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 13-16 사도 바울의 회심과 이방인의 사도됨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바로 앞에서 사도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하였는데, 13절 이하에서는 그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회심을 하기 전의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진술은 그 다음에 있을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그가 전하는 복음의 진실성을 더욱 명확히 보여 주는 데 기여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의 회심 당시의 상황을 중심으로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잘 알거니와 바울 사도는 가말리엘문하에서 유대주의 율법을 배우며(행 22:2), 유대교에 특심했던 자이었다. 그래서 1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려는 자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멸하기 위하여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다(행 8:1-3, 9:1-2; 22:1-5; 딤전 1:12-14). 그래서 14절에서 그는 자신을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연갑자”란 자신과 동시대의 사람(συνηλικιώτας ἐν τῷ γένει μου)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것을 좀 더 좁혀 가말리엘문하 동급 친우들을 의미한다는 설명도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열심을 말하면서, “지나치게”(προέκοπτον, proekopton)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은 본래 ‘자르면서 나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이는 마치 밀림을 뚫고 길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상당히 비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실 바울은 유대교 내에서 열심히 그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빌 3:5, 6).
그런데 이렇게 유대교에 특심한 그가 어떻게 이방인의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한 설명이 15절과 16절 전반부에서 이어진다. 즉, 15절에서는 비록 자신이 그렇게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박멸하려고 열심을 내었지만, 사실은 그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그를 “택정하였다”(ἀφορίσας, aphorisas)고 한다. 여기서 그의 사도직은 어떤 인간에 의하여 주어진 직책이 결코 아니며, 그 자신마저도 어찌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이루어 가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χάριτος, charitos)였음을 또한 분명히 한다. 그래서 사도는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라고 고백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사도를 오래 전에 택하시고, 이제 때가 됨에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은혜와 구원에로 유효한 부르심으로, 이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였던 것이다.
그리고 16절 상반 절에서는 사도 자신을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로(ἀποκαλύψαι, apokalypsai)”(원문에 기뻐하셨다는 말이 없다)라고 한다. 이는 15절에서 본 바와 같이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됨은 하나님의 택정하심과 은혜와 구원에의 유효한 부르심에 이어, 이제 16절에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계시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생명과 빛과 그분을 믿는 믿음을 주셨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사도 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됨이 그의 사명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행 9:15; 26:12, 18; 갈 2:8).(이하 계속/ 구모영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