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이이화의 아버지는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경북 김천 구성면에서 태어나 주역패의 교주로 통했을 정도 였으며 보통때는 그의 호를따서 야산선생 이라 불리었고, 늘 주역만 읽고 가르쳤다 한다.
아버지의 성품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어 소개해 본다.
삼일운동을 뒤늦게 들은 당신은 경찰서 앞에서만 만세를 불러 대는 바람에 주역을 읽다가 미친사람으로 통했고, 요시찰 대상이 되고 부터는 순사가 찾아오는 모습이 보이면 꼭 비를 들고 방을 쓸어댔다. 순사가 방을 왜 쓰요? 하고 물으면 아버님은 천연덕스럽게 왜놈 냄새가 나서 라고 대답했다. 서슬퍼런 순사도 이말에 허허 웃으며 저 양반이 드디어 미쳐 간다고 말하고 가버렸다 한다.
기미꾼(지금의 주식형태)을 하면서 큰돈을 벌어 강원도 철원에 땅을사고 여러채의 집을 사들여 협동농장처럼 운영을 했지만 관리가 안돼 세해만에 파탄이 나고 대구에서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 부여로 여러번의 이사를 다니면서 궁핍한 선비로 주역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는 아버지셨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돌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큰일을 해낸분도 아니었다 다만 꼬장꼬장한 선비 또는 주역패의 교주 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화자 이이화님은 아버지의 엉향을 받아 동양의 고전을 보라는 권유로 역사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이이화의 오줌누는 꿈에서 깨어보면을 소감문을 쓰겠다고 선택한 이유는 대여섯살 즈음 시원하게 오줌누는 꾸고 엉덩이가 축축해서 꿈에서 깼을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서 선택했는데, 이이화님도 글을 못외울 때는 대꼬바리로 맞았지만, 이불에 오줌을 눴을 때는 맞지 않았다 한다.
나역시 야단을 맞은 기억은 없다.
이글을 읽으면서 나의 아버지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성실히 가정을 이끌어 준 나의 아버지 , 아버지가 아닌 오롯이 송도헌의 삶이 있었을까?
이글을 읽으며 아버지를 추억할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