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우리말이 세계 곳곳에서 널리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1998년 봄에 글쓴이는 기상청에서 태풍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에 대한 제안을 공식적으로 받았다. 평소에도 우리말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고 연구되기를 희망하던 글쓴이는 이런 기회에 우리말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태풍은 열대성 저기압 중에서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의 폭풍우를 동반하는 것을 말하고, 항상 폭풍과 호우를 동반하기 때문에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태풍은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연간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은 대략 80여 개 정도이지만, 북태평양 남서 해상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30여 개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태풍 이름은 괌에 위치한 미국 해 공군 합동 태풍 경보 센터에서 정한 태풍의 이름을 무작위로 사용하여 왔다. 이 센터에서 정한 태풍 이름은 알파벳 순서에 따라 4개 조(1조 23개) 92개로 구성되어 있고, 지난해에 이어 계속 순서대로 사용하고 있다. 한때는 태풍의 막대한 피해를 줄이려는 기원 때문에 순해지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여성 이름만을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세계 여성 단체들의 거센 항의로 인하여 지금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순서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 내의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1968년에 공동으로 설립한 태풍 위원회(회원국은 한국, 일본, 중국, 북한, 캄보디아 등 14개국)는 자국 국민들로부터 태풍 이름의 유래와 서양식 이름을 사용하는 데 대한 강한 항의를 많이 받아 지난 1995년부터 태풍 이름 변경 문제를 논의하였으며, 1998년 제31차 회의에서는 정식 안건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이들 회원국들이 합의를 이룰 경우 태풍 이름은 2000년부터 변경이 된다고 한다. 이미 필리핀과 대만에서는 자국에서 만든 태풍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변경은 거의 확실시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글쓴이는 원칙적으로 태풍 이름을 우리말로 짓는 일에 대하여 찬성하지만,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첫째, 태풍이 갖고 있는 특성을 생각하여 가능한 한 국민에게 경각심을 고취할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 이 경우에 태풍의 이미지에 맞게 동적(動的)인 느낌을 줄 수 있는 동물 이름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예를 들면, '갈매기, 기러기, 너구리, 독수리, 솔개, 호랑이'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우리말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정서와 문화가 담긴 고유어 이름을 찾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이 때에도 되도록 움직이는 이름을 찾아서 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무지개, 바람개비, 미리내, 물레방아'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한다면 로마자 표기를 고려하여 음운 변동 현상이나 된소리 표기가 나타나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면, 기상청이 추천한 이름으로 '목련(→몽년), 석류(→성뉴), 꽃분(→꼳분), 팥쥐(→팓쮜)' 등은 음운 변동 현상이 반영되어서 태풍 이름으로는 좋지 않고, '까치, 따오기, 찔레, 버찌' 등도 된소리 표기가 반영된 이름으로 역시 로마자 표기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태풍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넷째, 움직이는 동물 이름은 잘 어울릴 수 있지만, 기상청이 추천한 산 이름과 강 이름, 식물 이름과 꽃 이름은 태풍 이름으로 어쩐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또한, 추상 동물도 우리 나라에서는 태풍 이름으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추상 동물 이름은 잘 모르는 이름도 있었고, 어느 나라에서 제안한 이름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상 용어를 태풍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가령 '구름, 천둥, 번개, 소나기' 등을 태풍 이름으로 사용한다면 일기 예보시 많은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항을 감안한다면 태풍 이름으로 적합한 경우는 동물 이름이나 고유어 이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 70여 개 이름을 추천하였다. 이 때에도 미국 해 공군 합동 태풍 경보 센터에서 정한 것처럼 반드시 몇 개 조로 나눌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추천한 태풍 이름은 대략 다음과 같으며, 밑줄 친 부분은 우선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2자 이름: 가재, 거미, 고니, 기린, 나비, 날치, 노루, 늑대, 담비, 메기, 물개, 박쥐, 반디, 생쥐, 소라, 솔개, 수달, 이리, 자라, 제비, 참새, 하마, 화살 등.
3자 이름: 가오리, 가자미, 갈매기, 개구리, 거북이, 고라니, 구렁이, 기러기, 남생이, 너구리, 다람쥐, 도다리, 독수리, 돌고래, 동사리, 두더지, 두루미, 무지개, 물수리, 미리내, 비둘기, 비오리, 사마귀, 새다래, 오소리, 원숭이, 은하수, 이무기, 잠자리, 전갱이, 정어리, 조롱이, 족제비, 종다리, 진드기, 풍뎅이, 하늘소, 해파리, 호랑이 등.
4자 이름: 고슴도치, 동수구리, 모래무지, 물레방아, 바람개비, 새호리기, 아지랑이, 하야로비, 해바라기, 해오라기, 호랑나비 등.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어문 규범(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인데, 그 중에서도 기상청이 제안한 태풍 이름 가운데에는 로마자 표기가 틀린 곳이 너무나 많았다. 현재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교부 고시 제84-1호, 1984. 1. 13.)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전면 개정안과 부분 개정안을 국립 국어연구원과 국어 심의회에서 검토하고 있지만, 개정이 될 때까지는 현행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규범이 그렇듯이 언어 규범도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고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개정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규정만 고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민들은 잘 지켜야 한다는 국민 의식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상청에서 제안한 이름 중에서 로마자 표기가 틀린 부분 몇 가지를 예시하면,
목련(Mokryon→Mongny n)
물개(Mulgae→Mulkae)
매실(Maesil→Maeshil)
석류(Songryu→S ngnyu)
곱단(Kopdan→Koptan)
꽃분(Kkotbun→Kkotpun)
색동(Saekdong→Saektong)
금화(Kumhwa→K mhwa)
현무(Hyunmu→Hy nmu)
견우(Kyunu→Ky nu)
심청(Simchong→Shimch ng)
흥부(Heungbu→H ngbu)
등을 들 수 있었다.
사실 어문 규범이 좀더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지만, 누구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 정도는 외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모른다면 국어 사전을 이용하거나 관계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을 종합하여 볼 때 태풍 이름은 우선 발음이 쉬워야 하고, 되도록이면 태풍의 이미지에 걸맞은 동적인 동물 이름이나 우리말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고유어 이름 중에서 골라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이 내용이 전부 채택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태풍 위원회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의견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글쓴이는 이런 제안 내용이 일부분이라도 태풍 이름의 한글 표기에 반영이 된다면, 일하는 즐거움은 이런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부터 우리말 태풍이름 10개 사용
[세계] 2000년 02월 08일 (화) 14:50
올해부터 우리말 태풍이름 10개 사용
`개미, 나리, 장미, 수달,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나비' 듣기만 해도 친근감 넘치는 우리말 이름이 새천년을 맞는 올해부터 태풍명칭으로 공식 사용된다.
기상청은 8일 '지난해 11월말 서울에서 열렸던 제32차 태풍위원회 총회 결정에 따라 태풍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캄보디아, 홍콩,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라오스, 마카오, 미크로네시아 등 14개국에서 10개씩 제출한 140개 각국 언어를 태풍이름으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사용되는 140개 태풍이름은 28개씩 5개조로 나뉘어 국가명 알파벳 순서에 따라 올해 발생한 태풍에 차례로 붙여지게 된다.
북한도 기러기, 도라지, 갈매기, 매미, 메아리, 소나무, 버드나무, 봉선화, 민들레, 날개 등 10개 이름을 내놓아 결과적으로 우리말로 불리게 된 태풍이름은 20개 이다.
이에 따라 올해 처음 발생하는 태풍이름은 코끼리라는 뜻의 1조 첫번째 이름인 캄보디아의 `돔레이'(Damrey) 이며, 두번째는 용왕이라는 의미를 가진 중국의 `롱방'(Longwang) 이며, 세번째는 북한의 `기러기'이다.
우리나라의 `개미'와 `나리'는 올해 11번째와 25번째 발생하는 태풍이름으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태풍에는 세계기상기구(WMO) 규정에 따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지역특별기상센터'(RSMC) 에서 99년 제7호 태풍을 뜻하는 `9907'과 같은 태풍번호만 공식적으로 부여하고 태풍이름은 괌에 있는 미국의 `태풍합동경보센터'(JTWC) 에서 태풍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 붙인 영문이름을 관습적으로 사용해 왔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태풍은 열대지방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더욱 발달하여 중심 최대풍속이 초당 17m 이상 되는 열대성 저기압을 말한다.
태풍은 발생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북대서양·멕시코만·동부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허리케인(Hurricane), 북태평양 남서해상에서 발생하는 것을 태풍(Typhoon),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윌리윌리(Willy-Willy),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사이클론(Cyclone)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극동지방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북위 5∼20°, 동경 110∼180° 해역에서 주로 7∼10월에 많이 발생한다. 이들 태풍 이름은 어떻게 붙이는 것일까? 그 해에 처음으로 발생하는 것을 제1호 태풍이라고 하고, 그 해의 숫자와 함께 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번호보다는 사람 이름같은 태풍 이름을 많이 들어왔다.
최근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준 제12호 태풍 프라피룬은 태국어로 ‘비의 신’이란 의미이며, 제14호 태풍 사오마이는 베트남어로 ‘샛별 (금성)’을 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1959년의 태풍 ‘사라’는 여자이름이다. 이처럼 초창기에는 태풍 이름에 여자이름을 붙였다. 왜 그랬을까?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여자의 독한 마음과 닮아서일까. 물론 그건 아니다. 여자처럼 온순하고 조용해지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권 운동가들의 항의 때문에 요즘에는 태풍 이름도 남·여 이름을 번갈아 가며 붙이고 있다.
그래서 태평양의 괌에 있는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JTWC)는 92개의 태풍을 알파벳 순으로 23개씩 4개조로 미리 정해 발생하는 순서에 따라 이름을 차례로 붙여준다. 그런데 이 태풍 이름 짓기에도 변화가 왔다. 지난 97년 홍콩에서 열린 제30차 태풍위원회에서 회원국인 미국과 아시아 각국 언어로 바꾸고 이를 2000년부터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기상청은 전국에서 공모한 우리말 이름 70개를 제출, 이 중에서 국제적으로 발음하기 쉬운 10건이 태풍 이름으로 선정됐다. 개미·제비·나리·너구리·장미·고니·수달·메기·노루· 나비 등 태풍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고운 우리말이다.
또 태풍위원회 회원국인 북한이 제안한 태풍이름도 순우리말이다. 기러기·소나무·도라지·버들·갈매기·봉선화·매미·민들레·메아리· 날개 등. 결국 우리말 태풍 이름은 모두 20개나 된다. 지난 18일 북한이 제안한 태풍 ‘소나무(제17호)’가 일본 도쿄 남동해상을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갔다. 올해는 고운 우리말 이름 덕분에 더 이상의 큰 태풍 피해 없이 무사히 넘어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