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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7월경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나미님의 '스타스토리'입니다. 때문에 사연이 많다면 많은 가수다.
처음 日刊 스포츠에서 스타 스토리를 연재하자고 제의했을 때도 맨 처음 생각한 건 나의 그 많은 사연 들이었다.
올해 나이 33. 걸음마를 겨우 배우면서 시작한 음악생활은 거의 30년에 가깝다.
그 많은 세월 속에 숨겨진 나의 이야기들을 이런 기회를 통해 남김없이 얘기하겠다.
그러 면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은 나미라는 한 명의 가수에 대해 조금 더 알 것이고 나 역시 지금 까지 살아온 나의 삶들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1956년 지금은 동두천시지만 그때는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이었던 미군부대가 많았던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기지 주변에서 조그만 레코드가게 를 운영하고 있었다. 주로 백판이라고 하는 복사판 레코드를 취급했는데, 미국 원산의 음악 을 원판이나 라이센스판보다 훨씬 싸게 살수 있어서 미군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살림하는 집은 가게근처에 따로 있었는데 아주 가까워 나는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부터 밥만 먹으면 가게에 나가 놀았다. 겨우 귀가 트이고 눈이 트일 때부터 당시 유행하던 팝송들을 듣고 자 란 셈이다. 녀석이 가게 앞에 설치된 스피커 앞에서 매일 춤을 추는데 하도 깜찍하게 잘 춰서 근방에서는 '명옥이의 똘똘이춤을 모르면 간첩이다'고 했을 정도였다.
춤뿐만 아니라 나는 귀동냥으로 아무 뜻도 모르는 팝송도 따라 불렀다. 아버지는 그것이 딸의 운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안 하시고 그저 귀엽게 바라보셨다. 들르던 미군장교 아저씨가 나를 유심히 봤던 것 같다. 그 아저씨는 어느 날 내가 귀엽다면서 아는 노래들을 해달라고 했다. 아마 내가 6살쯤 되었던 때였다.
나는 그때 한창 입에 익어 있었던 < 오! 캐롤> <삐빠빠룰라>등의 폴 앵카 노래를 신나게 불렀고, 그 아저씨는 전부터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내 노래에 감탄했다. 다시 가게에 찾아와서 이미 부대 주변 미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명옥이를 8군 무대에 올리자고 제의했다. 당시 집안 형편은 어려웠던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하시고 응낙하셨다. 그 아버지의 결정이 내 길고도 험한 가수생활의 시작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평소에 입던 옷보다는 좀더 고운 옷을 입고 8군의 무대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근에서 깜찍한 어린 요정이 되어 갔다.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부르 면 어느 미군 아저씨가 일어나 모자를 벗어 모자에다가 팁을 받아줬다. 그것이 노래를 잘 들었다는 미국식의 풍속인 모양이었다. 알려지자 극장쇼를 하던 동두천의 여러 극장들에서도 출연교섭이 들 어왔고 멀게는 서울의 극장들에서도 쇼를 하자는 제의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쇼의 대중이 극장쇼였던 때라 새로운 가수에 굶주려 있던 극장들의 이런 제의는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 다. 키가 닿지 않아 누군가가 뒤에서 들어줘야 했을 정도로 작았 던 나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8군 무대, 극장무대 등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대에 오 를 때도 많아졌다. 그러나 학교입학은 나에겐 거의 형식적이었다. 이미 꼬마스타가 돼 있었던 내가 얌전히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은 그렇게 많 지 않았다.
지각, 조퇴가 많아졌고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그리 친하지 못했다. 그 친 구들은 매일 노래부르러 정신없이 나가는 나를 좀 다른 사람으로 보았던 것 같았다. 지금 까지도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죽마고우가 별로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버지는 동두천의 레코드 가게를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했다. 상도동 에 살면서 친구분들과 조그만 페인트 매매사업을 했지만 아버지가 서울로 이사온 데는 나를 좀더 큰 무대에 세우고 본격적으로 뒷바라지를 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그런 아버지의 배 려 덕분에 나는 서울의 큰 극장들에서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원로가수가 된 많은 선배님들을 만났다. 고인이 되신 고복수 선생님, 황금심 선생님, 금서향 등 나의 부모님들보다도 더 나이가 드신 그분들을 나는 아줌 마,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어떤 분들은 만나면 그때 깜찍했던 '명 옥이'의 말씀을 하시기도 한다. 아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남정임씨 주연의 <엘레지의 여왕>과 남진, 윤복희 선배 주연의 <미니아가씨>였다.
특이한 것은 두 영화가 다 이미자 선배님과 윤복희 선배의 음악인생을 다룬 영화였는데 나는 그분들의 어린 시절의 배역을 맡 아 했다는 것이다. 커다란 카메라를 앞에 둔 낯선 분위기 속에서 떨며 노래부르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재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