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정좌공부의 입지(立志)와 책지(責志) 및 반성의 경계(警戒)
2025년 6월 26일
왕양명은 동료에게 정좌를 권하거나 학생들에게 정좌를 가르치면서 성인이 되겠다고 결심하라는 입지(立志)를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왕양명의 입지 주장도 성인이 되겠다는 결심 또 나무뿌리에 북주고 물을 주라는(栽培灌漑) 비유도 이정(二程)과 육상산의 입지 주장을 참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왕양명은 정좌공부를 정당화하는데 입지 뜻을 나타냈습니다.
주목할 것은 50살(1521)에 쓴 「書顧維賢卷」(辛巳,1521)에서 설명한 경계(警戒)입니다. 고유현(顧維賢)이 떠나기 전에 왕양명이 자주 말하던 “경계(警戒)” 두 글자를 직접 써달라고 부탁하자 왕양명은 경계가 입지를 보조하는 차선책 역할을 한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왕양명은 학생들이 입지를 절실하게 느끼지 않기에 차선책으로 경계를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입지(立志)와 경계(警戒)는 말뜻이 서로 다르고 왕양명이 학생들에게 일러주었던 시기가 다릅니다. 입지는 용장역에서 귀양살이할 때부터 57살에 죽을 때까지 당부하였습니다. 그런데 경계는 50살 소흥으로 귀향한 뒤에 나온 말입니다. 왕양명이 44살에 아우 왕수문에게 써준 「입지설」을 보면 아우 왕수문이 私心을 품고 왕양명에게 공부하러 왔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입지(立志)보다는 오히려 책지(責志)를 더 강조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학생들에게 책지할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50살 이후에도 여전히 학생들에게 정좌를 가르쳤으나 학생들이 입지와 정좌에 대하여 시큰둥하게 반응하였고 또 책지(責志)하라고 타일렀습니다. 책지 내용을 긍정적인 말로 표현한 것이 경계이며 입지의 차선책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당시 비난하는 여론(非笑詆毀)에 따라 정좌에 흥미를 잃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양명이 입지보다 낮은 단계로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고 고치라고 타이르면서 경계를 일러주었습니다.
왕양명이 50살 귀향한 뒤에는 양지를 널리 설명해주었습니다. 정좌공부에 더하여 양지를 가르쳐줄 수도 있으나 정좌를 꺼리거나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도 양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특히 정좌를 꺼리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반성하도록 책지(責志)하거나 경계(警戒)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따라서 양지는 정좌뿐만 아니라 책지 또는 경계에도 적용한 것입니다.
王畿(1498-1583)는 왕양명 사후에 많은 학생에게 정좌를 말로 설명해주고 가르쳐주면서도 현재양지(現在良知, 現成良知)를 더 많이 설명해주었습니다. 태주학파 羅汝芳(1515-1588)도 50살(1565)부터 학계에서 등단하였는데 王畿보다 조금 늦게 세상에 나와 강연활동을 하였습니다. 나여방도 초학자들에게도 정좌를 가르치면서도 현성양지를 더 많이 설명해주었는데 초학자들이 학문을 포기하지 않도록 달래서 정좌공부로 들어오도록 이끌었습니다. 왕양명, 왕기, 나여방 등의 사례를 보면 경계(警戒)와 현성양지가 아마도 정좌를 꺼리는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方便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立志 자료는 10여 년 전에 모은 것인데 더 찾아보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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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입지(立志) 설명 자료 :
1、「教條示龍場諸生」:
諸生相從於此,甚盛。恐無能爲助也,以四事相規,聊以答諸生之意:一曰立志;二曰勤學;三曰改過;四曰責善。其慎聽,毋忽!
「立志」:
志不立,天下無可成之事,雖百工技藝,未有不本於志者。今學者曠廢隳惰,玩歲愒時,而百無所成,皆由於志之未立耳。故立志而聖,則聖矣;立志而賢,則賢矣。志不立,如無舵之舟,無銜之馬,漂蕩奔逸,終亦何所底乎?昔人有言,使爲善而父母怒之,兄弟怨之,宗族鄉黨賤惡之,如此而不爲善可也;爲善則父母愛之,兄弟悅之,宗族鄉黨敬信之,何苦而不爲善爲君子?使爲惡而父母愛之,兄弟悅之,宗族鄉黨敬信之,如此而爲惡可也;爲惡則父母怒之,兄弟怨之,宗族鄉黨賤惡之,何苦而必爲惡爲小人?諸生念此,亦可以知所立志矣。
2、赴謫詩五十五首
「憶別」:
憶別江干風雪陰,艱難歲月兩侵尋。重看骨肉情何限,況復斯文約舊深?
賢聖可期先立志,塵凡未脫謾言心。移家便住煙霞壑,綠水靑山長對吟。
3、「贈林以吉歸省序」(辛未,1511,왕양명 40살):
陽明子曰:求聖人之學而弗成者,殆以志之弗立歟!天下之人,志輪而輪焉,志裘而裘焉,志巫醫而巫醫焉,志其事而弗成者,吾未之見也。輪、裘、巫醫遍天下,求聖人之學者間數百年而弗一二見,爲其事之難歟?亦其志之難歟?弗志其事而能有成者,吾亦未之見也。……志立而學半,四子之言,聖人之學備矣。苟志立而於是乎求焉,其切磋講明之益,以吉自取之,尙其有窮也哉?
4、「與黃誠甫」(癸酉,1513,왕양명 42살)(黃宗明,?-1536):
立志之說,已近煩瀆,然爲知己言,竟亦不能舍是也。
5、「示弟立志說」(乙亥,1515,44살):
予弟守文來學,告之以立志。守文因請次第其語,使得時時觀省;且請淺近其辭,則易於通曉也。因書以與之。……故程子曰:“有求爲聖人之志,然後可與共學。”人苟誠有求爲聖人之志,則必思聖人之所以爲聖人者安在?非以其心之純乎天理而無人欲之私歟!聖人之所以爲聖人,惟以其心之純乎天理而無人欲,則我之欲爲聖人,亦惟在於此心之純乎天理而無人欲耳。……是以君子之學,無時無處而不以立志爲事。正目而視之,無他見也;傾耳而聽之,無他聞也。如貓捕鼠,如雞覆卵,精神心思凝聚融結,而不復知有其他,然後此志常立,神氣精明,義理昭著。一有私欲,即便知覺,自然容住不得矣。
6、「書汪進之卷」︰
故某於朋友論學之際,惟舉立志以相切礪。其於議論同異之間,姑且置諸未辯。非不欲辯也,本之未立,雖欲辯之,無從辯也。夫志,猶木之根也;講學者,猶栽培灌溉之也。根之未植,而徒以裁培灌溉,其所滋者,皆蕭艾也。進之勉之!
(“某於朋友論學之際,惟舉立志以相切礪” 구절을 참고하면 대체로 滁州 이후에 쓴 편지라고 추정함)
(「答汪抑之」 三首를 1507년 용장역 도착 이후에 지은 시를 보면 「書汪進之卷」 서신들도 39살 북경에 도착 이후에 써준 것이라고 추정함. 속경남 선생은 왕양명 35살에 북경에서 써주었다고 보았음)
7、「家書墨跡」(四首):
一、「與克彰太叔」:
學本於立志,志立而學問之功已過半矣。此守仁邇來所新得者,願毋輕擲。……惡念者,習氣也;善念者,本性也;本性爲習所勝、氣所汩者,志不立也。痛懲其志,使習氣消而本性復,學問之功也。
(“此守仁邇來所新得者” 구절을 보면 남경에서 아우 王守文에게 입지설을 써준 시기의 서신이라고 추정함)
8、「贈郭善甫(郭慶,字善甫,號一坡)歸省序」(乙亥,1515,44살):
郭子自黃(黃岡)來學,逾年而告歸,曰:“慶聞夫子立志之說,亦既知所從事矣。今茲將遠去,敢請一言以爲夙夜勖。”陽明子曰:“……夫志猶種也,學問思辯而篤行之,是耕耨灌溉以求於有秋也。志之弗端,是荑稗也。志端矣,而功之弗繼,是五穀之弗熟,弗如荑稗也。吾嘗見子之求嘉種矣,然猶懼其或荑稗也;見子之勤耕耨矣,然猶懼其荑稗之弗如也。夫農春種而秋成,時也。由志學而至於立,自春而徂夏也;由立而至於不惑,去夏而秋矣。已過其時,猶種之未定,不亦大可懼乎?過時之學,非人一己百,未之敢望,而猶或作輟焉,不亦大可哀乎?從吾遊者眾矣,雖開說之多,未有出於立志者。故吾於子之行,卒不能舍是而別有所說。子亦可以無疑於用力之方矣。”
9、「寄張世文」(張綖,1487-1543,字世文):
故區區於友朋中,每以立志爲說。亦知往往有厭其煩者,然卒不能舍是而別有所先。誠以學不立志,如植木無根,生意將無從發端矣。自古及今,有志而無成者則有之,未有無志而能有成者也。遠別無以爲贈,復申其立志之說。賢者不以爲迂,庶勤勤執謙枉問之盛心爲不虛矣。
(“區區於友朋中,每以立志爲說” 구절을 보면 학생들에게 입지를 가르친다고 말하였는데 언제 쓴 서신인지는 더 찾아보아야 함.)
10、「贛州書示四侄正思等」(1517,46살,四月三十日):
吾嘗有「立志說」與爾十叔(王守文),爾輩可從鈔錄一通,置之幾間,時一省覽,亦足以發。
正德丁丑(1517, 양명 46살)四月三十日。
11、「寄聞人邦英、邦正」(聞人詮,字邦正)(一,戊寅,1518,47살):
吾家兩弟得以朝夕親資磨勵,聞之甚喜。……但能立志堅定,隨事盡道,不以得失動念,則雖勉習舉業,亦自無妨聖賢之學。
12、「寄薛尙謙(薛侃)」(戊寅,1518,48살):
數年切磋,只得立志辯義利。若於此未有得力處,卻是平日所講盡成虛語,平日所見皆非實得,不可以不猛省也!經一蹶者長一智,今日之失,未必不爲後日之得,但已落第二義。須從第一義上著力,一眞一切眞。若這些子既是,更無討不是處矣。
13、「寄聞人邦英、邦正」(三,庚辰,1520,49살):
書來意思甚懇切,足慰遠懷,持此不懈,即吾立志之說矣。源泉混混,不捨晝夜盈科,而後進放乎四海,有本者如是,立志者其本也。有有志而無成者矣,未有無志而能有成者也。賢弟勉之。
14、「書顧維賢卷」(辛巳,1521,왕양명 50살):
「書顧維賢卷」(辛巳,1521,왕양명 50살):
維賢以予將遠去,持此卷求書警戒之辭。只此“警戒”二字,便是予所最叮嚀者。今時朋友大患不能立志,是以因循懈馳,散漫度日。若立志,則警戒之意當自有不容已。故警戒者,立志之輔。能警戒,則學問思辯之功、切磋琢磨之益,將日新又新,沛然莫之能禦矣。……故學者只須責自家爲己之志未能堅定,志苟堅定,則非笑詆毀不足動搖,反皆爲砥礪切磋之地矣。今時人多言人之非毀亦當顧恤,此皆隨俗習非之久,相沿其說,莫知以爲非。不知里許盡是私意,爲害不小,不可以不察也。
15、居越詩三十四首(50살 소흥에 귀향한 뒤부터)
「書扇示正憲」:
汝自冬春來,頗解學文義,吾心豈不喜?
顧此枝葉事,如樹不植根,暫榮終必瘁。
植根可如何?願汝且立志!
16、「答舒國用(舒柏,字國用)」(癸未,1523, 왕양명 52살):
來書足見爲學篤切之志。學患不知要,知要矣,患無篤切之志。國用既知其要,又能立志篤切如此,其進也孰禦!中間所疑一二節,皆工夫未熟,而欲速助長之爲病耳。以國用之所志向而去其欲速助長之心,循循日進,自當有至。
17、「與劉元道(劉侯)」(癸未, 1523, 왕양명 52살):
且云:“於靜求之,似爲徑直,但勿流於空寂而已。”觀此足見任道之剛毅,立志之不凡。且前後所論,皆不爲無見者矣。可喜可喜!
18、「啟問道通(周衝)書」(1524,53살):
大抵吾人爲學緊要大頭腦,只是立志,所謂困忘之病,亦只是志欠眞切。
19、「書朱守諧(朱篪,1493-1546)卷」(甲申,1524,53살):
守諧問爲學,予曰:“立志而已。”問立志,予曰:“爲學而已。”守諧未達。予曰:“人之學爲聖人也,非有必爲聖人之志。雖欲爲學,誰爲學?有其志矣,而不日用其力以爲之,雖欲立志,亦烏在其爲志乎!故立志者,爲學之心也;爲學者,立志之事也。
20、「答季明德」(丙戌,1526, 왕양명 55살)(季本(1485-1563),字明德,號彭山):
承示:“立志益堅,謂聖人必可以學而至。兢兢焉,常磨煉於事爲朋友之間,而厭煩之心比前差少。”喜幸殊極!又謂:“聖人之學,不能無積累之漸。”意亦切實。中間以堯、舜、文王、孔、老諸說,發明“志學”一章之意,足知近來進修不懈。
21、「牌行委官陳逅設教靈山」(嘉靖七年,1528,57살,六月)︰
看得理學不明云云。除行廉州府及所屬縣外,牌仰本官即便前去該府及所屬縣,行各掌印官召集各該縣師生,遍行開導訓告,各行立志敦本,求爲身心之學,一洗舊習之陋。度量道里,折中處所,於靈山縣儒學住歇,令各縣師生可以就近聽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