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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키우는 사랑 / 정순복
가을바람을 따라 산속의 공원을 찾았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서듯 그렇게 걷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있는 곳보다 언제나 혼자가 좋은 것처럼 혼자 있을 곳을 오늘도 여전히 찾고 있었다. 그런 내가 싫어 자꾸 산속으로 나의 몸을 숨기고 있었다. 산속 새들의 노랫소리가 눈물이 되어 나를 울리고 있었다. 나는 큰소리로 혼자 소리 내어 울다가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마치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와 엄마가 매미채를 들고 웃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앞으로의 내 모습과 웃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스물일곱 살에 남편을 만났다. 결혼할 때 남편과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시숙님과 형님이 계셨다.
큰집에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5년 만에 첫아이를 임신했다. 형님 내외분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시부모님께서 눈에 보이게 내가 임신한 것을 좋아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를 공주처럼 대해 주시니 기쁜 마음도 있는 반면에 형님한테 미안하고 죄스럽고 무언가 선견치 않는 그 무엇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항상 편안하지는 않았다. 지금 형님께서 아이를 낳았다면 나는 평범한 며느리로 적어도 마음은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을 텐데 말이다.
어머님께서는 자주 우리 집에 오신다.
“새 아가야! 뭐 먹고 싶은 것 없냐?”
“예. 없어요.”
“그래도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어.”
어머님께서는 집에 오셔서 내가 힘들까 봐 빨래와 청소를 도와주시고 저녁을 드시고 형님 댁으로 가신다.
나는 솔직히 싫었다. 어머님께서 오셔서 도와주시는 것이 더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공간에 누워서 잠도 자고, 먹고 싶은 것 내가 사다가 먹고 내 마음껏 자유를 누리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포옹하며 안아주고 싶은데 그것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님께서 형님 댁으로 돌아가시면 그제야 나는 누울 수가 있었다. 형님 댁과 집이 가깝다 보니 어머님께서는 매일 출근하시는 것처럼 집으로 출근을 하신다. 아침 아홉시면 어김없이 오시는 것이다. 나는 점점 배가 불러오니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집으로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뻐서 오신다고 하시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는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하면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전화를 받으면서 어머님께서 조금은 알아들으시고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으면 하고 전화로 친구에게 말을 했다.
“희진아! 너희 올케 배불렀는데 너희 엄마 집에 자주 들리지 말라고 해. 임신하면 잠이 많이 오거든. 너희 엄마가 올케네 가서 계시면 올케가 눕고 싶어도 누울 수가 없어. 일주일에 동생 출근 안 하는 날 한 번씩 들리시라고 해!”
친구는 알겠다고 하면서 몸조심하고 항상 편안한 마음과 예쁜 생각으로 아이에게 전해주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어머님께서는 어느 정도는 이제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리라 생각했지만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을 결근 하시지 않으신다. 손자의 사랑이 이처럼 시어머님을 붙들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서 남편과 의논 끝에 멀리 이사를 하기로 했다. 거리가 멀어지면 어머님께서도 매일 오시는 것을 조금은 덜 오시지 않을지 하는 생각을 해서 이사를 했다. 정말 아니나 다를까 결근 한번 하지 않으시던 어머님께서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바뀌었다.
무더운 여름에 나는 첫아들을 낳았다. 물론 남편과 시부모님께서는 기뻐할 뿐 아니라 더 감사한 것은 아이가 없으신 형님께서 병원에 오셔서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또 형님의 따뜻한 말씀에 눈물이 났다.
내가 19살 때 친정아버지께서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가 떠나신 뒤 보름 만에 어머니는 나와 남동생을 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아기를 낳아도 내 곁에서 몸조리하라고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얼마 전 어머님께서 옛날에는 아기 낳고도 금방 나가서 일을 하셨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런데 형님이 오셔서 나의 손을 잡고 말씀하신다.
“동서 고생 많았어. 동서의 기쁨이 내 기쁨이야! 정말 축하해. 이제 얼른 회복해서 아기에게 가장 위대한 꿈을 심어주는 엄마가 되어주어야지?”
형님의 눈에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고 있었다.
“고마워요 형님!”
“동서! 동서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동서가 병원에서 퇴원하면 몸조리는 내가 해주고 싶은데… 동서가 병원에 있는 동안 잘 생각해 봐. 어머님보다 아무래도 내가 해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아무래도 어머님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내가 해주고 싶어.”
“형님!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걱정을 했어요. 형님이 힘드실 텐데요?”
“아니야. 내가 도와줄게.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안하게 갖고 얼른 회복해야 해.”
나는 눈물이 나왔다. 지금 나의 옆에 계시는 형님은 나의 친정어머니처럼 다가와 있었다. 첫아이를 낳아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형님의 손을 잡고 나는 흐느껴 울었다. 형님께서는 산모가 울면 눈이 나빠진다고 울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왔다.
형님께서 집으로 들어가시고 나서 나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형님은 항상 오래전에 나의 곁에 계신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었다. 그런 형님께서 내가 가장 힘들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난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퇴원해서 몸조리하는 동안 형님께서는 정말 너무 감사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주셨다. 마치 당신의 아이처럼 그렇게 사랑으로 안아주고 예뻐해 주었다.
어머님께서도 자주 들리신다. 그럴 때마다 형님께서는 어머님께 식사를 준비해 드리고 내가 할 일을 형님께서 대신하고 계셨다. 형님께서 힘드신 것을 알면서도 나는 형님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 욕심처럼 그렇게 나의 곁에 있기를 원했다. 바라만 보아도 편안한 마음. 형님은 나의 친정어머니와 언니 같은 그런 분으로 인정할 정도로 나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나는 형님을 친 언니로 마음속으로 모셔드렸다. 형님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형님과 나는 친 자매처럼 그렇게 가정의 화목으로 하나가 되어 이끌어갔다. 시숙님과 남편 또한 우리의 친함으로 인하여 자주 만나게 되었고, 첫 아기인 경빈은 가족의 모든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경빈이 9개월이 되자 나는 또 임신하게 되었다. 이 아이가 나에게 잉태되지 말고 형님한테 잉태되었으며 얼마나 큰 축복을 받으며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는 형님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고 왜 하필 나에게 이 아이가 생겼을까? 앞이 막막했다. 어떻게 낳아서 길러야 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 아이가 태어나야 하는 운명으로 나의 몸에 잉태되었으니 낳아서 잘 기르기로 했다.
어머님과 형님은 걱정하지 말고 낳기만 하라고 하신다. 아이가 귀한 집이라 그런지 아이에 대한 욕심은 많으셨다. 이번에 나는 딸을 낳았으면 좋겠는데 어머님께서는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며 다니시니 나의 마음은 속상했다.
나는 경빈을 데리고 동네 놀이터로 나갔다.
“새댁! 경빈이 동생이 생겼다고 축하해! 새댁 정말 잘했어. 집에 시어머님께서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니시는지 내가 다 기쁘고 기쁘네. 그러나 경빈이 큰엄마가 아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동네 아주머니께서 형님을 걱정하고 계셨다. 나도 형님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가정에는 왜 아이가 안 생기고 빨리 생기지 않아도 되는 우리에게는 왜 이리 성급하게 아이가 생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놀이터에서 아주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자꾸 나의 귀에서 맴돈다. ‘경빈이 큰엄마가 아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이 말씀이 나에게 예사로 들리지 않고 자꾸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남편과 경빈이 잠이 들자 나는 웃옷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조용했다. 경빈과 놀던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덩그러니 앉았던 의자가 나를 기다리기나 한 듯 쓸쓸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아이들이 놀기나 한 듯 놀이터를 바라보자,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엔
경빈이도 있었다. 내가 앉은 맞은편에 경빈이보다 작은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두 손을 들어 엄마의 입을 만지려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며 경빈이 동생이 태어난 내 모습인 양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이 형님의 모습으로 보였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그곳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어둠이 밀려와 땅거미가 짙게 깔려있을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일어섰는데 또 다른 불빛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십자가의 불빛이었다. 무슨 의미로 나를 이렇게 바라보며 암시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도로 의자에 앉아 엉엉 울었다. 차마 뭐라고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만큼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 이 사랑을 어떻게 끊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고 부정해 보지만 부정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그 사랑은 내 마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아이가 형님 아이. 말도 안 돼. 형님은 형님이야! 나와 상관없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의 마음이 나를 흔들었다. ‘왜 상관없니? 왜 상관없느냐고? 네가 친정어머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상관없다고?’ 벌써 사랑은 아픔이 되어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달래고 있었다. ‘어떻게 내 아이를 형님에게 줄 수 있어.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나는 한참을 울다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그때 예언되어 있듯이 아니 교과서에 지정되어 나온 것 같이 하나하나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나는 공부를 해야 했다.
그날은 잠이 무척 쏟아지는 날이었다. 먹는 것도 싫고 오로지 잠만 자고 싶었다. 잠을 자면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남편 출근 후 나는 잠을 잤다.
“따르릉… 따르릉….”
아무리 벨이 울려도 나는 일어나기 싫어 도로 이불로 귀를 막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전화벨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세요!”
“새 아가 자는 것을 깨웠구나, 조금 더 자거라.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아니에요 아버님! 일어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무슨 일이세요?”
“새 아가 맛난 것 사주려고 전화했지. 할 말도 있고 해서….”
“할 말이 뭔데요?”
“오늘 시간 되면 한번 나올래? 내가 새 아가한테 맛난 것 사주고 싶어서 그래….”
“예. 알았어요. 제가 시간 맞추어서 나갈게요.”
아버님께서 한 번도 손수 전화하시는 분이 아니셨는데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경빈을 어머님께 맡기고 약속 시간을 맞추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맞은편을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님이 계셨다. 아버님의 모습에는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많이 늙어 보이시고 힘이 없어 보였다.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손을 들어 보이신다.
“아버님 일찍 나오셨어요?”
“아니다 금방 나왔다.”
“우리 맛난 것으로 먹어보자”
“아버님 제가 사드릴게요 무엇으로 드실래요?”
“아니다 내가 사줘야지. 네가 시켜라. 네가 먹는 것으로 먹어보고 싶구나.”
“무슨 말씀을요. 오랜만에 아버님께서 드시는 것 저도 먹을래요.”
“그래. 그럼 여기는 식당과 다르니까 메뉴판을 보고 시키자.”
“어 우리 아버님 잘 아시네요.”
“나도 젊었을 때는 분위기도 알고… 그러나 나이 먹으니까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아버님과 메뉴판을 보고 겨우 시킨 것은 돈가스를 시켰다.
아버님께서는 걱정거리가 있으신지 입맛이 없으신지 아니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지 나에게 절반을 옮겨놓으신다.
나는 뱃속에 아기가 많이 먹고 싶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맛있어서 순간에 그릇을 비웠다.
아버님께서는 수저를 내려놓으시면서 말씀하신다.
“새 아가 고생이 많지?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고···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아버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나는 걱정이 있는 아버님의 얼굴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어디 아프세요? 형님이 그러시는데 진지도 잘 안 드시고 걱정이 있으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아버님 말씀해 보세요. 제가 아버님 걱정이 있으시면 그 걱정 없애드리고 아프시면 병원에 모시고 가고 아버님 원하시는 것은 제가 다 할게요.”
“그래. 고맙다. 우리 집에 와서 대를 이어준 것도 고맙고 여러모로 형님 댁과 잘 어울려 살아주는 것도 고맙고 너무 고마운데 어떻게 새 아가한테 또 다른 부탁을 할 수 있겠니?”
“아버님 뭔데요? 부탁할 것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얼른요. 아버님 부탁이라면 제가 다 들어 드려야지요.”
“아니다 아니야! 내가 늙어서 주책을 부리는구나. 미안하다 아가야!”
“아버님! 말씀하세요. 아버님께서 말씀 안 해주시면 저 궁금해서 잠도 못 자요. 제가 아버지가 두 분이나 되나요? 겨우 아버님 한 분이신데… 아버님께서 말씀 안 하시면 저 정말 서운해요.”
“그럼 내가 하는 말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말이니까 깊이 생각하지는 말아라. 네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신중하게 한번 생각해 주었으면 해서 말을 꺼내는 것이란다.”
“예. 알았어요. 말씀하세요.”
“경빈이 동생 아들로 태어나거든 큰집에 양자로 보내면 어떻겠니? 연년생이고 형님 댁에 아들이 없으니 둘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되어 보이는구나. 다른 집에서 양자를 데리고 온다고 하니 동생인 아들을 데려다 기르면 정말 누구보다도 더 잘 길러줄 것 같은 생각을 해보았단다. 이 늙은이가 주책을 떨었지? 그냥 생각만 해보아라. 살아있는 한 그래도 큰아들에게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죽어도 죽어야 할 텐데… 이대로 죽으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을 것 같아서 자꾸 걱정만 쌓이는구나. 그래서 그냥 한번 물어보는 거란다.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앞이 캄캄했다. 지난밤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들이 순간 실제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일이라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 저 먼저 일어날게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라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것은 안 되는 것 아니에요? 죄송해요. 아버님.”
나는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 인자하게 보이시던 아버님이 마치 원수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순간에 변하는 내 모습에 나는 놀랐다. 심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뱃속에 아기가 할아버지의 말소리를 듣고 놀란 듯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랫배는 견디지 못할 만큼 통증이 시작되었다. 걸어가려 하는데 나는 걸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할지 하다가 그래도 남편보다 형님이 더 생각이 났다. 앞의 가게에 들어가 형님 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형님은 놀라 쏜살같이 달려와 주었다. 나는 형님을 붙들고 울고 또 울었다. 영문도 모르는 형님은 같이 울고 있었다. 형님께서 병원으로 가자고 택시를 잡았다. 나는 택시도 돌려보냈다. 아픈 것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형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형님의 눈은 아직도 놀란 토끼의 눈을 하고 계셨다.
나는 형님 곁에선 그 어떤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이 그렇게 길들려 져 있는 듯 그렇게 형님이 좋다.
“형님 고마워요!”
“오늘 어떻게 된 거야? 놀랬잖아.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힘이 빠지고 배가 아팠어요. 이젠 괜찮아요. 형님 괜찮으니까 얼른 집에 가보세요.”
“알았어. 또 아프면 전화해야 해.”
형님이 집으로 돌아가시자 나는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형님을 생각하면 나의 가장 소중한 것도 드리고 싶지만 하필이면 왜 내 핏줄인 태어나는 아기란 말인가. 아기가 아니라 다른 것은 다 줄 수가 있는데….
이제 두 달 후면 경빈이 동생이 태어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이 일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형님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친정어머니의 마음을 느끼게 한 가장 소중한 그분이기 때문이다. 나보다도 더 잘 키워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빈 또한 지금은 어린아이이기에 둘을 키우기엔 아버님 말씀처럼 나도 마음이 벅찬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왔는데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형님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님께서 많이 아프시다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아버님께서 나에게 경빈의 동생을 형님에게 양자로 들이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나서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아프셔서 누우신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식을 떼어놓고 살기란 힘들 것 같다. 아무리 형님께서 잘해주고 잘 키워주신다 해도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형님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일이라 앞이 막막했다.
나는 오후가 되어 아버님을 찾아갔다. 아버님께서는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억지로 일어나시려 애를 쓰셨다. 미안함을 이렇게라도 대신하고 싶으셨는지 나의 얼굴을 똑바로 보시지 않으신다.
“아버님! 일어나세요. 제가 아버님 생각으로 맞추려고 애를 써볼게요. 그래도 안 되면 안 되겠지만 최선을 다해 아버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할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일어나세요.”
“알았다. 신경 쓰지 말거라. 그 말은 없던 걸로 하자. 말도 안 되는 말을 내가 너에게 해서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미안하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걸··· 이해하고 이제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여 잘 키워라.”
아버님께서는 말씀을 끝내고 자리에 누우신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나서 경빈이를 재우고 남편에게 경빈이 동생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물론 아버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지 않고 나 혼자의 생각인 것처럼 말을 건넸다.
“경빈 아빠! 이제 경빈이 동생이 생기는데 어떻게 둘을 키우지요? 연년생인데… 힘들지 않을까요?”
“힘들기야 힘들겠지. 하지만 형수님이 많이 도와주시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도 어떻게 아기도 없는데 우리 아기를 갔다가 맡겨요. 미안하잖아요. 참 아버님께서 그러시는데 형님께서도 양자를 들인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
“많이 외로우실 거야. 자식이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하셨을 거야.”
“그래서 그런데 우리 경빈이 동생 아들이거든 형님 댁으로 양자 보내면 안 될까요?”
“지금 아기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남편은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으니 남편이 그럴만하다.
아버님께서는 그다음 날도 일어나시지 못하시고 미음만 드시고 누워계셨다.
아버님을 찾아뵈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가기가 싫었다. 내가 가서 찾아뵈면 경빈 동생을 형님께 양자로 보내야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걸어가며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형님이라면 나의 아들까지 드리고 싶었고 나보다 형님께서 더 잘 키워줄 것을 알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엄마의 자격이 있는가 생각하며 나를 더 강 열하게 미워하고 있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아버님의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아버님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님을 찾아뵈러 방에 들어서자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얼른 아버님께 달려가 손을 잡아보았다. 아버님의 희미한 눈동자가 나를 기다린 듯 지쳐있었다.
“아버님! 저 왔어요. 경빈 엄마예요. 보셔요!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힘없는 손을 들어 나만 남고 다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손짓하신다. 그리고 나의 손을 꼭 잡으신다.
아버님의 손은 방안의 한기를 느끼게 한 것처럼 차갑게 식어있었다.
“새 아가야! 더 이상 내가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제 너만 믿고 떠나야 할 것 같구나. 마지막으로 염치없는 부탁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너를 기다렸단다. 용서해다오.”
“아버님 제가 경빈이 동생 형님한테 양자로 보낼게요. 대신 아버님께서 얼른 일어나셔서 아기 태어나는 것도 보시고 양자로 아버님께서 입적시켜주셔야지요. 또 이름도 지어주시고요. 일어나세요! 아버님….”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아버님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이 아버님을 병들게 한 것 같아 가슴이 메어졌다.
“새 아가야!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아버님께서는 힘없이 말 한마디 남겨놓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님과 형님께서 들어오셨다. 집안은 순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님의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 아가야! 아버님께서 뭐라고 하셨어? 나한테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야속하게 그렇게 가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어머님의 통곡 소리가 아버님을 흔들어 깨웠지만 한번 감은 눈을 다시는 뜨지 않으셨다. 그렇게 아버님께서는 유언 아닌 유언을 나에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는 둘째 아이를 수술하여 낳았다. 아들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딸이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아들이면 형님에게 양자로 주어야 하고 딸이면 내 품에서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모르는 척 숨기고 싶었다. 나만 입을 다물고 있다면 나의 아기를 내가 기를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시면서 나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부탁을 하고 가셨는데 그것까지 외면한다면 나는 정말 아버님께 큰 불효를 하는 며느리가 되는 것이다.
아기를 낳고 첫날밤 남편이 병원에 같이 있어주었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왔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함께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아무 말 할 수 없는 남편은 눈치를 챘는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버님께서 뭐라고 부탁을 하셨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대강 짐작은 가.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제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아니잖아. 자식의 마음도 모른 척하고 떠나신 분이 무슨 권리고 우리에게 부탁을 해.”
남편의 마음은 울고 있는 듯했다.
“아버님의 마지막 부탁인데 안 들어 드릴 수도 없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하라고….”
나는 창자를 끊어 올리는 울음으로 신음하며 울었다.
남편은 있는 힘을 다하여 힘껏 나를 안아주었다. 한참을 울고 난 다음 지쳐서 자리에 누웠다. 그때 간호사가 아기에게 하얀 저고리를 입히고 얇은 이불에 싸서 병실로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남편은 아기를 얼른 받아 나에게 보여준다. 나는 아기를 남편에게 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직 힘들게 아기를 안으면 안 된다고 주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은 나에게 안겨주었다. 아기가 내 품에 안기자 나의 마음은 평온했다. 이제는 아무에게도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가야! 힘들었지? 이제 엄마가 힘들지 않게 돌봐 줄게”
간호사가 잠시 후 아기를 신생아 실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아기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아기를 주지 않으려 하자 간호사는 아기를 여기에 두면 아기에게 안 좋다고 데려가자 나는 다시 마음이 불안했다. 다시는 내 곁에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기를 신생아 실로 보내고 난 뒤 나는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어머님과 형님도 오셨지만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 혼자 앉아있었다.
경빈이도 큰엄마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경빈이도 아기인데 엄마가 아프면 경빈은 꼭 큰엄마랑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떨어져 있어준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창밖을 보았다. 창밖엔 서서히 가을이 떠나고 이제 겨울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은행잎은 떨어지고 이제 그리 많지 않은 은행잎이 가을을 떠나는 아쉬움에 떨고 있었다. 지금 내 마음처럼 말이다. 계절의 변화처럼 나의 마음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솔직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을 가장 아름다운 시간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양파의 껍질을 벗겨내듯 하나하나 벗겨본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자마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어머니는 마음의 병으로 보름 만에 아버지를 따라 나와 동생을 두고 떠나셨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빈자리를 둘이서 채워야 했다. 동네에서 어린 우리를 보고 많이 사랑해 주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채우진 못했다. 낮에는 그런대로 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 동생은 항상 집 앞 싸리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가고 여름방학이 돌아왔다. 동네 이장 아저씨께서 동생과 집으로 오라고 하기에 동생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언제나 이장 아저씨네 집에 가면 맛있는 음식과 과자 그리고 학용품을 주셨기에 우리는 이장 아저씨 댁에 가는 것을 제일 즐거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장 아저씨네 집에 들르자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얼른 들어와. 여기에 앉아라. 밥은 먹었고?”
“안 먹었어요.”
동생은 맛있는 음식을 보자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얼른 대답을 한다. 물론 내 마음도 동생과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들은 여기보다 거기가 낫지.”
“암만 여기보다 훨씬 아이들한테는 좋지. 그래도 누가 빨래와 밥을 챙겨주어야지. 아직은 어려서 누가 도와주어야 해.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양자로 데리고 간다고 하니….”
“그럼 동생만 데리고 가면 형만이 누나는?”
“글쎄 양자로 데리고 간다고 하니 동생만 데리고 가겠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싫었다. 동생과 헤어지는 것만은 싫었다.
“미숙아! 얼른 많이 먹어라. 배고플 텐데… 형만이도 많이 먹고.”
“예.”
나는 맛있는 음식을 보고도 다른 날처럼 기뻐할 수가 없었다.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음식을 다 먹고 난 다음 이장 아저씨께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미숙아! 둘이서 살기 힘드니까 너희를 돌봐 줄 사람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살면 어떻겠니?”
“저 여기서 살래요. 아버지와 어머니 다 여기 계시잖아요.”
“아버지 어머니는 너희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단다. 좋은 곳에서 살기를 원하시지….”
나는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애들이 뭐를 안다고 물어봐요. 좋은 곳에서 잘 길러 준다는데··· 그냥 보내야지. 그것이 애들한테도 좋아요.”
“그럼 좋고말고.”
모두들 좋다고 하셔서 동생과 나는 조그마한 짐을 챙겨 마을에서 차를 타고 이장 아저씨를 따라 어떤 아저씨와 아주머니 댁으로 갔다.
“인사드려야지. 이제 새엄마와 새아빠란다. 인사드려라.”
“안녕하세요!”
“미숙이와 형만이 왔구나. 반갑다. 와주어서 고마워. 혹시나 안 올까 많이 걱정을 했단다. 어서 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당을 둘러보니 집은 아주 넓었다. 마당 한 쪽 구석에는 항아리들이 어린아이의 눈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세발자전거도 있었다.
동생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보고 달려가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빙빙 돌며 좋아하고 있었다. 나도 기분은 좋았다. 우리 집보다 마당도 넓었고 그리고 내가 타고 싶어 했던 자전거도 있었고, 무엇보다 더 좋은 것은 예쁘게 생긴 어린 강아지였다.
내가 강아지를 보자 새엄마가 되시는 분은 강아지를 주면서 말씀하신다.
“미숙아! 이 강아지 미숙이와 형만이가 기를 거야. 잘 길러야 돼. 너희들이 아빠 엄마가 되어서 잘 돌봐주고 잘 길러야 돼. 새엄마가 선물 주는 거야.”
“고맙습니다!”
나는 그 강아지 선물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내가 어렸을 적 새엄마와 아빠가 우리를 얼마나 잘 가르치고 사랑해 주었는지 알기에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동생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겠음 뒷바라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분이시다. 내가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이 무역회사의 이사가 되기까지 새엄마와 아빠의 도움으로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고 또 이렇게 결혼까지 인도해 주신 유일한 분들이시다· 그러신 분에게 새아빠의 숨겨둔 아들 때문에 지금은 서로가 모두 뿔뿔이 헤어져 소식을 모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모성 본능으로 이루어진 범죄인 지도 모른다. 이런 상처 속에 나는 또다시 갈등 속에 서서 내가 선택하여야 하는 길에서 나를 뒤돌아보며 또다시 아픔이 없는 그런 사랑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생각의 선택을 해본다.
지금 내 아이를 형님 댁에 양자로 입양을 시킨다면?
형님은 너무 행복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를 내 아이처럼 잘 키워주고 정말 가슴으로 사랑해 줄 것이다. 나의 새엄마처럼 말이다. 그러나 살다가 늦게라도 당신의 아이가 생긴다면 그래.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지 않는가. 옆에서 내 눈으로 지켜보고 언제든지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사람인데 그것을 왜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생각은?
내가 내 아이를 형님께 양자로 들이지 않는다면 먼저는 돌아가신 아버님께 불효를 하는 것이고 또한 형님이 다른 아이를 양자로 들인다면 우리 아이들과 잘 지낸다 해도 조금은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형님이 내가 새엄마와 아빠에게 힘들게 한 것처럼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서로가 사랑의 거리가 어떻게 놓일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병실에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도 형님에게 양자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 둘을 키우기도 벅차고 무엇보다 형님의 사랑을 알기에 형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많은 도움은 드리지 못한다 해도 형님의 사랑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편이 퇴근해 들어왔다.
나는 남편에게 지금 갓 태어난 아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기한테는 미안했다. 엄마의 입에서 자신의 생각은 아무 상관없이 부모라는 이유 하나로 행해지는 범법적인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모도 잘 만나야 한다고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자식이 안되기를 바라겠는가.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면 몰라도…. 나도 자식에게는 그 어떤 부모보다 더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더 나은 환경에서 기르고 싶었다. 어떤 부모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을 만큼 나도 자식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기에 내가 내 아이를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게 하고 싶어 이제 형님 댁으로 보내려고 한다. 아니 이것이 핑계가 되지 않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혹시 내가 형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 자식까지 보내는 것 같이 느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퇴근해온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경빈 아빠! 우리 경빈이 동생 형님 댁으로 양자로 보내요.”
“당신 왜 그래? 제발 그러지 마! 그렇지 않아도 나 힘든데 왜 그래? 말도 안 돼….”
“나 용서하세요! 이미 마음먹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우리 서로가 그 아이를 가슴으로만 사랑하며 키워요.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에요. 나도 몰라요. 그래야 내 마음을 용서하고 남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이상 저에게 아무 말 하지 말아요. 내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가장 가까운 당신이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당신이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
“아버님 마지막 부탁이 무엇인지 아세요?
“….”
“우리 작은 아이가 아들이면 형님 댁에 양자로 들여보내달라고 하셨어요. 그 마지막 유언의 부탁을 당신이 직접 들으셨다면 당신이 거절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당신에게 한 번만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하잖아요.”
“미안해 여보! 내가 너무 큰 잘 못을 했어. 하지만 그건 아니야. 말도 안 돼. 당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런 일로 당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으니 말도 안 돼. 나는 보낼 수가 없어.
아무리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마지막 유언의 부탁 말씀이라도 말이 되는 것이 있고 말이 안 되는 것이 있어. 이건 말도 안 돼. 우리 없던 걸로 해. 없던 걸로….”
“당신도 짐작을 했었다고 했잖아요?”
“아니 짐작은 했어도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우리 형님 도와줘요. 누가 도와주겠어요. 아니 우리가 형님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형님께서 우리를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경빈을 키워봐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잖아요. 그리고 힘든 것도 알잖아요. 경빈은 우리가 사랑으로 키우고 경빈의 동생은 우리가 가슴으로 키워요. 형님이 나에게 어떤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 주었는지 알잖아요. 저 형님한테 다 주고 싶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그 사랑을 먼저 아시고 나에게 말씀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어요.”
“당신 내가 형님을 미워하면 어떻게 하려고?”
“당신은 형님을 미워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아이가 형님 집에서 형님의 아들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형님과 형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남편과 나는 너무 많이 울었다. 사랑이 아파서 울었고 사랑에 감사해서 울었다.
병원으로 형님이 오셨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나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웃었다.
형님은 나의 퉁퉁 부은 눈을 보자 놀랐지만 내가 웃는 모습에 형님도 따라 웃었다. 아마 퉁퉁 부은 눈이 형님을 웃게 했는지 모른다.
“형님 앉으세요.”
“동서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아기 얼굴 봤어?”
“그럼요. 나를 닮지 않고 형님을 꼭 닮았어요. 조금 있으면 아기가 올 거예요. 형님이 한번 보세요. 형님을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그리고 저 형님한테 부탁이 있어요.”
“나한테 무슨 부탁이 있어. 부탁 있으면 얘기해 봐. 다른 사람 부탁은 못 들어 줘도 동서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나는 조심스럽게 형님의 손을 끌어당겨 두 손으로 꼭 쥐었다.
“형님! 이 사랑의 손으로 내게 가장 소중한 우리 아기 길러줘요.”
“동서 그렇지 않아도 내가 돌봐줄 거야. 걱정하지 마. 걱정할 것도 아닌데 동서는 걱정을 하고 있었어. 얼른 몸 회복하고 일어나. 건강해야 아기 젖도 먹이고 엄마가 할 일을 하지. 내가 돌봐줄 수 있는 것이 있고 동서가 할 일이 있잖아. 경빈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내가 도와주려고 했어.”
“형님!”
“왜? 이야기해봐.”
“….”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무슨 일인데?”
“형님! 경빈이 동생 형님이 길러줘요. 엄마가 되어주세요.”
“동서는 농담도 잘해.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엄마가 옆에 있는데 엄마가 되라니 말이 되니?”
“이 말 진심이에요. 내 아들이 아닌 형님 아들로 키워주세요.”
“….”
“형님 댁에 양자로 입적 시켜주세요.”
“동서 미안해! 그건 엄마로서 할 말이 아니거든 나 동서한테 실망했어. 그리고 그렇게 안 봤어. 동서가 내 생각 하고 그러는 것 알아. 그러니 나 괜찮아. 옆에 경빈이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또 태어난 아기도 있잖아. 조카 아들도 아들이야. 그러니 그런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마!”
형님은 화를 내셨다.
나는 형님의 손을 더 꼭 잡았다.
“형님 이것은 진심이에요. 그리고 그 진심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미리 유언으로 남겨 두셨어요. 그러니 형님이 도와주세요.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멀리 떠나보내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보고 싶을 때 자주 볼 수 있잖아요. 형님이 시숙님과 상의해 보세요. 경빈 아빠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형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형님이 저 도와주시는 거예요. 연년생 키우기도 힘들어요. 제가 키우는 것보다 형님은 더 잘 키워줄 거예요. 아기에게도 더 행복할 거예요. 이름도 형님이 지어 주시고요. 저는 형님만 믿을게요. 다시 한번 부탁드릴게요.”
형님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다음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했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내 마음은 아기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이 초조하기 시작했다. 괜히 형님에게 말을 했나 하는 후회도 들기 시작했다. 어머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형님께 양자로 주라고 하시면 나는 주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 아버님께서 유언처럼 남겨놓고 가시지 않았다면 아무리 형님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나의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으로 기르게 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생각의 욕심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주워 담지 못하는 물처럼 그렇게 입 밖으로 아기를 형님에게 주기로 했으니 마음이 아파도 가슴이 아파도 그것은 나의 몫이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기의 얼굴이 내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을 청하지 못하고 신생아 실로 달려갔다. 많은 아기들이 있었다. 나는 나의 아기를 찾기 위해 신생아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아기가 나의 아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 아기가 이다음에 자라서 엄마는 원망하지 않을까! 엄마가 바라는 마음처럼 그렇게 잘 자라 주기를 간절히 기도해야만 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는데 우리 아기도 이다음에 커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런 장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날 어머님께서 병실로 오셨다. 어머님께서는 나의 손을 잡고 나에게 잘했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님이 싫었다. 형님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신도 아들을 둘을 낳으신 어머님께서 그래도 나의 입장에서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을 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참 후 형님 내외분이 병실로 들어오셨다.
“새 아가 정말 잘 생각했어. 형님이 잘 키울 거야.”
어머님께서 어색함을 먼저 아시고 말씀을 하신다.
“형님! 도와주시는 거죠?”
“제수씨! 고마워요. 이렇게 해도 되는지는 모르지만 동생하고 제수씨한테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그렇지 않아도 아기를 입양시키려고 했는데 최선을 다해 동생과 제수씨 마음으로 잘 키울게요.”
“고마워요. 시숙님! 형님과 시숙님만 믿을게요. 아니 이제 아기는 제 아기가 아니기에 형님과 시숙님께서 잘 키우세요.”
“동서 고마워! 아기를 우리가 키우기로 했어. 이름은 경호라고 지었어. 경빈의 돌림자를 따서 경호. 김경호. 동서는 경호라는 이름이 어때?”
“괜찮아요. 김경호.”
나는 자꾸 불러보고 싶었다. 우리가 이름을 비록 지어 주지 못했지만 이름만은 많이많이 불러보고 싶었다.
“동서! 동서가 백일까지만 젖을 먹여줘. 그래도 아기에게 백일까지는 젖을 먹여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아기에게도 덜 미안하고. 그래 줄 수 있지?”
“알았어요. 형님!”
어머님과 형님 내외분이 돌아가신 다음 간호사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라고 데리고 왔다.
그동안은 아기에게 황달이 있어 젖을 먹이지 못했는데 이제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리게 되었다. 그동안 아기가 황달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때 나는 젖몸살로 아기를 부르고 있었는데 이제 아기가 엄마를 찾아주었다. 이다음에도 자라서 우리 아기가 엄마의 젖을 찾듯 나를 찾아줄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 찾아 주길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냥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자신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사랑한다고 이렇게 젖을 먹이며 간절한 마음으로 안아볼 뿐….
나는 몸이 건강을 회복하자 집으로 아기를 데리고 퇴원을 했다.
형님께서는 매일 들려 나의 모든 일부를 도와주고 아기의 목욕도 손수 시키며 아기에게 정을 통한 엄마의 마음을 인지시키고 있었다. 이젠 서운함도 생기지 않았다. 다만 아기에게 미안하고 왠지 모르게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변하고 있었다. 젖을 물릴 때면 나의 간절한 마음이 아기의 몸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만 같이 강렬함으로 아기의 온몸을 감싸며 돌고 있었다. 수없이 ‘미안해. 사랑한다.’ 말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는 아기에게 그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부모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아버님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이라고 나는 변명하고 있었다.
어느덧 백일 날이 되었다. 아기와 나는 백일까지 살을 맞대고 지내온 날이다. 방긋 웃는 얼굴을 보았고 복스럽게 빨아대는 젖을 외면하며 형님 집으로 떠나보내기 위해 안 빨겠다는 젖병을 강제로 물려야 했다.
경호의 돌 잔칫날 돌 사진을 찍을 때 부모의 자리에 형님 내외분이 앉으셨다.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자 나는 눈물이 나와 밖으로 뛰어나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별들이 있었다.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하늘에는 별이 있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짜인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아기를 보내고 내 자리에서 내 삶에 충실하고 있겠지. 아마 저 별들의 마음처럼 멀리서 아기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나는 형님을 사랑하는 만큼 형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다시 들어갔다.
백일잔치가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형님 내외분이 우리 집으로 함께 오셨다. 다른 날보다 나는 조금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서로가 조심스러운 하루였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더 조심스럽고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나는 먼저 형님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내일 제가 경호 데리고 갈게요. 오늘 경호 짐을 대충 챙겨놓았어요. 오늘 챙겨놓은 짐을 가지고 가세요.”
경호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 마음은 아프고 경호에게 잘한 일인가 싶어 다시 경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서 미안해!”
“형님! 이제는 그런 말씀도 하지 말아요. 지금 이 순간서부터는 경호는 형님 아이로 태어난 거예요. 그러니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마시고 제 눈치도 보지 마시고 정말 형님께서 낳았다는 그런 마음으로 가르치셔야 해요. 경호는 나에게 조카일 뿐이고 경호에겐 내가 작은엄마예요. 그러니 이 순간 그 어떤 것도 경호에 대해서는 형님이 책임지시고 형님이 알아서 모든 것 알아서 하세요. 제 아들은 경빈이 하나에요. 형님! 아시지요? 제 마음?”
“그래 동서 이제 더 이상 경호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나는 형님과 그동안 지은 빚을 갚은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했다.
다음날 경호는 형님 집으로 보내졌다. 마지막으로 우유병과 기저귀 그리고 장난감을 가지고 떠나는 형님 내외를 바라보며 간절한 경호에 대한 사랑을 함께 떠나보내며 마음속으로 잘 자라주기를 소원했다.
나는 경호를 떠나보내고 경호가 누웠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하얀 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안개는 빛을 따라가고 있었고 그 빛은 태양을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은 엄마가 되어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픔이 있지만 이다음엔 경호가 큰집에 가서 정말 잘 자라 태양처럼 빛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라도 스스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생각해 본다. 스스로 마음을 위로하면서도 나는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경빈은 동생이 떠난 것을 알았는지 저기 저기하고 손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자고 보챈다.
경빈을 업고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걸었다. 옆에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지나가는 아이 엄마를 보자 가슴이 쿵쿵거렸다. 이제 겨우 경호가 형님에게 보내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가슴이 메어지게 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이틀도 떨어져 있을 때에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보고 싶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경호가 있는 형님 집 앞에 와 있었다. 나는 대문에 귀를 대고 경호의 숨소리를 듣고 싶어 귀를 더 바짝 대고 엿들었다. 경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대문을 열려 하는 순간 등 뒤에 있는 경빈이가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형님 집을 도망치듯 달음질하며 뛰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달려 들어가 젖도 물리고 싶었다. 그리고 내 품에 안아주고 울지 말라고 달래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냉정해야 형님도 힘들지 않고 서로가 이 고난을 잘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경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더더욱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나는 첫아이인 경빈 앞에서 울 수가 없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울음을 참기엔 고통이기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어머님을 찾아갔다. 어머님 한테 경빈을 맡기고 뒷마을의 한적한 포도밭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한적한 곳이라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기에 나는 그곳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경빈 앞에서 울 수가 없어 얼마나 입술을 꽉 물었던지 입술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눈물은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소매로 피가 된 눈물을 닦아내면서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소리는 밤늦도록 아가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 울음소리는 하늘에 닿아 하나하나 하늘의 별이 되어 박히고 있었다. 끊을 수 있는 인연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어떤 차이를 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자식의 연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끊을 수는 없어도 지금 저 하늘에 별들처럼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마저 감사해야 했다.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항상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얼마나 울었는가. 밤은 이미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이는 건 멀리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밤이슬을 맞고 있었다. 가로등은 밤이슬을 맞아서인지 깜박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제야 내가 경빈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경빈을 어머님 한테 맡기고 나온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경호가 아닌 경빈을 위해 어머님 집으로 달려갔다. 집 앞에 오자 조용했다. 순간 나에게 희미한 불빛은 암흑 같은 어둠이 되어 나를 감싸며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방문을 힘껏 당겼다. 텅 빈 그대로 아이의 장난감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경빈아! 경빈아! 어머님!”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순간 화살이 쏟아지듯 전화번호를 눌렀다. 혹시 우리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셨을지 하는 생각으로 다급하게 벨을 눌렀지만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그럼 어디로… 다시 형님 댁으로 전화를 했다.
"동서 어디야? 얼른 병원으로 가봐. 경빈이가 많이 아파 얼른 빨리…,
“대국 병원 응급실로….”
나는 전화를 끊고 택시를 타고 간절한 마음으로 경빈을 부르고 있었다.
“경빈아 미안해! 엄마가 간다. 제발… 날 용서해다오 이 못난 엄마를… 이 엄마를….”
마음속으로 내가 경호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죄책감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초조한 모습으로 어머님과 시숙님. 그리고 남편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얘야! 아가야!”
“어머님 우리 경빈이가 왜 이곳에 와 있어요. 왜…?”
“울지 마라! 경빈이는 괜찮을 거야. 갑자기 숨을 쉬지 않더구나. 의사는 심장병인 것 같다고 하는데 급히 수술을 들어가기는 했는데….”
“어머님!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있어요? 왜 나에게만… 나 싫어요. 내가 싫다고요. 어머님…”
“경빈엄마! 경빈이 괜찮아. 우리가 울지 말고 경빈이 기다리자. 우리가 울면 경빈이가 힘들어해. 수술실에서 잘 견디고 있을 거야. 잘…”
“그래요. 제수씨! 경빈이 잘 해낼 거예요. 힘내세요!”
“시숙님! 집으로 들어가세요! 여기 계시면 시숙님 미워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소리내어 흐느껴 울었다. 솔직히 말해서 시숙님도 싫었다. 아니 형님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수술실에 들어간 지 8시간 만에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실에서 나오셨다.
“수술은 최선을 다했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견디어 낼는지 모르겠네요. 조금 일찍 병원으로 데리고 왔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이 상황에서는 기적을 바랄 뿐이에요.”
“기적! 기적! 그럼 우리 경빈이가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이야. 말도 안 돼! 말이 안 된다고…”
나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 후에 눈을 떴을 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남편은 옆에서 어머님과 함께 커다란 눈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머님의 부은 눈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경빈이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신 것만 같았다.
“어머님! 우리 경빈이 괜찮죠?”
“그럼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새아가 마음을 봐서라도 꼭 깨어날 거야.”
어머님의 힘없는 목소리가 경빈을 애절하게 부르고 있는 듯했다.
“경빈아빠! 우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 보자. 꼭 경빈이 살려달라고….”
“그래. 형수님이 그러셨어.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우리의 말이 하나님께 들린대도 그대로 시행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도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해 보자.”
나는 간절히 기도드렸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다급해서 매달리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부끄러운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형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말이 하나님 귀에 들린대도 하나님께서 그대로 시행해 주신다면 경빈은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눈물로 간절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정말 살아서 계신다면 우리 경빈이 살려주세요. 그러면 제가 하나님 믿을게요. 그리고 경호 다시는 제 자식이 아니고 형님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게요. 정말이에요. 하나님 제가 약속할게요. 정말 약속할게요.”
나는 내가 믿지 않는 믿음의 힘으로라도 경빈을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었고 내가 경호를 형님 댁에 보내고 아파했던 마음은 그것은 아픈 마음에 속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경빈이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경호를 형님 댁에서 데리고 와야 하는가.
그럼 호적은 이미 형님 댁으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또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다시 경호를 데리고 온다면 친어머니처럼 사랑하는 형님과 또 어떻게 아무 일이 없었듯이 서로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기에 오로지 경빈만이 깨어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경빈을 부르며 경빈을 위해 기도할 뿐이었다. 입이 마르며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눈물도 말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태양 뒤에 구름이 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하나님도 살아계신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나에게는 불평과 불안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어머님도 원망으로 다가오고 형님도 미워졌다. 이처럼 모든 것이 나의 곁에서 떠나가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괜찮을 거라고 말을 하지만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응급실 안을 온 힘을 다하여 투명 선으로 들여다보지만 보이는 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표시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을 뿐이다.
한참 후에 하얀 천을 뒤집어쓴 들것이 밀려 나오고 있었다.
“경빈 아빠!”
순간 나는 숨이 머졌다. 그렇게 살아서 나오기를 기다리던 경빈이 숨을 거둔 것이다.
나는 오열을 하며 하얀 천을 끌어내렸다.
순간 더 놀란 것은 경빈이 아니고 나이 많이 드신 체구 작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곳에서 서 굳어가는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경빈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나는 이상하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시 문이 열렸다.
“앞에 비켜주세요!”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김경호 보호자님 나오세요!”
나는 나무처럼 굳어있던 몸이 순간에 수술실에서 나온 경빈에게 달려갔다.
“경빈아! 엄마야 엄마….”
나는 경빈을 바라보았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너의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시행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듯이 나의 말을 귀담아들으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 내가 기도드린 것처럼 경호는 나의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경빈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키우리라 생각했다.
친정어머니처럼 더 자상한 형님께서 경호를 잘 키워 주시리라 믿기 때문에 이제는 경빈만이 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형님과 함께 아름다운 가정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형님께서는 자꾸 나와 경호가 부딪치는 날들을 막고 있었다.
형님께서 갑자기 서울에서 근거리인 양평으로 이사를 결정하셨다.
경호가 내 곁을 떠나 낯선 시골로 가서 산다고 생각하니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형님 댁이 이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불안했다. 아니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마음에서는 끊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핏줄처럼 마음이 허락하지를 않는다.
형님 댁이 이사를 하자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차를 몰고 시골의 형님 댁으로 찾아갔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커다란 정자나무가 경호와 나의 사이를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듯이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차를 마을 어귀에 세워놓고 멀리서 형님 댁을 바라보았다. 멀리서라도 경호의 모습만 보고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달려왔지만 경호는 보이지 않았다. 시골의 고요와 적막이 노을이 되어 마치 내 모습인 양 서글픈 눈빛으로 어둠을 몰고 오고 있었다.
나는 경호가 자라고 있는 형님 댁을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대문 앞에 멈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드려오기 시작했다.
“밖에 누가 왔어요?”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뛰어 정자나무 뒤에 숨었다. 그렇게 먼발치에서 대문 틈으로 경호의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그것마저 나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차를 세우고 소리 내어 울었다.
형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아가리라
생각했었고 단 한 번도 멀리 떨어져 살아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형님을 사랑하던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 마음 아팠다. 경호도 경호지만 그래도 나는 친정어머니 같은 형님의 사랑이 더 소중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울고 또 울었다. 차라리 경호를 형님 댁에 양자로 보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형님은 나의 곁에서 나의 친정어머니처럼 그렇게 내 곁에서 경빈이와 경호를 돌봐 주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경호는 엄마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듯 형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또 나에게는 작은엄마라고 부르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 커주었다. 그런데 경호가 고등학생이 되자 경호가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불량한 학생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변하는 경호를 멀리서 지켜보는 내 마음을 너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무면허의 오토바이를 친구 뒤에 타고 한밤중에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경호와 경호 친구를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아마 경호가 아니었다면 나는 외면했겠지만 그래도 자식의 연이 있었는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찾아와 주었으니 나는 너무 기뻤다.
경호에게 저녁을 먹었느냐고 묻자, 저녁도 굶었다고 하기에 밥을 하기엔 너무 허기질 것 같아 먼저 라면을 끓여 주었다. 허겁지겁 먹고 있는 경호와 친구를 바라보자 자신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경호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늦은 밤 망설이다 나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경호를 걱정하고 있을까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형님의 목소리는 잠자다 일어난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형님 저예요. 경호가 친구와 함께 저희 집에 왔어요.”
“동서 경호가 거기에 갔으면 집으로 돌려보내야지!”
형님의 목소리는 잠자던 목소리에서 날카로운 예리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조금 전에 집으로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왔어요.”
“뭐라고? 오토바이를….”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내일 버스 태워서 보낼게요.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형님에게 전화를 끊고 나서 항상 나의 마음처럼 비어 있는 방에 경호와 친구에게 이불을 펴주었다.
형님에게 전화를 끊고 나서 아이들이 있는 방에 귀를 대어본다.
형인 경빈이가 경호와 친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경빈이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거실에서 서성거리다 방안에 귀를 대고 자신도 모르게 경호의 숨소리를 찾고 있었다. 경호와 친구는 하루가 힘들었는지 깊은 잠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경호가 지금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경호를 바라보았다. 경호는 편안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들어가 경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머릿결은 사랑이 되어 나의 손끝에 매달려 있었다. 눈물이 염치없이 흘러내렸다. 눈물조차도 흘려서는 안 되는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호야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해 다오.’ 나는 살며시 문을 닫으며 마음으로 울었다. 어쩔 수 없이 경호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운명이기에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나는 경호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옆에 경호의 친구가 있어서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오토바이는 시골로 보내기로 하고 경호와 친구를 데리고 터미널로 나갔다.
터미널에서 차를 태워 보냈다. 밝게 웃고 있는 경호의 얼굴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터미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행복했다.
경호는 대학교까지 아무 사고 없이 너무 잘 자라 주었다. 경빈 또한 둘이서 정말 다정하게 형제처럼 지내며 사이좋게 지냈다. 경빈과 경호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였다. 경빈이 결혼하고 일 년 후 경호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경호가 결혼 후 시어머니께서는 당뇨합병증으로 나에게 아무 말씀도 남기지 않으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많이 속상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경호에게 너희 엄마가 작은 엄마라고 이야기해 주시고 가시기를 원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인데 형님 내외가 이야기하기 전에는 아무도 경호를 나의 자식이라고 얘기해 줄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꾸 나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냥 작은 엄마가 아닌 엄마라는 것을 알고만 있어도 나는 행복할 것만 같았다. 이것이 작은 욕심이라면 작은 욕심이고 큰 욕심이라면 큰 욕심일 수도 있다.
어머님께서 경호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고 세상을 떠나시자,
나는 우울증으로 시달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를 외면하는 것만 같았다. 밥 먹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고 그 무엇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나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오로지 잠만 자고 싶었다. 잠을 자면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었다. ‘이러다 눈을 감겠지 경호를 내 가슴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나는 야위어가고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또한 먹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을 하자 시숙님과 형님이 다녀가시고 경빈과 경호는 매일 병원에 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호가 저녁 늦게 병원으로 딸기를 사들고 들어선다.
“작은어머니! 저 왔어요!”
기쁜 얼굴로 웃으며 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형과 같이 오던 경호가 웬일일까, 생각하고 얼른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몇 해 동안 아니 경호가 자라오는 동안 단둘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경호 옆에는 형님이 아니면 가족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호와 단둘이 마주 앉게 된 나는 어색하고 뭐라고 변명해야 할 것만 같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경호는 그런 나를 보고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딸기를 씻어 와서 나에게 건네준다.
“작은어머니! 딸기 제일 좋아하시지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작은어머니 딸기 제일 좋아하시는 것 왜 제가 모르겠어요. 제가 작은어머니 닮아서 딸기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나는 경호가 준 딸기를 받아들고 마음으로 눈물을 삼켰다. 마음 같아선 경호를 안고 소리 내어 마음껏 울고 싶었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이것이 너의 마음과 내 마음이라고… 우리 아들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고….
나는 경호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작은어머니! 빨리 일어나세요! 진지도 많이 드시고 빨리 집으로 오세요. 제가 맛난 것 많이 해 드리고 효도할게요. 그리고 저 용서해 주세요. 작은어머니 가슴 아프게 한 것 용서해 주시고 얼른 일어나세요. 제가 기도하고 있어요.”
“고맙다. 경호야! 작은어머니 위해서 기도해 주고 나는 경호를 위해서 무엇을 했을까?”
“작은어머니는 옆에서 이렇게 나를 지켜주셨잖아요.”
짧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경호가 다녀가고 나서 나는 경호의 말이 나의 머릿속에서 영원한 빛으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작은엄마 가슴 아프게 한 것 용서하시고 얼른 일어나세요!’
경호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니 나는 자식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에 나는 얼른 일어나야 했다. 내가 자식에게 도움은 되지 못하고 이렇게 자신만 생각하고 있었다니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나는 경호의 말 한마디에 아팠던 마음 우울증이 깨끗이 치료되어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퇴원을 하고 집에서 있는데 경호의 아내인 며느리에게 전화가 왔다.
“작은 어머님! 내일모레가 작은어머님 생신이잖아요. 저희들이 작은어머님 모시고 점심 식사를 대접하려고 하는데 그때 시간 비워두세요. 제가 모시러 올게요.”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날이 기다려졌다.
생일날이 되자 경호의 아내인 며느리가 와서 같이 점심 식사하려고 예약해 놓은 곳으로 함께 갔다.
“작은 어머님 여기 앉으세요.”
“네 남편은 안 오는 거니?”
“아니에요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형님 내외께서 오시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잠시 후 경호가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경호는 내가 오는 것을 몰랐는지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하고 이내 자리에 앉는다.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앉아 봐요.”
“작은 어머님! 제가 경호 씨 모르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먼저 작은어머님 진심으로 생신 축하드려요! 그리고 놀라셨지요? 죄송해요. 경호 씨가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제가 옆에서 경호 씨를 사랑하기에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왜 경호에게 무슨 힘든 일이 생긴 거니?”
“아니에요. 할머니께서 소천하시면서 어머님께 경호 씨 결혼하면 전해주라고 편지 한 통을 남겨두고 가셨데요. 그 편지를 받고 경호 씨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할까 많이 고민하다 그래도 내가 중간에서 서로가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편지의 내용은 작은 어머님께서 경호 씨를 낳아주신 어머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미안하다. 경호야! 엄마를 용서해 다오. 이것은 핑계인지는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단다. 그러나 네가 잘 자라 주어서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 결혼까지 한 것을 보니 얼마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이제 엄마는 걱정이 없단다. 네가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단다. 무엇보다도 네 어머니한테 잘해 드려라. 마음 아프지 않게 얼마나 마음 조이며 사랑으로 키웠는지 네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엄마는 가슴으로 키우고 네 어머니는 사랑으로 모정의 마음으로 키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효도하며 행복하게 해 드려라. 이젠 됐다. 이렇게 서로가 알고 있으니까 사랑으로 한 가족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자.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리고 형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 가슴으로 키웠다고 했지만 형님께서는 가슴과 사랑으로 경호를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라고 부를게요.”
경호는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하는 것이다.
“아니다. 작은어머니라고 불러라. 부르는 것은 어떻게 불러도 괜찮아. 마음으로 우리 서로 생각하자. 그것이 더 중요하니까….
저녁에 형님께서 경호를 통해 집으로 나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형님께서는 생일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형님 댁에 들어서자 형님은 나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동서 고마워! 마음고생 많았지?”
형님의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너무 행복했다. 마음에 쌓였던 응어리가 사랑의 꽃이 되어 피어났다.
두 가족은 한 가족이 되어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이야기꽃으로 한 역사를 만들 듯이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사랑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사랑의 꽃은 가슴으로 피우는 꽃이 되어 영원히 지지 않는 사랑의 꽃이 되었다.
* 2023년 대산문학 계간지 11.12호 (가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