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賦(자부) - 슬며시 지은 글.
賦性踈慵甚 부성소용심
타고난 성품이 성글고 게을러서
尋常臥曲肱 심상와곡굉 肱-蒸
예사로 팔베개 하고 누워 지내네
無心看古史 무심간고사
무심코 옛 역사책 보다가
有趣倂隣僧 유취병린승 僧-蒸
취향에 맞아 옆 스님과 함께 읽네
倩客鋤庭草 청객서정초
싻군 데려다 뜰의 김매게 하고
呼童點佛燈 호동점불등 燈-蒸
동자승 더러 부처님 등잔에 불 켜라고 이르네
只緣詩興在 지연시흥재
단지 시적 흥취와 인연이 있어
濡筆咏彌增 유필영미증 增-蒸
붓을 적셔 반복하여 적어보네.
賦性(부성) ; 타고난 성질.
踈(소) ; 흔히 쓰이는 듯싶으면서도 까다로운 글자다. 원형은 소(疎)라고 쓰면서 이 또한 소(疏)의 속자로 쓰인다,
관습상 소(疎)를 쓰지 않는다.
尋(심) ; 보통 ‘찾다’로 많이 쓰이나 여기서는 ‘심상’이라는 숙어로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 다로 쓰였다. .
倂(병) ; 아우르다. 나란하다. 함께.
肱(굉) ; 팔뚝.
倩客(청객) ; 청(倩)은 남자를 예쁘게 지칭하는 말, 내지 사위를 이름인데 여기서는 싻군을 이름이다.
鋤(서) ; 명사로는 호미. 동사로는 김매다.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다.
濡筆(유필) ; 붓을 적시다.
咏(영) ; 읊조리다. 詩歌(시가)를 짓다. 노래하다. 詠(영)의 간자체로 쓰였다. 여기서는 붓을 적셔서 한 일이니 詩作 (시작)과정에서 글자를 바꾸어 적음이다. 推敲(퇴고)하는 고뇌와 장면이 연상되는 글자다.
彌增(미증) ; 미는 두루 널리 더욱 이고, 증은 겹치다 늘다는 뜻이다. 여러번 반복하다.
무심히 옛 역사책 읽다가 시적 흥취에 흠뻑 젖었다. 대사는 불교와 유교 외에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뜰에 잡초는 인부를 시켜 뽑고, 법당에 불 켜는 것도 동자승을 시키고 대사는 오로지 탐독에 몰두해 있다. 한 번 읽어 안 되면 또 읽고 또 읽어서 완전한 이해를 도모한다. 그런 걸 보면 그리 게을러터진 어른은 아니었던 듯 한데 스스로 게으르고 민첩하지 못하다고 여러 군데 자책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뜰에 자란 잡초를 직접 제거하지 못하였으니 자책 할만도 하고 불단에 불을 켜는 것도 동자승이 하니 노승은 할 일이 없다면서 상황을 자신의 게으름을 탓으로 돌린다. 역자 또한 산수(傘壽)가 되고보니 묘하게 움직임이 둔감해지면서 게으르고 싶은 자위감이 스멀거린다. 대사는 은근 최치원을 흠모했음 직하지만 스스로 고운의 이야기는 끄집어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