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야기 ①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 옛 한강의 모습을 찾다
한강을 부르는 이름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습니다. 고구려가 이 지역을 점유하였을 때는 아리수(阿利水), 고려 때는 열수(洌水), 조선시대에는 경강(京江)이라고 불렸습니다. 한강이라는 이름은 백제시대 중국의 동진과 교류하면서 ‘한수’ 또는 ‘한강’이라 불렸다고 전해집니다.
경강은 한성부의 행정구역에 포함되었던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를 말합니다. 상류로는 춘천의 소양강, 영월의 동강, 여주의 여강이 있고, 하류에는 김포의 조강이 있어 이 모두를 한강이라고 부를 수는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생활권을 기반으로 한 ‘경강’이 더욱 백성들에게는 친밀한 명칭이었을 것입니다.
경강은 지금의 한강처럼 인공 제방에 의한 무미건조한 직선의 강줄기가 아니라, 굽이굽이 마다 자연의 숨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강·용산강·서강이 있었고, 18세기 중엽부터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마포와 양화진을 포함했으며, 후반에는 두모포(동호)·서빙고·뚝섬까지 그 범위를 넓혀 갔습니다.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은 한강의 옛 모습을 회상함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료입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가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 만들어낸 그림들, <경교명승첩>, 총 33장의 그림 중에 20여점이 한강을 주제로 삼은 그림입니다. 그중 우리에게 익숙한 두 곳을 그린 그림이 있어 함께 올립니다. 겸재가 살았던 3백 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1) 송파진 (松波津)
서울에 위치한 석촌호수는 옛 조선의 대표적인 나루터였습니다. 송파나루터는 18세기만 해도 잠도라는 한강의 작은 섬을 낀 나루터였는데, 지금은 모두 육지로 변했습니다. 겸재는 한강 건너편에 앉아 송파진을 바라보며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림을 보면 멀리 남한산성이 보이고 그 아래 한강 가에 송파진이 있습니다. 나룻배에서 내린 인물들이 많고 그들이 잠시 쉬며 목이라도 축일 수 있는 곳인 듯 모래사장에는 천막이 쳐져있어요.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물론 나루터 주변과 민가들까지 송파진에는 18세기 송파장의 번영이 담겨있습니다.
2) 광진 (廣津)
한강 중하류에 위치한 아차산 일대. 이곳에 한강을 건너는 가장 큰 나루 중 하나인 광나루가 있었어요. 광나루는 노량진과 함께 태종 때부터 별감이 배치됐던 교통의 요지였지요. 겸재가 남긴 3백 년 전 광나루의 모습입니다. 나루터 위로 아차산이 한 가운데 우뚝 서 있고 지금 워커힐호텔이 들어서있는 자리는 조선시대 세도가들의 별장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겸재가 살던 진경시대는 평화와 안락이 절정에 이르러 상류층들은 풍류생활을 맘껏 누리고 있었다고 해요. 겸재는 그러한 그 시대 상황을 이 광나루 진경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삼백 년의 세월이 흘러 조선의 산수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그 정취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겸재가 그린 한강 그림엔 천금을 준다 해도 남에게 전하지 말라는 천금물전(千金勿傳)이란 인장이 남아있습니다, 비록 손자 대에 가서 겸재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겸재의 바람처럼 이루어진 것도 있습니다. 그가 마음으로 담아 그림으로 옮긴 한강의 모습은 3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 가슴에 오래 기억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