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중국 서만자 (교우촌)
중국,하북성 서만자(시완쯔)는 북경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라자로회의 선교사들이 1800년대 초반, 북경교구 보호권과 관할권을 갖고 있는 포르투갈의 제지를 받아 만리장성 밖으로 쫓겨나면서 북경과 몽골, 만주의 선교 거점으로 개발한 계획 도시다.
서만자가 한국 천주교회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 입국을 준비하는 서양 선교사들과 조선교회의 밀사들이 이곳을 접선장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초대 조선교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와 모방 신부,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이곳 서만자에 머물면서 조선교회와 연락을 취했다.
또 서만자는 신학생 김대건·최양업·최방제가 마카오 유학길에 오를 때 북경을 거치지 않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거점으로 추정된다. 교회 사학자들은 달레 교회사의 “김대건·최양업·최방제 일행이 북경을 거치지 않고 돌아서 마카오로 유학을 갔다”는 부분을 인용, 서만자가 초기 조선인 신학생들의 유학 루트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장은 “김대건·최양업·최방제 일행이 1836년 12월 서울을 떠나 6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는데 아마 서만자에서 상당기간 머물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차 소장은 “마카오에서도 김대건 일행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기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김대건 일행은 서만자 신학교에 머물면서 라틴어 등 신학에 필요한 기초 학문을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위: 서만자 성당
▲ 서만자 교우촌 옛, 토굴 집
▲ 이곳이 옛날 교우촌 임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