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포살=10월30일
그믐이다. 삭발하고 목욕하고 세탁하는 날이다. 보름과 그믐에는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날이기 때문에 세탁을 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내복을 입어야 하고 내복에는 이 따위가 있기 때문에 세탁을 하면 살생을 하는 결과가 된다.
겨울철 목욕탕과 세탁장 시설이 협소하니 노스님들에게 양보하고 젊은 스님들은 개울로 나가 얼음을 깨고 세탁을 하고 목욕은 중요한 부분만 간단히 손질하는 것으로 끝낸다. 날카롭게 번쩍이는 삭도(削刀)가 두개골을 종횡으로 누비는 것을 바라볼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내 머리카락이 쓱쓱 밀려 내릴 때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오후에는 유나스님의 포살이 행해진다. 삼장 중에서 율장을 다룬다. 사분율의에 의해 사미 10계, 비구 250계가 나열되고 설명된다.
선은 원칙적으로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불립문자 견성성불을 외치면서 자성의 오득을 주장한다. 인위적인 일체의 잡다한 형식을 무시하고 관계를 단절하고 심지어는 불경까지를 외면한 채 오직 화두에 의한 선리참구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선객은 괴벽하게 보이고 비정하게 느껴진다. 그런 선객들에게 계율을 말하고 보살행을 설파함은 도로(徒勞)일 뿐이라는걸 유나스님은 잘 알면서도 노파심 때문에 행하고 있고 또 대중들은 듣고 있다.
중생의 모순성 때문인지 모순의 이율성 때문인지. 몇몇 스님들은 포살에 참석하기는 하나 유나스님의 개구성(開口聲)을 마이동풍격으로 처리하면서 자신의 화두에 정진하는가 하면 몇몇 스님들은 아예 밖으로 나가 포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포살을 폐지하자는 혁신론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것은 필연성과 당위성, 그리고 우연성까지 곁들인 역사성임에 틀림없으니 내가 견성하지 못하는 한 진부(眞否)나 가불가를 판별할 수 없다. 그러니까 두고 보자는 극히 보수적이면서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다. 불교의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때문일까. 실존철학의 존재는 존재를 존재시키기 위한 존재라는 것 때문일까.
중생세계에서 보면 필요성을 주장하면 이유가 되고 타당성을 주장하면 독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방관자가 된 채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오직 견성에 매달려 중생계를 탈피하려 한다. 자신이 중생에 머물러 있는 한 모든 판단의 척도가 중생심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불가에서는 시비는 터부로 여기지만, 그러나 시비가 그칠 때가 없으니 역시 중생인지라 어쩔 수 없을 뿐이다.
9 선방의 풍속=11월3일
선방의 역사는 뒷방에서 이루어진다. 뒷방의 생리를 살펴보자.
큰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길다랗게 놓인 방이 뒷방이다. 일종의 휴게실이다. 개인 장구가 들어 있는 바랑이 선반 위에 줄줄이 담을 쌓고 있어서 누구나가 드나든다. 휴게시간이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법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잡담도 한다. 길게 드러누워 결과부좌에서 오는 하체의 피로를 풀기도 하고 요가도 한다.
간병실과 겸하고 있어 병기가 있으면 치료도 한다. 옷을 꿰매는가 하면 불서를 보기도 한다. 편지를 쓰기도 하고 일기도 쓴다. 어느 선방이거나 큰방 조실이 있음과 동시에 뒷방 조실이 있다. 큰방 조실은 법력으로 결정되지만 뒷방 조실은 병기와 구변이 결정짓는다. 큰방에서 선방의 정사가 이루어진다면 뒷방에서는 야사가 이루어진다.
선방에서는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에 의해 우세가 결정되기도 한다.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은 스님은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고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은 스님은 점차로 선객의 옷이 벗겨지게 마련이다.
상원사의 뒷방 조실은 화대스님이 당당히 차지했다. 위궤양과 10년을 벗하고 해인사와 범어사에서도 뒷방 조실을 차지했다는 경력의 소유자이고 보니 만장일치의 추대다. 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불가에서는 사교까지 이수했고 절밥도 10년을 넘게 먹었고, 남북의 대소 선방을 두루 편력했으니 뒷방 조실로서의 구비요건은 충분하다.
금상첨화격으로 달변에다 다혈질에다 쇼맨십까지 훌륭하다. 경상도 출신이어서 그 독특한 방언이 구수하다. 낙동강 물이 마르면 말랐지 이 뒷방 조실스님의 화제가 고갈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파라독스하고 때로는 페이소스하다. 때로는 도인의 경계에서 노는 것 같고 때로는 마구니의 경계에서 노는 것 같다. 제불조사가 그의 입에서 사활을 거듭하는가 하면 현재 큰스님이라고 추앙되는 대덕스님들의 서열을 뒤바꾸다가 때로는 캄캄한 밤중이나 먹통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무불통지요. 무소부지인 체하면서 거들먹거리지만, 그의 천성이 선량하고, 희극적인 얼굴 모습과 배우적인 소질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버림받지는 않지만 추앙 받지도 못했다. 천부적인 뒷방 조실감이라는 명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 뒷방 조실이 가끔 치명적으로 자존심에 난도질을 당하고 뒷방 조실의 지위를 위협당하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원주스님 때문이다.
선방의 살림살이를 맡고있는 원주스님은 대중들의 생필품 구입 때문에 강릉 출입이 잦았다. 강릉에 가면 주거가 포교당인데, 포교당은 각처의 여러스님들이 들렀다가 가는 곳이어서 전국 사찰과 스님들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교통이 발달되고 보면 신문보다도 훨씬 빨리 그리고 자세히 알 수 있다. 원주스님도 꽤 달변이어서 며칠 동안 들어 모은 뉴스원을 갖고 돌아오면 뒷방은 뒷방 조실을 외면하고 원주스님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그때 뒷방의 모든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같이 경청하고 있는 뒷방 조실의 표정은 우거지상이어서 초라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뉴스가 한 토막씩 끝날 때는 막간을 재빨리 이용하여 뉴스에 대한 촌평을 코믹한 사족을 붙이거나 독설을 질타하는 것으로 체면 유지를 하다가 원주스님의 뉴스원이 고갈되자마자 맹호출림의 기상으로 좌중을 석권하기 위해 독특한 제스처로 해묵은 뉴스들을 끄집어내어 재평가를 하면서 일보 통의 권위자임을 재인식시키기에 급급하다. 면역이 된 대중스님들은 맞장구를 치지도 않지만 삐에로의 후신인 양 지껄여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