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국문학관, '파리장서의 사상과 현재적 의미' 학술 세미나 개최
김정한 기자2026. 3. 20. 09:43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26일 오후 2시
'파리장서의 사상과 현대적 의미' 포스터 (국립한국문학관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국립한국문학관(관장 임헌영)이 26일 오후 2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학술 세미나 '파리장서의 사상과 현재적 의미'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지난달 공개된 곽종석 친필 원본 '파리장서'의 가치를 조명하는 자리다. 3월 '이달을 빛낸 문학인'으로 선정된 곽종석과 김창숙의 사상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는 일제강점기 유학자들의 독립운동 사상을 살펴보는 기조강연으로 시작된다. 김시업 전 실학박물관 관장이 강연을 맡으며, 이어 곽진 상지대 명예교수가 면우 곽종석의 학문 세계를 그의 독서 이력을 통해 분석한다.
또한 임경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파리장서'의 구체적인 작성 경위와 문학관 소장본이 지닌 유일본으로서의 가치를 발표한다. 이번 논의는 위정척사에서 개화 계몽으로 나아간 유학 사상의 변화를 통해 한국 문학과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행사 대미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장식한다. '파리장서' 운동의 주역인 김창숙, 김규식, 고예진의 후손들이 직접 나서 원문을 낭독한다. 과거 김창숙은 서명본을 들고 상해로 건너가 김규식에게 이를 우송했으며, 김규식은 파리평화회의에서 이를 바탕으로 독립을 역설했다. 137인 서명자 중 한 명인 고예진의 후손과 성균관대 학생이 낭독을 이어가며 과거의 독립 정신을 현재의 울림으로 되살린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이달을 빛낸 문학인' 사업을 지속한다. 매달 역사적 문학인을 선정해 관련 행사를 열고 대중이 한국 문학을 더 쉽게 향유하도록 할 계획이다. 선정 명단은 매달 25일 전후 문학관 누리집을 통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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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스
이것이 바로 파리장서 원본
견서좌 ・ 2026. 3. 5. 6:20
파리장서
국립한국문학관이 3.1절을 맞이해 ‘파리장서’ 원본을 공개했다. 3.1운동 직후 전국의 유학자들이 연합해 파리평화회의에 보낸 서한이다.
평화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에게 ‘진실로 만국이 평화하다 할진대 우리 한국도 만방의 하나이니 어찌 우리만 평화롭지 않겠는가’라고 호소했다.
이런 내용도 있다.
쟁탈이 야로가 일어남으로써 강약의 세력이 나누어지며 합병의 강권이 행해지며 대소의 형국이 현격해져서 사람이 명을 해하며 그 위세를 마구 떨쳐 다른 나라를 몰래 침략하니 슬프다,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하늘이 만물을 낼 때 반드시 그 물(物)에게 능력을 주었나니, 작은 고기나 조개며 곤충도 모두 자유로 활동할 수 있거늘, 사람 스스로가 사람이 되고 나라 스스로가 나라가 되니 실로 각자가 제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다. 우리 한국이 비록 국력은 약소하나 삼천리에 퍼져 살고, 2천만 명이 4천여 년 역사를 지내 왔으며, 우리 국사를 감당할 능력이 없지 아니한데 어찌 이웃나라의 다스림을 받으리오.
제위가 모여 평화회의를 개최한다 함을 들은 후부터 우리 인민은 모두 용약 격분하여 진실로 만국이 평화하다 할진대 우리 한국도 만방의 하나이니, 이제 우리만 불평불화케 하리오 하였고, 다시 폴란드 등 여러 나라가 독립된다는 말을 듣고는 또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며 평화 합의가 이미 결정되었는지라 그는 어떤 나라이며 우리는 어떤 나라인가.
김창숙
곽종석
주동자 김창숙과 곽종석이 협의해 작성했다. 곽종석이 친필로 썼고 후대에 한학자 이가원과 정무연이 배관기(拜觀記)를 덧붙였다.
정무연 배관기
이가원 배관기
파리장서 사건을 낳은 편지다. 3.1 독립선언서 민족대표에 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유학자들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기로 한 데서 비롯됐다. 김창숙이 대표를 맡아 지역의 유학자들에게 사람을 보내 뜻을 모았다. 김창숙 자신은 경북의 유학자들을 만났다.
스승이자 학문적 동지인 거창의 곽종석에게 초안을 부탁하고 함께 자구를 따져가며 최종본을 만들었다.
김창숙은 상하이를 거쳐 파리로 가려고 했다. 곽종석은 상하이 현지에서 김창숙을 도울 이들을 소개했다. 한 행씩 잘게 찢어 짚신을 삼은 파리장서로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김창숙이 경북에서 원본을 쓰는 사이 김복한 중심의 충청 유학자들이 별도로 독립청원서를 냈다. 회의를 거쳐 곽종석의 원본을 채택, 수정한 다음 유학자 137명이 연명해 발송본을 완성했다.
파리장서는 당시 한국 대표로 파리에 파견돼 있던 김규식에게 우송됐다. 언론사, 영사관, 국내 향교에도 한문본과 번역본을 배포했다.
그러다가 3.1운동을 조사한 일경에게 발각됐고 곽종석, 김복한 등 20여명이 옥고를 치렀다.
김창숙은 독립선언서에 유림 대표의 서명이 없자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할 유교가 이번 독립운동에 참여치 않았으니 세상에서 고루하고 썩은 유교라고 매도할 때에 어찌 그 부끄러움을 견디겠는가’라고 통탄했다.
곽종석은 파리장서를 쓰러 온 김창숙의 손을 잡고 ‘내가 망국대부(亡國大夫)가 되어 늘 죽을 곳을 얻지 못해 한으로 여겼더니, 오늘 늙은이가 죽을 곳을 얻었다’라고 반겼다.
지식인으로서의 자각,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파리장서는 나왔다. 김창숙이 상하이로 향하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파리장서에 담긴 당대 유학자들의 열망이 절절하다.
파리장서 원본은 공개된 적이 없다. 국립한국문학관은 크게 세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3.1운동의 영향으로 구 지식인으로 불리는 유학자들이 전국의 유림 조직을 규합하여 서한을 작성했다. 신분과 처지를 막론한 전 국민적 독립운동으로서의 3.1운동의 의의를 실감하게 하는 자료이다.
둘째, 작성자들은 시종일관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외교문서의 형식을 고민했고, 여러 필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수정을 거듭하여 파리장서는 완성되었다. 파리장서는 독립운동의 정치적 무게와 문학적 전달력을 함께 갖춘 자료이다.
셋째, 파리장서는 전통의 사상을 기반으로 국제적 정세와 현실적 가치를 담아낸 문장을 통해 ‘독립의 사상’이 곧 ‘평화의 사상’임을 보여주었다. 우리 문학 유산의 가치와 전통 보존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한편, 국립한국문학관은 곽종석과 김창숙을 첫 ‘이달을 빛낸 문학인’으로 선정했다. 파리장서를 조명하는 학술행사를 3월26일 성균관대에서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