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봉-용소골(998.5m; 경북울진/강원삼척) *일 시 : 2005. 6. 18~19(주말무박산행), 제32차(20명), 날씨(구름 많이 끼고, 오후부터 갬) *코 스 : 덕구온천-고개-민씨 묘-능선-정상-응봉 정상-능선 -용소골 제3, 제2, 제1용소-덕풍 마을-풍곡리 주차장 *소 시 : 오전 4시 31분 ~ 오후 1시 20분 완료 → 18Km, 8시간 51분소요 (용소골 길이 14Km)
1,000m에서 1m 빠지는 응봉산은 여러 계곡들을 품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울진 쪽의 온정골과 삼척 쪽의 용소골이다. 온정골은 원래 노천온천이 있었으나 지금은 덕구온천으로 개발돼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친 명소로 됐다. 또 응봉산 서북쪽의 삼곡(버릿골-용소골-문지골) 중에서 용소골은 응봉산과 연결해 산행과 트레킹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14Km의 대장정 코스다. 일찍이 정감록은 壬亂 때부터 피난처로, 토정바결의 이지함도 종자가 귀해지면 찾아가라던 그 유명한 三豊(풍곡-삼방-덕풍)이다. 1950년 6월 한국전쟁도 이곳을 피해갔다는 덕풍-용소골의 깊이는 밟아보지 않고는 실감할 수 없다. 1999년~2000년에 걸쳐 427번 도로변의 풍곡리에서 덕풍마을을 잇는 덕풍계곡 6Km 거리를 5개의 다리를 신설해 정비를 끝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트레킹코스 길이는 짧아졌지만 산행 후 덕풍에서 풍곡리까지 도보로 나오기란 새로운 지옥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 산꾼들은 덕풍리 주민들의 일반 트럭을 임대하여 타고 나오는 는데 그 운치도 견딜만하다는 중론이다.
兩白三豊眞理 兩白은 두 가지 흰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순수한 몸과 신령한 정신이다. 삼풍은 가장 풍요하고 인간에게도 가장 많은 것이다. 맑은 공기, 순수한 물, 깨끗한 빛을 뜻한다. 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약을 남용하고 공기, 물 그리고 햇빛이 오염되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삼풍은 자신을 죽이면서 다른 생명들을 살려낸다. 물은 하늘에서 이슬로 내려 강물이 되고 다시 모여 더러운 것을 바다로 가져간다. 공기는 나쁜 것을 어디론가 날려 보내고 빛은 병균들을 죽인다. 놀라운 자연의 섭리다. 값도 없고 비싸지도 않는 것이 이처럼 효과가 있으니, 공평무사는 이를 두고 한 말인가 보다. 요즘에 사람들은 공해 때문에 아우성이다. 가장 많은 물과 공기 그리고 빛이 오염되었으니 모두 죽을 지경이다. 삼풍이 오염되면 지구는 자정능력을 잃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가장 많은 것도 삼풍이므로, 지구에 있는 삼풍이 오염되면 사람도 정화할 능력이 상실되어 병들게 마련이다. 이곳 용소골의 삼풍과 격암유록의 삼풍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옮겨본 것이다.
지난 4월 16~17일 속리산 서북능선산행 이후 2개월 만에 맞은 무박산행이다. 밤이 주는 여유와 회원들의 표정을 상상하며 버스에 올랐다. 최영복 이사님께서 안내한 삼천리산악회원 김윤종-김영익-최백호씨와, 3일전 전화를 통해 예약한 검단(불로동) 거주 정영복씨 등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그리고 약속대로 김성현 기사님의 內子와 令愛가 동승했었다. 밤 10시 13분 화곡역. 예상과 달리 정영애씨 얼굴이 보였다. 지난 4월 3일, 4월의 크리스마스를 맞았던 만수-덕주봉 이후 만 2개월 보름만의 참여다. 그 동안 치료상황이 좋아졌다는 전언은 있었지만 표정이 전보다 더 여유롭게 보였다. 산행의 균형미를 자랑하던 그네의 체형에 무게가 조금 실려 있었고, 40대 중반을 지나는 주부의 풍미가 돋보였다. 그것은 연륜을 의미하는 작은 동요일 것이다. 약속한 정천우-이준연 교장 내외분의 얼굴도 있었다. 예약했던 이춘옥씨를 대신해 오태식씨가 보였다. 개인의 신체적 사유로 인해 부득이 불참한다는 전언과 함께 미안한 심정을 대신한 가시오가피주 1Box와 안주(족발)를 보내왔다. 나로서는 이래저래 폐를 끼친 결과가 되어 더욱 힘든 마음이었다. 예약이 없었던 오태식씨는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일행들을 배웅했다. 이튿날 오후 이춘옥씨의 희사품은 7월 24일 강화도 마니산 천렵 당일에 소비하기로 결정했다.
긴 밤 여행이다. 태백시에 들어서 통리로 넘어가는 이정표를 찾지 못해 장성방향으로 약 4Km 거리를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태백시 주 간선도로인 왕복 4차선 38번 도로에서 만난 고라니 한 마리. 어쩌자고 새벽 대로에 나타났는지, 자동차를 피하지 않고 부나비처럼 자동차 불빛 안으로 돌진하는 생리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산짐승의 습성을 한탄하기 직전에 발생한 突發사고였다. 녀석은 뒷바퀴에 부딧쳐 도로 중앙에 오그리고 앉아있다. 다행히 생명은 붙어있었지만 녀석의 앞날의 불투명함에 마음이 어둡다. 새벽잠을 쫓으며 운행코스에 신경을 쓴 몇 사람을 제외하곤 급작하게 전개된 현장상황을 알 리 없다. 낭패스러운 상황을 묵살하기로 하고 현장을 떠났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이 무슨 불길한 조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고, 이를 떨치려고 잠시 진저리를 쳤다. 서로가 공감한 相避심정이었지만 찜찜했던 마음을 안정시키고 평상심으로 돌아가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한 생명의 생사가 좌우하는 그런 장면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깊은 밤의 우울은 쉽게 벗을 수 없었다. 그 이후 통리를 지나 해발 840m 신리재를 넘어가는 차로에서 고라니와 노루를 각각 한 마리씩 목격했다. 방어운전도 있었지만 자동차가 왕래하는 도로를 막무가내로 횡단하는 초식동물들의 무모한 습성에 소름이 끼쳤다. 태백시 도로에서 겪었던 아픔이 빨리 희석되기를 마음속으로 몇 번을 곱씹으며 기원했다. 그리고 일체의 혼돈을 다잡으려는 안간힘도 뒤따랐다. 인간문명과 도시의 발달로 동물의 생존입지가 그만큼 좁아진 인간들의 원초적 잘못을 두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연은 누구나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것이 식물이건 동물이건 또는 무생물이건 간에 우리는 인정해야한다. 자연공간의 獨食은 다른 것의 생존입지를 거부하는 타살행위이다. 공유와 공존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꽤나 길게 이어갔다. 깊은 밤이 가져다주는 회한은 용소골의 물깊이처럼 호를 그리고 가늠조차 어려웠다.
동해안을 한눈에 내려다 뵈는 해발999m 낙동정맥의 허리에서 약간 북쪽으로 비킨 응봉산을 향한 등정이다. 들머리는 온천장 뒤편 폐광터를 우측에 끼고 덕구온천 들머리인 A코스 옛 재능선길 고개다. 원목으로 턱을 만든 계단을 오른다. 새벽 3~4시에 출발하면 일출시간에 맞춰 정상에 닿을 수 있었지만 밤차운행이 가져다주는 지리적인 착각과 미숙으로 제 시간에 댈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무박산행 출발시간을 밤 9시로 앞당겨 조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도산행일 때는 그 양상이 더욱 절실하다는 귀결을 얻었다.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 10분 내외로 예상했다. 여명이 걷히는 희뿌염한 시각이다. 헤드랜턴이 없어도 가능한 오름이다. 오늘 일출시간은 5시 11분이다. 정상에서의 일출 시간을 놓치고 조망이 편안한 어느 안부를 향한 상쾌한 행보다. 시원한 여름 새벽바람이 마음을 흥건하게 적신다. 낯익은 능선 길은 뒷동산처럼 아늑한 분위기다. 초입부터 송림이 우거진 수평능선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근하게 경사를 높여간다. 솔잎이 깔린 바닥과 노송들이 뿜는 새벽솔향기를 맡으며 걷는 어둔 새벽숲길은 생동감이 넘쳐 좋다. 송림의 대부분은 금강송(속칭 적송)이 주류다. 완만한 능선길에서 만나는 우람한 금강송(적송)의 미끈한 팔등신 미인의 자태가 새벽이 걷히는 여명 속에서도 선연하다. 새벽 4시 49분. <정상 4,670m, 울진군 →>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50Cm 정사각형 돌기둥이 박혀있는 이정표가 정상에 이르기까지 요소마다 보인다. 아침산책길 분위기다. 좌측의 온정골 계곡과, 우측의 덕구채석광이 있는 계곡을 감싼 651봉 지능선이 수해에 덮여있다. 보이는 지능선이 선명하다. 4시 53분. 삼거리에서 우측 너른 수평길을 따른다. 멀리 11시 방향으로 응봉산 정상이 갸웃하고 장다름봉우리가 호위하고 있다. 5시 1분. 우측에 민씨 묘소를 지났다. 예전에 없었던 묘비석(갓을 씌운 비석)과 망부석, 그리고 둘레석을 두른 민씨묘소는 후손들이 대대적인 보수를 마친 모양이다. 죽어서도 호강하는 민씨는 후손복도 많은 사람이다. 좌측방향으로 온정골 원탕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우측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다. <정상 3,570m →> 굴참나무 노거수가 돋보이는 경사도가 있는 오르막이다. 개옻나무가 송림과 참나무류 틈새에 끼어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5시 10분. 예보대로 이제 일출시간이 거의 임박한 시각이다. 표석(갓이 없는 묘비) 하나 없이 잔디도 벗겨진 붉은 무명무덤이다. 민씨묘소와 사뭇 대조적이다. 경사가 다소 급하게 변한 오르막이다. 새벽 경쾌하게 우짖는 산새소리가 천국의 산책로일 성싶다. <정상 3170m →> <119 구조요청, 응봉산-5, 울진군수 울진소방서장> 너른 등산로가 끝나고 소로로 변했다. 소나무와 떡갈나무 혼합림 지대다. 1분 뒤 전망하기 좋은 제1헬기장에 올랐다. 오늘은 海雲이 덮여 정상적인 일출은 불가능하다. 엘리트산악회소속 회원 20여명이 헬기장을 차지하고 새벽 해장술(막걸리)을 나누고 있다. 걸쭉한 탁주냄새가 새벽을 흔들며 역하게 코를 찌른다. 5시 13분. 두 번째 무명무덤 지대를 지났다. 새벽기온은 이미 전신을 흥건하게 적셔버렸다. 급경사 오르막이다. 무명무덤 1기는 조금 전 무덤보다 더 초라했다. 볼품은 고사하고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행색으로 보아 무연고자 무덤일성 싶다. 2분 후 한 스텝 오르면 금강송이 군락을 이룬 전망쉼터가 나온다. 논스톱으로 통과했다. 다시 2분 후 고도를 높이며 한 스텝 오른 쉼터다. 爽風이 몰려온다. 떡갈나무-상수리나무-노송과 꼬리진달래 관목이 꽃을 피운 지점이다. ‘참꽃나무겨우살이’가 꼬리진달래의 原名이다. 경북-충북-강원도-평북 등 양지바른 산지에 나는 樹高 1~2m의 상록관목이다. 6월 중순을 전후로 깔때기모양의 화관에 총상화서를 보이는 흰 꽃 무더기가 이채롭다. 특히 척박한 바위틈을 비집고 자란 꼬리진달래의 생명력이 敬畏롭다. 5시 25분. 능선 오르막이다. 다시 한 스텝 오른 쉼터엔 어른 팔뚝 굵기의 어린 소나무들이 우거진 지대다. 진달래와 철쭉 잎이 무성하다. 3일 후 22일 수요일은 夏至다. 무상한 세월은 어느새 금년도 절반을 꺾고 있다. 탄하 스님의 말씀처럼 “하지를 경계로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는 계절이 여름이고, 땅의 기운이 하늘로 뻗치는 계절이 겨울”이다. 말하자면 동지부터 하지까지는 하늘의 기운이 성한 때라면 이즈음부터는 땅의 기운이 성한 때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위대한 여름도 사랑하지만, 겨울을 더 사랑한다. 그렇다고 여름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은 내겐 제2의 보너스로 자랑스런 계절이다. 한 스텝 오르면 미끈환 금강송 군락이 자리한 수평능선이 시작하는 작은 안부다. 평탄한 능선이 한동안 이어진 후 송림이 우거진 솔밭능선을 맞는다. 올곧게 자란 미끈한 몸매의 금강송은 언제 봐도 육감적이다. 다시 오르막이다.
<정상 2320m →> <119 비상연락처 119구조요청 응봉산-8> 정상이 눈썹 위에 걸쳐 있다. 우측 산록 아래 깊은 골짜기를 너머서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울진을 가르는 힘찬 근육질 道界 능선이 동북방향으로 뻗어간다. 진달래 나목이 군집을 이룬 지대다. 다시 한 스텝 오르면 암릉이다. 암벽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만발한 꼬리진달래의 집념을 한참동안 응시하다가 카메라에 담았다. 연록색 이파리가 새벽공기를 신선하게 물들인다. 5시 38분에 만난 젊은 친구다. 참여연대라는 사회단체소속원 중 산악동호인들끼리 모여 이곳을 찾았다는 얘기다. 동행인이 되어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를 나누며 올라갔다. 그들은 우리보다 빠른 4시에 들머리를 통과했다고 한다. 배낭을 맨 그는 아랫배에 카메라를 넣은 간이주머니 하나를 더 달고 있었다. 둔중하게 보이는 그는 디지털 카메라에 무엇인가 열심히 담고 있다. 오후 5시 45분. <정상 1,820m →> 상대적으로 된 오르막이다. 3분후 한 스텝 오른 노송이 하늘을 가린 쉼터에 올랐다. 이어 금강송이 우거진 수평능선이다. 5시 55분. 무덤이 자리한 쉼터다. <정상 1.6Km> 된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두 번째 헬기장에 오른다.
시멘트로 너른 바닥을 포장한 헬기장이다. <정상 1,320m →> <119 비상연락처 응봉산-11> 후미 일행들을 기다리며 숨을 고르는 지점이다. 드넓은 헬기장 공터에 제철이면 주변은 온통 노란 마타리가 지천으로 깔렸던 2년 전 여름을 기억했다. 무상한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는 헬기장에서 배낭을 내리고 준비한 냉동수를 마시는 여유를 가졌다. 헬기장에서 정상방향 둔덕 위에 작은 케언이 있는 지점에서 최영복이사님과 정영복씨가 쉬고 있다. 마치 형제처럼 다정한 모습이다. 깨끗해야할 하늘은 구름에 가려 음울하다. 그러나 너무나 시원한 산바람은 정상이 지근거리임을 암시하고 있다. 잠시 정상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이 모두 조망하는 여유를 가졌다. 전신에 젖은 땀을 훔쳐내기에 바빴다. 잠깐의 숨돌리기 시간을 보내고 정상을 향한 오르막을 향해 일어섰다.
땀이 많아지는 계절이 왔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속옷에 땀 냄새가 배이기 쉽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에는 땀 냄새로 인한 특유의 노인 냄새가 심해지기 쉬운 만큼 주의해야한다. 2005년 <사학연금>지 6월호에 의하면 노인 냄새의 주범은 불포화 알데히드인 ‘노네날’이 라는 물질이라고 소개했다. 나이가 들어 몸의 모든 신진대사 기능이 약해지면 체내 노폐물이 빨리 분해 배출되지 못함으로써 몸 안에 이물질이 쌓여 냄새를 풍긴다. “불포화 알데히드인 노네날은 피하지방 속의 팔미트 올레인산이라는 불포화 지방산이 분해되면서 만들어 진다. 젊은 사람에게는 없고 40대부터 나이가 들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몸에서 주로 어떤 냄새냐에 따라 의심 되는 질병도 있다. 우선 요실금이나 전립선비대 같은 질병으로 소변을 조금씩 지리는 경우에는 소변 냄새가 옷에 배어 노인 냄새들 만들기도 한다. 여자 노인에게 흔한 요실금은 출산을 많이 할수록, 또 고령일수록 요도괄약근이 늘어져 시도 때도 없이 소변이 새는 병. 조금만 힘을 주거나 기침을 하는 경우, 크게 웃는 경우에도 소변이 새곤 한다. 자식들에게도 말을 못하고 증상을 키우는 이들이 많다. 남자 노인의 경우에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하룻밤에 3~4번 이상 화장실을 드나들거나 소변 줄기가 약해지고 소변을 봐도 시원치 않다면 전립선 비대증이 의심된다. 심하면 요도가 막혀 응급실을 찾아야 할 정도로 심한 통증을 느낄 수도 있으므로 적절한 약물 또는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면 당뇨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림을 할 때에 시큼하면서도 달큼한 냄새가 난다면 당뇨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다. 신장이 나쁠 때는 말 할 때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배설이 잘 안 되어 혈액이나 타액 속의 요소 농도가 증가, 일부가 암모니아로 변해서 생기는 증상이다. 또 숨을 쉴 때 비린내가 나면 폐질환이 의심된다. 복용하는 약 때문에 냄새가 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를 복용하면 곰팡이내 비슷한 남새가 난다. 하지만 이렇게 체내 노폐물이나 질병 등의 의학적인 원인보다 때로는 몸을 자주 씻지 않거나 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는 등 생활습관이 더 큰 원인인 경우도 많다. 땀을 흘린 다음에도 씻지 않거나 소변이 묻은 옷을 바로 갈아입지 않은 등의 습관이 그것이다
땀냄새는 역시 노인 냄새의 한 원인이다. 나이가 들면서 배설 기관인 신장 기능이 약해지면 소변보다 피부를 통해 배출되는 노폐물의 양이 많아지는데, 이때 배출되는 땀은 보통 성인의 땀보다 냄새를 풍기는 독소의 양이 많다.
실제로 술. 담배를 적게 하고, 채식 위주의 식습관, 매일 적당한 운동을 하는 노인의 경우에는 그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평소 과식을 자주 하거나 분해되기 힘든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섭취하고 과음. 흡연 습관이 있는 노인은 냄새가 심한 편이다. 적당한 술은 혈액 순환을 도와주지만 과음을 하면 독소가 많이 발생해 몸에 남겨진다. 운동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무리하게 했을 때도 피로물질이 몸 안에 쌓여 냄새의 원인이 된다. 또 부부가 함께 사는 경우보다 혼자 사는 노인이 냄새가 많은 편이다. 송은숙 건강전문 라이터의 기고에 의하면, 노인 냄새를 줄여 상쾌한 노인이 되고 싶다면 다음 기본수칙만 잘 지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권고다.
1. 몸을 자주 씻는다. 2. 옷을 자주 갈아입는다. 3. 이불을 자주 세탁한다. 4. 양치질을 철저히 한다. 5. 물을 자주 마신다. 6. 실내 환기를 자주 한다.
<정상 820m →> 진달래관목림과 송림이 어우러진 정상을 향한 마지막 오르막이다. 이어 편안한 수평길이다. 최근 들어 과음 후 산에 오르면 그 후유증이 즉각 나타난다는 최이사님은 스스로 술에 대한 절제가 필요하다는 강변이다. 나 자신도 제어를 못하는 게 술좌석이다. 대부분 애주가들의 벗어나기 힘든 술버릇에 힘겨워하며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곤 다음날 자책하는 과정도 따르는데 이는 누구라도 비슷한 공통분모다. 그냥 웃으면서 고작 뱉는 결론은 각자가 조심하자는 말뿐이다. 6시 22분. <정상 330m→> 표지를 확인하며 步速을 조절했다. 전언에 의하면 오늘은 후미리더 홍기오 대장님의 수난이라 한다. 컨디션 조절의 실패인가, 아니면 모처럼 부부산행을 맞아 즐거움에 취한 탓인가. 대신 정재근 감사님과 왕언니의 컨디션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전언이다.
6시 25분. 정상 20m 아래 헬기장에 배낭을 내렸다. 정상에 오르는데 1시간 58분이 소요됐다. <응봉산 998.5m 울진군> < > 정상 공터 중앙에 박힌 정상표지석과 그 후면에 새긴 설명문에 눈길을 주었다. 후미일행과 합류하기 위하여 약 25분을 기다렸다. 정상아래 헬기장에서 장엄한 동해 일출을 맞으리라는 기대는 이미 출발당시부터 불가능했다. 일기불순으로 동해조망을 망친 경우가 허다했지만 오늘만은 하늘의 축복을 받고 싶었던 욕심은 욕심으로 끝났다. 당시 정상에서 일출을 맞았던 산꾼들의 요란한 함성이 이명이 되어 귓전을 맴돌고 있다. 세파에 물든 모든 紅塵과 그 찌꺼기를 시원한 조망만으로도 배설하는 기쁨을 가졌다. 마음만은 덧칠할 것 없는 통쾌한 현재다. 응봉의 모습이 막 비상하려는 매의 형상으로 우리말로는 ‘매봉’이라고 하는데 한자표기로 매응(鷹)자를 써서 鷹峰에다가 山자를 붙여 통칭 응봉산이라 한다. 전국적으로 응봉이라 부르는 곳은 수십 여 곳이 있다.
날씨가 바쳤더라면 멀리 불영계곡을 안고 있는 백암산-통고산, 서쪽으로 함백산-태백산 등이 훤하게 조망했을 것이다. 동쪽의 동해가 회백색 해운에 덮여있다. 경북 울진을 지나 끝없이 남쪽으로 뻗은 불투명한 정맥을 머리로 그려볼 뿐이다. 용소골을 깊숙하게 깔아두고 솟은 응봉산 줄기와, 맞은편 줄미등봉과 형제봉을 하인처럼 앞세운 용인등봉-묘봉-면산 줄기사이에 박힌 989.9봉을 중심으로 U자형 산세가 일부 들어온다. 지난 4월 계획했던 용인등봉-묘봉이 퍽 가깝다는 느낌이다. 장엄한 산줄기와 인간의 욕심만큼 깊숙하게 패인 계곡들이 조금씩 속살을 보이고 있다. 정상에 서면 마음은 항상 梵天의 세계에 머문다. 정상에서 대오를 정비했다. 후미까지 모두 집결한 시각은 6시 55분이었다. 00산악회원 수십 명이 헬기장 공터를 차지해 아침식사를 즐긴다. 잿빛 하늘은 굵은 빗방울을 조금씩 흘린다. 마음이 불안하다. 새벽의 고라니사건도 그러하지만, 쌍룡화재보험 김근옥팀장의 부재로 이번 보험도 제외되었고, 날씨까지 오락가락하니 불안의 3중주다.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심사는 불편하고 좌불안석이다. 괜스레 동료일행들에게 날씨걱정을 타령처럼 뱉었다. 이구동성으로 염려없다는 응답이다. 날씨상황이 어려우면 용소골 계곡산행을 저버리고 다른 능선산행으로 변경해야할 입장이다.
정상에서의 기념촬영을 마치고 용소골을 향해 남쪽능선으로 내린다. 이제 오늘 일정의 하일라이트이자 트레킹코스인 신비의 용소골로 내려간다. 정상 바로 밑 능선바닥은 낙엽부식토가 두텁게 깔려 푹신푹신하다. 7시 17분. 정상에서 10여분 거리에 소형 현수막이 걸린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 삼거리다. < 응봉산 17번 지점, 119구조요청 위치표시 지점 ←원탕 가는 길(노천온천) ․ 덕풍 가는 길(강원도)→ 울진군수, 울진소방서장 > 예서 능선을 직진하면 낙동정맥 삿갓재에 이르고, 우측길은 덕풍 용소골로 내려가는 작은당귀골 枝계곡 길이다. 본디 정맥을 따라 903.8봉을 지나 서향하다가 임도를 따라 '큰 당귀골'로 내려가 제3용소를 통과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편의상 제3용소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당귀골을 택하는 게 산꾼들의 비슷한 행보다. 우측 방향에 산악회 바닥표지를 깔아두고 내려섰다. 길섶마다 이제 앙증맞게 노란 봉오리를 내민 원추리가 숱하게 보인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사람의 마음을 졸이는 시험같아 발길만 분주하게 이끈다. 노송군락과 사스레나무, 신갈나무와 떨갈나무 등 혼합림이 무성한 편안한 지능선은 차츰 가파른 내리막으로 들어섰다. 갈잎이 두터운 지능선 바닥이 미끄럽다. 산불흔적이 그대로 보이는 지점이다. 예술적이고 유감적인 곡선미를 자랑하는 고사목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7시 28분. 산불로 노목은 사라지고 어린 소나무들이 대부분인 급 내리막이다. 잠시 뻐끔하게 열린 하늘이 보이는 지점이다. 잔득 흐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일을 치를 것 같다. 솔잎이 깔린 능선이다. 벌써 4차례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늘따라 넘어지는 횟수가 잦다. 무보험인 오늘을 알고 응봉산이 주는 심술이던가? 묵직한 신뢰감이 가는 굴참나무 노거수가 침착하라는 싸인을 보내는 것 같아 잠시 멎었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무념의 상태로 한참동안 내려갔다. 松林지대를 아우른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7시 45분. 해발 515m 작은 당귀골이 끝나는 용소골 주계곡에 들어선 지점이다. 덕풍리에서 용소골을 역으로 올라 올 때도 제3용소와 작은 당귀골에서 만나는 이곳 지점에서 응봉산을 올라간다. 곳곳에 많은 리본들이 先導가 되어 착각할 일은 없다. 작은당귀골 입구엔 선두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같아선 이지점에서 30분 쯤 내려간 너른 암반지대에서 요기를 했으면 싶었지만 후미일행들이 허기를 호소한다. 양경태 대장님 등 4명이 먼저 자리를 뜬 지금이다. 잊을만하면 흘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가볍게 요기를 채우자는 합의였다. 간이식당이 있으니 ‘간이식사’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닐 꺼다. 간단하게 치르고 일어선 시각은 8시 24분이었다. 이제부터 용소골 대장정의 시작이다. 갈 길은 멀고 하늘은 불안하다. 내려가는 계곡은 가파르고 험난하다. 신경을 모으다보면 정상을 오를 때만큼 흥건한 땀이 전신을 적신다. 언젠가 만났던 제3용소는 깊이는 없고 모래가 쌓여있어 용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위험한 지점이지만 우중일 경우 안전을 위해선 접근금지가 편하다. 물론 용소골 전체기 해당되는 얘기이지만 물속을 따라 걷기 때문에 장마철이나 폭우를 피한 여름철 이 최적기다. 또는 기층이 안정된 늦여름과 초가을이라면 금상첨화의 시기다. 이제부터는 계류의 흐름을 따라가는 장장 14Km에 걸친 트레킹이다. 지금까지 쏟은 힘에 비할 수 없는 편안한 하산코스지만 만만하게 볼 형편이 아니다. 계곡 양편에 함박꽃나무가 이름그대로 함박웃음을 보이며 만발한 상태다. 암반을 오르고 내려가는 사이마다 무성하게 자란 돌단풍 잎새가 건실하다. 이미 꽃은 져버려 흰 색 꽃이 갈색으로 마른 상태다. 풍부했던 용소골 수량은 예상보다 적었다. 등산화를 벗지 않고도 渡溪하기에도 편하다. 과거엔 등산화를 신은 채 계곡을 내려갔기에 일행들에게 가능하면 헌 등산화착용을 권고했는데 예상 밖의 수량에 할 말을 잊었다. 어떤 상황에선 완만하게 흐르는 계류가 편안하다. U자나 V자형 암반을 타고 내려가는 물줄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적신다. 8시 30분. 좌측 난채골에서 흘러드는 계류와 합수지점 3거리다. 오버행 암벽 아래로 흐르는 구불구불한 계류가 水路를 이룬다. 형제봉과 줄미등봉 사이를 타고 내려오는 '난채골' 계류가 合水하는 암반지대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다. 계류가 흐르는 방향인 우측을 따라 내려갔다. 방위상 북향이다. 8시 40분. 모래톱이 있는 너른 곳에서 선두일행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라면타임이다. 이미 허기를 면한 후미 일행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늘은 제 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따가운 햇볕이 정수리에 쬔다. 수량의 감소로 계곡 가 움푹한 암반에 고인 물에는 올챙이가 썩은 낙엽을 지붕삼아 서식하고 있다. 따끈한 햇살을 찾아 가에 몰렸다가 인기척에 놀라 고인물 바닥에 깔린 낙엽 아래로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가뭄이 빚은 하나의 현상인가? 일행을 뒤에 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 오늘만큼은 자신이 선두리드를 맡고 싶다. 위험지점을 먼저 감당한 후 후미에 알려주고 싶은 의욕이다. 불길한 징조들을 희석하려는 숨은 의도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바위마다 또는 수직암벽마다 무성하게 자라는 이곳은 돌단풍 공화국이요, 천국이다. 9시. 줄미등봉에서 내려오는 능선과 교차하는 지점을 지났다. 곧이어 좌측의 '황장군터'와 우측 '큰터골'이 만나는 지점에 당도했다. 흰 바위가 있는 곳이다. 우측 큰터골에서 발원한 계류와 만나는 합수지점엔 백옥보다 흰 암반과 바위들이 잔디밭처럼 널려있다. 가히 신선이 노닌다는 암반은 부지기수다. 암반-작은 폭포-암반-작은 폭포가 반복하는 계곡이다. 깎아지른 단애와 폭포들이 즐비한 이곳은 우회로가 거의 없다. 서너 평밖에 안 되는 하늘만 뻐꿈하게 보이는 협곡은 끝없이 뻗어 내려가는 계곡의 지루함이 지리산 칠선계곡 만큼이나 감당하기 힘들다. 비록 계류의 수량은 부족했지만 우측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지류에서 흘러드는 물맛은 예상외로 달콤했다. 계류를 30여 차례 이상 가로지르는 트레킹을 흥미롭게 생각하면 발걸음이 상대적으로 가벼울 것이다. 삼천리 산악회 소속회원 3명이 차돌처럼 뭉쳐 동행하며 계곡산행을 즐긴다. 지그자그로 수없이 계류를 건널 때마다 무릎 아래는 시원하지만 가슴 위로는 땀범벅이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잿빛 구름대신 뜨거운 태양볕이 갈증을 더한다. 땀의 계절 여름은 내겐 프로운동선수처럼 체력의 바닥을 실험하는 시즌이다. 머리에서 등을 거쳐 허리 아래로 흐르는 땀을 느끼는 여름은 인고의 시간이다. 무릇 자신과의 싸움은 언제나 즐겁게 맞고 보낸다. 1일 성인이 흘리는 땀의 양은 600~700ml다. 땀은 체내에 축적된 중금속 일부(납-카드늄)도 배출한다. 오늘처럼 한 여름 긴 산행을 치를 때는 체내에 유익한 나트륨-칼륨-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동반 배출되어 소위 더위를 먹는다는 俗語처럼 긴박한 신체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때마다 필요한 영양분의 음식을 챙겨주는 여유가 절실하다.
계류 변 공터의 작은 움막이 있는 ‘사고터장’다. 옛날 벌목장이었던 이곳에서 벌목더미가 무너져 사람이 죽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벌목을 운반하기 위해 설치했던 철레인이 오랜 세월에 방치되어 깊게 산회는 됐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폭우나 장마로 물길에 쓸려 떠내려가다 장애물을 만나 그곳에 주저앉아버린 채 그대로 널려있는 상태다. 눈셈만으로도 약 30여개의 철레인이다.
암반지대다. 이중환의 <택리지> 卜居總論 溪居 편 첫 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諺曰溪居不如江居, 江居不如海居…’ 속담에 시냇가에 사는 것은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은 바닷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용소골의 계류는 이 같은 택리지의 지적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몸짓처럼 그윽하고 수려하기가 비교하는 것조차 어렵다. 제2용소를 향한 계류는 거의 V자 협곡이다. 지루한 계류여행의 계속이다. 매끈한 암반을 타고 흐르는 옥류, 비취빛이다. 보석처럼 아름답다. 잠시 널찍한 바위에 앉았다. 햇살을 받은 수면에 비취색 물비늘이 황홀하다. 물속엔 피라미 떼가 노닌다. 山紫水明의 深山幽谷에 선 지금이다. 잠시 쉬었지만 일어서기가 싫었다. 의무 때문에 뿌리쳤다. 계류를 따라 차츰 해발을 낮추는 재미에 힘겨움을 모른다. 가끔 나타나는 작은 규모의 폭포와 沼는 양념처럼 짭짤한 뒷맛이다. 기암과 玉流가 만나는 곳마다 아름다운 沼를 남기고, 소를 지나 아래로 흐르는 계류소리는 청아하다. 셀 수 없는 도계다. 대구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를 따라 내려간다. 깎아지른 바위에 로프 한 가닥이 내려진 수직절벽이다. 좌측 수직암벽엔 돌단풍들이 해안에서 만나는 따게비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다. 계곡 우측 평탄한 뚝길이다. 수국과 머루, 산죽과 산꿩의 다리, 신나무와 단풍나무, 생강나무 잎새가 한창이다. 억겁의 세월을 두고 蛇行의 물살은 맞은편 암벽을 뚫고 작은 터널을 만들었다. 파도가 만든 아름다운 어느 해안의 갯바위와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물이 만든 희대의 바위벽은 어느 조각가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천하의 조각품이다.
백옥암반에서 휴식을 가졌다. 소낙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어느 지점엔가 부터 최이사님과 조희순여사님과 동행이 되었다. 김기사님의 전화가 왔으나 불통지역이다. 애초부터 온천욕이나 하겠다며 버스에 남은 정교장님 부부와 김기사님 가족들의 현재가 궁금했다. 빠른 시간에 덕풍마을 고향식당에 도착해 유선전화로 연락을 취해야한다는 강박감이 발길을 재촉했다. 철레인 10여개가 방치한 적군의 시체처럼 널려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V자나 U자형 협곡이다. 교과서처럼 다 읽으면 다른 페이지가 나오듯 반복하는 협곡에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다. 지루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10시 40분. 용소골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폭포가 수직 20m의 시원한 물기둥을 통쾌하게 쏟아 내리는 지점으로 확인했다. 1999년 8월 당시 호나우도라는 별명을 지닌 박동주라는 젊은 친구가 마치 得音을 위한 수련과정 장면과 흡사하게 폭포의 물줄기 아래에 똬리를 틀고 정좌해 물기둥 세례를 고스란히 맞으며 깔깔거리던 그의 모습은 선한 기억으로 재생된다. 그해 말 덕원여고 출신 000양과 녀석의 결혼에 주례를 담당했는데, 신혼여행 이후 한차례 직장에 찾아온 이후 지금까지 소식 돈절이다. 당시 통쾌하게 수직으로 내려꽂았던 폭포는 간곳없다. 심한 가뭄의 결과다. 우렁찬 낙하음은 고사하고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전신이 얼어붙었던 그 폭포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S자 모양의 협곡의 수직암벽을 감고 돌아간다. 아름다운 금강송들이 들어찬 계곡 좌우의 수려한 경관이다. 혼자서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절경이다. 오버행 암벽, 간지러운 곡선의 S자형 수로, 곳곳에 급경사 암벽사면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재미에도 이력이 붙었는지 한결 수월하다. 2001년 10월 <산>지에 응봉산 소개에 따르면 이즈음 어딘가에 林長綠이라 음각된 바위를 찾을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임란 당시 피난민 36명의 난민들이 매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생존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남겼다는 글귀다. 林자의 나무 木을 열 十과 여덟 八로 풀어, 18(十+八)×2((木+木)=36명이 긴 시간(長) 아무 탈 없이(綠) 지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는데 김기환 기자도 당시 1시간 동안 찾다 못 찾았다는 후기를 토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제2용소를 통과했다. 통과할 때 느꼈던 아찔했던 스릴은 간곳없는 평범한 용소로 변했다. 하산 후 덕풍마을 주민의 얘기에 의하면 최근 몇 해 동안 여러 차례 태풍을 거친 후 용소는 묻히고 일부 구간이 파손되어 그리됐다는 설명이다. 물론 분노한 자연이 준 재앙이었지만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제1용소도 제2용소와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꼭 무엇엔가 홀려 속은 기분이다. 내가 일행들을 속여 이곳으로 안내했다는 자책이 들기도 했다. 실망을 넘어선 낭패스러운 지금은 차라리 체념이 낫겠다 싶었다. 깎아지른 수직바위벽에 붙은 로프를 잡고 내려갔다. 고소 공포증을 가질 곳도 못됐다. 용이 자랐다는 용소 일부지점의 깊고 검은 물 속 깊이는 육안으로 가늠이 어렵고, 남은 부분은 모래톱이 덮여 과거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그 동안의 태풍과 홍수로 제2용소부터 설치된 철다리, 녹슨 철계단도 제 모양을 보존하는 것은 몇 개뿐이었다. 11시 후미를 생각해서 위험한 바위사면에 간이 로프를 매어두었다. 5분 후 철다리 棧道를 통과했다. 제2용소를 내려서면 다시 오르고 내려가는 길이 반복된다. 우측 '큰다래지기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지류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제 맞바람으로 골바람이 몰려오는 것은 마을이 가깝다는 신호이가보다. 11시 18분. 도면상에 표기된 '요강소'다. 요강처럼 생겼다고 하여 요강소인가 보다. 한차례 카메라에 담아 둘 곳을 물색하다가 이내 빠른 걸음으로 제1용소를 향해 내려갔다.
제1용소다. 조롱박을 닮은 깊이를 알 수 없는 怪奇스런 검푸른 용소는 억겁을 두고 간직한 자신의 역사는 과거와 달리 초라한 몰골이었다. 이런 자연의 비극을 접하는 현재가 남사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과거의 기록은 꽤나 장엄했었다. “가늠할 수 없는 용소의 깊이, 성곽처럼 두른 용소주변의 절벽과 뇌성벽력의 폭포음, 차라리 먹물보다 진한 용소의 물색, 좌측 바위에 걸린 가느다란 간이로프에 의지해 게걸음으로 이동하는 긴장감, 소용돌이치는 용소에 행여 실족할까봐 어릿대는 공포감. 제1용소를 이렇게 통과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계류방향을 제외한 동, 서쪽은 암벽으로 수직 단애다. 흔적만 남은 요강 단지같은 용소에 고인 물은 천상 어린 시절 동네에서 놀던 연못이다. 계곡 우측 철난간 棧道도 반파나 전파된 채 제 모습은 사라지고 형태만 남은 몰골이었다. 위대한 홍수와 폭우의 위력을 실감하는 내리막이다. 제1용소를 지나면 평탄한 소로다. 덕풍마을로 연계됐던 ∪자형 콘크리트 수로도 모래가 덮이거나 일부지점은 파괴된 채 상흔뿐이다. 폐허란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덕풍마을을 약 100m 앞둔 방축소다. 이곳은 문지골 계류와 용소골 계류의 합수지점이다. 좌측에 용인등봉-용인등-개족발봉을 연결하는 능선의 끝자락이 마을을 향해 늘어져 있다. 마치 적진지를 향해 고정시켜놓은 미사일처럼 말이다. 사람의 흔적이 완연한 저만치에 덕풍마을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동행하던 일행과 같이 합수지점에서 땀씻이 시간을 가졌다. 용소골물은 물놀이하기 알맞은 수온이라면 문지골 계류는 차디찼다. 냉수와 온수가 합류하는 두 계류 합수지점에 몸을 풀었다. 한류와 나류가 합수하는 지점이 어장인 것처럼 물고기가 떼를 짓고 있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몸 주위에 달려들어 연약한 주둥이로 두어 차례씩 건드린다. 겁도 없는 녀석들이다. 아니면 나를 고기밥으로 알았나보다. 그러나 싫지 않은 자연의 현상에 흐뭇했다. 세상이 돈짝만하게 보이는 최고의 쾌락을 즐기는 지금이다. 여름산행을 마친 후 계류에 몸을 담는 쾌감을 무엇과 비교하랴. 땀에 젖은 속옷과 겉옷, 그리고 양말을 갈아입으니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기분이다.
식사를 예약한 덕풍마을 고향민박에 들어섰다. 50대 전후로 보이는 주인여자가 반긴다. 덕구온천을 출발, 고개-민씨묘-능선-정상-응봉산정상-능선-용소골,제3-제2- 제1용소-덕풍 마을 식사장소인 고향민박(-572-2133) 앞마당에 이르기 까지 소요한 시간은 총 18Km 거리에 8시간 50분을 소요했다. 땀씻이를 마치고 식당 앞 트럭 빽밀러에 확인한 몰골은 영 타인의 얼굴이다. 언제 이렇게 서리처럼 내려앉은 백발과 성성한 얼굴로 변했는지 새삼스럽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상한 세월 앞에 어디 장사가 있다더냐.
我亦靑春如玉人 나도 한때는 꽃다운 청춘이 있었노라 酒量漸大黃金盡 술은 늘어만 가는데 돈은 없고 世事纔知白髮新 이제 세상을 알만하자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식당의 유선전화로 풍곡리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김기사님과 통화를 했다. 마침 그곳에 내려간 식당 바깥주인인 심현섭씨 아들의 트럭을 이용해 정교장님 부부와 김기사께서 식당으로 올라왔다. 정교장님은 온정골로 들어가 세계의 유명 교량을 몇 십 분지 1로 축소해 전시한 이벤트를 구경하고 온천도 즐겼다는 자랑과 함께 흐뭇한 표정이다. 김기사네 식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후 1시 20분. 지루한 용소골 트레킹을 재미있게 마친 일행들이 모두 합류했다. 시차를 두고 식사와 함께 하산주도 곁들였다. 성찬을 즐기며 9시간 가까운 대장정의 산행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저마다 쏟아내기에 바쁘다. 마치 전장에서 승전하고 돌아온 전투병처럼 말이다.
풍곡리 주차장으로의 이동이다. 덕풍마을에서 풍곡리 입구까지는 6km로 도보로 1시간 거리다. 일부 포장, 80%가 비포장 소로다. 지리산 칠선골, 내설악 백담-수렴-구곡담 계곡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계곡의 하나인 용소골의 비극은 오늘로서 마감이다. 차후 시간을 내어 용인등봉-문지골 코스를 안내하겠다는 약속을 일행들에게 했다. 트럭 뒷 칸에 올라 과거의 출렁다리 대신 신설한 버릿교(모두 버리고 가라는 의미), 부추밭교(부추가 많이 생산되는 곳), 칼등모리교((칼등처럼 모가 나고 갈라져 있다는 뜻) 등 심상찮은 다리이름과 주변 풍광을 비교, 음미하는 여유가 재미있다. 좌측의 중봉산(739.5m)과 그 너머로 석개재 중심으로 낙동정맥이 병풍을 두르고, 우측의 벼락바위봉(812m) 능선이 호위하는 덕풍계곡의 수량도 미미한 상태다. 풍곡리 관리사무소에서 골짜기마다 비상시를 대비해 설치한 스피커에선 난데없이 템포 빠른 요즘 노래가 찢어지게 들려왔다. 이건 음악 이전의 문제다. 짐작만으로도 120데시벨 이상의 소음공해다. 주변의 동식물들에겐 죽기보다 싫은 고통의 기계음이다. 매표소 직원에게 한마디 권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풍곡리 주차장에 내렸다. 2시 22분을 풍곡리를 떠나 귀로에 올랐다. 어제 밤과 오늘 새벽에 내려왔던 길을 그대로 踏行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버스는 깊은 수면에 빠졌다.
나를 운구해 가는 저 햇볕들의 따가운 행렬 나는 이런 상상을 하네 즐거운 송장이 되어 내가 안치되고 싶은 곳」 (이문숙의 ‘정오의 버스’ 부분)
7시 35. 서울 발산역에 내렸다. 아직도 하늘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교통 : ①고속버스 東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구의동)~울진 50분 간격(06:00~19:00) 직행 버스(4시간 20분소요. 요금 14,100원) 서울~울진, 東서울종합터미널에서 14회(08:15~18:55) 운행(요금은 23,600원) 태백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1일 6회(07:00, 10:00, 13:10, 14:50, 16:30, 19:00) 운행하는 호산행 버스 이용, 풍곡에서 하차. 귀향길에는 풍곡버스 정류소 (033-572-7136)에서 1일 5회(07:35~19:45) 운행하는 태백행 버스 이용(50분소요) 덕구온천은 울진군 북면에서 시내버스(07:00~18:30)가 40분 간격운행. 서울에서 울진은 東서울종합터미널에서 14회(08:15~18:55) 운행( 요금은 23,600원) ②시외버스 동서울터미널~태백행 시외버스로 삼척이나 태백에서 하차. 시외버스는 7:00시부터 17:30 분까지 5회 운행을 하고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③열차(02-962-7788, www.korail.go.kr) 청량리역(02-392-7788)에서 오전 8시 오후 10시까지 1일 5회 운행하는 태백선 열차 이 용, 태백역(0395-553-7788)에서 하차(새마을호 약 4시간10분, 무궁화호 약 4시간30분 청량리역~태백역 8:00~23:00분까지 7회 운행. 4시간 30분소요) ④현지교통 태백~호산행 완행 또는 직행버스를 이용, 풍곡에서 하차. 1일 6회 운행(40분소요) 삼척~포항행 직행버스를 타고 호산에 하차, 풍곡행 버스로 환승. 삼척~호산 1시간 소요, 호산~풍곡(30분소요) ④승용차 ․영월 경유-태백에 이르는 코스는 두 가닥, 영월에서 석항~고한~사북을 지나 싸리재(해발 1,268m)를 넘어 태백에 이르는 코스와 영월에서 고씨동굴~하동~중동~상동을 경유하여 화방재를 넘는 코스(양 코스 모두 영월에서부터 75km 안팎으로 1시간 10분 정도 소요)-태백에서(태백공설운동장을 끼고) 38번 국도로 좌회전-삼척 방향 5km 지점 통리 검문소 삼거리~원덕 방향으로 우회전~427번 지방도로로 11km 지점 신리-가곡-재산 삼거리에서 7번동해국도로 우회전-부구리 부구교 직전 917번 도로로 우회전- 덕구온천 주차장(8.2Km 지점) ․동해 북부에서는 삼척시~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원덕읍 호산리~416번 지방도로 우회전, 풍곡리 진입(삼척에서 휴양림까지는 76km) ․동해 남부에서는 울진-부구~호산을 경유, 풍곡리로 진입. ․영동고속도로 하진부IC~오른쪽 샛길로 빠져 정선으로 가는 33번국도(남쪽 방향) -정선군 남면 면소재지 앞에서 38번 국도로 태백-태백시 황지교를 건너 통리 -연화우체국 앞에서 427번 국도로 진입-신리교에서 남쪽으로 꺾어 풍곡초등학교 -약 500m 지점 풍곡리.
-덕풍계곡 입구 모로쇠농원(033-572-4424), 덕풍산장(033-572-7378), 토봉민박(572-7386), 가곡자연휴양림(033-573-4657), 황토방민박(033-572-5801), 고향민박(-572-2133), 이희철씨(033-572-7378), 덕풍민박(033-573-9577) -풍곡리 모르쇠농원 민박집, 가곡자연휴양림(033-573-4657), 황토방민박(033-572-5801), 풍곡통나무집(033-573-0777), 전동호(572-7129), 이재명(572-7337), 김옥순(573-8042), 전광열(572-5801), 심남섭(572-7386)씨 우리슈퍼(573-1146), 돌집민박(573-9196), 풍곡통나무집(572-7151, 573-0777), 영곡슈퍼(573-0978), 청기와집(573-5416), 태백자연촌(573-6431, 573-7738) 등 민박 민박협의회에서 결정한 숙박요금은 성수기(7~8월)에는 2인실 기준으로 30,000원(추가 1인 5,000원)이고 비수기에는 20,000원. -덕구리 덕구관광호텔(054-782-0677), 벽산덕구온천(054-783-0811), 덕구모텔(054-783-9950), 동림장(-782-7676), 한솔장(-782-0451)
덕풍계곡 관리사무소 033-573-8295), 응봉산산악구조대 033-572-7112. 풍곡리 삼풍공업사(자동차 경정비업) 033-572-5832 서울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www.ti21.co.kr] 태백시외버스터미널(0395-553-3699)
-덕구온천은 4km의 송수관을 덕구온천관광호텔까지 연결, 자연송출수로 목욕을 함. 성분은 칼륨, 칼슘, 철, 중탄산, 마그네슘, 라듐, 황산윰, 탄산 등 알칼리성의 온천수. 신경통, 류마티스성 질환, 근육통, 피부질환, 만성피부병, 중풍에 효과. -신리 너와집 화전민의 자취가 남아있는 신리 너와집(도계읍 신리).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전통가옥으로, 너와란 지붕을 이는데 사용하는, 참나무와 소나무 토막을 쪼개어 만든 널빤지다. 신리 너와집은 얇은 참나무 널빤지로 지붕을 덮은 전통 가옥으로서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됨. -호산 해수욕장 덕풍계곡에서 ‘호산’해수욕장은 30분 거리. 강원도 해수욕장 중 가장 남쪽에 있는 것으로 백사장 1km, 수심 1.5m 가량.
2003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삼척해변동굴축제는『2002 삼척세계동굴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기념하고, 전국 유일의 동굴관광 이벤트 축제로 발전시키고자 개최되었다. -행사기간 : 매년 8월 첫 째 주 -행사장소 : 삼척시 성남동 엑스포타운 <행사내용> -체험행사 : 남근빚기체험,도자기물레시연,태양광에너지 체험, 맨손뱀장어잡기, 캐릭터사진촬영, 짚신만들기 시연, 삼베짜기 등 -이벤트행사: 대나무 물총놀이게임, 전통 모형보트 경주게임, 외나무·섶다리설치, 농, 특산물 특별판매 등 -전시행사 : 엑스포사진전, 동굴비경 사진전, 수해피해 사진전, 남근조각작품 전시회, 남근수석공모작품 전시회, 캐릭터모형 전시 등 문의 : ☎ (033)570-3211 (시청 기획감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