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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바우하우스(Bauhaus)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구상하여 바이마르에 설치한 조형(造形)학교. 이전에 있던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하여 설립하였다. |
32.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1940년대 말∼60년대 초에 미국에서 전개된 미술의 한 동향. 본래는 1919년에 O.헤르초크가 독일의 표현주의 잡지 《슈투름(폭풍)》에서 추상적인 표현주의를 구상적인 그것에 대치해서 사용한 것이다. |
33. 팝아트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구상미술의 경향. |
34. 절대주의 지상주의(至上主義), 절대주의. 러시아혁명시대에 화가 K.S.말레비치가 창시한 선구적 추상회화의 이념이다. |
말레비치 Malevich, Kazimir Severinovich (1878.2.23~1935.5.15)러시아의 화가. 키예프 출생. P.C.몬드리안, V.칸딘스키와 함께 추상예술의 개척자이다. |
35. 다다이즘 (Dadaism) 제1차 세계대전(1914~18) 말엽부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 다다(dada)라고도 한다. 독일에 있어서의 다다이즘은 베를린·하노버·쾰른 등 세 곳의 중심점을 가지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R.하우스만, G.그로스, W.메링 등이 주된 예술가였는데, 여류인 H.헤히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쾰른에 있어서의 다다이즘은 M.에른스트와 J.T.바르겔트로 대표된다. 바르겔트는 잡지 《선풍기(扇風機)》의 창간자이기도 하며, 에른스트와 공동으로 제작을 시도한 일도 있는 화가로서 아상블뢰즈를 잘하였다. 에른스트의 기법(技法)은 콜라주이며, 20년 파리에서 열린 콜라주전(展)은 이제까지의 회화개념(繪畵槪念)을 바꾸어 놓았다. 또한 그는 24년에 초현실주의(surr럂lisme) 운동에 참여하여 독특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타주(frottage)에 새로운 면을 개척했는데, 그것을 보면 다다이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과정은 종이 한 장 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파리에 있어서의 다다이즘 운동은 19년에 이루어졌다. 자살한 23세의 시인 J.바셰 외에 ‘검은 유모어’의 A.브르통 등도 다다이즘의 선봉으로서 빼놓을 수 없으며, P.엘뤼아르, B.페레, L.아라공 등도 여기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뉴욕에 있어서의 다다이즘은 취리히와 그 모습을 같이하고 있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 또는 대전 전부터 전위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은 필시 13년에 개최된 사진과 회화의 모던 아트전(展) 아모리 쇼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
뒤샹 Duchamp, Marcel (1887.7.28~1968.10.2)프랑스의 화가·조각가. 블랭빌 출생. |
36. 초현실주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운동. 쉬르레알리슴이라고도 한다. 독일 낭만파 문학에서 영향받은 독일 낭만파의 회화는 O.룽게나 C.D.프리드리히의 회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무한대의 동경을 그 특질로 삼고 있다. 또 그들의 작품에는 종교적 감정이 짙게 스며들어 있다. 30년대에 접어들자, J.위녜의 《쉬르레알리슴 소시선(小詩選)》, 브르통의 《새벽》, 엘뤼아르의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시집 《민중의 장미》, 화가인 S.달리의 《비합리의 정복》이라는 편집광적 비판의 방법에 관한 논문이 쏟아져나옴으로써, 문학·회화 양면에 걸쳐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할 수 있다. 이 무렵부터 초현실주의는 국제선전운동으로 나타나, 36년에는 런던에서, 38년에는 파리에서 브르통, 엘뤼아르가 중심이 되어 ‘국제쉬르레알리슴전(展)’이 열렸다. 그 사이 브르통의 《미친사랑》, 엘뤼아르 시집, 로트레아몽의 《전집(全集)》이 출판되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나, 브르통은 36년의 에스파냐내란 이래로 공산당에 접근하기 시작한 엘뤼아르와 드디어 결별하였다. |
<초현실주의의 기법들>1. 자동주의 automatisme오토마티즘은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려는 초현실주의의 의도를 나타낸 대표적 기법으로, 가능한 의식(고정관념,이성들의 영향)이 배제된 상태에서 손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움직임과 형태를 작품화한 것이다. 에른스트가 발견한 프로타주와 오스카 도밍게즈가 작품에 이용한 데칼코마니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형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오토마티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 분야에서의 오토마티즘은 미술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구절들을 이성의 통제없이 무의식적으로 써내려가는 방법을 말한다. 초현실쥐의 미술의 초기인 1920년대에 이 기법이 주로 쓰였으며 대표적 작가로는 마송과 미로가 있다. |
2. 프로타주 frottage에른스트가 1925년 여름에 마룻바닥의 얼룩을 보고 있다가 거기에서 온갖 환각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한 기법으로, 나무 파편이나 나뭇잎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을 문질러 그림이 떠오르게 하는 수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우연한 효과를 노리는 것뿐 아니라 몇가지 피사물을 의식적으로 짜맞추는 경우도 있고 혹은 거기에서 나타난 무늬에서 힌트를 얻어 붓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 자체의 우연성을 중시하는 프로타주로 제작한 초기의 34점의 작품은 에른스트는 박물지 (historre naturelle)라는 책자로 출판했는데 여기에 등장한 형상들은 문질러 나타낸 나뭇잎,헝겊 따위가 인간의 머리,괴물,바다 풍경등으로 변모된 것이다. |
3.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轉寫法원래는 도기나 유리기구등에 특수한 종이에 그린 그림을 옮겨서 염색하는 기법으로, 회화에서는 미끄러운 성질의 종이에 물감을 칠하고 그것을 접었다가 다시 피거나 또는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대고 눌렀다가 뗄 때 생기는 우연한 효과를 작품에 이용한 것을 의미한다. 이 기법에 따른 우연한 형태 - 산맥, 산림수목, 인간장기 등 - 에 부분적으로 가필을 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영상을 표출하도록 한다. 1935년 오스카 도밍게즈가 그의 과슈작품에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에른스트도 2차세계대전 직전에 종종 이용했다. 예전의 그림붙이기에 사용되었던 것과 근본적으로 달리 즉, 완성된 그림을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얼굴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
4. 데페이즈망 depaysement 轉置,轉位法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으로 문학에서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로트레아몽의 싯귀는 데페이즈망의 적절한 예라 하겠다. 초현실주의 회화에서는 낯익은 물체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으므로써 꿈속에서 밖에 없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이는 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데페이즈망의 대표적 작가로는 마그리트를 들 수 있으며 꼴라주와 오브제도 일종의 전위라 할 수 있는데 이 방법들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데 기여했다. |
5. 레이요그램 rayogram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감광 재료 위ㅣ해 물체를 얹어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명암 속에서 추상적 사진을 찍은 것이다. 포토그램과 같은 것으로 파리에 있던 미국의 초현실주의자인 만 레이가 1923년 블룸이란 잡지 4월호 표지에 발표하면서 이 명칭을 붙였다. 후에 그는 자작집에서 레이요그래프로 고쳐 부르기도 했다. 1921년 자비로 출판의 한정판으로 레이요그램 작품을 트리스탄 짜라의 시와 함께 발표한 바 있다. |
6. 꼴라주 collage화면에 인쇄물,천,쇠붙이,나무조각,모래,나뭇잎 등 여러 가지 물질을 붙여 구성하는 기법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에서도 기성품에 손질을 가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물체끼리 조합시키므로써 별개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비유적,연상적,상징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으로 쓰인다. 에른스트는 1919년부터 초현실주의적인 꼴라주작품을 시도했는데, 그의 작품은 잡지,카탈로그, 삽화등의 그림을 부분적으로 오려 아무 관련성없이 재배치하여 부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환상의 세계를 일깨운다. 또한 1924년 <두 어린이가 나이팅게일에 놀랐다>라는 작품에서는 문짝,손잡이 등의 사물을 꼴라주하여 초현실주의 사상에 부합되는 이미지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
7. 오브제예술과 관련없는 물견,또는 그 부분을 본래의 일상적 용도에서 떼어내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재한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 발견된 오브제, 환영 오브제, 봉상적 기능의 오브제, 존재적 오브제 등 |
막스 에른스트 1919년 꼴라주 작업을 했는데 이는 무의식에 이르기 위한 최초의 시도로서 여러 가지 기계도면이나 식물학 도판 그리고 옛 판화와 삽화등을 임의로 오려내어 자유롭게 배치한 작품이다. 손과 겹쳐진 눈동자, 얼굴 부분에 독수리 머리 사진을 붙인 누드의 여인, 사람 형태로 변형된 기계 부품등 평범한 이미지들이 콜라주되어 기이하고 놀라운 상황을 연출한다. 1924년작 < 꾀꼬리에 위협받는 두 아이 >에서도 작운 문틀등의 오브제를 이용한 꼴라주기법으로써 무의식적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1925년에서는 프로타주 즉 나뭇결, 나뭇잎 등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연필로 문질러 우연적 이미지를 얻은 기법을 발견하였으며 숲 연작등에 이를 도입하였다. |
앙드레 마송 마송이 회화에서 의도한 것은 브르통의 자동기술과 같이 무의식 상태에서 그려지는 자동묘사 그림이다. 주로 드로잉적 회화, 물감·모래를 혼합한 모래 그림 작업을 한다. 브르통과 알게된 직후 1923-24년에 그는 재빠른 선묘에 의한 드로잉 작품을 통해 세상과 우주에 대한 자신의 감성을 격정적으로 나타내었으며 그의 드로잉은 기이한 동물,신화적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
호앙 미로 추상적이며 자동주의적 표현방식에 열중한 작가로서 붓의 미끄러짐,회화적 재질감, 행위와 기호의 유희를 통해 독특한 생물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밑그림없이 직접 캔버스에 작업을 기도하여 영혼의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의 화폭을 자아의 순간적 투영의 장으로 만든다. |
살라도르 달리 1930년 편집광적 비평이란 방법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했는데 이 기업은 극사실적 묘사에 의해서 체계를 갖는 망상으로서 내용은 비합리적이나 진실인 것 같이 매우 논리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중형상,위치전환,성질전환을 통해서 풍경이나 공간의 공포,변태적 에로티즘,음식에 대한 강박관념등을 소재로 그렸다. |
르네 마그리트 마그리트는 벽지 제조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1926년 문학가들과 초현실주의 그룹을 형성하고 1927년 이후 파리에서 체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중이미지의 우연한 만남이나 환상세계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은 그려지는 대상의 세부확대,연관성없는 두 개 사물의 만남, 무생물을 생명있는 미술로 도치, 전혀 다른 모습의 생물체 변형 등으로 제작된다. 그는 서로 다른 의미의 사물들을 하나로 결합시키거나 사물이 갖는 고유의 이미지를 변형시켜 전혀 다른 의미의 초현실 이미지를 화면속에 탄생시키는 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준 작가이다. |
37. 파리파 파리화파는 양차대전사이에 관용 분위기속에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한 파리에서 실행되었던 모든 종류의 미술 - 형식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초현실주의부터 추상, 창조 그룹의 철저한 형식주의에 이르기까지 - 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브라크, 레제, 마티스, 피카소 까지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파리화파의 대표자로 칭해진는 것은 "악마들" 로 일컬어지는 표현주의자들의 작은 집단이다. 이탈리아 출신 모딜리아니, 러시아 출신 수틴, 프랑스 출신 모리스 위트릴로, 불가리아 출신 파신 등으로 가난과 소외속에서 무질서한 생활을 하며 비참하게 산 저주받은 보헤미안 들이었다. |
모딜리아니 회화공간을 한정한 탈인상주의와 색채를 제한한 큐비즘의 방법을 이용하였으며 아프리카, 그리스, 중세 초기 조각에서 보이는 인물상, 두상 에 관심을 보인 초상화의 대가였다. 그의 초상화들은 개성적인 우아한 선이 길게 늘여 구사되고 있으며 원시 미술에서 유래한 형태를 사용하였다. |
카임 수틴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했으나 정작 ‘라 루슈’라고 알려진 낡은 저택에서 만난 화가들을 통해 그의 길을 찾은 수틴은 인상주의 분파를 대표하는 보나르 나 루오를 좋아했다. 수틴 작품의 표현주의적 본질은 직관적인 힘에 근거하고 있으며 외견상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면서도 대단히 묘사적인 붓놀림으로 표현되었는 데 이는 월렘 드 쿠닝과 가깝다. 또한 지나치게 격정적인 기질로 인해 고통받은 고흐계열의 화가이다. 그는 부셔지고 찢겨진 듯 한 풍경화 <뒤틀린 나무> , 불안하고 애처로운 듯 뒤틀린 초상화 <붉은 옷을 입은 여인>, 충격적이고 혐오스런 정물화 <정육점 수소> 와 같은 작품을 그렸다. |
줄스 파신 파신은 초기부터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만큼 삽화가와 풍자화가로 재능을 보였으며 독일에서 더 명성을 얻었다. 1912,3년 낭만적 분위기의 인물화를 그렸으며,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색조의 그림속에서 유쾌하게 인생을 이끌려 하는 그의 생각이 반영된다고 할 수 있다. 1914년에 20년 때에는 미국에 있어서의 모더니즘 운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
모리스 위트릴로 어릴때부터 알콜중독과 같은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낸 위트릴로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루소의 재능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켜 의도적으로 소박한 형식의 회화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그의 초기 그림들은 그가 자란 몽마니의 교외와 몽마르트 교외를 그린 것으로 거친 필치의 질감과 차분한 색채의 경향을 보인다. 그 뒤 그는 피사로의 후기 회화를 연상케 하는 인상주의 단계로 들어갔으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을 계속 반복해서 화폭에 담는 작업을 하며 살았다. |
38. 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新卽物主義) 20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반(反)표현주의적인 전위예술운동. 신현실주의 또는 독일어로 노이에 자흐리히 카이트라고 한다. |
그로스 Grosz, George (1893.7.26~1959.7.6)
독일의 화가. 베를린 출생. 베를린 미술공예학교에서 수학하였다. |
딕스 Dix, Otto (1891.12.2~1969.7.25) 독일의 화가·판화가. 라이프치히 근교 게어 출생.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는 장식화가로서 수업을 하였다. |
39. 플럭서스 플럭서스는 1960년대에 독일에서 시작되어 뉴욕과 북구의 수도인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으며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비슷한 활동이 독자적으로 펼쳐졌다. 이 운동은 대중문화에 의존하지 않고 아방가르드 미술가와 음악가와 시인들이 창조해 나갈 새로운 문화를 추구했으며 게릴라 극장과 거리 공연, 전자음악 연주회 같은 초기의 플럭서스 이벤트는 1960년대와 연결지어 생각되는 성적 충동과 무정부주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