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우리말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해야 하는 계절이 돌아 왔습니다. 정말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은 어느새 가고 아침저녁 옷깃을 여며야 하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에 숙연할 따름입니다. 하늘이 투명하고 높아질수록 마음이 서글퍼지는데 그 서글픔을 책 읽는 기쁨으로 승화시킨 게지요. 정신의 영양제로 마침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글을 살찌우는 책들이 많이 나와 한동안 행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휘력이 풍부해서 문학 작품 번역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줄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새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비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는 단어가 많기도 하려니와 곱기도 하고 그만큼 우리네 말살이가 너무도 풍성하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이 되어 좀 소개해 볼까 합니다.
안개처럼 가늘게 내리는 안개비, 안개비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는개, 는개보다는 굵고 가랑비보다는 가는 이슬비, 이슬비보다 더 굵게 내리는 가랑비, 실같이 내리는 실비, 가루처럼 뿌옇게 내리는 가루비, 채찍처럼 굵게 쏟아지는 채찍비, 굵직하고 거세게 퍼붓는 작달비, 빗방울의 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발비,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억수, 좍좍 내리다 금세 그치는 웃비, 거센 바람에 불려 흩어지는 비보라, 여름에 비가 오면 할 일이 없어 잠을 많이 자게 된다고 해서 여름에 내리는 비는 잠비, 그밖에 날비, 줄비, 된비, 무더기비, 꿀비, 못비, 모종비, 보슬비, 부슬비, 여우비…
그런가 하면 자두에 밀려버린 ‘오얏’, 낙과에 묻혀버린 ‘도사리’, 라일락보다 ‘수수꽃다리’가 얼마나 더 정겨운 우리말입니까? ‘ 말이 ‘처음’을 뜻하꽃’이라는 말인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열린 열매는 꽃다지이고 꼴등의 반대말은 꽃등이라니 너무 아름다운 우리말들을 그 동안 잊고 살아온 세월이 안타깝습니다.
외래어를 잘하게 하기 위해 아이의 혀 수술을 시킨다는 젊은 부모가 있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이신 세종대왕께서 지하에서 통탄하실 일이지요. 모래 위에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우리 모국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외래어를 결코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젊은 부모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공휴일로 존대 받던 한글날이 요즘은 일회성 기념행사일로 잊혀져 가는 현실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고 아끼자는 운동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어서 너무나 다행스럽고, 새삼 판소리 인간문화재이신 故 박동진 선생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 원불교 전포교당 교도· 화가 노경주
[출처] 아름다운 우리말 |작성자 옹달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