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제5, 「신주」제6
1. 혜통항룡
혜통(惠通)은 출가하기 전에 남산 서쪽 기슭의 은천동 어귀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집 동쪽에 개울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그 뼈를 동산에 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뼈가 없어졌으므로 핏자국을 따라갔다. 그 뼈는 전에 살던 굴로 돌아가서 다섯 마리의 새끼를 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혜통이 그러한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놀라고 기이하게 여겨 감탄하며 머뭇거리다가, 문득 속세를 버리고 출가한 뒤에 이름을 혜통으로 바꾸었다.
2. 혜통항룡
산복숭아 개골살구 울 밖에 심었더니
짙은 봄 겪고 나자 두 편 언덕 꽃밭일세.
가만히 수달을 잡아없앤 덕분으로
악마를 서울 밖으로 죄다 몰아냈네.
3. 명랑신인
법사는 신라에서 태어나 당에 들어가 도를 공부하고, 돌아올 때 해룡의 청으로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하였더니 황금 천 냥을 주는지라 그는 땅 밑으로 잠행하여 자기 본집의 우물 밑으로부터 솟아나와 곧 희사하여 절을 만들고 용왕으로부터 시주받은 황금으로 탑과 불상을 꾸미니 번쩍이는 광채가 별달라서 이름을 금광이라 하였다.
권제5, 「감통」제7
1. 욱면비 염불서승
그때 귀진(貴珍)이란 사람의 집에 욱면(郁面)이라는 여종이 있었다. 그녀는 주인을 따라 절로 가서, 뜰 가운데 서서 스님을 따라 염불하였다. 귀진은 그녀가 주제넘게 종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여, 매양 곡식 두 섬을 주어 하루 저녁에 다 찧게 했다. 여종은 저녁 8시경에 곡식을 다 찧어 놓고 절로 내달려가 염불하기를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때 공중에서 하늘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욱면 낭자는 법당에 들어와서 염불토록 하라.”
2. 광덕 엄장
신라 문무왕 때 스님들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은 우정이 매우 두터웠다. 그들은 밤낮으로 약속하며 말했다. “먼저 서방 극락 세계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알려주고 가도록 하세.” … 어느 날 해그림자가 붉은빛을 던지고 소나무 그늘이 고요하게 저물어갈 때, 창밖에서 광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미 극락으로 가네. 그대도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오게.”
3. 광덕 엄장
제 남편 광덕(廣德)은 밤마다 단정한 몸으로 바로 앉아서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미타불(阿彌陁佛)의 이름을 염송했을 뿐입니다. 혹은 십육관(十六觀)을 수행하여, 수행이 이미 익숙해지고 밝은 달이 지게문에 들어오면, 때때로 그 달빛을 타고 올라 가부좌를 틀기도 했지요. 지극한 정성이 이와 같았으니, 극락에 가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쓴들 극락을 제외하고 갈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4. 경흥우성
지금 스님의 병은 근심과 과로 때문에 생긴 것이니, 기뻐하며 웃으면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열한 가지 종류의 얼굴 모양의 탈을 만들어 각각 익살맞은 춤을 추게 했다. 그 얼굴 모양들이 기이하다 보니, 춤을 출 때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서,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우스워서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한바탕 신나게 웃고 나니, 스님의 병이 자신도 모르게 씻은 듯이 나았다.
5. 진신수공
옛날 한 고승이 어느 큰 절에 갔더니 거창한 법회를 열고 있었다. 문지기가 그의 옷이 남루한 것을 보고 문을 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처럼 옷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매번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스님이 임시방편으로 좋은 옷을 빌려서 입고 왔다. 그러자 문지기는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는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뒤에, 가지가지 좋은 음식을 얻어 먼저 옷에다 부어버렸다. 뭇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기며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여러 번 왔으나 매양 들어올 수 없었는데, 지금 좋은 옷 덕분에 이 자리를 차지하여 가지가지 음식을 얻었으니, 이 음식들을 먼저 옷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
6. 월명사 도솔가
월명사(月明師)는 항상 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 살았는데, 피리를 잘 불었다. 일찍이 달밤에 절 문 앞의 큰길로 피리를 불며 지나가자, 달이 그 피리 소리에 취해 운행을 멈추었다. 그로 인해 바로 그 길 일대를 월명리(月明里)라고 불렀다.
7. 김현감호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 한 세상의 벼슬을 얻는 요행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8. 김현감호
호랑이는 짐승인데도 그토록 어진 데가 있는데, 지금 사람으로서 짐승만도 못한 자가 있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권제5, 「피은」제8
1. 포산이성
신라 때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이라는 두 사람의 성사(聖師)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함께 포산(包山)에 숨어 지냈는데, 관기는 남쪽 산봉우리에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도성은 북쪽에 있는 굴에서 살았다. 서로 떨어진 거리는 10리쯤, 그들은 구름을 헤치고 달을 노래하면서 매양 서로 찾아다녔다. 도성이 관기가 그리워지면, 산속의 나무들이 모두 관기가 있는 남쪽을 향해 고개를 숙여 마치 맞이하는 듯한 몸짓을 지었으므로 관기가 그걸 보고 도성을 찾아갔다. 관기가 도성을 그리워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무들이 모두 도성이 있는 북쪽을 향하여 고개를 숙였으므로 그걸 보고 도성이 관기를 찾아가곤 했다.
2. 영재우적
도적들이 영재가 부른 노래에 감동되어 비단 두 단을 영재에게 주었다. 영재가 웃으면서 도적들 앞으로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닫고, 깊은 산속에 숨어 일생을 보내려고 하는 마당에, 어찌 감히 이따위 물건을 받겠느냐?” 영재는 비단을 땅에다 던져버렸다. 도적들이 그 말에 다시 감동되어 모두 칼날을 풀고 창을 내던진 뒤, 머리를 깎고 영재의 제자가 되어 함께 지리산에 은거하여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3. 영재우적
策杖歸山意轉深 산으로 갈 마음이 점점 더 깊어지니
綺紈珠玉豈治心 비단이나 구슬로써 어찌 마음을 다스리랴
綠林君子休相贈 숲속의 도적들아 그따위 것 주지 말게
地獄無根只寸金 아서라! 딱 한 푼 금에 지옥 길이 열린단다
권제5, 「효선」제9
1. 진정사 효선쌍미
아들아! 불법(佛法)을 만나기는 대단히 어렵고 인생은 너무나도 짧은 거란다. 그런데 나에게 효도를 다하고 나서 출가(出家)를 하겠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이미 늦지 않겠느냐. 살아서 너의 효도를 받아본들 어찌 죽기 전에 네가 도를 깨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겠느냐. 신중히 생각하여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출가를 하도록 해라.
2. 진정사 효선쌍미
아들아! 네가 밥을 지어 먹으며 가다가는 그 시간 차이로 도를 깨치지 못할까 걱정이다. 지금 내가 보는 데서 이 주먹밥 가운데 하나를 먹고, 나머지 여섯 개는 자루에 넣어서 빨리 가거라, 빨리 가거라.
3. 대성효 이세 부모
대성이 이미 성장하고 나서 노닐며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서 곰 한 마리를 잡고 산 밑의 마을에서 잠을 잤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꾸짖었다. “너는 왜 나를 죽였느냐? 내가 도리어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대성이 두려워하면서 용서해주기를 청했더니, 귀신이 말했다. “나를 위하여 절을 지어줄 수 있겠느냐?” 대성이 맹세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자 땀이 흘러 요를 덮었다. 그 후로부터 벌판에서 사냥하는 것을 금하고, 곰을 위하여 그 곰을 잡은 곳에다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4. 대성효 이세 부모
대성은 자비로운 결심이 한결 더하여 현생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창건하였다. 신림과 표훈(表訓) 두 성스러운 스님을 청하여 각각 머물게 하고, 거대한 불상을 설치하여 양육한 노고를 갚았으니, 한 몸으로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한 것은 옛날에도 또한 듣기 드물었다.
5. 대성효 이세 부모
대성은 자비로운 결심이 한결 더하여 현생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창건하였다.
6. 대성효 이세 부모
불국사의 구름계단과 돌탑의 조각 기법은 동도 어느 절도 이보다 나은 데가 없다.
7. 대성효 이세 부모
모량(牟梁)의 봄이 지나 세 밭뙈기 보시하니,
향령에 가을 들자 만금을 거두었네.
어머니 오랜 세월 빈부귀천 겪었으니,
괴정(槐庭)의 꿈속에 금생(今生)이 찾아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