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폭포(여산폭포)
각석 시기나 유래는 알 수 없음.
카페지기는 말년에 청암사에 주석하면서 저술에 힘쓴 정혜대사가, 유불도(儒佛道) 삼교의 합일의 주장을 펼쳤던 풍양인 조귀명(趙龜命,1693~1737)과 교유하였던 점에 미루어, 이 시기의 석각으로 추론해 본다.
개령현초곡에 거주하던 (현 김천시 남면)에 살던 상산인 김지익이 1745년 4월 청암사를 유람하면서 청암폭포를 묘사한 시이다. 이 당시에도 청암폭포를 여산폭포와 비유하는 인식이 내용과, 저자가 정혜대사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는 점등을 미루어 정혜대사를 중심으로 유학자, 도사의 교류 관계를 추론한다
靑岩瀑布(청암폭포)
상산인 김지익(金之益,1685~1746)
廬山曾噴瀑(려산증분폭) 여산에도 일찍이 폭포를 뿜어내어
岩洞又龍泉(암동우용천) 암동에 또 용천을 만들었네.
不是三千尺(불시삼천척) 비록 삼천척이 아니어도
亦如落九天(역여락구천) 역시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네.
*여산(廬山) : 이백(李白)의 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를 염두에 둔 듯.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惠遠)이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유유민(劉遺民)ㆍ뇌차종(雷次宗) 등 명유(名儒)를 비롯하여 승속(僧俗)의 18현(賢)과 함께 염불 결사(念佛結社)를 맺었는데, 그 사찰의 연못에 백련(白蓮)이 있기 때문에 백련사(白蓮社)라고 일컬었다는 고사가 있다. 《蓮社高賢傳 慧遠法師》 현재 청암폭포 주변에 여산폭포, 호계등의 각자가 있고 백련암이 있는 거에 유의 *구천(九天) : 고대 중국에서, 하늘을 아홉 방위로 나누어 이르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