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종려주일 예배설교
설교본문/ 이사야 53:1~9(구약1033쪽)
설교제목/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나>
서론/
오늘 종려주일 오전예배 말씀은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나>라는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나>*2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내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고난주간입니다. 종려주일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왜 매년 종려주일과 부활절이 다를까요? 그 이유는 부활절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과 관련하여 변경되기 때문에 매년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활절은 유대인의 유월절에 따라서 정해지게 되고, 종려주일은 부활절 한 앞주가 되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무리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높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큰 환영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월요일부터 한 주간을 보내시고, 목요일 밤에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서 기도하신 후에 군병들에게 붙잡히셔서 밤샘 심문을 받으시고,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시고, 그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의해서 무덤에 묻히시고, 3일만에 주일 새벽에 부활하시게 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약 700년전에 선지자 이사야 53장 1절부터 9절의 말씀을 통해서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은혜를 덧입고자 합니다.
본론/
1.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짊어지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짊어지셨습니다. 1절부터 4절을 보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불신과 예수님의 보잘것 없는 외모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고, 그분께서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전한 것을, 들은 것을 믿지 않았고, 여호와의 권능의 팔이 고난받은 종에게 나타났지만, 불신앙적인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하였다고 탄식한 것입니다.
2절은 예수님의 신분과 외모에 대한 예언인데,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이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았다는 것은 당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멸망된 이새의 줄기 곧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셨고,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멸시받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외모는 고운 모양도 아니고, 풍채도 없었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말한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어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겉으로보면 평범한 서민, 보통사람, 빼어난 풍채나 외모,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이를 왕중 왕으로서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모로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였고 배척하였으며, 우리들도 무지하여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까닭없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여론을 조작하여 죽이고자 한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을 어떻게 대하신 것입니까? 우리의 불신과 교만때문에 멸시를 받으시고 버림 받으시고 간고를 많이 겪으셨음에도 우리의 질고를 지셨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것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질고는 우리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의 슬픔은 우리 인간들의 불행한 일, 안 좋은 일로 인한 슬픔을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우리의 질병과 슬픔을 짊어지셨다는 것은 우리의 질병이나 슬픔을 자신의 질병과 슬픔처럼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남의 질병을, 남의 슬픔을 자신의 질병처럼, 자신의 슬픔처럼 여기는 분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평상히 잘 지내시다가 잘먹고 잘 사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짧은 3년의 공생애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삶이셨습니다. 우리의 질병과 우리의 슬픔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각색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고, 불행한 일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셨습니다. 무리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있을 때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여주셨고, 칠병이삼어로 사천명을 먹여주실 때도 있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돌볼 12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하셔서 파송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짊어지신 분이시라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질병과 슬픔을 모두 가지고 나와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져주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저 여기가 아파요, 저기가 아파요, 저에게 이런 슬픔이 있어요라고 말해보시길 바랍니다.
2.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5절 상반절과 7절과 8절을 보면,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왜 어떻게 십자가에 못박히셨는지를 구체적으로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700년후에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대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예수님이 상하게 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셨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셨고, 곤역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신 것은 형벌 받을 백성의 허물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크게 세번 세군데를 찔리셨는데, 로마군인들이 가시관을 만들어 씌우므로 가시에 찔리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못에 찔리셨고, 운명하신 후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로마군인들이 창으로 허리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온 몸이 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상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상하신 것입니다. 상처 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머리도 상하시고, 군인들이 침을 뱉고 뺨을 쳤고, 채찍에 맞으셨고, 지치고 상한 몸이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찔림과 상함을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심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허물(저지른 잘못, 구약92번, 신약9번 정도, 약 100번 정도 사용됨) 때문에,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은 찔리시고 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허물이 많고 악독한 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무슨 잘못이나 큰 죄를 지어서, 무슨 법을 어겨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아닙니다. 당시 최고 재판장이었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가 없다고 세번이나 말했고, 헤롯왕도 심문을 하고 확인해주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던 사형 집행관도 이 사람은 의인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찔림과 상함은 순전히 사람들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만의 허물과 죄악이 아닙니다. 사람들 중에는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에 있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나의 허물이나 죄악과는 무관한 일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모든 사람들, 인류의 허물과 죄악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죄성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에 오염되어서 죄를 자동적으로 짓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도 인간은 원죄의 영향으로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1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 로마서 3장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인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인인 것을 알아야 구원의 필요를 알게 되고 예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몸이 많이 아프면 의사가 필요가 하고 약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12절, 13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알아야 하고, 예수님께 용서를 빌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있고, 죄인인 것을 알지만 해결받는 길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복음을 듣고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허물이든 죄악이든 예수님께 나아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3.우리의 평화와 치료와 죄악을 담당하기 위함
마지막으로 살펴볼 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유가 우리의 평화와 치료와 죄악을 담당하기 위함입니다.
5절을 보면,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하였고,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는데,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해줍니다.
첫째는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5절 하반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회복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대신 징계를 받아주심으로 하나님과 관계회복이 되었고, 관계 회복이 되니까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마음의 참 평강을 얻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징계를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둘째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5절 하반절).
또한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고침을 받고 치료를 받게 된 것입니다.
당시 죄수들을 치는 채찍은 최대 40회를 넘어서는 안되었는데, 채찍은 몇 개의 가죽끈을 엮어서 끝에는 날카로운 철부치를 끼웠기 때문에 한 대만 맞아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잔인하고 엄청난 고통을 주는 채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런 채찍을 우리를 대신하여 맞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맞아야 했는데, 주님이 대신 맞아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고, 고침을 받고 치료를 받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는데,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6절). 사람들은 다 양같아서 어리석고 고집스러워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심으로 죄의 형벌을 면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에게 담당시키셨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아무런 죄가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에게 뒤집어 씌우셔서 우리의 모두의 죄악을 면제 시켜주시고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종려주일 오전 예배에 우리는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나>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주신 예수님의 신분과 외모와 고난과 십자가 죽으심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통 분이 아니십니다. 인류역사가운데 있었던 4대 성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분입니다.
당시 비록 예수님의 신분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가날픈 뿌리같았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멸망한 다윗의 가문에 태어나셨고, 귀족집안이나 부자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아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으시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의 질고를 지셨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고, 흉악범처럼 채찍에 맞으시고 온갖 조롱과 비웃음과 수치와 침뱉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수치를 당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우리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때문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때문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용서와 평화와 회복과 치료와 새 삶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는 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신앙을 가지고 살면 반드시 은혜를 덧입게 되고,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기도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저의 허물과 죄악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2)아버지, 우리 가족 모두 구원받게 하시고, 우리 교회 부흥성장하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