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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왕룽의 삼촌은 왕룽이 처음부터 염려하던 것처럼 이 무렵부터 두통거리가 되었다. 그의 무능력한 삼촌은 늙은 왕룽의 아버지의 동생이기 때문에 만약 살기가 곤란하게 되면 왕룽의 부양을 받을 권리가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다. 왕룽의 집이 가난해서 그날그날의 끼니가 궁색했을 적에는 그의 삼촌은 그의 전답에서 나온 곡식으로 일곱 아이와 처자를 부양했었다. 그러나 삼촌 식구들은 먹기만 하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숙모는 집안 청소조차 하지 않고 아이들 역시 얼굴에 붙은 밥티까지 씻어내지 않았다. 딸 아이들은 시집 갈 나이가 돼도 머리에 빗질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거리로 나다니면서 예사로 남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말을 건네기까지 했다. 이것은 집안 친지들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왕룽은 사촌 맏누이의 그런 추한 꼴을 보자 집안 수치로 생각하고 삼촌집으로 찾아갔다. "저렇게 마구 나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말을 함부로 건네면 누가 장가들려고 하겠소. 이제 시집 갈 나인데 오늘도 거리의 놈팡이가 어깨에 손을 대도 예사로 웃기만 합디다." 그러나 숙모는 도리어 왕룽에게 악을 썼다. "아니, 시집 보내려 해도 시집 보낼 돈이나 중매쟁이 신발값 줄 놈이 있다더냐? 그야 그렇겠지. 누구처럼 처치 못할 만큼 돈이 남아서 부잣집 땅을 사들이는 사람의 말이야 다 옳지. 그렇지만 너의 삼촌은 재수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영감이야. 처음부터 운수가 나쁘니까. 그것이 너의 삼촌 죄인지 천명인지, 다른 사람들의 곡식들은 잘 되는데 왜 하필 우리집 곡식은 나기도 전에 땅속에서 말라 비틀어지고 몹쓸 잡풀만 무성한지. 네 삼촌은 등골이 부러지라고 일해도 고작 그 뿐이니 하는 수 없지." 그녀는 까닭없이 눈물을 짜고 미친 사람 모양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야 남들은 아무도 모르지. 팔자 소관이니까. 다른 집들 밭에는 나락이나 밀들이 잘 되는데 우리 밭에는 풀만 나고 집도 다른 사람 집은 몇 백 년이 돼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우리 집은 축대가 무너지고 벽이 뚫어지니 말이야. 다른 여자들은 아들만 잘 낳는데 이년은 아들을 배도 낳을 때는 계집이란 말이야. 아이고, 이 망할 년의 팔자를 어떻게 할꼬......'" 너무나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바람에 이웃 아낙네들이 무슨 변고가 생겼나 하고 문 밖까지 뛰어나와서 구경했다. 그러나 왕룽은 숙모의 발악을 꾹 참고 듣다가 할 말만을 했다. "그야 그렇겠죠. 제가 숙부님께 충고한다는 건 말도 안될 일이죠. 그렇지만 이 말만은 해야겠어요. 누구나 딸자식이란 다 소문이 나기 전에 치워야 해요. 암캐를 아무렇게나 거리에 내놓으면 새끼를 내지르기 쉽단 말예요." 그는 이렇게 입바른 말을 하고는 악다구니를 하며 덤비는 숙모를 그대로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에도 그 황부자의 땅을 살 작정이고 여유만 있다면 해마다 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집을 새로 지을 것도 계획했다. 그는 이렇게 큰 지주로서 성공할 꿈을 꾸고 있는데 게을러 빠진 삼촌이 근방에 돌아다니면서 귀찮게 굴 것을 생각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튿날 삼촌이 왕룽이 일하는 밭으로 찾아왔다. 오란은 둘째 아이를 낳은 지 벌써 열 달이 지나 세번째 해산이 가까웠다. 이번에는 몸이 무거워 며칠간 누워 있고 밭에 나오질 않았다. 왕룽은 혼자서 일하고 있었다. 삼촌은 이랑을 따라 터덜거리며 밭둑길을 걸어왔다. 언제나 삼촌은 웃옷 단추를 끼지 않았다. 그리고 허리끈을 아무렇게나 둘러매었기 때문에 갑자기 바람이라도 불면 옷이 벗겨질 것 같았다. 그는 왕룽의 곁으로 와서 왕룽이 콩밭 고랑에 괭이질 하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침내 왕룽은 고개를 들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숙부님 오셨는데 안됐지만 손은 뗄 사이도 없으니 용서하세요. 이 콩을 잘 되게 하자면 아시다시피 두세 번 이렇게 갈아줘야 하니까요. 숙부님 밭은 다 갈았겠죠. 전 워낙 손이 느려서 아무리 해도 쉴 새라곤 없군요." 삼촌은 왕룽이 빈정대는 눈치를 알았으나 그래도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팔자가 더럽게 사나운 모양이다. 금년에 심은 콩 스무 알에 한 알밖에 싹이 나오질 않았어. 그런데 그것조차 제대로 자라질 않으니 아무리 애써도 소용이 없어. 금년엔 콩을 사다 먹을 판국이니." 삼촌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왕룽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삼촌이 어떤 청을 하러 온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모른 척하고 부지런히 밭고랑을 갈기만 했다. 작은 흙덩이를 더 곱게 부수었다. 무럭무럭 자란 콩은 줄도 곧게 나란히 서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땅 위에 뚜렷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침내 삼촌은 참다 못해서 입을 열었다. "네 숙모 말을 들으니 어제 네 누이의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정말로 네 말처럼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너무 성숙했어. 그애가 벌써 열다섯 살이나 되었으니 그대로 나다니게 두었다가 개 모양으로 애나 배면 집안 꼴이 어떻게 되겠니. 생각해 봐라. 우리 집안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네 꼴인들 어떻게 되겠나를......" 왕룽은 힘껏 괭이를 내리 찍었다. 그는 가슴속에 있는 말을 쏘아 주고 싶었다. '그러면 왜 집에 있게 못해요? 바느질을 시키거나 부엌일을 시키거나 집안 청소를 시키지 않고요?' 그러나 이런 말을 어른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콩이 자란 주위에 있는 흙덩이를 괭이로 곱게 부수면서 못마땅한 얼굴로 잠자코 삼촌의 말을 경청만 했다. 삼촌은 슬픈 어조로 말을 계속 이었다. "네 아버지처럼 너같이 부지런한 자식을 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네 숙모는 계집애만 낳고 하나 있는 아들이란 건 게을러 빠져 도대체 일이라곤 할 생각을 안하니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그렇지 않다면야 나도 너처럼 부자가 됐을 테지. 그리고 내가 부자가 됐더라면 너와도 나눠 쓰지. 그야 틀림없이 나눠 쓰고말고. 그 뿐일까, 네 딸이 있다면 상당한 곳에 시집도 보내 주지. 또 네 아들이 있다면 내가 보증금을 대서라도 큰 상점에 점원으로도 보내줬을 거야. 네 집도 돈 아끼지 않고 고쳐 주고, 네 먹고 싶은 대로 먹게도 하고 네 아버지와 조카까지도 소중히 생각하고 잘 먹일 거야.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이니만큼......" 왕룽은 간단히 대꾸했다. "제가 부자가 아닌 것은 숙부님도 잘 아시죠. 그런데 식구가 다섯이나 되고 아버지는 늙으셔서 일을 못하시고 잡수시긴 해야 되고 거기다가 이번에 또 아이를 낳으니 말이에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삼촌의 음성이 갑자기 날카로와졌다. "거 무슨 말이냐. 너는 부자야, 부자. 아무튼 너는 황부잣집의 땅을 샀으니까. 이 마을에 너만한 사람이 어디 있니." 이런 말을 듣고 보니 왕룽은 왈칵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괭이를 땅에 내리꽂고 삼촌을 흘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제게 몇 푼의 돈이 있다면 그것은 저와 제 아내가 뼈아프게 일한 덕분이에요. 누구 모양으로 밭에 김을 안 매서 잡초가 나게 하고 아이들을 굶기면서 노름판이나 드나들거나 또 쓸지도 않은 지저분한 문간에서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으면서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어요." 삼촌의 얼굴빛이 푸르락붉으락하더니 와락 조카에게 달려들어 두 뺨을 때리면서 소리질렀다. "이 불측한 놈아. 그게 네 삼촌에게 하는 말버릇이냐. 너는 천륜도 모르고 도덕도 모른단 말이냐. 어른의 흠을 말하지 말라는 성현의 말을 들은 적도 없단 말이냐?" 왕룽은 어른에게 지나친 말을 한 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되었으나 마음 속으로는 분통이 가라앉지를 않아 그저 시무룩하니 서 있었다. "이놈 네가 한 말을 그대로 동네 사라들에게 말할 테다." 삼촌은 미친 사람 모양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놈, 어제는 내 집에 와서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게끔 내 딸이 성하지 않다구 떠들어 대더니 오늘은 내게 이렇게 고약하게 하고, 이놈아 네 아비가 죽으면 내가 네 아비 노릇을 할 것 아니냐. 내 딸년이 화냥년인지는 몰라. 그렇지만 너밖에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어 이놈아." 삼촌은 몇 번이나 되풀이해 가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해. 네놈의 행실을." 마침내 왕룽은 마음에 없는 말이지만, "그럼 저더러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하고 물었다. 행실이 나쁘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리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쨌든 한 피를 나눈 친척이 아닌가? 삼촌의 태도는 돌변했다. 화가 났던 얼굴은 곧 풀어졌고 웃음까지 띠더니 다정스럽게 조카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네 착한 마음씨를 나는 잘 알지. 이 늙은 삼촌도 너를 아들같이 여긴다. 그래서 너를 믿고 말하지만 이 늙은이 손에 은전 열 닢만 아니, 아홉 닢도 좋으니 조금만 다오. 딸 아이의 중매를 부탁해야겠다. 네 말대로 시집 보낼 때가 되었잖니. 어디 혼처를 알아봐서 시집을 보내야지." 삼촌은 한숨을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왕룽은 집어 들었던 괭이를 다시 땅에 내던지며 말했다. "집으로 오세요. 전 부자들처럼 언제나 돈을 허리춤에 가지고 다니진 않으니까요." 땅을 사려던 은전이 삼촌의 손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돈은 해가 지기 전에 노름판 탁자 위에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니 왕룽은 목이 콱 막힐 만큼 분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니 두 아이가 옷을 벗은 채로 사립문 앞에서 놀고 있었으나 왕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삼촌은 매우 다정스럽게 아이들을 불러 남루한 허리춤에서 동전을 꺼내어 한 닢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 토실토실한 아이들을 얼싸안으며 귀여워 못견디겠다는 듯이 볼을 비벼 대며 햇볕에 그을은 살 냄새를 맡았다. "이놈들, 잘도 생겼다." 그러나 왕룽은 그런 광경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내와 함께 쓰는 침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밖에서 들어온 그에게는 창구멍에서 새어 드는 한 줄기 햇볕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전날 기억에 있던 비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얼른 아내에게 물었다. "아니 벌써 해산했어? 무얼 낳았어?" 그러나 아내는 맥없이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했다. "낳긴 낳았어요. 이번엔 계집애예요." 왕룽은 주춤했다. 계집애라니. 삼촌 집이 재수가 없는 것도 계집애만 낳았기 대문이 아니던가! 그런 계집애가 자기 집에서도 태어나다니.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벽을 더듬었다. 그곳에 은전을 보관해 둔 것이다. 덮개를 열고 은전 아홉 닢을 꺼내 들었다. "돈을 왜 꺼내요?" 오란은 어둠침침한 속에서 물었다. "숙부님에게 빌려 주는 거요." 오란은 처음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잠시 사이를 둔 다음에야 그 묵중한 태도로 말했다. "빌려 준다는 말은 마세요. 거저 주는 거지. 그 집에서 어디 빌려 쓰는 일이 있나요." "나도 잘 알아. 일가라고 해도 돈을 주는 것만은 살을 베어 주는 것과 같아." 왕룽은 불쾌한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사립문 밖으로 나가서 던지다시피 삼촌에게 돈을 주곤 다시 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축을 뚫을 듯이 힘차게 흙을 뒤지면서도 한동안 그는 아홉 닢의 은전만 생각했다. 그가 내어 준 은전이 노름판 탁자 위에서 놈팡이들 손에 사라져 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가 천신만고 끝에 피땀을 흘려 가며 땅을 파서 모은 그 피땀어린 돈이 하루 아침에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는 일에 지쳤을 무렵에야 비로소 분노도 가라 앉았고 다시 집안 생각을 머리에 떠올렸다. 허리를 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난 것은 집안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과 자신도 계집애를 낳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딸 자식이란 애써 길러도 남의 집으로 가 버린다는 것을 생각하니 맥이 풀려 버렸다. 아까 집에 갔을 때에는 삼촌에 대한 노여움 때문에 아이의 얼굴조차 잘 보지 않았다. 지친 몸을 괭이로 받치고 섰노라니 점점 슬픈 생각을 이길 수 없었다. 가까이 있는 밭을 사려고 했으나 그런 모든 계획은 다음 추수까지 미루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집안에는 날이 갈수록 식구만 늘어가는 것이다. 황혼이 짙어가는 하늘에 새까만 까마귀 떼가 그의 머리 위를 날아갔다. 그리곤 요란스럽게 울어 대며 그의 집 가까이 있는 나무숲에 내렸다. 왕룽은 그 뒤를 달려 가며 소리를 지르고 괭이를 내저었다. 까마귀 떼는 하늘로 날아 올라 그의 머리 위를 두 번이나 빙빙 돌면서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까욱거리다가 어두워지는 하늘로 멀리 사라졌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하였다. 불길한 징조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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