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던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동네 어른의 환갑 잔치였다.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 환갑잔치에서 얻어먹던 떡과 과자는 별미 중의 별미였다. 환갑잔치는 동네잔치였다.
1960년에 평균수명이 52.4세였으니까 60세를 넘었다는 것은 큰 잔치를 벌일 만한 경사스런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환갑잔치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1975년에 이미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이 63.8세에 이르러 별 탈 없으면 누구나 다 맞이하는 환갑인데 잔치를 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예로부터 아주 드물다는 뜻에서 古稀(고희)라고 부르는 칠순 잔치도 쑥스러워 해야 할 세상이 되었다. 2001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이미 76.5세에 달했기 때문이다 <표 1>.
이처럼 평균 수명이 지난 40여 년 동안에 25세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여성의 평균수명은 2001년에 80세로 「八旬(팔순)시대」를 열었다. 72.8세인 남성보다 7.2세가 더 많다.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내는 더 오래 산다. 아마도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먼저 죽으면 남편은 더 빨리 죽는다고 한다. 귀찮게 할 사람이 없으니 하늘나라로 빨리 쫓아가서 또 귀찮게 하려고 그런다』
남자 수명도 늘었지만 상대적으로 여자의 평균 수명이 더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시작된 한국의 경제 개발 과정에서 남성들이 직장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음주와 흡연을 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평균수명은 우리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 숫자이다.
지금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대충 평균 70세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통계를 가지고 대략적으로 확인해 보더라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10년 혹은 20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재 40세인 사람은 대략 90세까지 살 수 있다.
평균수명과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간인 餘命(여명)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돈을 벌지는 못하고 써야 하는 기간이 10년 또는 20년 더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老後설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저축한 돈을 모두 다 써버린 후에 수입 없이 10년이나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평균 수명이라는 통계는 지금 우리 모두에게 老後에 대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진행
한 나라의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으며, 2019년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표 2>.
우리 농촌의 현실을 보면 이런 통계수치가 실감된다.
2002년에 우리나라 234개 시·군·구 중 23개 군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은 「초고령사회」로, 50개 시·군이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이미 진입하였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제외하고는 농촌에서 아이 찾아보기가 보물찾기만큼 어렵다는 것을 평소 농촌을 방문한 사람은 쉽게 느낄 수 있다. 지금의 농촌현상이 십수 년 후에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 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 또는 초고령사회로 진행되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옮겨가는 데 프랑스는 115년, 미국은 71년, 영국과 독일은 각각 47년과 40년이 걸렸다.
예외적으로 빠른 나라로 꼽히는 일본조차도 24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일본보다 5년이나 빠른 19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또 하나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적게 낳고 오래 살고, 늙어가는 우리나라』
통계청 홈페이지(www.nso.go. kr)에 있는 「재미있는 時事통계」의 한 제목이다. 우리나라 고령화의 한 축을 이루는 낮은 출산율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림 1>.
40~50代 남자들은 예비군 훈련장에서 있었던 가족계획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기억할 것이다. 사흘 동안의 예비군 훈련이 시작되는 첫날 점심시간이면 가족계획협회 간사가 가족계획 강의를 한 후 정관수술을 한 예비군에게는 나머지 훈련을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때를 기다려 수술도 하고, 이틀간의 훈련을 면제받은 남자들이 많았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구호와 함께 1962년부터 범국가적으로 실시된 가족계획(실은 産兒制限·산아제한)의 성공적 수행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를 전문용어로 「합계출산율」이라고 하는데 1960년대에 6명이던 합계출산율이 1970년대에는 4명으로 줄어들더니, 2002년에는 1.17명으로 줄어들었다. 아이 적게 낳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1.9명, 일본의 1.32명보다 적은 숫자이다.
현재의 인구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2.1명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이것을 인구학자들은 「代替출산력 수준」이라고 한다. 이제는 가족계획의 이름으로 행하던 산아제한이 아니라 오히려 출산을 장려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인구 피라미드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해 보면 「우리가 오래 살게 됐다」는 것과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것 두 가지이다. 전문용어로 말하면 고령화와 低출산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한눈에 알아 보기 쉽게 보여 주는 것이 「인구 피라미드」이다<그림 2>.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를 나타내는 1970년의 인구 피라미드는 낮은 연령층 인구가 많은 「피라미드형」 구조로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가족계획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출산율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의료기술의 발달과 충분한 영양섭취로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1980년에는 「종형」으로, 2000년에는 「항아리형(꽃병형)」으로 변화하였다.
출산율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오래 살기 때문이다. 인구구조를 사람의 인체와 비교해 보면 하체가 튼튼한 건강한 신체에서, 갈수록 하체는 부실해지고 백해무익한 아랫배만 불룩하게 나온 일명 「배둘레햄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구구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혼인과 이혼율의 변화도 사회의 변화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혼외출산을 예외로 한다면 인구문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어서 이야기해 보자.
혼인율과 이혼율은 일정하게 한 시점에서 수치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조잡하다」는 의미의 粗(조)를 앞에 붙여 사용한다〈1년간 혼인(이혼)수/연앙인구×1000〉 <표 3>.
粗혼인율은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는 10% 안팎을 유지하다가 2000년부터 줄기 시작하여 2002년에는 6.4%로 불과 10여 년 사이에 30% 정도 줄었다. 그런데 粗이혼율은 1970년 0.4%에서 2002년에는 3.0%로 30여 년 사이에 무려 7.5배 늘었다.
그리고 아직 그 절대적인 숫자는 많지 않지만 재혼녀와 초혼남의 결혼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며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인생의 늘그막에 남남으로 갈라서는 「황혼이혼」 또한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흔히들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3위』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혼율은 나라 간 단순비교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혼인에 대한 관습이 달라 서구사회에서는 이혼時 위자료 부담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이혼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대학교육은 이제 보통교육
취학 적령 인구 가운데 재학생의 수를 나타내는 취학률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읽는 중요한 지표다. 1960년에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는 대부분 취학했으나, 중학교 3명 중 한 명, 고등학교 5명 중 한 명, 대학에는 20명 중 한 명꼴로 진학했다.
그런데 2002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는 진학하고 있으며, 대학교도 10명 중 아홉 명꼴인 87%가 다니고 있다 <표 4>.
교육의 질을 계량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흔히 「교사 1인당 학생수」로 교육의 질을 가늠해 보고 있다. 1960년과 2002년을 비교하여 보면 초등학교는 58.8명에서 28.1명으로, 중학교는 40.5명에서 19.3명으로, 고등학교는 28.4명에서 2002년 15.7명으로 40여년 만에 약 절반 수준으로 교사 1인당 학생수가 줄었다.
그런데 대학교는 오히려 늘어나 1960년 26.9명이던 교수 1인당 학생수가 2002년에는 48.3명으로 늘어났다.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초등학교보다 못한 여건 속에서 교육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대학교육의 현실이다 <표 5>.
이것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청년실업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40년 전 20명 중 한 명이 다니던 시절의 대학과 10명 중 1명 정도만 못 가는 지금의 대학은 질적인 면에서 많이 다르다. 지금의 대학은 이미 고등교육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40년 전의 대학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갖고 있다.
이제는 『내가 대학까지 나왔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동안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고 일하겠느냐』는 등의 말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되고 만 것이다.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이 되고, 사회적으로 「高학력자」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는 현실에서는 졸업장외에 자신만의 「차별화된 실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눈높이를 현실에 맞게 낮추어야 한다.
1981년에는 정부 예산 중에서 2.4%에 불과하던 사회보장비 예산비율이 2002년에는 4배 늘어난 10%에 가까울 정도로 확대되었다. 2001년도 건강보험 수혜율은 98% (나머지 2%는 생활보호대상자 등)에 달하고 있어 국민 모두가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수혜율도 82%에 이르고 있다 <그림 3, 4>.
「잘 먹고 잘사는 것」
모두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에는 『밥 먹었냐』는 인사가 가장 큰 안부였지만 이제는 환경 친화적이며 건강에 좋은 것을 골라 먹는 「잘 먹고 잘사는 것(웰빙)」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어디 그뿐인가. 각종 다이어트 광고는 넘칠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만큼 먹는 것과 관련한 변화는 크다.
쌀 소비량은 1976년 자급자족을 이룬 후, 1979년 135.6kg(1인/년)으로 정점에 달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2년에는 87kg까지 줄어들었다. 또한 우유와 육류 소비량은 1998년(외환위기)에 다소 감소하였으나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이러한 현상은 통계를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그림 5>.
의사 1인당 사람 수는 1965년에 2,645명이었으나 2001년에는 629명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에 약사도 2,862명에서 913명으로 줄었다. 이것은 의료 인력이 많이 증가하여 국민들이 좀더 높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을 기회가 늘었음을 의미한다.
세계 수준의 의료 혜택
지금도 『의료보험이 비싸다』거나 『보험 혜택을 못 받는 진료가 많다』거나 하는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통계로만 얼핏 보아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받는 의료혜택의 수준은 크게 좋아졌다.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정도의 혜택이다 <표 6>.
30년 새 도시근로자 가구당 月 평균 수입 100배 늘어
1970년 도시근로자 가구는 月 평균 2만8000원을 벌어서 2만5000원을 썼는데 30여 년이 지난 2002년에는 280만원을 벌어서 180만원을 썼다. 절대금액으로만 보면 수입은 100배 늘었다. 얼마 전 새로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수입이 300만원을 넘어섰다.
家長(가장)의 수입이 그만큼 늘기도 했겠지만 이만한 증가세의 뒤편에는 아내의 직장생활, 즉 맞벌이가 늘었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표 7〉.
1990년 2.0%였던 해외여행자도 2000년에는 5.9%로 10년 사이에 3배 가까이 늘어났다 <표 8>.
자동차 등록 대수는 1970년 12만7000대에서 2002년 1400만 대로 매우 빠른 속도로 늘었다. 또한 2만9000대였던 자가용 등록대수는 2003년 4월에 1000만 대를 돌파하였다. 인구 5명당 1대꼴로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1977년 당시 경제기획원 金在益(김재익) 국장이 운전수가 딸린 「포니」를 타고 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모습이지만 그때 수준으로는 포니가 고급 승용차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만 해도 「마이 카」라는 단어는 중산층에게 거의 「마이 홈」이라는 말과 맞먹을 정도로 승용차가 귀했다 <표 9>.
요즘 청소년기의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 바로 컴퓨터를 이용한 게임, 채팅 때문이라고 하니 우리 생활에 미치는 컴퓨터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만큼 「잘 사용하면 약이요,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컴퓨터 보유가구는 1997년 29%에서 2002년 60%로 2배 증가하였다 〈그림 6〉.
컴퓨터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2001년 58.7%에서 2002년 63.0%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 중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2001년 52.9%에서 2002년 59.4%로 늘어났다 <표 10>.
이용 목적별로 보면 게임 60.6%, 이메일 59.5%, 정보검색 34.6%, 교육 28.3%, 여가 활동 27.7%, 직장업무 수행 21.8%, 예약·물품구입 14.0%, 채팅 12.4%, 구직활동 5.0% 순이다 〈그림 7〉.
하지만 응답자들은 윤리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응답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채팅도 발표된 수치보다는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린 시절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었다. 먹을 것이 많았고 특히 햅쌀로 밥을 해먹는 그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가. 풍년이 든 해이면 동네 사람들이 꽹과리, 장구 등을 치며 축하하는 행렬이 그렇게 흥겨울 수가 없었다.
농업의 GDP 비중 4% 이하로 줄어
그때 길게 늘어뜨린 깃발에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이 천하의 근본」이라는 이 글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1970년에는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종사자가 전체 산업 종사자의 절반에 달하였으나 30여 년 만인 2002년에는 10% 수준 이하로 줄어들었고,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은 35.3%에서 71.5%로 2배 정도 늘어났다 〈표 11〉.
「농림어업」의 국내총생산의 산업별 비중은 1970년 27.1%에서 2002년에는 4%로 떨어진 반면,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은 50.2%에서 66.4%로 늘어났다 <표 12>.
정리해 보면 1970년에는 산업종사자의 50.4%가 농림어업에 종사하면서 국내총생산의 27.1%를 생산했는데, 2002년에는 10% 미만이 종사하면서 국내 총생산의 4%를 생산하고 있다.
경제개발이 시작되던 1960년에 32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은 2002년에는 1628억 달러로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수입도 3억4300만 달러였으나 2002년에는 152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표 13>.
미래의 과제들 광복 이후 60년, 본격적인 근대화를 진행해 온 지 40년, 대한민국은 뿌리부터 변화했다. 革命(혁명)이라는 표현 외에 더 적합한 표현은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또 다른 60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변화는 어떤 것일까.
새로운 세기에는 사회면에서 급속한 고령화와 低출산이, 국내 산업면에서는 정보화기반의 지식산업의 부상이, 그리고 국제 경제면에서는 세계경제와의 긴밀한 통합이 진행될 것이다.
이 가운데 「급속한 고령화와 低출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문제점은 심대하다. 인구문제는 나라의 장래가 걸린 문제다. 이 문제 해결에 한 세대가 걸린다고 할 정도로 장기적인 숙제다. 자동차가 방향을 바꿀 때와 달리 비행기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목표지점 수km 앞에서부터 서서히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인구문제는 1~2년 사이에 추세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10~20년을 거치면서 서서히 바뀌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인구통계가 이미 우리에게 명확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으므로 당장 문제해결에 착수해야 한다.
고령화·低출산 대비책 시급하다 급속한 고령화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영양 섭취와 위생상태가 좋아지고,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됨으로써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 하락에 따른 젊은 세대의 감소도 고령화를 부추기는 큰 원인 중의 하나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하고, 생산연령 인구의 노인부양 부담이 가중된다. 또한 노동력의 고령화로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노인과 젊은 세대 간에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효약」은 없다. 다각적인 접근이 시도돼야 한다. 가족과 사회에서는 노인들의 역할 상실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체 의식을 배양하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노인에게는 재취업과 노후 연금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소외감과 고독에 빠지지 않도록 지역사회활동, 봉사활동, 여가활동 등에 참여하는 사회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 당장 문제해결에 착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령화가 초래한 부작용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출산육아의 기회비용 상승, 여성 경제활동 참여 증대, 육아를 분담할 가족 네트워크 미약, 150만 명에 이르는 육아수요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탁아시설, 그리고 이혼의 증가로 인한 가족의 해체와 주거비 및 교육비 상승…. 모두가 출산율 저하를 초래하는 요인들이다.
低출산율이 주는 경제·사회적 영향은 노동력 부족과 노동 생산성 저하, 소비·저축의 감소 및 경제 성장률 둔화, 삶의 질 저하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低출산율이 심화되면 대학 지원자의 부족으로 대학이 문을 닫고, 국방인력 확보가 어려워 여성이 군대에 가는 일이 올지 모른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높이면서,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우리에게 안겨졌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책제안으로는 출산수당 및 양육수당을 지급하고, 일하는 어머니를 위한 탁아시설을 늘리고, 다세대 가구에 대한 세금감면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미혼·기혼 家口의 세율 차등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늙어서 믿을 것은 자신의 예금통장』 지금까지 부모들은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자신의 노후를 자녀들에게 의탁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자식보험」이라고 하자.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자식보험에 노후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세태이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회가 노후를 책임져 주는 「사회보험」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이 사회보험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회보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재정의 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지금보다 두 배, 세 배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선진국은 조세 부담률이 40~60%에 이르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은 22% 수준이다. 우리의 老後를 국가에서 책임져 주기를 원하면서도 그러기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아마 모두 반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자기보험」, 즉 자기 자신이 저축하여 대비하는 방법뿐이다. 「늙어서 믿을 수 있는 건 통장과 늙은 고양이뿐」이라는 서양 속담처럼 이제 스스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50代는 「낀 세대」 지금의 50代를 「낀 세대」라고도 한다.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한다. 그간 오랫동안 공들여 부어온 契(계)가 이제 내가 곗돈을 탈 차례가 됐는데 그만 깨진 꼴이다.
20~30년이나 되는 老後를 餘生(여생: 全생애 중에서 여분으로 남은 기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찬란한 황혼, 아름답고 귀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갈수록 평균수명은 길어져 노인들은 늘어나는데, 젊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아 노인을 부양할 세대는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국가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큰 문제이다.
한국의 생명표를 만드는 통계청장으로서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했다. 해답은 정책 당국과 독자 여러분들이 함께 찾아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