에 물을 댈 것이다(욜 3:18; 창 14:3). 유다와 예루살렘은 영원할 것이며, 그 백성들의 피흘림을 갚아주실 것이다(욜 3:20-21).
요엘서는 그 웅장함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잘 나타내고 있고, "여호와의 날의 위대함"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그 결과의 영광스러움도 잘 보여 주고 있다. 여호와의 날은 곧 그분이 영광 가운데 "이 땅으로 오시는 날"이요, "구원과 심판"을 함께 성취하시는 위대한 날이요, 영광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