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가 남 긴 것
아! 봄이다. 꽃이다. 봄은 꽃이고, 꽃은 봄이다. 드디어 기다림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계절이 온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원래 내가 가장 좋아한 계절은 겨울이었다. 소년 시절,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원작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고나서부터였을 것이다. 혁명의 비극과 사랑의 애절함을 섬세하고도 선명하게 그려내기 위한 배경으로 펼쳐지던 광막한 설원! 볼수록 가슴을 저리게 하면서도 까닭 모를 흥분을 자아내던 설원의 강렬한 인상은 필생의 꿈마저 바꿔버렸다. 언젠가는 그 시베리아의 끝없는 눈밭을 막막하게 걸어보고야 말리라고. 그리고 차가워서 오히려 미약한 입김마저도 따스한 계절, 그렇게 역설적인 이미지를 간직한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곳 시골로 이주를 하고 나서 가장 먼저 기다린 것도 겨울이었다. 마니산 품 안으로 드넓게 펼쳐진 양도 들판 가득 눈이 펑펑 내리면 인적 끊긴 그곳을 걸어보리라고. 그렇게 해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다소간이라도 달래보리라고.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갈수록 겨울도 겨울이 아니고, 눈도 눈이 아니었다. 이상기온 탓인지 실망스럽게도 아예 눈이 쌓이지 않은 겨울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곳으로 이주를 해 온 지가 올해로 딱 십 년 째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일견 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의 시골살이에서 무엇이 남았느냐고 묻는다면, 얼핏 대꾸하기가 당황스럽고 궁색할 듯하다. 시쳇말로 강산이 크게 변하고도 남을 긴 세월 동안 남은 게 없다니. 그럼 도대체 왜 굳이 시골살이를 택했단 말인가? 그런데 있긴 있다. 다행히도 남은 게 있다. 그것도 꽤 많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온 뒤 언제부터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바뀌어 있는 듯했다. 오지 않는 눈에 실망해서였을까, 중년을 넘어가는 고갯마루가 시리고 허전해서였을까, 언제부턴가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절 인생이 된 것이다. 삼라만상의 오묘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연출해내는 계절은 역시 단연 봄이다. 그리고 그 주역은 바로 나무와 꽃이다. 언제부턴가 새로 피어나고 돋아나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던 차에, 십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해 준 것은 올봄을 파노라마처럼 수놓은 우리집 정원의 나무와 꽃들이다. 본래 나무와 꽃을 좋아해서 기회 되는 대로 사기도 하고 얻기도 해서 곳곳에 심은 것들이 이제 제법 자리를 잡고 튼실하게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유달리 올봄의 나무와 꽃은 싱그럽고 풍성하고 화려하다. 복수초, 노루귀, 산수유, 산동백, 윤판나물, 설중매, 청홍매실, 홍매화, 옥매화, 길마가지나무, 수선화, 왕벚, 산벚, 앵두, 산앵두,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할미꽃, 홍자두, 직립꽃복숭아, 천도복숭아, 돌복숭아, 배나무, 돌배나무, 살구나무, 분꽃나무, 사과, 철쭉, 산철쭉, 팥배나무, 가막살나무, 조팝나무, 모과나무, 골담초, 라일락, 꽃무릇, 아이리스, 백모란, 작약, 때죽나무, 목백일홍, 고로쇠나무, ……. 하나하나 꼽아보니 제법 많다. 시골살이 십여 년에 나무와 꽃이 이렇게 많이 남은 것이다. 이 정도면 가히 시골살이가 밑지는 삶은 아니라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 『청소년 평화』 (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