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가족수첩] 5편
바보상자도 때론 가족을 함께 묶는다.
코로나로 아무리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큰, 아들 딸과 얼굴을 맞대는 것이 흔치 않은 게 요즘이다. 게다가 나처럼 딸과 떨어져 사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내 기억으론 딸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터 각자 생활은 심해진 듯하다.
휴일, 거실에 퍼져 아빠는 프로야구를 본다. 딸은 방에 있다가 심심한지 아빠의 리모콘을 뺏는다. 그리곤 여지없이 만화영화 짱구로 채널을 돌린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보는 짱구가 그리 재미있는가 보다.
“지겹지도 않아? 짱구”
“내가 보기엔 야구도 지겹긴 마찬가지 같아 보여. 몇 달간 매일 똑같은 거 계속하잖아...”
“그래도 야구는 매일매일 승부가 달라지잖아”
“짱구도 마찬가지야.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
이렇게 나는 딸아이가 짱구에 지겨워질 때까지 리모콘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이런 TV앞의 공방이 잠시나마 사라진 것은 두 개의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슈퍼스타K’와 '나는 가수다‘. 매번 함께 하지는 못했으나 가족은 이 두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는 자주 함께 하곤 했다. '거실 내 공존'이 이루어진 셈이다.
아빠는 특히 ‘나가수’를 좋아했다. 임재범의 티벳고승이 낼 법한 극저음과 혼을 담은 열창에 전율한다. 폐부에 소름끼치게 와닿는 박정현의 목소리에도 감동한다. 다른 출연자의 개성만점 창법에도 빠져든다. 이를 지켜보노라면 선배 광고인의 “나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명카피가 생각난다. 정말 그들은 능력을 갖춘 프로다.
딸은 상대적으로 무명의 도전, ‘슈스케’를 좋아했다. 무명들의 끼의 표출에 담긴, 자신의 꿈의 달성을 향한 절박한 몸짓을 딸은 보았을 듯싶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기회의 균등함과 백만 명이상의 시민이 참여하는 절차의 공평성 속에서, 딸은 최후의 승자인 허각으로부터 ‘능력자 아이콘’보다는 ‘도전과 공정의 아이콘’을 발견할 듯싶다.
어느날 ‘나가수’를 보면서 나눈 딸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임재범 노래 정말 잘하지..”
“응 잘해..”
“임재범 노래 들으면 눈물도 나고 옛날도 생각나고”
“그건 잘 모르겠고, 노래는 정말 잘해...”
“노래는 저렇게 불러야 해..”
“요즘 애들도 잘하는 애들도 많아! 감정도 깊고..”
한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서로 잘한다고 인정하긴 했지만 조금은 다른 듯했다. 딸은 능력있는 가수의 노래 그 자체에 공감했다. 딸은 노래 자체를 감각적·감성적으로 수용했다. 반면 아빠는 동시간대 말장난 위주의 예능프로가 주는 식상함에서 벗어나게 해줬기에 고맙고, 아이돌 가수의 인기에 눌린 능력자 가수가 제대로 평가받는 것에도 뿌듯해 한다. 때론 당시 40대인 아빠 자신을 돌아보면서 경험적, 이성적인 대리만족을 느낀다.
올해는 미스터트롯의 한 해다. 아빠는 자주 보았지만, 딸 또한 자주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다. 아마도 앞선 두 프로그램을 함께 본 전력이라면 같이 산다면 몇 번은 함께 보았을 듯싶다. 이 프로그램은 둘보다 분명 한 차원 높은 프로그램이다.
미스터트롯에는 단순히 노래실력을 뽐내는 무대만이 아니라 재주꾼들의 살아온 기막힌 사연들이 있다. 그리고 트로트의 큰 틀 안에 있지만 젊은 감각이 표출하는 자기만의 개성표출을 통해 트로트를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킨다.
우승자 임영웅은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감성과 진중한 목소리로 모든 세대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군다. 장민호는 복고풍의 예능감에 영화배우 같은 비쥬얼, 그리고 부드러운 맏형의 모습으로 방송의 재미를 이끌어간다. 영탁의 트렌디한 감각과 타고난 음악적 센스는 트로트의 새로운 버전을 창조하는 듯하다. 김희재는 화려한 춤솜씨와 함께 트로트를 아이돌문화로 만들어 버린다. 이찬원에겐 무대판 자체가 놀이터다. 그는 트로트에서 예능까지 만나는 무대가 모두 그의 세상이다. 김호중은 성악가 출신답게 트로트를 더 높은 격조의 음악세계로 올려놓는다. 가장 정통 트로트가수가 누군지 뽑으라 한다면 갓 10대의 만능재주꾼 정동원일 듯하다.
미스터트롯엔 나가수가 보여줬던 능력자의 모습이 보인다. 슈스케가 보여준 기회균등과 공정함이 함께 한다. 그 위에 한 사람 한사람의 개성을 세웠다. 그리고 최후의 7인이 함께하는 조화물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선사한다. 그 가치가 노장년층의 전유물인 트로트를 10대들을 포함한 전 계층을 공감의 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추석 때도 역시 미스터트롯은 TV화면을 독식하겠지? 코로나로 어려운 시절에, 세대차이로 몸살인 가족들에게 바보상자를 통해 나오는 미스터트롯은 ‘거실 내 공존’를 제공하며, 우리의 추석을 더욱 훈훈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딸과 함께 보고 싶다. 바보상자 앞에서의 딸과의 공존, 기대된다.
편안한 추석연휴되세요//
첫댓글 즐거운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