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시의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5분을 줄여보려고 버스를 탔다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오늘도 서울구경을 실컷 합니다. 아~ 어쩜 이렇게 매번 다른데로 가는지요! 스스로가 한심합니다. 여의도에서 원효대교를 건너 용산으로 가서 한강대교를 건너와서 영등포로 가서 무사히 9707을 탔습니다. 휴 살았다!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당산역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끝없이 타는 거예요. 입석불가라서 결국 절반은 못탔어요. 이게 무슨 일이죠? 도심고속도로에 들어서는데 차가 정말 많았습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니 세연이가 하는 말, "다들 추석이라고 할머니네 가나?" 이상하다 추석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난지도공원에 가까이 가니까 뭔가 축제를 하는가 봅니다. 길에도 주차장에도 자동차가 가득 차고 정말 굉장한 인파입니다. 30분 넘게 늦어서 서둘러 컨테이너로 가보니 다행히 덕님도 아직은 주차장에서 일하고 계시고 추정림 개미님도 만났어요. 곤충탐사 때 만난 분인데 오늘에야 이름을 알게 되었네요. 우선 주차장에서 집씨통을 털어 박스에 넣고, 세연이는 목초액에서 떠오른 도토리를 건져 망에 담았습니다. 얼음담은통, 어린참나무, 도토리, 간식, 호미까지 다 자전거에 실어서 하늘공원에 갑니다. 하늘공원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김성란 박사님은 또 책을 한아름 주시고, 구미의 문성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천연염색했다는 손수건도 받았지요. 도토리껍질 염색, 쪽 염색입니다.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저녁에 벌써 요긴하게 썼습니다. 분수대에서 물을 가지고 노는 바람에 몸을 닦느라고요^^;)
자전거 수레에 나무 받침을 끼워넣어서 즉석에서 2단으로 만들어 물건을 다 싣고 하늘공원으로 갑니다. 경사진 곳을 자전거로 오르자니 뒤에서 밀어주는 막대기도 있어야 하네요. 이런 막대기가 무슨 도움이 되려나 했는데 막상 세연이가 뒤에서 자전거를 막대로 미니까 막 빨라져서 좀 천천히 밀라고 했어요~ (노고시모의 모든 것은 존재의 쓸모가 있다..)
하늘공원에서 사면으로 들어가서 두어번 앉아서 쉬는데 월드컵공원에서 공연 소리가 들려왔어요. 가까이에서는 절대 못들을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소리지만, 멀리서 들으니까 꽤 괜찮았어요. 환호하는 젊은이들의 함성이 듣기 좋았어요. 추정림 개미님은 원래 락 음악을 좋아하신대요. 저도 20때는 조금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젠 너무 늙었나봐요. 가까이에서는 못 듣겠어요.
노을공원에 오는 20대 청년분들을 보면 참 존경스러워요. 그때쯤 저는 공부와 독서, 예술 따위는 좋아했지만 한편으로 패션에 몰두해서 네일아트나 받고 그랬거든요. 자연 생태에 대한 관심, 공존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자각했다면 좋았을텐데. 이제 지구가 펄펄 끓는 마당에, 더불어 살기보다는 내것부터 챙기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해보지만 지난 세월의 무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중간에서 사면을 따라 내려가니 트인 땅이 나오고 곳곳에 어린참나무가 자라고 있었어요. 원래는 단풍잎돼지풀이 덮었던 자리인데 다른 청년분들이 와서 어마어마하게 정리를 해주셨대요. 그 자리에는 가래나무도 심고 해봤는데 동물물그릇 바로 옆에 딱 한 그루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풀의 기세를 이기지 못했다나봐요. 그래도 심고 또 심으면 숲이 된다고 하니까 또 해보자고요^^ 집씨통을 묘상에 심지 않고, 바로 땅에다 심었어요. 하늘공원에서는 <집씨통정원>으로 이름붙이고 묘상키우기 대신 땅에 직접 심기 방식으로 해보실 참이신가봐요.
군데군데 모아서 15개쯤 심고 좀 떨어진 곳에 또 스무개쯤 심고, 곳곳에 심어보니 좀 그럴 듯해요. 안전한 집씨통에서 자라던 어린참나무들이 이젠 야생의 흙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어린참나무야, 힘내! 너에게 진짜 공기와 흙과 물과 햇빛이 다가왔으니 부디 힘내주길 바라. 힘들겠지만 사람들이 자꾸 와서 돌봐줄거야.
저랑 정림개미, 덕님은 심고, 세연이는 물주기를 맡았습니다. 물조리 한 가득 담아다가 어린참나무 밑의 흙이 죽처럼 될 때까지 흠뻑 물을 주었어요. 시키면 열심히 하는 세연이라서 정말 열심히 해요. 고사리 손으로 자기 덩치만한 조리를 조심스럽게 기울여서 물주는 모습이 예쁩니다. 물을 얼추 주고 나서는 단풍잎돼지풀의 마른 줄기를 부러뜨려서 타악기도 만들고 놀아요.
어린참나무 옮겨 심기는 끝났지만 남은 작업은 또 있어서 덕님은 7시 넘어까지 하신 것 같아요.. 저희들을 우선 사면 출구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빈 자전거 수레는 누가 탔을까요? 오늘 덕님은 인력거꾼이 되었습니다^^
정림 개미님과 메타세콰이어길로 내려왔어요. 잘 정리한 공원이었어요. 상사화와 맥문동도 피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쓰레기들이 길에 가득합니다. 멸종희망종 500ml 페트 생수병이 찌그러진 채 길가에 뒹굴었어요..공원관리소분들이 며칠은 고생하시겠어요. 축제가 쓰레기축제가 되어서 마음이 안타까워요.
종이팩, 멸균팩은 주민센터에 가져다주면 3kg 당 두루마리휴지1개로 교환해줘요. 종이로 분리배출하면 이물질때문에 재생휴지가 될 수 없어서 지금 재활용률이 14%래요. 1L짜리 우유팩을 150개쯤 모으면 3kg되더라고요. 혼자 모아서는 어림도 없으니 저를 개인적으로 아는 동네분들 몇몇과 한강조합에서 우유팩을 같이 모읍니다. 샛강센터 한 구석에 모아주시면 여의동 주민센터에 한달에 한번쯤 다녀오곤 해요. 오늘 세연이가 집씨통정원에서 시원하게 마신 초코우유팩도 씻어서 펴서 소중히 집에 가져왔습니다. 다음달에 주민센터에 갈때는 초코우유팩도 가져갈 수 있어요.
오늘은 샛강역에서 내려서 베스킨라빈스에 갔어요. 저번에 영등포구청에 무언가 후기를 써서 냈더니 뽑혔다고 베스킨라빈스 파인트 쿠폰을 보내주었어요. 사실 파인트가 얼마만한 크기인지, 몇 가지 맛을 넣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일단은 갔어요. 베스킨라빈스 안가본 사이에 키오스크가 생겨서 써봤는데 세가지 맛을 고르니까 스티커처럼 파인트 통에 쏙 들어가는 그래픽이 나와서 재미있었어요.
세연이는 모기빼고는 모든 동물을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오늘 컨테이너 사무실에 놀러 온 나나와 복순이 모녀 강아지랑도 한참 놀고 집에 오는데 지하철에서 옷에 붙어온 아주 작은 여치 유충같은걸 발견하고는 끝끝내 손바닥에 올려 데리고 와서 샛강역에 내려서 띠녹지에 놓아주었어요. 죽은 것 같은데 버리자고 했지만 자세히 보니 날지는 못하는데 다리를 너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어요. 차마 지하철에 버리지 못하고 일단 세연이 손바닥에 올리고 있을 수 있게 도와는 주었습니다. 참 순진하고 진심어린 아이의 마음이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볼텐데.. 부디 세연이가 이 세상의 부조리에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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