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여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가족이다. 혈연을 바탕으로 한 구성원들의 혼인으로 이루어지며 가족은 대개 한집에서 생활한다. 법률적으로는 동일한 가족관계등록부 내에 있는 친족을 일컫는다. 때로는 같은 조직체에 속하여 있거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한비수필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수필문학을 통하여 모두 가족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랄 때의 가족이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으로 대변되어도 이상함이 없었다. 여름이면 모깃불을 피워놓고 대바구니에 가득한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던 가족들 모습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그립다. 옥수수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쏟아질 듯 영롱한 별들이 가득한 여름밤을 맞이하곤 했다. 별똥별의 향연 속에 곤하게 잠이든 우리들을 어머니는 배앓이를 할까보아 삼베 홑이불을 덮어 주었다. 잠이 든 5남매의 발은 홑이불 밖으로 나란하였다. 그러다가 첫닭 우는소리에 찬이슬에 고뿔이라도 걸릴까 농사일로 피곤한 몸 일으켜 한 사람 한 사람 방으로 옮기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어 잠이 든 척 차례를 기다리던 한여름 밤의 꿈이여!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한여름 밤의 별들의 잔치는 빨래 줄에 걸린 홑이불 더불어 막을 내린다. 코흘리개 시절 이불 은 여름용과 겨울용 둘 뿐이었다. 그때를 그려보며 이불장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이불은 두 종류뿐만이 아니다. 계절에 변화에 따른 이불의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그 기능은 찾아서 덮기가 복잡할 정도이다. 더 나아가 이불은 수면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옷의 종류만큼 다양한 종류의 이불로 가득 차 있다. 각각의 특성과 장점은 헤아리기 조차 어렵다. 이불장 안을 살피던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였다. 첫째는 이불의 숫자가 많음에 놀랐다. 줄잡아 스무 채가 넘는 형형 색상의 생소한 이불이 이불장을 빼곡하게 수놓고 있었다. 둘째는 어린 시절엔 꿈속에서도 그려보지 못했던 계절에 따른 이불이 포목점의 비단처럼 가지런하였다. 셋째는 가족들의 건강을 위하여 준비되었음직한 거위털 이불, 면 이불, 합성 섬유 이불 등이 기능별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특별히 커다란 덩치의 비단 이불에 눈이 고정 되었다. 그것이 아내가 혼수로 해 온 이불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시집간 딸이 춥게 지낼까봐서 배불뚝이의 배처럼 솜을 곱절이나 넣어 만드신 장모님표 특제 이불이었다. 신혼 초에 그 이불을 열심히 덮고 잤다. 연탄보일러를 때던 시절엔 두껍고 따뜻한 솜이불이 필수품 중 하나였다. 몸에 열이 많았던 나는 술을 먹고 들어 온 날이면 어김없이 이불을 걷어차 새벽녘에는 아내의 잔소리에 잠이 깨곤 했었다. 이렇듯 이불에는 가족의 애환이 서려있다.
이불 속의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 본다. 그런데 이불속에는 아름다운 추억만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위의 형과는 이불속 영역 다툼이 매일 밤 일어났다. 어떨 땐 발 싸움으로 이불속이 난장판이 되어 아버지의 모진 꾸지람을 듣고서야 조용해 졌다. 이불속 싸움은 이불을 많이 차지하겠다는 단순한 영역 다툼이나 당겨 덮기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개는 저녁 밥상에 맛있는 반찬을 내가 먹은데 대한 앙갚음이거나 나로 인하여 부모님께 꾸지람을 들은데 대한 분풀이의 연속이었다. 이불 속에서 조금 닿아도 바로 응징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이렇듯 이불안의 적군과 아군이 이불 밖에서는 아군이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가족애가 번개처럼 빛을 발했다. 외톨이가 되어 놀던 나에게 혼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거의 없었다. 유일한 놀이가 굴렁쇠 굴리기였다. 우리들은 그 굴렁쇠를 동테라고 불렀다. 그 동테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동테는 철사로 만들기도 하였으나 부서진 말(斗)의 테두리가 최고의 동테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 동네에 하나정도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있었으니 정미소에서 베아링을 감싸던 백철로 된 동그란 동테였다. 서열로 따지자면 금은동중에 금을 뛰어넘어 다이몬드 급 동테였다. 그 백철 동테가 운동장 중앙에 한 시간을 마치고 나가도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너무나 갖고 싶었던 나는 다른 친구가 볼세라 조심조심 발로 옮겨 교실로 가지고 들어 왔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는 희대의 절도범이 되고 말았다. 6학년 형들의 짓궂은 놀이에 걸려들고 말았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학교에 퍼졌다. 그렇잖아도 부끄럼이 많던 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이튼 날 일어났다. 학교에 가는 것이 싫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모습으로 교문을 들어섰다. 모두가 놀려 댈 줄 알았던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분위기에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학년이던 형이 그 소식을 듣고 한 학년 위인 주동자 형을 찾아가 심하게 두들겨 패 주었다. 작은 체구였지만 빠르기가 비호같고 악에 받친 형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 있었다.
이불은 단순한 덮개가 아니다. 이불은 우리 민족에게는 가족이고 사랑이다. 짐승은 한배에 같은 날 태어난 새끼들이라도 한 이불을 덮을 수는 없다. 그래서 소는 개인용 소삼장을 덮어 준다. 이불은 가족애를 심어주는 울타리이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