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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전하는 근본 동기는 인간이 지적 탐구를 통하여 편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번식하고는 죽는다. 단순히 이것의 반복일 뿐이다.
그들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의 이러한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성이 주어졌다. 그러기에 인간은 동물이 가지는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말을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걸어다니는 것을 인간의 특징으로 꼽는 것도 학계의 공통된 분류이지만 새가 날아 다닌다는 것에 견주어 볼 때 동물보다 뛰어난 특성이라고 볼 수 없다. 동물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생존의 본능만이 있을 뿐이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동물의 본능과 비교해 볼 때 인간은 자기생존의 본능은 같지만 이성을 사용하여 자기의 삶을 극대화 시키려 한다 즉 더 나은 식생활, 더 나은 짝을 통한 번식 그리고 더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원한다. 인간이 언제 처음으로 창조(또는 진화에 의한 창조)
되었는가 하는 시점을 안다면 그 시점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이 이성을 통하여 발전해 온 경로를 탐색해 본다면 앞으로 어느 시점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가능한 추측들에 대하여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문명의 시작과 경로
불의 발견:인류는 이미 구석기 시대原人)으로 표현되는 호모에렉투스 때부터 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원시인이 불을 얻게 된 것은 화산이나 산불 또는 낙뢰(落雷) 등에서 우연히 얻어진 것이다.1 이성적인 존재와 더불어 불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불이 없었다면 야생 동물보다 인간이 생존하기에 유리한 점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문자의 발명:인류가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 것은 수만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문자를 만들어 낸 것은 겨우 5,000년 전으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으로 문자가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 된 문자는 우루크 유적에서 나온 것인데, 곡식의 포대 수와 가축의 수가 적혀 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문자를 발명한 것이다.2
청동기 시대:기원전 3500년경에 이란 고원 근처에서 인류 최초의 청동기 문명이 탄생했다고 전해지고 있어.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이보다 늦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청동기 시대3가 시작되었다. 청동기는 지배 계급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아주 값비싼 귀금속이었다.그것은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있던 청동으로 된 제품을 모두 바벨론으로 가지고 간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고 구리와 아연의 합금은 황동으로서 일명 놋쇠 또는 신주라고 하는데 황동의 사용은 기원 6세기 경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동은 구리와 니켈의 합금으로 현대에 와서 주조된 금속이다. 따라서 개역 한글이나 개역 개정에 나오는 놋쇠는 황동이 아니라 청동을 의미한다.
철기 시대: 한국 고고학에서 철기시대란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서기전 300년경부터 삼국이 정립된 서기 300년경까지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은 이 시대를 두 시기로 나누어 서기전 300년에서 서기 전후(혹은 서기전 100년)까지를 초기철기시대(初期鐵器時代)로, 서기 전후(혹은 서기전 100년)부터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로 구분하고 있다. 반면 일부 연구자는 이를 통합해서 삼한시대(三韓時代)로 지칭하기도 한다.4
지동설의 입증: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이론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필로라우스(Philolaus, 기원전 390년경)에 의해 제안되었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of Samos, 기원전 570~495년경) 전통을 이어받아 프톨레마이오스(C. Ptolemaeos, 1세기)는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구에서 원운동을 한다고 이해하였다.5 6
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 1473-1543) 이전에도 유럽에 태양 중심의 우주관이 가끔씩 나타나곤 했다. 5세기 카펠라(M. Capella, 5세기)는 수성과 금성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코페르니쿠스 자신도 카펠라가 자신의 연구에 영향을 미쳤음을 언급하였다. 중세 후기에 오레스메(N. Oresme, 1320년경-1382)는 지구가 자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인도의 아랴바타(Aryabhata, 476-550)는 지구가 자전을 하고 있는 모델을 제안하였고 행성의 주기를 태양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지구중심설이 받아들여지고 있기는 했지만, 간간이 지구의 자전 및 태양 중심의 행성 운동설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의 운동이 지구를 중심으로 한 운동보다 훨씬 자연스러움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당시의 종교적 세계관에 의해 넓게 전파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브라헤(T. Brahe, 1546-1601), 케플러(J. Kepler, 1571-1630), 갈릴레이(G. Galillei, 1564-1642) 및 뉴턴(I. Newton, 1642-1727)을 거쳐 태양 중심의 행성 궤도운동이 받아들여지게 된다.7
전기의 발명:인간은 오늘도 전기를 사용하고 내일도 전기를 사용할 것이다. “물은 생명을 만들고 불이 인류문명의 시작이라면 전기는 현대문명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문명에서 전기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기는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발견했습니다. 기원전 600년 경,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나무의 수지가 화석화된 보석인 호박Amber을 털가죽으로 문지르다가 작은 물체가 달라붙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이후 정전기가 발생하는 현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실험 끝에 ‘전기’의 존재를 알아냈고 이는 현대문명의 시작이 됐다. 전기는 자기력 Magnetic Force 과 동시적인 존재이다.8 “전기는 자석을 만들고, 자석은 전기를 만든다” 이는 공간은 시간을 형성하고 시간은 공간을 만든다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의 상호 밀착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전기를 인간이 실 생활에 사용하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에디슨이 백열 전구의 발명이 1880년 1월 27일에 있게 됨으로써 전기가 실용화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의 발명 ;펜실베니아 대학에서ENIAC을 만들었던 에크트와 모클리가 학교를 그만두고 1948년 그들 자신의 회사를 만들면서 착수하여 1951년에 완성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이다. 미국여론조사국에 설치된 이 컴퓨터는 숫자와 영문자를 자유로이 입출력 시킬 수 있는 고속의 범용컴퓨터로서, 매초 약 2,000회 정도의 가감산과 약 460회 이상의 승산, 260회 정도의 제산 및 2,700회 정도의 단순비교를 할 수 있었으며, 정보를 접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0내지 400 마이크로 초였다.
1950년대 초는 새로운 모델의 컴퓨터가 많이 나왔다. 아이,비,엠(IBM)사는 1952년에 701이라는 모델명을 가진 상업용 컴퓨터를 내놓은데 이어서 1953년에는 사무용과 과학기술용으로 함께 쓸 수 있는 컴퓨터들이 많이 개발되었다.
생명공학9 :
인터넷의 보급:1996년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한국통신은 점차 서비스 범위를 확대해나갔으며, 1998년부터는 다른 통신 사업자들도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서비스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진 가운데 일반 가정에 초고속 통신망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10
인공지능과 로봇의 보급:로봇과 인공지능(AI)의 결합은 그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로봇’이라고 하면 궂은 일을 도와주는 심부름꾼의 이미지나, 대화를 나누며 말동무가 되어주는 친구 같은 이미지를 연상한다. 영화<터미네이터>에 나오는 T-600과 같이 인류를 공격하는 침략자의 이미지 등을 가지고 있다.
1920년 카렐 차펙의 희곡인 <로섬의 만능 로봇 R.U.R.>에서 처음 등장했다. ‘로봇’이란 단어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오락적 존재나 살아있는 금속 인형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희곡이 나온 뒤에 로봇은 금속 인형을 넘어 사회에 귀속된 기계 노동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1962년 미국의 유니 메이션사가 최초의 산업용 로봇인 유니 메트를 생산해 제너럴모터스의 자동차 부품공장에 설치하며 로봇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일본의 가와사키 사나 스웨덴의 아베베사 등이 로봇 시장에 뛰어들며 로봇산업의 규모는 커져갔다. 커져가는 규모와 더불어 기술의 수준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발전을 해나가고 있다.
그럼 현재 로봇산업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인간의 이익을 위해 태어나는 기계의 발전은 ‘자본주의'라는 틀 속에서 발전하고 있다. 현재의 로봇 기술은 상상 이상의 매우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따라서 몇 십 년 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일들을 현재의 로봇들은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 예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먼저 ‘수술로봇’을 들 수 있다. 인간의 손이 정교하다고는 하지만 그날의 컨디션이나 긴장 정도에 따라 정교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인간의 정교성은 매우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로봇은 프로그램에 입력받은 값만큼 정확히 움직이므로 정교성이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수술 로봇이 개발 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술로봇인 ‘다빈치’는 오차 범위 0.1밀리미터 이내로 수술 부위를 절개하기 때문에 수술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재활로봇’도 등장했다. 재활로봇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재활로봇은 전쟁에 의해 발전 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수많은 장애인들로 인해 나타나게 된 재활로봇이나 장비의 수요 덕분에 충분한 연구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현재 인공지능이 내장되어있는 로봇 의족과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자휠체어 등이 개발되었다.
인간과 로봇, 공생할 수 있을까. 로봇을 통하면 1초만에 자동결제가 된다. 이처럼 현재 로봇은 많은 분야에서 수많은 일들을 수행하며 인간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로봇이 인간의 자리나 존엄을 위협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일자리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현재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면 인간은 모든 일자리를 뺏길 것이라는 게 문제의 주요 쟁점이다. 이러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기술의 진보를 늦춘다고 말하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현재로써는 어느 누구의 말이 맞다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로봇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은 격렬한 토론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인간을 위해 만든 기술이 인간을 위한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다. 문명의 진보는 인간이 저절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득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 있다.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어떻게 드러날까. 사실 로봇이란 기술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도 수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은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일부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며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지능 발전의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가정 하에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아니 인간보다 더 똑똑한 존재에 대한 관심이 바로 '인공지능(AI)'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20년쯤 지나면 인공지능(AI)이 한층 발전해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로봇+AI)’를 이룰 것이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류)를 기능적으로 뛰어 넘을 것이고,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한편, 최근 인공지능(AI)로봇과 인간복제에 관해 격렬한 논쟁들이 오가고 있다. 어쩌면 정말 가까운 미래, 다음 버전의 차세대 사이넷은 우리가 찾지 못했던 새로운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양자역학의 세계와 우주의 진화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롭고 황당스런 답을 던져준다면, 과연 그것을 웃어넘길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은 절대 찾을 수 없었던 가장 최적의 한 수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만약 인공지능이 정말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이 새로운 다음 시대의 과학 혁명을 야기한다면,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프로그램이 새롭게 그려낸 과학적 패러다임 속을 살아가는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그러한 미래를 머지않아 마주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알파고는 처음부터 바둑판 너머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가. 결국 이 엄청난 로봇의 존재에 미래를 맡길 수 있느냐, 영혼이 없는 쇠덩어리로만 볼 것인가. 논지는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의 조력자인가, 아니면 인간을 뛰어넘는 대체품인가. ‘로봇’이라는 기계가 못하는 것, 인간만이 가진 본래의 저력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 자체가 대안이 아닐까.11
과학의 양면
칼이 음식을 만드는데 유용한 도구이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살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과학적 발전에 적용되는 일반적 원리이다. 원자력을 에너지 원으로 사용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질 좋은 에너지로 사용하며 편리를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핵무기가 언제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이 매우 발전된다면 하나의 낙관적 상상은 로봇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대신해 줄 것이다. 예쁜(또는 잘생긴) 로봇이 청소는 물론이고 등을 주물러 주며 아내(혹은 남편)의 역활까지 해준다면 사람들은 짝을 구할 필요없이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배우자를 맞춤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11 자녀는 아기 생산 공장에 정자와 난소를 기증함으로써 해결될 것이다. 한편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또 아기 공장에서 유전자 가위로 맞춤 아기가 탄생될 때 과연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하는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할 것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모든 질병을 치유할 날이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배아줄기 세포에서 배아를 떼어내는 일에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된다.12 과학의 진보는 새로운 미래를 의미하기 때문에 반드시 윤리적 문제를 같이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과학의 진보가 있을 때나 새로운 제품이 세상에 선 보일 때는 항상 이런 윤리 문제가 쟁점이 되어 왔지만 인간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본능 때문에 과학의 발전을 가로 막지는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므로 과학의 발전과는 별도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의 역활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고 5천년 정도가 흘러 이 정도의 과학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발전한다면 과학 기술의 끝은 어디쯤일까? 지금도 노화의 원인이 되는 세포를 일부 연구하고 있지만 이 연구가 계속 될 때 모든 노화의 원인13은 밝혀진다고 볼 수 있다.
노화의 원인이 밝혀 진다는 것은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냐라고 반문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계속 발전하여 이미 죽은 자의 기억과 살아 있을 때의 생체 조직 역시 재생산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 시기를 구태여 한정할 필요는 없다. 지구 상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완전히 멸망되지 않는 한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과 더불어 연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미래를 보는 안목이란 대부분이 그 미래가 현재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생각될 때에 한해서 국한한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니 부활이니 하는 단어를 꺼내면 벌써 식상해 하고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공상과학 수준 정도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 더구나 종교계에서는 어떠한가?
인간이 영원히 산다는 것이나 죽은 사람이 되살아 난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적 관념이긴 하지만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희망사항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신자들의 마음에 강하게 호소하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오늘과 내일 어떻게 하면 이익이 되느냐 하는 방법에 관해서 설교하는 경향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오늘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거고 인생의 한 단면이 오늘이란 사실을 기억할 때 진실한 신앙인의 자세는 오늘이 영원과 결부되어야 함을 인식한다. 인간 문명은 분명히 발전하여 왔고 앞으로도 발전은 계속될 것임은 분명한데 왜 극한을 생각하지 못할까? 그 극한은 시간과 연계된 것이다. 초월적 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인간이 과학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는 이루어질 수는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오늘까지 살아 오면서 축적된 생각과 믿음의 바탕으로 볼 때는 성서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은 인간의 이성을 거쳐서 오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과학은 인간 이성의 한 부분이다. 물론 현 과학이 대단한 것이라고 과장되이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시간이란 요소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생뚱맞은 소리 같지만 시간이 해결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해결한다는 같은 본질의 다른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며 시공간은 소멸과 생성이 없는 일정한 자체적 존재라는 점에서 분명히 그렇다. 하나님은 곧 질량 에너지를 의미하며 이 일정한 질량 에너지가 시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흘러야 완성된다. 이말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완성하신다는 뜻이다. 지금은 아주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하면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기독교적 믿음에 의해 뒷바침 된다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우리가 여태껏 하나의 믿음으로 바라본 희망이 단순히 관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진행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부활이 미래에 펼쳐진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점에 관해서 생각하기로 하자.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앞에서 주장한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하나의 상상이 되겠지만 인간의 행복과 관련하여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기본적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잠시 우리의 생각을 돕는 아래 영상을 클릭해서 감상하기 바란다.
물론 영상 해설자의 말을 100%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믿음을 조금이라도 세우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영상의 내용을 종합해서 생각해 볼 때 노아 홍수 이전과 같은 자연의 혜택을 더는 볼 수 없는 인간이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최근에 이르러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풍부한 수면과 영양식단이 전제된다면 인간이 120~30세까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 가능성이 홍수 전 인간 수명 900세에 비교할 때는 턱없이 적은 것이지만 의료기술이나 생명공학의 덕택으로 인간의 수명이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는 희미한 가능성을 던져 준 것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어느날 갑자기 인간 수명이 늘어서 수백년을 살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은 연속성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하는 일이 발생하리라는 생각은 고등 믿음이 아닌 맹목적 믿음이며 유아적 발상이다. 먼저 노화를 일으키는 물질이나 노화가 되는 원인이 밝혀져야 한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나 노화의 원인이 되는 텔리메레라는 DNA의 한 염색체 끝 부분을 발견함으로써 인간 생명의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에 한 걸음 다가섰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 발을 들여 놓았으니 반은 해결 된거나 마찬가지다. 계속 연구를 하다 보면 해결될 날이 올 것이다. 이러한 희망적 견해에 반대를 하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무신론적 이기주의이고 하나는 자칭 신을 믿는다는 초월주의자들이다.
무신론적 이기주의자들이 빠지는 함정은 그들의 시야가 자신을 중심으로 매우 부분적으로 국한되어 있어 사물이나 상황을 통시적으로 보지 못하는 약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우선", "빨리"가 그들의 대명사이다. 순간적인 위기의 모면이자, 언 발에 오줌누기식 해결책을 제시할 뿐이다. 먼 미래나 자기와 관계과 먼 사람들의 일은 도무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결국 내가 죽으면 모든게 끝이니 살아 있을 동안 편하게 지내고 좋을 대로 해 보자는 동물적 본능만을 추구할 뿐이다. 그래서 이성없는 짐승과 같다고 성서는 표현한다.
한편 오늘의 모든 기독교계는 예외없이 초월적 신앙에 빠져 있다. 즉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 하시며 불생불멸이시며 무시무종인 분이시므로 인간의 능력이란 그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사고이다. 물론 이러한 전통적 신관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하나님을 자연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존재자로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는 인간이 초기의 인간인 아담과 같은 상태에 이를 수 없다는 포기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사고 한계는 초월이라는 개념에 지배를 받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 너머에 하나님이 존재하므로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기적을 통하여 오게 된다는 생각의 틀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인간이 노력을 통하여 생명을 연구하고 노화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 원인을 제거하여 드디어 죽음을 소멸케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들의 초월적 신관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이성(과학)으로서 노력을 거듭하여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초월적 신관이 가진 오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초월적 신관은 하나님이 시공을 만드신 분이며 시공과 유리된 존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시공과 하나님을 유리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개념은 시간과 공간 자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어떤 일을 하든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은 공간이 변화했고 시간이 경과했다는 의미이며 그러한 시간이 경과되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므로 결국 그 일의 완성은 시공이신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라는 합리적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모든 것은 시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초월적 신앙과의 차이는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결코 인간의 노력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만든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인간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대신 해주는 임금 노동자인가? 아니면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인도자이신가?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도록 우리의 사고의 틀을 정립시켜 준다.
초월적 신관은 결국 요행을 바라고 인간의 노력을 게을리 하게 하는 측면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시공세계와 유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관념은 우리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가능으로 만드는 내재적 힘을 제공받도록 도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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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네이버 지식백과] 불의 발견
2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 유산 나들이] 옛 시대를 들여다보는 열쇠, 문자
3 청동기 문명의 기원
2007년도부터 사용하는 국사 교과서는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시작을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으로 올려 잡아,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기인 기원전 1000년경 보다 500~1000년 정도 앞당겼다. 이렇게 청동기 시대의 상한선을 올려 잡은 데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동기 시대는 언제 시작되었나요?
4 [네이버 지식백과] 철기시대 [Iron Age, 鐵器時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5 교양으로 읽는 물리학 강의, 임채호 지음, 지성사
6 피타고라스는, 처음과 끝이 없고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므로, 원을 가장 완벽한 도형으로 이해하였다.
7 [네이버 지식백과] 지동설 [Heliocentric theory] (물리학백과)
8 https://blog.naver.com/papapap111/221529578114
9 [네이버 지식백과] 생명공학 [biotechnology] (식물학백과)
10 [네이버 지식백과]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 (한국 게임의 역사, 윤형섭, 강지웅, 박수영, 오영욱, 전홍식, 조기현)
11 https://blog.naver.com/pokertopia/222047250917
12 https://blog.naver.com/pokertopia/222047219735
13 https://blog.naver.com/pokertopia/222047204364 https://blog.naver.com/pokertopia/2210598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