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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예배 갱신
1. 시작하는 말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한 주일에도 여러 번 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예배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조금 넓은 곳으로 옮겨 보자. 100년 전에도 우리는 오늘과 똑같은 예배를 드리고 있었을까? 이 땅이 아닌 서양에서는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맨 처음 교회가 생겼을 때는 오늘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리고 어떤 종류의 찬송을 불렀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어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리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제사와 기독교의 예배는 어떤 관계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예배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신학의 한 분과 중에 실천신학이 있고, 그 가운데에 “예배학”이라는 전문영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분들은 예배의 정의를 내리고, 예배의 역사를 정리하고, 예배순서를 연구하여 가장 모범적인 예배순서를 찾아낸다. 더 나아가서 예배를 구성하는 모든 순서의 의미를 알려서, 예배를 진행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예배의 참뜻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번 시간은 2000년간 기독교 교회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흐트러지기도 하고 추슬러 바로 세우기도 했던 우리 신앙의 모습을 “예배”라는 틀을 가지고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귀한 깨달음을 제공해 줄 것이며, 참된 예배 정신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줄 것이 분명하다.
2. 예배의 의미에 관하여
기독교 대사전에 보면 예배란 “경의를 표하는 대상인 인격체나 비인격체의 가치를 인지하거나 묘사하기 위해 의도된 태도와 행위”라고 나와 있다. 좀 더 쉽게 풀어 보면, 예배란 존경심과 예절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배행위의 근저에는 신앙심이 놓여있고, 예배행위는 여러 가지 전례들로 구성된다. 아무리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성의를 다하여 훌륭하게 짜여진 예배 예전에 참여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우상숭배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상숭배란 손을 깎거나 부어서 만든 형상과 형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에다 자기의 정성을 쏟아 붓는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없다. 심지어 불상 앞에서 3000 배(拜)를 올리는 불자들도 불상 그 자체를 숭배하는 것은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란 하나님의 본모습과 하나님의 본뜻을 자기 생각대로 왜곡하여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배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는 세 가지를 동시에 붙잡아야 한다. 첫째, 예배받으시는 대상이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둘째, 그분을 향한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 기반 위에 서 있는지 판단하여야 하고, 셋째, 그리고 나서 우리의 신앙을 담아 내기에 충분한 예배 예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되는 예배를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의 총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하나는 ‘유형의 예배’이고, 다른 하나는 ‘무형의 예배’이다. ‘유형의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어떤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드렸으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성서의 구절구절을 통하여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고, ‘무형의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예배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예배 의식과 신앙 정의에 가장 큰 획을 그은 사건인 ‘16세기 종교개혁’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예배 갱신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건 예수님의 시대 속에서건 아니면 종교개혁 시대이건 언제나 경건 의식의 개혁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내적 경건 의식은 흐려지고 외적 경건 예전에만 몰두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는 구약의 말씀이나,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예배드릴 때가 온다”(요4:21)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날마다 되새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형뿐인 예배가 되고 말 것이다.
3. 예배의 역사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롬12:1)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초대교회의 예배 정신을 잘 정의해 주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예배란 내 몸의 일부가 특별한 시간에만 행하는 예식이기보다는 우리 삶 전체와 관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란 나를 바치는 것이다. 나를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성직에로의 소명을 의미하는 말이고, 여기에서는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적으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사랑 대신에 하나님 사랑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소망을 기도의 주제로 삼지 않는다. 기도의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 될 수밖에 없다. 그때에야 비로소 예배가 완성된다고 하겠다.
초대교회에서 예배의 핵심은 성만찬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성만찬의 의미는 감사였다.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진 용서와 구원을 감사하는 예식이다. 그러다 보니 점차 감사보다는 속죄와 용서의 의미로 성만찬을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더 나아가서 떡과 잔은 화해를 위한 희생제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심지어 떡과 잔이 불사의 명약으로 오해되는 미신화의 과정을 거쳐서, 그리스도의 몸인 떡을 집으로 가져가서 보관하다가 떡이 상하는 것을 보고는 불안에 떠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떡과 잔을 높이 쳐드는 ‘성체거양(聖體擧揚)’이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예배 의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기독교 최초의 예술인 성화상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지하 묘지인 카타콤에서 시작된 물고기 그림이나 비둘기 등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상징어였다. 상징은 예술로 발전하였고, 기독교 예술은 신앙을 고무(鼓舞)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신앙을 고무하고 표현하는 기능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결합 되어 나타난 것이 성화상 숭배 사상이다. 본말이 전도된 성화상 숭배는 결국 중세 초기 동방교회의 폭력적 성화상 논쟁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중세기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에 대한 죄책을 하나님과 화해로 바꾸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사면이다. 사면의 양상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구원의 통로 역할을 하는 성례전의 확립이고, 다른 하나는 성례전을 담당하는 제사장, 즉 사제의 역할이다. 성례전이란 중세 교회가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베푸는 모든 종류의 거룩한 예식이다. 영세(유아세례), 견진(입교), 고해(회개), 성체(성만찬), 사제서품(목사안수), 혼배(혼인), 종부(장례)라는 일곱 가지의 가톨릭 성례전은 신자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의 모든 삶을 관장한다. 괄호 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신교에도 비슷한 유형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가톨릭은 일곱 가지 성례전의 근거를 모두 성서에서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권위로 이들 모두를 ‘그리스도가 세운 거룩한 예식’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드러나는 세례와 성만찬만을 성례전으로 인정하였다. 문제는 죄책을 화해로 바꾸는 데 필요한 성례전에 무조건적이고 기계적으로 참여하면 된다는 공로주의 신앙이 예배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말았다는 데에 있다.
성례전을 집례하는 사제도 그리스도의 몸을 만지는 직분이라는 데 집착한 나머지 직분이 아니라 신분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고위 성직자에게 요구되던 성직자 독신주의가 이제는 모든 사제들에게 보편적으로 강요되었다. 따라서 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사제들이 다스리는 기독교권(圈, Christentum)이 되어 버렸다. 결국 회중보다는 사제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훗날 종교개혁자들의 비판 대상이 된 성직자 중심주의가 되고 말았다. 사실 중세 천 년의 역사적 특징을 말하라고 한다면 교황권과 황제권의 이중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타원의 중심이 두 개이듯이, 중세를 이끌어 가는 두 세력 사이의 긴장 관계가 그 시대의 독특한 성격이었다. 이것은 초대 기독교 박해 시대 속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전환하면서 일어나기 시작한 현상이었다. 교구의 사제나 대교구의 주교들은 더 이상 영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적인 통치자가 되어 버렸다. 이들 영적 통치자들의 관심은 점점 더 본래의 기독교적 신앙 정신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4. 종교개혁자들의 고민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를 가르는 특징이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집단의식에서 벗어나 개인의식에로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기독교권 안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인 개인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언제나 교회(실제로는 교황을 머리로 하는 교권)의 권위 아래에서 베풀어지는 예식들에 참여하기만 하면 사죄와 구원이 베풀어졌는데, 종교개혁가들은 이 과정 속에 있는 인간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나의 마음이 어떤 자세가 될 때 하나님은 참으로 기뻐하시는가 등의 문제의식이 오늘의 개신교를 세운 것이다.
사실 당시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사제들까지도 성서에 문외한인 경우가 많았다. 성서를 읽거나 성서에 관련된 시험에 통과하지 않아도 사제가 될 수 있었으며, 교회 예식을 집전하는 데 필요한 교회 예전을 알기만 하면 사제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지방으로 갈수록 심각해서 자신이 암송하는 라틴어 예전의 뜻도 모르는 사제도 다수였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받는 보수라는 것도 형편없었다. 심지어 고위 성직자 가운데에 여러 교구를 동시에 담당하여 부재 성직자로 권세를 누리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자기 대신에 보좌 사제를 매우 낮은 대우로 자신의 임지에 보내기도 하였다. 문제는 교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만들어 놓은 구조가 지배와 피지배라는 세속적인 구조를 지향하였다는 데에 있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본정신을 잃게 된 것이다. 교권주의와 형식주의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 개인의 신앙이 설 자리가 없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기한 그리스도인을 일깨워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스스로 돌아보고 바른 관계로 회복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종교개혁 신앙의 역할이었다.
마틴 루터의 만인사제론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제이다. 이것은 루터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중심주의 또는 성직자 중심주의를 비판한 말이다. 회개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를 통회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 가운데 사제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교황이 발행한 면죄부 매매를 통하여 벌을 면제해 주고, 이미 죽은 자의 속죄와 구원을 위하여 미사가 드려지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 만인사제론이다. 루터는 이것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없애려고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은 누구든지 그 직분을 막론하고 자신의 구원 문제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근본적인 정신이 담겨 있다.
종교 개혁적 예배 정신에 따르면 그리스도인 개인은 누구나 예배드리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인식하여야 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하며, 그 예배에는 모든 회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만 한다. 이제 성만찬은 감사와 기념의 의미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고,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었다. 성만찬에서 나누는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써 영원한 가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떡과 잔에 하나님의 언약 말씀이 임할 때 그것이 거룩한 예식이 된다”는 어거스틴의 전통이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회복된 것이다.
5. 비텐베르크의 예배 개혁
종교개혁 정신의 회복을 주장하는 개혁자들에게 등장하는 다음 문제는 실제적인 예배를 개혁하는 일이었다. 마틴 루터는 1523년 “비텐베르크 교회를 위한 미사 및 성만찬 순서”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에서 예배 갱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1523년은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은거 생활(1521년 4월~1522년 3월)에서 돌아온 지 일 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약 일 년간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 갇혀 있는 동안에 비텐베르크의 개혁을 진행하였던 인물은 칼슈타트(Andreas Bodenstein von Karlstadt)였다. 그 역시 루터처럼 비텐베르크대학 교수였으며 루터가 없는 동안에 루터의 이론에 따라서 최초의 개신교 미사를 집전(1521년 성탄절)하였던 개혁자였다. 미사는 라틴어 대신에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어로 드려졌다. 그러나 그의 강경한 개혁은 결국 교회당 내에 있는 성화상을 약탈하여 파괴하는 성상 파괴로 이어졌고, 시의회는 이를 매우 위험한 질서 파괴로 보아서 칼슈타트의 설교권을 박탈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루터는 매우 조심스럽게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루터의 예배 개혁은 한편으로 외적 형식에 깊이 매여 있는 가톨릭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의식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내적 경건만을 강조하는 열광주의적 경건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는 개혁이었다.
루터의 예배 갱신의 일차적인 목표는 예배를 타락시키는 못된 부착물들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진행된 예배 의식을 완전히 뒤집어엎으려는 것이 아니라 예배 의식을 정화하여 복음과 성서에 합당한 예배로 갱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문이나 찬양송 등을 일일이 문제 삼지는 않는다. 가장 시급하게 갱신되어야 할 문제는 미사를 희생 제사로 드리는 것이었다. 희생 제사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서 하나님의 응답을 이끌어내는 제사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인 떡과 잔이 제물로 봉헌되었고, 미사를 드림으로 받고자 하는 응답들이 기도문 안에 포함이 되었다. 예를 들면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특별한 가호를 바라는 기도, 여행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기도, 번영을 위한 기도 등이 미사의 명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런 종류를 사악한 부착물로 보는데, 마치 사악한 아하스 왕이 예루살렘 성전 놋 제단을 제거하고 다메섹 제단의 복제물을 세운 것에 비유하였다. 루터에 따르면 지금 주교들과 사제들은 바알과 다른 신들의 상을 여호와의 전에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떡과 잔을 제물로 봉헌하는 일도 가증한 일이라고 하였다. 떡과 포두주를 준비하여 축성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하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미사를 드릴 때마다 반복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강력히 반대하였다. 중요한 것은 제물이 아니라 말씀이다. 마치 여호와의 언약궤의 외적 능력만을 신봉하여 이를 전쟁터에 앞세우고 나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언약궤를 빼앗기고 말았듯이(삼상 5장), 사실 믿어야 할 것은 궤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만찬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는 해도 하나님께 우리를 천거해 주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신앙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루터는 예배 때에 착용하는 제복 문제에 대하여서도 언급하였다. 제복을 착용하였다고 해서 더 거룩한 것이고 착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예배가 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이를 통해서 허식과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칼슈타트 같은 열광주의자들은 제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사제와 평신도의 구분조차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루터에게 외적 제복 착용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6. 오늘날 우리에게 예배란 무엇인가?
가톨릭에 비교한 개신교 신앙의 특징은 언제나 ‘물음을 던진다’는 데 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준 르네상스-휴머니즘 운동은 ‘원천으로 돌아가라’(ad fontes)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교황의 교령과 공의회의 결정을 따를 때 개혁자들은 당시에 논쟁이 되고 의심나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성서와 초대 교부들의 글로 돌아갔다. 신앙은 자동적이고 무비판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황과 교회 의식 중심의 가톨릭 신앙이 맹목적인 신앙임을 깨달은 개혁자들은 언제나 신앙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질문하였다. 그들은 예배 의식이 예배가 아님을 알고, 예배 정신을 찾으려고 하였고, 성만찬에 기계적으로 참여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성만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혀내었다. 신앙의 십자가는 교회가, 성직자가, 신학자가 대신 져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 스스로 지고 가야 하는 신앙의 짐인 것이다.
개신교의 특징은 교파가 다양하고 신앙 양식도 다채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상호 간에 신학 논쟁이나 이단 시비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예배 제복의 문제만 해도 여전히 제복을 고집하는 루터파 또는 성공회와 제복을 완전히 벗어버린 청교도의 극단이 공존한다. 성화상의 문제를 두고도 개혁파 장로교 가운데에는 십자가마저 거부할 정도의 극단도 존재한다. 성만찬이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임재하시는지 아니면 영적으로만 임재하시는지의 문제를 두고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 루터파는 공재한다고 하고, 장로교들은 영적으로 임재한다고 하며, 스위스 개혁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이라고 한다. 종교개혁 당시의 열광주의자들은 외적인 성만찬 예식보다는 내적인 의미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개신교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배의 표현은 언제나 형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예배 의식을 채택하든지 간에 언제나 ‘형식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내용물’이라는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예언자들의 역할이 다르듯이, 예수 시대의 율법과 복음이 서로 구별되듯이, 외적 의식과 내적 경건은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외적 의식 없는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존경심을 담아낼 그릇이 없는 예배와 같다. 반대로 내적 경건 없는 외적 의식만으로는 예배를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과연 오늘 우리들은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
요즈음에도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이외의 악기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주된 악기 금지는 기타나 드럼 종류인데, 이런 악기는 유흥업소 등에서나 사용하는 퇴폐적인 악기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반면에 이런 악기에 익숙한 젊은 장년들은 청소년들을 위하여 허용할 것을 주장한다. 악기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악기의 사용에 대하여서도 교회 안에는 논쟁이 있다. 전통음악을 기독교 음악에 접목해야 한다는 주장과 서양음악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독교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 느끼는 전통악기에 대한 거부감이 대립하기도 한다.
예배순서에 교회 소식을 포함하는 문제도 논란이 된다. 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교회 소식을 공적 예배에 알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주장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순서에 인간적인 일에 관한 정보를 알리는 것은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예배순서와 진행을 담당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순서를 성직자가 담당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오랫동안 그렇게 시행해 온 교회도 있고, 반대로 성경 봉독 등 과거에는 성직자나 특별히 선택된 낭독사가 하던 일들을 일반 교우가 담당하면서 회중의 예배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교회도 있다. 심지어는 예배의 설교에 대한 목사의 독점권에 반대하여 이를 개방한 교회도 종종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제반 사안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결국 오늘날의 예배는 개교회 중심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공동체의 목회자와 회중들 사이에 이런 문제들이 제기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이 제시되면, 그 교회는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과 내용 사이에 분명한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예배 갱신의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무의미한 형식주의 예배로의 회귀가 문제라는 점이다. 예배에 최신의 악기를 동원하고 감동적인 찬양을 통하여 젊은이들을 교회로 다시 불러 모으는 일은 분명히 형식을 벗어나는 일이지만, 만일 그 예배가 말씀이 사라진 감동만을 추구하고, 예배 참여자의 성실한 삶보다는 찬양 행위 그 자체에 머문다면 이 또한 형식주의 예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루터가 목회자의 제복 입는 것을 허식이나 허례를 부리는 수단을 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공적 예배를 담당하는 자들도 목회자가 되었든지 평신도가 되었든지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배는 공로가 아니라 섬김이다. 예배의 본질은 머리 되신 분과 참된 교제를 함으로써 몸이 되는 교우들 간의 참된 교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 교회이며 그 징표가 성만찬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외적 형식 충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개인 신앙인의 삶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두에서 예배를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의 총화”라고 불렀던 것이다.
7. 끝맺는 말
종교개혁자들이 개혁하려고 한 것은 한마디로 “예배 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에 합당한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예배는 예배와 일상생활에서의 일치를 추구한다. 그때 비로소 예배는 공적 진리로서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의 갱신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개념을 전환하는 일이다. 우리는 예배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의 행위와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배는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서 예배 때에 인간은 죄를 고백하고 도움을 청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진행 순서와 방향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 후에 하나님이 구원을 주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불러서 말씀과 성례전으로 깨우치시고 먹이시는 것이다. 그다음에야 우리의 감사와 찬양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공로가 아니라 감사이며 섬김이 된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많이 생각하고 많은 질문을 던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개혁, 종교개혁자들의 개혁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진단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예배가 하나님의 일이었음을 아는 방향으로 개념 전환이 필요하듯이, 교회가 혹은 목회자가 또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대신 자리 잡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우리 자신의 삶이 예배드림에 합당한 것인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종교개혁자들이 원했던 예배 갱신이 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