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역학의 한 가지 큰 착각 : “큰 쥐는 큰 동물이다!”
양자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주의 하나가 양자 얽힘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양자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원소가 붉은 색이거나 노란색이거나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관찰하기 전에서 붉은 색이면서 동시에 노란 색일 수 있다. 붉은 색인가 노란색인가는 오직 확률로만 존재하면 항상 이 두 가지 가능성이 중첩(동시적)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중첩의 상태는 관찰자가 관찰을 하는 순간 중첩이 멈추어지고 ‘노란색’ 이거나 ‘붉은 색’이거나 하나의 상태로 발견된다. 즉 어떤 고정된 상태란 양자와 관찰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 이전에는 항상 두 가지 상태가 동시적으로 혹은 중첩된 상태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양자의 세계란 원자나 분자보다 더 미시의 세계이니, 그런 미시의 세계에서는 뭐 그런 원리가 적용되는 것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양자적인 원리를 고양이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이 슈레딩거가 고양이를 가지고 사고실험하고자 한 것이며, 이를 ‘쉬레딩거의 고양이’라고 부른다.
그 핵심은 독이 든 상자 속의 고양이는 관찰되기 이전에는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중첩된 상태, 즉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어 있는 고양이가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에 의해 관찰된 이후에 비로소 ‘죽은 고양이’이거나 ‘산 고양이’ 중 어느 하나의 상태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이 결국 “저 달은 아무도 관찰하지 않았다면 없을 수도 있다. 관찰자가 있기에 달이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논리로 나아가고....
급기야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우주도 사실상 관찰하는 인간이 있기에 존재할 뿐이며, 따라서 우주라는 것도 양자적 원리에 따라 시뮬레이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식에 포착되기 이전에(즉 관찰되기 이전에)는 없는 것과 있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고 가정하는 이론은 양자 역학의 원리 외에
다른 원리들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것도 더러 있다!)
이상이 오늘날 양자역학에서 주장하는 골자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과 논리적 추론에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 양자역학의 오류는 미시세계의 원리를 일상세계의 원리로 확대 적용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파스칼은 “세계에는 두 가지 무한이 있을 수 있는데, 무한히 큰 세계와 무한히 작은 세계가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일상의 세계, 즉 유한한 이 세계와 무한한 미시세계나 광대세계는 엄연히 차원이 다른 세계일 것이며, 따라서 적용의 원리들도 서로 다를 것이다. 하지만 무한히 작은 양자라는 미시세계의 ‘중첩’현상을 보통세계의 존재인 고양이에게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범주이탈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이를 또한 전 우주적인 차원에 적용한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범주이탈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눈에 보이는 이 우주가 관찰자가 관찰하였기에 존재하는 것"이란 가정 자체가 잘못된 추론이다. 관찰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우주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관찰자 역시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없다면 관찰자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나의 팔을 관찰하기에 전에는 나의 팔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누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나’라는 주체의 일부가 나의 팔이기 때문이다. 즉 관찰자가 있어서 관찰행위를 하지 않으면 우주가 없다는 추론은 선결문제의 오류에 해당한다. “관찰자가 있다. 따라서 우주는 ‘관찰’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우주는 시뮬레이션이 아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양자세계의 과학자들은 양자의 세계에서의 작은 새로운 법칙을 하나 발견하자 너무 놀란 나머지 모든 존재들이 그러한 법칙에 따르고 있을 것이라는 <확대해석의 오류> 혹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