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영화는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들어선 극장에서의 마법 같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푹신한 카펫을 밟고 자리를 찾아 앉으면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이 밝아지고, 이미지가 춤추면서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과 하나가 되곤 했습니다. |
저는 1982년 여름이 떠오릅니다. 엘리엇이 E.T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을 향해 날아오르면, 절로 ‘와아’하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알록달록한 초콜릿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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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옛 추억에 힘입어,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구석에서 수백 편의 출품작을 관람한 끝에 엄선된 초청작들은 모두 ‘혼자’가 아닌 ‘함께’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 편,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만들어진 영화 <나의 사랑스러운 혁명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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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80년대 칠레, 군부 독재 정권의 막바지 무렵을 배경으로 합니다. ‘남미의 박정희’로 알려진 피노체트 치하에서 고통받던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섭니다.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살아온 ‘퀸’은 우연히 자신을 도와준 잘생긴 운동권 동생의 부탁으로 수상쩍은 물건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2017)의 연희(김태리)가 잘생긴 운동권 오빠와의 만남을 계기로 각성했던 것과 달리, 퀸은 “파시스트든 막시스트든 어차피 우리를 벌레 취급하기는 매한가지”라며 정치적 무관심을 표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