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차 청심법문
대저 우리 인생의 한세상 삶이 건장한 청년기가 머물지 않음이 달리는 말과 같고 풀 끝에 이슬 같고 지는 해와 같으니 무상(無常)이 빠름을 말합니다.
똥 무더기 같고 꿈결 같으며 원수나 도둑 같으며 독사 같다 함은 헛되고 부질없어서 좋은 일이 없음을 말함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말이 없고자 하노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맞는 것도 틀리는 것도 없다.” 하였으며 장자는 “황제(黃帝)가 잃은 현주(玄珠)를 망상(罔象)이 찾았다.” 하며 또 이르기를 “천지는 한 손가락이요 만물은 한 마리 말이라.” 하였다.
항차 우리 불교를 배우는 사문이란 마땅히 본심을 참구하여 세밀히 연마해서 밝고 오묘한 경지에 이르면 백천 가지의 삼매와 한량없이 묘한 이치를 구태여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으리니 모든 부처와 조사가 어찌 별다른 사람이겠는가.
이르되 “이제 성현이 가신지 오래 되어서 출가한 사람이 자기 집의 가풍도 모르고 빈둥빈둥 지내다가 헛되이 일생을 보내니 우리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매몰하여 밝히지 못하고 온통 허위와 사악한 습성만 익힌 자가 심지어는 오히려 비방까지 하니 슬프다 가히 말로써 다 할 수 없도다.” 하였다.
육조대사가 이르기를 “앞생각이 미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니라.” 하였으며 위산선사가 이르기를 “생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묘로서 신령스런 불꽃의 끝없는 데에 돌이켜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현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리니, 이것이 참 부처님의 여여함이니라.” 하였으니 그 광명을 얻으면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게 되며 하루아침에 그 광명을 잃으면 생사에 윤회하며 만겁에 헤매게 되나니라.
고기가 용이 되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고치지 못하고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되어도 얼굴은 고칠 수 없다고 하였다. 밝지 못한 그대로 성품이 곧 불성(佛星)이요 허망한 이 몸 이대로가 법신이다.
이 낱 도리는 매우 가까운 데 있는데 눈을 열면 경계를 보는데 집착하고 눈을 감아도 또한 스스로 현전(現前)하여 나타난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너가 부처다.” 하니 이와같이 명백하게 지도함을 번거로이 인용하지 않나니 이 모두 범부를 고쳐서 성현이 되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도리로다.
옛사람이 이와같이 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레 일러주며 용심의 간절하기가 노파심 같으니 외우고 익혀 반조하고 참구하며 선각자에게 널리 묻고 분명하게 결택하여 깨닫는 이치로 회포를 삼아서 자세히 탁마하면 도를 이루리라.
어떠한 사람인들 분이 없으리요.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천과 남녀노소가 모두 성불할 수 있는 분이 있도다. 슬프다! 머리 깎고 먹물 옷을 입음은 마땅히 무엇을 하려 함인가?
눈이 빛에 끄달리면 아귀의 몸을 받고 귀가 소리를 좇으면 아비지옥에 들어가며 빛과 소리에 취해 떨어지면 짐독(鴆毒)을 넣은 술에 침몰 되어 망상의 함정 속에 빠져 혼미하여 깨어나지 못하고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또 이러하다가 섣달그믐날이 닥치면 머리와 이마가 터지는 듯하고 간장이 잘라지는 듯 손과 발을 잡아빼는 듯할 때에 그 슬프고 두려움은 끓는 물에 떨어진 게와 같으며 그 아픔을 참는 것도 마치 거북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기는 것과 같나니 정신은 혼미하여 내가 천상으로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상상하여 헤아릴
수가 없으니 슬프고 애석하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예전 성현들은 임종할 적에 앉아서 벗어버리고 서서 가되 열린 문으로 나가듯이 쉽게 하였다. 계선사는 주장자를 짚고 천화하고 불인장로(佛印長老)는 혼연히 한번 껄껄 웃고 가고 혹은 젓가락질 하다가 멈추고는 가고 발을 펴고 입적하며 거꾸로 서서 입적하니 몇 자 몸의 입적이지만 이 모두 자성을 반조하여 참구해서 정혜(定慧)를 온전히 익혀 극치에 이름이로다.
슬프다 옛사람이라고 어찌 지금 사람과 다르겠는가. 동산화상이 이르기를 “가사(袈裟) 아래서 사람 몸을 잃음이 제일 괴로움이라.” 하였으니 가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에 슬프다 한 것이 네 번이라 한 됨이 바다와 같음을 누가 알겠는가.
승화상인(承華上人)에게 써 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