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39코스(남해 바래길 6코스)
죽방멸치길따라 물건리 방조어부림으로
3회(남해 바래길 3~5코스)에 걸친 창선도 걷기를 마치고 오늘부터는 남해 본섬 바래길을 걷는다.
창선도와 남해도는 지족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남해도와 창선도는 크기만 다를 뿐 섬 모양도 비슷하다.
지족해협에 놓인 438m에 이르는 창선교가 두 섬을 연결해준다.
남해 바래길 6코스는 창선교 입구 삼동하나로마트 앞에서 시작된다.
남해군 삼동면소재지인 지족리에는 멸치쌈밥과 멸치회무침을 하는 식당이 많다. 멸치쌈밥거리까지 생겼다.
남해의 대표음식인 멸치쌈밥은 원조가 이곳 지족리다.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족해협에서 잡힌 멸치로 멸치쌈밥을 만들어먹었기 때문이다.
삼동하나로마트 건너편 멸치쌈밥거리를 따라 100m쯤 걷다가 해변으로 나아간다.
해변으로 나가자 조그마한 포구에 작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다. 빨간 색상을 한 창선교가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에 좁고 길게 자리한 지족해협이 정겹게 바라보인다. 지족해협 곳곳에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다.
지족해협 건너편으로 바래길 5코스를 걸을 때 만났던 창선도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바래길 6코스는 바다를 끼고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죽방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죽방렴관람대가 데크형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시냇가에 길게 V자형 그물을 치고 아래쪽에 싸리나 대나무로 만든 통발을 설치하여 참게를 잡곤 했다.
죽방렴 역시 규모가 크고 민물이 아닌 바다에 설치되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 고기잡이 방식은 같다.
지족해협은 하루 두 번 씩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 바닷물이 좁은 해역을 빠져나가는 물살이 거세다.
죽방렴은 지족해협의 거센 물살을 이용한 전통 고기잡이 방식으로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부른다.
좁은 바다 물목 갯벌에 참나무 지지대 300여개를 박고 대나무 발을 V자로 벌려 물살에 떠내려 온 고기가
원형의 커다란 통 속에 갇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현재 남해 지족해협에는 23개의 죽방렴이 남아있다.
죽방렴으로 잡은 ‘남해죽방멸치’는 맛이 좋고 신선하여 최고의 가격에 팔린다.
죽방렴 관람을 마치고 해변길을 걷는데, 억새가 하늘거리며 가을정취를 전해준다.
해변에 놓인 의자는 지족해협과 창선도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여기에 부응할 세라 바다 건너 창선도의 낮은 산 뒤로 멀리서 사천 와룡산이 고개를 내민다.
해변길은 전도마을로 이어진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반달모양을 하고 있는 전도마을은 옛날엔 작은 섬이었다.
간척공사로 육지가 되었고 이 간척지를 염전으로 사용하여 소금을 생산했다.
지금은 염전을 찾아 볼 수 없고 죽방렴을 통해 잡은 고급 멸치와 멸치액젓이 소득원이다.
마을 앞 갯벌에서는 일 년 내내 쏙 잡이 체험이 가능하다. 이곳 전도갯벌에서는 바지락도 많이 잡힌다.
전도마을은 갯벌체험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시간은 만조기라 바닷물이 가득 차 있지만, 간조기에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가 드넓은 갯벌이 된다.
둥글게 해변을 이루고 있는 전도마을 해변길을 걷는데 비릿한 갯냄새가 전해진다.
해변길을 걷다보면 지족해협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남해도와 창선도를 잇는 창선교가 손짓한다.
창선교 뒤에는 남해의 최고봉인 망운산(784.9m)이 듬직하게 서있다.
창선도 쪽에는 바래길 5코스를 걸을 때 만났던 추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바다에 서 있는 빨간 등대가 창선도와 남해도의 중간에서 연락병 역할을 해준다.
전도마을에는 여느 해변마을처럼 작은 포구가 있고, 포구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도마을 해변에서는 소나무, 느티나무 거목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서 고기잡이 나간 어선을 기다린다.
해변을 돌아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니 구릉지 논에 연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연꽃이 피는 여름철에는 전도마을이 화사해진다.
마을길을 지나 농로를 따라 걷는데, 누렇게 익은 벼들이 길손을 맞이한다.
벼가 익기까지는 농부들의 땀방울에 물과 바람, 햇볕이 보태졌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고 했다. 어디 나락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우주일 테니 말이다.
농로를 지나 작은 고개를 넘자 남해청소년수련원이 지족해협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학생들은 물론 일반인까지 이용할 수 있는 남해청소년수련원은 하루 1천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수련시설과 숙박시설,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런 시설도 코로나 때문에 모두 문이 닫혀 안타깝다.
남해청소년수련원을 지나니 둔촌해변이 나온다. 둔촌마을 앞바다 역시 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이 된다.
둔촌갯벌에서도 전도갯벌과 같이 쏙과 바지락이 많이 잡힌다. 잠시 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걷다가 둔촌마을로 들어선다.
이곳을 지나는 3번 국도는 물건리를 거쳐 미조포구, 상주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남해 일주도로다.
마을 입구에서 목장승 2기가 길손을 맞이하고, 낙락장송 두 그루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마냥 늠름하게 서 있다.
둔촌마을 앞 도로를 건너 해변으로 나갔다가 하천을 따라 올라간다.
하천이름이 화천(華川)으로 우리말로 하면 ‘꽃내’다. 그래서 꽃내마을, 꽃내중학교 같은 예쁜 이름이 생겼다.
해변을 벗어나자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이 풍요롭다. 논길을 따라 걷다보니 섬이라는 사실이 잊힐 정도로 농경지가 길게 이어진다.
동천마을은 큰 동네로 면소재지가 아닌데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다.
근처에 독일마을과 물건리 같은 큰 마을이 있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듯하다.
바래길은 논 가운데로 난 1차선 도로를 따라서 나아간다. 길 양쪽으로 황금빛 물결이 출렁인다.
양쪽으로 펼쳐지는 황금들녘을 바라보며 걷고 있으니 내 가슴에 풍요로운 기운이 채워진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우리의 마음도 넉넉해진다.
황금빛 논과 구불구불 이어지는 논두렁이 부드럽고, 여기에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화 한 폭이 되었다.
누렇게 익은 벼 옆에서 은빛 억새가 하늘거리며 가을축제를 연다.
종종 만나는 밭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키위가 탐스럽다.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한 내동천마을에는 350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의 지킴이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내동천마을 뒤쪽 고개를 넘자 물건리와 독일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물건리 방조어부림이다.
남해 12경중 10경인 물건방조어부림은 바닷가를 따라 길이 750m, 너비 40m 내외로 초승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물건리는 방조어부림을 경계로 등대가 있는 물건포구와 논밭이 포함된 물건마을로 구분된다.
물건마을 위쪽에는 독일풍 건물로 이뤄진 독일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세 가지 기능을 한다.
거칠고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과 파도에 의한 해일이나 염해를 막아주는 방조림 역할,
그리고 숲의 초록빛이 물고기 떼를 불러들이는 어부림 역할이 그것이다. 그래서 숲 이름을 ‘물건리 방조어부림’이라 했다.
바닷가로 내려가 물건리 방조어부림으로 들어선다. 숲 가운데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데크길이 만들어져 있다.
방조어부림에 들어서자마자 10∼15m 높이의 아름드리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숭엄한 기운을 내뿜어준다.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 등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수종만도 100여종에 달한다.
빼곡하게 들어선 1만여 그루 나무는 깊은 산중 같은 느낌을 준다.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숲은 300년 전 마을사람들이 바람과 파도를 막으려고 심었다.
마을사람들은 이 숲이 해를 입으면 마을이 망한다고 믿어 철저히 보호해 왔다.
일제강점기 말엽 일본인들이 목총을 만들기 위해 이 숲에서 7그루의 느티나무를 자르려고 했을 때
마을사람들은 “숲을 없애려면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고 맞서 이 숲을 보호한 일도 있었다.
19세기 말에는 숲에 있는 일부 나무를 베어냈다가 그해 폭풍으로 마을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이 숲을 헤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고, 마을사람들은 한 그루의 나무도 함부로 베는 일 없이 숲을 지켜오고 있다.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이 숲에 가장 큰 이팝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매년 음력 10월 15일에는 제사를 지내 마을의 평안을 빈다.
숲속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에서는 새소리가 감미롭게 들려오고, 은은하게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바람과 파도를 막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이 되어 최고의 산책코스가 되었다.
새소리, 파도소리 들려오는 울창한 숲길을 걷고 있으니 내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진다.
바닷가는 동글동글한 몽돌밭이 곡선을 이루고 있다.
휘어진 몽돌밭 안쪽으로 방조어부림이 부채꼴 모양으로 자리해 아름다운 해안풍경이 되었다.
아름드리 거목들은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어 파도를 유혹한다.
방파제 뒤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에는 통영의 사량도‧두미도‧욕지도 같은 섬들이 떠있다.
동쪽을 향하고 있는 물건해변은 일출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방조어부림 안쪽 물건리 마을로 들어선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3번 국도로 올라서자 물건리 마을과 방조어부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뭍과 바다의 경계가 되어 녹색 띠를 이루고 있다.
길게 펼쳐진 방조어부림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물건리 마을을 보호해주고 있다.
통영 사량도가 멀리서 손짓한다.
(2021. 9. 26)
*여행쪽지
-남해 바래길 6코스(죽방멸치길)는 남해 본섬과 창선도 사이에 형성된 지족해협을 따라 걷는 길이다.
이 길에서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식인 죽방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갯벌체험장, 물건리 방조어부림도 만날 수 있다.
-코스 : 삼동하나로마트→전도→둔촌→동천→내동천→물건리 방조어부림→물건리 버스정류장
-거리, 소요시간 : 9.9km, 3시간 30분 소요
-난이도 : 보통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동남해농협 하나로마트 삼동점(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 1875)
-출발지(지족리)와 도착지(물건리) 모두 식당이 많다. 물건리 3번 국도 도로변에 있는 램스하우스(055-867-8708)는
양고기스테이크로 유명한 집이다. 파스타, 소세지 플레터, 돼지목살스테이크도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