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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사살 왕궁의 ‘손가락’과 ‘글’(5:1~31)
1. 느부갓네살 왕을 계승한 벨사살 왕의 잔치(5:1~4)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 왕위는 그의 자손들을 통해 계승되었다. 본문 가운데는 벨사살 왕이 ‘부친’ 느부갓네살을 계승해 바벨론 제국의 왕위를 이어받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사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외손자였다. 느부갓네살 이후 왕위에 오른 여러 왕들이 통치하는 기간 동안 바벨론은 부침(浮沈)을 겪으면서도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왕궁에서는 종종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벨사살 왕은 바벨론 제국에서 신분과 지위가 높은 귀족들을 왕궁으로 불러 잔치를 배설하게 되었다. 그 잔치는 단순히 먹고 마시며 즐기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 당시의 상황은 페르시아 군대와 싸우던 부친 나보니두스는 전쟁에 패해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있는 상태였고, 메대와 바사(페르시아) 연합군이 바벨론 영토 안으로 진군해서 이미 외곽 지역들을 점령하고 수도인 바벨론만 남다시피 한 상태였다. 이런 엄중한 상태에서 그는 왜 잔치를 열었을까? 아마도 불안에 떨고 있는 왕궁의 지도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의 거대한 성벽이 침략군들에게서 그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벨사살 왕은 그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건배하기 위해 특별한 잔들을 준비하도록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빼앗아 온 금과 은으로 된 잔들로 건배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왕들은 궁중에서 잔치를 벌일 때 자신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민족들로부터 약탈해 온 아름다운 잔들로 술을 마시고자 했던 것 같다. 이처럼 벨사살 왕도 당시에 있던 일종의 관습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잔들을 가져와 술을 마시며 종교적 제의를 위해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벨사살 왕은 그것을 통해 무소불위의 세력을 지닌 바벨론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며 선포하고자 했을 것이다.
벨사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의 금과 은으로 된 잔들을 가지고 귀족들과 왕후 및 후궁들과 더불어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바벨론 백성들이 섬기는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 등으로 만든 여러 신들을 숭배하는 의례를 행했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벨사살 왕과 바벨론 귀족들이 그 행위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정면으로 모독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물건들을 가지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의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벨사살 왕을 비롯한 바벨론 제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다.
2. 왕궁 벽에 나타난 손가락과 글자(5:5~10)
바벨론의 왕궁에서 베풀어지는 축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벨사살 왕과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잔을 들어 이방신을 숭배하는 의례를 하고 있을 때 왕궁 내부의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느닷없이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썼던 것이다.
본문 가운데서 ‘손가락’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손가락 같은 것’이라든지 ‘손가락 형상’이 아니라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다. 이는 그때 나타난 손가락이 과연 누구의 것이었던가 하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벨사살 왕을 비롯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손가락만 보았을 따름이지만 그 가운데는 손가락의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였을 것이다. 손가락만 있고 손가락 주인의 몸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는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손가락의 주인이 오래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의 심판을 받아 용광로에 던져졌을 때 그들을 지키고 보호했던 ‘신들의 아들 같은 이’(단3:25)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발생한 그 놀라운 장면을 바라보던 벨사살 왕은 심한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잔치의 즐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그의 얼굴빛이 즉시 사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벨사살 왕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크게 번민하여 두 다리의 마디들이 녹는 듯하고 무릎이 심하게 후들거릴 지경이 되었다.
벨사살은 즉시 바벨론의 술객과 술사들과 점쟁이들을 왕궁으로 불러오게 했다. 왕은 그들에게 벽에 쓰인 글자들을 읽고 해석을 하도록 요구했다. 누구든지 그 내용을 해석하는 자에게는 자주색 옷과 금목걸이를 걸어 주고 바벨론 제국에서 세 번째 통치자로 삼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왕의 간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왕궁 벽에 쓰인 그 글을 읽어내는 자가 없었고 따라서 아무도 그것을 해석하지 못했다. 왕의 근심과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으며 거기 모인 모든 귀족들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즐거운 잔치 분위기는 급속히 가라앉게 되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돌변하게 되었다.
왕궁에서 일어난 급작스러운 소식을 들은 왕비가 잔치가 벌어진 궁 안으로 들어왔다. 왕비는 이전의 느부갓네살 왕 시대에 있었던 ‘꿈과 해몽’에 관한 일들을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벨사살을 비롯한 당시 다른 신하들 역시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겠지만, 왕비는 왕궁에 거하면서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왕비는 벨사살 왕에게 그 글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주기 위해 왕궁으로 급히 들어왔던 것이다.
3. 다니엘을 부름(5:11~16)
왕비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당한 벨사살 왕이 당황하여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그 전에 느부갓네살 왕도 꿈으로 인해 깊은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었음을 말했다. 천하를 호령하는 탁월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도 그와 유사한 일들을 만났지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뒤이은 왕들이 통치하던 정부들에서 다니엘은 정치적 핵심으로부터 물러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다니엘은 어느 정도 나이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왕들과 정권이 바뀐 다음에 새로운 인사 정책이 있었으리라는 사실은 자연스럽다. 벨사살 왕은 선대의 왕 느부갓네살과 달리 다니엘을 가까이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왕비는 왕궁 벽에 손가락이 나와 글을 쓰게 된 사실로 말미암아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벨사살 왕에게 다니엘을 소개하며 그에 관한 언급을 했다. 그녀는 다니엘을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단5:11)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다니엘의 종교성을 말하고 있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왕비는 벨사살 왕에게 지나간 역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자 했다. 느부갓네살 왕 통치 당시 종교성이 남달랐던 다니엘은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뛰어났으므로 그에게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박사들 등 모든 지혜자들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은밀한 꿈을 해몽하여 그 의문들을 풀어냈기 때문이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왕비는 벨사살 왕에게 이제 다니엘을 왕궁으로 불러 그에게 물어보면 왕궁 벽에 쓰인 글을 읽고 해석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바벨론의 수많은 술객들과 박사들이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그 글의 의미를 ‘거룩한 신들의 영’을 지닌 그가 선명하게 풀어 주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궁지에 몰려 절망 상태에 있던 벨사살 왕에게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왕은 왕비의 말을 듣고 즉시 다니엘을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다니엘이 자기 앞으로 나왔을 때 벨사살 왕은 그의 인적 사항과 더불어 과거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언급하며 확인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처하게 된 고민스런 형편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궁중에서 왕과 귀족들이 모인 성대한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던 중에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썼다는 것이다. 왕은 다니엘에게 벽에 쓰인 그 글을 보여주며 읽고 해석해 주도록 요청했다. 왕은 다니엘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급박한 형편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때 벨사살 왕은 만일 다니엘이 그 글을 읽고 해석하게 된다면 바벨론 제국의 최고위직에 등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에게 최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입을 수 있는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늘어뜨리도록 하여 바벨론에서 세 번째 높은 지위를 허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를 위한 최대의 혜택일 수밖에 없다. 왕이 그렇게까지 하고자 했던 것은 그만큼 심각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동시에 그 글을 해석해 낼 수 있는 인물이라면 자기의 정권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다니엘의 반응(5:17~21)
벨사살 왕의 명령과 그에 대한 상급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다니엘은 먼저 자기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왕궁 벽에 쓰인 글을 왕을 위해 읽고 해석해 주겠지만, 그로 인한 모든 상급은 정중히 사양하겠노라고 말했다. 자기에게는 달리 특별한 상급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이는 다니엘이 세상에서 소유하게 되는 권력과 부에 아무런 탐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었던 신비한 글자를 풀이하는 것은 조건적이 될 수 없으며, 물질에 종속될 수 없다는 예언자적 의식을 다니엘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맡아 활동할 때에 다니엘의 이러한 성숙한 신앙적 결단이 필요하다. 참예언자들의 예언 활동은 사람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다. 그들의 활동은 언제나 물량적 가치를 초월했으며, 예언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할 수가 없다. 거짓 예언자는 물질적 대가를 받고 무조건적으로 평강과 복을 외치는 자다. 미가는 거짓 예언자와 참예언자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미3:5). 다니엘은 참된 예언자 정신을 소유했던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굳게 결심한 사람이다.
다니엘은 왕궁 벽에 쓰인 그 글을 해석하기에 앞서 바벨론 제국의 정치에 관련된 냉정한 언급을 했다. 바벨론 왕국의 모든 권력과 권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었다. 즉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민족들이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떨며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권력 때문이었음을 강조했다.
이는 바벨론 제국이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패망한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끌고 와서 그들 위에 군림하며 다스리는 바벨론 제국의 통치자인 왕은 하나님이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선대의 왕 느부갓네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현실에 관한 지적을 하고자 했다.
과거에 있었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느부갓네살 왕의 마음이 강퍅해져 매우 교만하게 행했던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백성들을 탄압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왕은 자기가 휘두르는 정치적 권력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의 악행을 방지하기 위해 그의 왕위를 폐했으며 그로부터 모든 위엄과 명예를 박탈하셨다. 결국 그는 궁중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광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며 고통스런 기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동안 그는 왕궁의 화려한 삶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어려운 삶을 살았고,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아니라 들에서 나는 거친 식물로 음식을 삼았으며, 안락하지 못한 광야를 거처 삼아 생활해야 했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경륜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을 통치하신다는 사실과 그의 뜻대로 누구든지 통치자로 세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셨던 것이다.
다니엘은 궁중 벽에 쓰인 글에 대한 해석을 기다리는 벨사살 왕에게 그전에 있었던 느부갓네살 왕에 관련된 일들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설명했다. 이는 당시 벨사살 왕이 행하던 통치력과 정권 역시 그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벨사살 왕이 베푸는 잔치의 현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간섭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던 것이다.
5. 다니엘의 책망과 벽에 쓰인 글씨 해석(5:22~28)
다니엘은 선대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에 관한 언급을 한 후 감히 벨사살 왕의 행동에 대해 직설적인 강한 책망을 했다. 왕의 면전(面前)에서 그런 직언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가 벨사살 왕을 책망한 내용은 과거 느부갓네살 왕이 겪은 모든 일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낮추어 겸손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거룩한 잔들을 가져와 왕과 귀족과 왕후들이 술을 따라 마시면서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숭배하며 그 앞에서 즐기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였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성물(聖物)들을 더러운 이방신들을 섬기는 데 사용하면서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인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왕궁의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그 글을 쓴 것은 그런 악행을 저지른 바벨론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먼저 글자를 읽어준다. 그것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다. 고대 역본들은(70인역, 불가타 등) 이것이 ‘메네 데겔 우바르신’의 세 단어로 구성된 것으로 소개하는데, 이어 나오는 이 말의 뜻에 대한 해석에서 볼 때 세 단어로 구성된 것이 원래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후에 다니엘서의 네 왕국의 형식에 맞춰 네 단어로 구성하기 위해 메네를 반복해서 썼던 것으로 보인다.
‘메네’는 ‘세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하나님께서 이미 벨사살의 통치의 날을 세어서 그 종말을 정하셨다는 의미이다. ‘데겔’은 ‘저울에 달리다’는 뜻으로,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그 무게가 모자란다는 의미이다. ‘바르신’은 ‘나뉘다’라는 의미의 ‘페레스’에서 나온 말로, 왕의 나라가 나뉘어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넘겨진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우바르신’의 ‘우’는 ‘그리고’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이다. 이것이 다니엘이 벨사살에게 해 준 벽 위에 쓰인 글자에 대한 해석이다.
그런데 이 말은 또한 암호처럼 그 의미가 베일에 쌓인 지혜서의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말들은 표면적인 의미와 더불어 언어의 암호에 내재된 다른 뜻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마도 이 말들은 무게나 통화의 단위로 쓰이는 ‘미나, 세겔, 반미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메네는 미나와, 데겔은 세겔과 그 발음이 유사하며, 우바르신은 나뉘었다는 의미로 반미나나 반세겔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말에 숨겨진 의미를 이렇게 해석한다면, 무게나 통화의 점점 낮아지는 단위가 바벨론의 점차적인 몰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전의 기물들로 포도주를 마시고, 왕과 더불어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금, 은, 동, 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에게 찬양을 드렸던 죄악에서 언급된, 즉 신들을 만든 재료들이 점점 낮아지며 나라의 몰락을 예고했듯이(5:4), 이 글에서도 바벨론의 점차적인 몰락을 예고하며 그 무게의 단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6. 다니엘과 벨사살(5:29~31)
벨사살 왕은 다니엘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 만일 그 해석이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하며 분노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인 벨사살 왕은 다니엘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왕은 그가 약속한 대로 다니엘을 최고위 공직에 등용했다. 왕은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길게 드리우도록 했다. 그리고 그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어 바벨론 제국에서 벨사살의 아버지와 자기 다음의 지위인 세 번째 높은 서열의 공직자로 임명했으며 전국에 그에 대한 조서를 내리도록 명령했다.
다니엘로서는 그것이 느부갓네살 왕 때에 이어 두 번째 오르는 고위 공직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이 역시 다니엘 개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 백성들을 지켜 보존함으로써 자신의 놀라운 구속사를 이루어가고자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이 최고 권력을 얻어 공직에 오른 그날 밤 벨사살 왕은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기물들을 아무렇게나 사용한 데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바벨론 제국은 패망에 이르게 된다. 당시 62세였던 메대의 다리오가 바벨론을 침공해 멸망시킨 것이다.
7. 이스라엘 민족에게 허락된 소망
왕궁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쓴 글과 그에 대한 해석을 듣고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벨론 제국에서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그 글이 예언하던 대로 바벨론이 멸망 당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기대할 만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뭇 백성들을 억압하던 바벨론이었지만 하나님을 모독함으로써 멸망 당했다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을 더욱 실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래전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보았던 거대한 신상을 쳐서 무너뜨린 ‘사람이 손대지 않은 돌’(단2:34)과,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용광로 가운데 던져졌을 때 저들을 보호했던 ‘신들의 아들과 같은 자’(단3:25)를 떠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참된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야 사역이 진행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바는 바벨론 왕궁 벽에 나타나 글을 쓴 손가락과 그에 연관된 진정한 의미이다. 벨사살 왕은 벽면에 글을 쓰는 손가락만 보았을 뿐이지만, 그 자리에는 그의 몸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언약의 백성을 박해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바벨론 제국에 심판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였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