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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스크랩 [연재소설] 恨 1부 -모가지가 없다.- 1회
최석영 추천 0 조회 79 07.06.29 11:1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한(恨)


                                                                                                             -최석영-


1부 모가지가 없다.

 


연이는 찢어질 것 같은 전화벨 소리에 의식을 열었다. 간단히 리포트 형태로 몇 자 적어서 내면 될 줄 알았던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성폭력 비해 사례] 원고가 풀리지 않아 밤새 끙끙대 이제 막 잠이 들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의식은 깨었으면서도 눈은 떠지지 않았다. 가늘게 뜬 눈 안으로 ‘고선배’라는 글자가 깜빡이며 들어왔다.
대학 선배인 고일령은 D일보 사회부 기자다. 대학시절부터 연이를 짝사랑 하며 쫓아 다녔고 10여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연이는 고선배에게서 선배 이상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와의 관계는 늘 사무적이고 평 이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오랜 세월을 부적절하고 애매한 관계가 지속되는 까닭은 악어와 악어새  처럼 서로의 필요성 때문이다. 고일령은 연이 곁에 있어야 하고 연이는 고선배가 물어다 주는 사건사고들을 미스터리 물로 가공해 삼류잡지사에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이는 삼류잡지 미스터리 작가지만 꿈이 있었다. 아가사 크리스티, 셜록홈즈 황유석 같은 추리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다. 그 꿈을 위해서도 고선배라는 존재감은 연이에게 크다.
이 시간 고선배의 전화라면 술주정 아니면 큰 사건이다. 어떤 전화건 연이로선 피하지 못할 전화라 가물가물 꺼져가는 나락을 붙잡고 전화를 받았다.
“응, 고선배.”
“야 지금 당장 이리로 와!”
지지직거리는 잡음 속 저 멀리 고선배의 들뜬 소리 그리고 뭔가가 타다닥 거리며 두들기는 소리가 몽롱한 의식저편을 때린다. 고일령 선배가 폭우를 맞으며 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친 것은 그때다. 의석 저 밑바닥으로부터 당겨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응.....?”
“폭우로 산에서 실종됐던 사람과 함께 사람 뼈가 무더기로 나왔어.”
“...........?”
“일단 문자로 주소 찍을 테니까 현장에 와서 들어. 나도 지금 뭐가 뭔지 감이 잘 안 오는데 사람 뼈는 사람 ?데 해골들이 없는 사람 뼈들만 더 글 거려.”
고일령 선배는 베테랑 기자다. 그런 기자의 목소리가 흥분 돼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보통 사건이 아니다. 해골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죽여서 머리만 잘라내고 버렸다는 얘긴데.......
뚜 뚜 뚜 뚜.
전화가 끊겼다는 신호음이 연이를 일으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 어둠속에서 불빛처럼 빛났다. 깨끗하게 맑아진 의식은 벌써 사건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잠에 취한 눈은 뿌연 안개속이다. 손바닥으로 볼을 두들기며 잠을 쫓았다.
스프링처럼 튕겨 침대에서 내린 연이는 속옷을 주워들었다. 또렷한 정신과는 달리 의식을 깨우지 못한 몸이 브래지어 코크를 채우지 못하고 헛손질을 하다가 고리를 채웠다. 그러다 어쩌면 이번 취재가 장기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쳤다. 겨우겨우 입었던 속옷을 다시 벗어 던지고 서랍장에서 스포츠웨어 속옷을 꺼내 입었다.
언제나 들고 떠날 수 있게 싸진 여행 가방에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사체유기? 집단 살인?’ 그렇다면 의외로 장기적인 취재가 될지도 모르고 형사들과 함께 잠입이나 미행 잠복 같은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골이나 산속 섬 같은 곳이라면 간단한 기초화장품과 생리대 같은 여성 필수품도 여분으로 더 챙겨야 했다.
때문에 연이는 짐을 챙기는 동안 고선배에게서 주소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주소는 오지 않았다.
새벽 3시 3분, 새벽길을 운전하려면 아무래도 커피 한잔을 마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진하게 탄 커피에 찬물을 부었다. 시간에 쫓기고 취재에 쫓기면서 생긴 습관이지만 이렇게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여간 간편한 게 아니다.
후루룩 거리며 커피를 마시며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그 때 핸드폰이 문자가 왔다고 띠리릭 거리자 네비게이션을 켜고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한 연이......
“전북 남원시............”
주소를 입력하던 연이가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설마? 그러나 그 설마는 사실이었다. 분명 고선배가 핸드폰에 찍은 주소는 눈에 익었다. 어렸을 적 추억이 아련히 담겨있는 곳, 선영에 아버지를 모신 곳, 그 고향 주소 주소였다.
“운봉읍 동천리 산 5896번지........”
연이가 알고 있는 동천리는 운봉읍 시내 중심가다. 그렇기 때문에 유골이 집단으로 나올만한 야산 같은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법정 주소지는 동천리 이지만 몇몇 자연 부락이 동천리에 속해 있었음을 기억해 낸 인이가 네이게이션을 꺼 버렸다. 어차피 아는 길인데다 전주쪽이 아니라 대전에서 함양으로 다시 운봉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기 때문이다.
‘고선배는 내가 전라도 남원 출신 이라는 것을 몰랐던가?’
새벽, 텅 빈 위장의 공복이 커피가 훑었다. 익숙한 고속도로 길, 대전인터체인지에서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옮겨 타고 다시 함양인터제인지에서 88고속도로 갈아타서 인월지리산 IC에서 내려 다시 운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운봉에 도착하자 7시가 조금 넘었고 지난 밤 폭우로 해서 황산의 물은 도로 가까이까지 출렁거렸다.
운봉은 동쪽과 서쪽에 하천이 있고 그것은 다시 황산에서 합해져서 인월과 함양을 거쳐 섬진강으로 들어가는 데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흐르는 빗물은 상당한 유속을 내며 바위 굴러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 농부 아저씨가 도로변에 서서 물에 잠긴 논을 보고 있었다. 연이의 시선도 농부를 따라 물에 잠긴 논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 서천(西川)쪽에서 내려온 물이 옥계동 앞 논들을 삼켜 버렸고 물에 잠긴 벼들이 고개를 내밀고 아우성치고 있었지만 성난 물살에 잠긴 논에게 농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연이는 농부에게 물보라를 뿌리지 않기 위해  속도를 줄였지만 어느 정도 물 뿌리는 것을 피할 길은 없었다.
물에 잠긴 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농부 아저씨를 지나 소석리 앞을 지나 자동차 정비소와 다방이 있는 운봉 진입로 앞 남원식당에 고선배의 차가 보였다.
‘남원식당’
이 집에는 추어탕이 맛있었다. 선산은 있지만 연고가 없는 탓에 성묘를 와도 누구 하나 찾아볼 사람이 없던 연이는 성묘 올 때마다 이집에 들려 추어탕을 먹고 갔었다.
“연이야.”
“고선배.”
취재 수첩에 뭔가를 적던 고일령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연이를 손짓하며 불렀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시골 식당에서 큰 소리로 부르고나니 멋쩍은지 벙긋 웃으며 자기 옆의 의자를 밀치며 웃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내가 이곳 출신이라는 거 고선배는 정말 몰랐어요?”
“뭐라고? 네가 이곳 출신이라고?”
“내, 저 이곳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고 아버지를 이곳 선영에 모셨잖아요.”
“그래......? 전혀 몰랐는데, 하긴 알 기회가 없었지. 너는 비밀을 만들어 놓고 내 접근을 막았으니까.”
“.......... 여기서 몇 발자국만 걸으면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요.”
“그래...... 그러면 명산리에 대해서 좀 알겠네?”
“아뇨........ 어렸을 때 전학을 갔기 때문에 어렸을 때 기억 외에는 이곳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요. 아버지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곳에 모셨고.”
“그래........”
고일령이 반찬을 연이 앞으로 밀어 놓았다. 때때로 기자다운 날카로움을 보이면서도 연이에 대한 연정이 끓어올라 다시 부드럽고 상냥한 태도로 돌아와 새벽길을 달려온 연이에게 밥 먹기를 권하고 있었다.
10여년을 한 결 같이 정성을 쏟는 고일령을 바라보는 연이의 마음이 편치 않다.  그 정성에 감흥해서라도 마음을 열어야 하건만, 아니 하다 못해 몸이라도 열어 고일령에 대한 고마움을 덜어야 하는데 또 연이의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고일령이 밀어 놓는 반찬을 애써 외면한 연이가 추어탕에 밥을 말았다.
“이번 사건이라는 게 어떤 거예요?”
“얼마 전 포도밭에 가던 여중생이 실종된 사건 있었지? 이곳에서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어. 그런데 포도밭 소녀와는 달리 이곳의 실종 사건이 크게 다뤄지지 않은 것은 피해자 쪽에서 절대 비밀을 요구했기 때문인데 이번 장마 비로 산사태가 나면서 실종됐던 여학생이 발견 된 거야.”
“그런데 그곳에 다량의 유골이 있었다.”
“그렇지.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여학생의 머리가 없다는 거야.”
“머리요?”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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