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6구간(인천역 – 자유공원 입구 – 송림오거리 – 가재울사거리 – 함봉산 – 원적산 – 대우하나아파트 버스정류장, 14.5km, 2024년 1월 26일) 걷기
인천역 앞에서 정오에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점심을 먹는 관계로 11시 30분 도착하겠다고 했다. 나도 부지런히 서둘렀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확인했을 때, 나는 11시 27분 도착 친구는 11시 4분 도착이었다. 인천역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끼니를 해결한 상태였다. 곧바로 자유공원 입구를 향해 출발했다.
자유공원은 이적 목사의 맥아더 동상 폭파(불태우는 상징)의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외세의 장수를 기념하는 동상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현대사를 살고 있다. 어쩌면 일찍이 당나라의 국호를 쓰며 외세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의 후손으로서 답습인지도 모르겠다. 당나라 소정방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함봉산에 오르기 전까지 인천시 곳곳을 걷는 시간이었다. 사진관이면서 카페이기도 한 가게 문을 열었다. 느낌이 색다르고 예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커피 한 잔에 도로개설 반대 투쟁, 사진관에 커피숍, 동네 사람들과 교류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 사람과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공간은 쉼과 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커피를 마실 때, 독서 모임을 같이 하는 이판도 쌤과 통화가 되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우리가 일찍 출발하면서 쌤과 엇갈렸다.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먼 걸음을 허탕 치게 하고 말았다. 연락 없이 나타나 두 배의 기쁨을 주려던 계획이 엇갈리고 만 것이다. 송구한 마음을 전하기가 너무 죄송했다. 조만간에 쌤의 고마운 마음을 위로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친구와 걸으면서 도로 오른쪽으로 사람을 걷게 하는 것과 도로명 주소를 여전히 고집하는 것의 불편과 사대주의 근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까지 가서 공부했다는 것들, 배웠다는 것들의 머릿속은 온통 사대주의로 가득 차 있다. 시골길, 왕복 2차선 등 좁은 길에서 차와 사람이 똑같이 같은 방향이면 사람은 차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대비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왜 오른쪽으로 걷는 걸까? 수천 년 쌓아온 동네의 역사성을 지워버리는 동별 주소를 왜 사라지게 하는 걸까? 집 찾기 편하다는 도로명 주소의 이유는 인공지능, IT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글날을 기념하고 세종대왕을 최고의 왕으로 부르면서 정작 하는 짓은 외래어 쓰기다. 정부, 지자체, 재벌, 언론, 지식인, 시민사회단체 등 먹물 좀 먹었다고 하는 것들은 모조리 외래어를 조금이라도 쓰고 붙여야 폼 잡는 세상이 되었다. 뼈와 혈관까지 사대주의에 절어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니즈’ 같은 헛소리에 미쳐 있는 민낯이다.
인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함봉산에 앉아 카무트 따뜻한 물에 계란, 고구마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멀리 서해가 보인다. 공단이 많아서일까 대기가 뿌옇다. 함봉산은 철마산으로 불리기도 했다,(원적산도 그리 불렸다고 한다) 손에 잡힐 듯한 한남정을 사진에 담았다. 원적산 가는 길에 방향을 놓쳤다. 종종 두리누비가 안내하는 길과 다르게 가게 된다. 원적산은 196미터다. 원적산에서 서해랑길 96구간의 종점은 멀지 않다.
인천지하철 가정역, 검암역, 공덕역을 거쳐 서대문역에서 내렸다. 영상 친구와 뒤풀이다. 지난번에 친구와 먹었던 김치찌개는 6천 원이 올라 2만 원이 되었다. 무섭게 올라 있는 물가다. 이렇게 올라 있는 물가에 대해 투쟁하는 정치집단은 한 곳도 없다. 호텔 출입에 익숙한 국회 나리들은 서민들 밥상 물가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일일 것이다. 물가 하나만 가지고 투쟁해도 정권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시비 거는 국회 나리 놈들이 없다.
영상이는 초중고 고향 친구다. 살아온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친구의 일상과 내공은 존경과 배움을 갖게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언젠가 글로 쓸 날이 있을 것이다. 소주 한 병을 힘들어하는 친구가 한 병을 넘게 마셨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이유다. 900원 하는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서대문 사거리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밝게 빛나는 고층빌딩의 불빛은 쉼과 정이 있기를 바라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