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 전문수
아침 창을 열고 마루 난간에 나서자
앞마당이 느닷없이 당신이 그 방에서 나오는 것이 맞느냐고
심상치 않은 질문을 혹 던진다.
엉겁결에 지나가는 여객이 잠시 하룻밤 머문 것이라 했다.
며칠 전 마당귀의 작은 바위에서 푸르륵 참새 한 마리가 날아 앞산으로 날았었다.
참새가 바위 속에서 나오는 것은 내가 못 보았다
이 세상이 바다 속이라면 우리는 물속에 산다.
안 보이면 다 바깥에 사는가보다
겉과 안이 하나인 바위는 어디서고 깊은 심연 속이다.
나는 어디에 서 있어도 잠시 이 세상 속에 머물다 떠날 나그네고
기껏해야 메모장 속 몇 줄 문장일 뿐일 거다.
오늘 아침 창은 환청과 환각의 메모장.
그림자 • 2 / 전문수
그림자가 없는 것들이 없다는 데 놀란다.
모든 그림자 색이 한 가지 색이라는 데 놀란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예삿일 아니라는 데 놀란다.
나만 바보였다. 이제야 놀라고 있으니.
어디고 달고 다닌 그간의 내 그림자가
내 것만 아니었다면
더 기절할 일이다
색이 같았으니 어찌 알아차렸겠나
장미꽃은 장미꽃 색깔 그림자
사과는 사과 빛 그림자
소나무는 솔잎 빛 그림자
노란 꾀꼬리 노래는 꾀꼬리 빛 그림자
그런데 어떠한 소린들 완성된 소리 있겠나.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한 삶 못사는 자들
부족한 만큼의 검은 그림자인데
그림자까지 몸과 같은 색이면
그 얼마나 큰 여유이겠나
저 노인의 발걸음이 매우 고단해 보인다.
아직도 끌고 다니는 그림자가 무거우시다.
아파트 옆 학교에서 하교하는 어린이들이
날듯 뛰어나온다. 그림자도 날아서 볼 수가 없다
내가 가는 곳마다, 되돌아 올 때마다
어두운 그림자 하나씩은 새로 달고 나왔을 거다.
뭐 하나 완벽한 거둠 하나 없이 지금까지 온 나
이제야 내 그림자에 소스라친다.
전문수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1980년 <현대문학> 문학평론 천료, 마산문인협회 회장, 경남문인협회 회장, 경남문학관 초대 관장, 현) 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의령예술촌 명예이사장. 저서 「문학의 존재방식」 「천문」 「천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