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산을 뒤에 놓고 선 권용환**신바람 가족문학기행(1)
김유정 문학의 현장, 금병산을 오르다
-소설가 김유정과 그의 문학을 만나고
*작가 김유정 모래조각 초상(모래조각가 김길만 作)
일요일 새벽이다. 문학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날은 늘 긴장이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봄내(춘천)행 통일호 첫차를 타야한다. 통일호를 타야 작가의 고향에 있는 간이역 신남역에서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춘천역에서 내려도 거리는 멀지 않다. 그러나 작가의 고향역에서 내리는 게 더 마음 따뜻하고 그립지 않은가.
용환이를 흔들어 깨운다. 잠이 많은 용환이가 군소리 없이 일어나 세수를 한다. 그리고 잠이 덜 깬 채 라면을 먹는다. 이렇게 둘이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은 스스로 끓여먹고 가야만 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찬바람이 불고 비가 조금씩 뿌리는 골목은 아름다운 우리들의 길이다. 배낭에 우산도 넣었으니 든든하다.
첫 전동차를 타고 또 바꿔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춘천 마라톤대회 때문에 좌석은 매진되고 입석표 뿐이다. 열차 출입구 계단의 안전판을 내리고 창 밖으로 깨어나는 가을을 보면서 봄내로 향한다. 옆 마라톤 동호회 선수들은 신문지를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로 요란하다.
얼마를 달리다 보니 용환이는 졸리는지 철판위에 주저앉아 쪼그리고 잠을 잔다. 안쓰럽다. 그러나 용환이는 아무런 불평도 없다. 신연강을 안고 산자락에 기대선 추억과 낭만의 강촌역에 그리움을 풀어놓고 통일호 열차는 의암굴을 지나 팔미천을 오른쪽에 두고 달린다. 곧 한들이 나타나고 금병산이 다가선다.
드리마 (간이역)의 무대였던 신남역이다. 김유정의 고향역이다. 봄처럼 노란 동백꽃(생강나무꽃) 향기가 알싸하다. 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니 한국 근대단편문학의 산실 (김유정 문학촌)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길 건너 신남산장 옆으로 잘 포장된 큰 길을 따라가면 된다)
우린 오전 9시에 김유정 문학현장 금병산 등반대회를 금병의숙에서 시작하므로 문학촌 관람은 하산하면서 하기로 하고 곧장 걸었다. 추위에 떨고있는 용환이를 위해 따뜻한 아침밥을 먹이고 김유정이 1930년대 그의 조카 진수와 함께 야학을 열었던 금병의숙으로 갔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김유정이 심었다는 큰 느티나무는 바람에 나뭇잎을 떨구고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기적비는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니 그 당시 글을 배우던 동리의 아이들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금병의숙 터 건물엔 현재 우체국이 들어 있다. 기적비 옆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을 보니 김유정이 서울휘문고보를 졸업하던 해 명창 박녹주를 보고 반해 짝사랑을 시작하면서 쓴 수 많은 편지가 생각난다.
김유정이 연상의 여인인 박녹주를 막무가내로 사랑한 것은 그의 고백대로 사랑에 굶주렸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고 난봉꾼인 형 밑에서 외롭게 자라다보니 더 그랬으리라.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
시간이 조금 남아 소설 (봄봄)의 배경장소와 소설 (솥)에 나오는 주인공 근식이가 들병이와 장래를 약속하며 자주 드나들던 주막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소설 (봄봄)의 배경장소는 점순이와 성례를 안 시켜주고 일만 시키는 인심을 두르 잃은 장인 봉필과 주인공인 데릴사위가 드잡이하던 곳이다.
정해진 시간이 다가와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등반이 취소되었나 싶어 아쉬웠지만 아들과 함께 둘이 등반을 하기로 하고 수어릿골(소와리골)을 향해 발을 옮긴다.금병초등학교 뒤 백토고개로 소설 (산골 나그네)의 덕돌 어멈이 넘어 오는 듯하여 자꾸 시선을 빼앗기는데 용환이는 산국 한 송이를 꺾어들고 향기가 너무 좋다고 좋아라 한다.
저수지를 왼쪽에 두고 솔바람 소리와 새들의 노래와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밟으며 등산로 만무방길을 오른다. 만무방 길 능선을 타기 전 왼쪽 골짜기는 들병이 계숙이에게 자기 집 솥까지 빼다 주면서 함께 살자고 하던 (솥)의 주인공 근식이네 집이 있던 곳이다.
가파른 만무방길을 오르면서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인생, 만무방을 생각한다. 가족과 헤어져 매팔자가 된 응칠과 자기가 농사지은 벼를 훔쳐야만 하는 동생 응오 그리고 투전판으로 전전하는 농군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용환이는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 삼아 가파른 산길을 잘 오른다. 바람은 세차게 불고 물든 나뭇잎들은 와- 하고 한꺼번에 떨어지곤 한다.
만무방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금따는 콩밭길을 만난다. 콩밭에서 금을 따겠다고 멀쩡한 콩밭을 망쳐버린 영식이의 한숨이 들린다. 그리고 콩이 곧 금이라고 속삭여 준다.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산골 나그네길이다. 이런 가을 날 찾아든 들병이 나그네가 덕돌이의 꿈을 빼았고 떠나가는데 그 나그네를 생각하든 덕돌이와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든 늘 가슴은 쓸쓸하다.
652m, 금병산 정상에 오니 몇 사람이 와 있다. 용환이와 사진을 찍고 산 아래를 바라다 본다. 바람은 저 밑에서 산 정상으로 분다.
나뭇가지에서 땅으로 분다.
사람들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작은 광장에 모여든다. 그들은 이번 금병산등반대회 일행들이다. 그들은 춘천 시내에서 버스로 이동 원창고개에서 출발 봄봄길을 통해 정상에 온 것이다.행사일정이 그렇게 된 것이다.
잠깐 김유정 문학촌 촌장이신 전상국(강원대 교수) 작가로부터 김유정 문학현장으로서 금병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동백꽃길로 하산 산국농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동백꽃길로 가면서 모두 슬프다.
산불 감시탑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어서가 아니다. 산불 감시탑을 세운다고 정상 주변의 많은 나무들을 베어버린 것이다. 정상에 우뚝 선 산불 감시탑. 산을 위해 세운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세운 것이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란 동백꽃 (생강나무꽃)
강원도에서 노란 동백꽃이라 함은 생강나무꽃을 말한다. 가지를 꺾어 코에대면 진짜로 생강냄새가 난다. 점순이가 소작인의 아들과 사랑을 나눈 알싸하고 향긋한 (동백꽃) 배경지 표지가 있는 산국농장에서 방금 딴 사과를 먹고 준비한 식사를 한다.
모두 물든 나뭇잎처럼 곱다. 얼굴도 목소리도 눈빛도- 시간 때문에 용환이와 먼저 문학촌으로 향한다.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 생가)
작가 김유정의 문학사적 업적을 알리고 그 문학정신을 이어 펼치고자 운영 중인 (김유정 문학촌) 안에는 복원된 생가, 전시관, 디딜방앗간 전시관, 외양간, 휴게정, 연못 등의 시설이 있으며 김유정 추모제 세미나 등 각종 문학행사가 연중 개최되고 있다.
김유정 문학촌은 춘천의 넉넉한 문학마당이다. 많은 문학행사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사랑과 정을 나누는 곳이다. 스스로 김유정과 함께 작중 인물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이웃들과 함께 실레마을과 함께 금병산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와 늦은 점심 식사로 닭갈비를 먹는다. 문학기행을 가서 그 지역이 자랑하는 음식을 맛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용환이에게 멀미약을 먹이고 서울행 버스를 탄다. 춘천마라톤대회 때문에 한참이나 기다렸다가 출발한 버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 잠든 아들의 어깨를 안는다. 차창 밖은 어둡다. 아들과 함께 몇 년째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살고있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에 흐뭇하기도 했고 가슴아프기도 했다. 오래오래 아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문학기행을 하면서 우리 산하를 밟고 곱게 만지며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멱서리 김유정이 그립다.
2002년 10월 20일
동백꽃 봄봄
*작가 김유정사랑회 /권창순
*http://cafe.daum.net/kimyoujeong
*카페이름 /동백꽃 봄봄
김유정문학촌
첫댓글 아들 용환이와 가족문학기행을 떠난지도 8년이 넘었네요.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여행이었지요. 특히나 김유정문학기행은 더 아름답고 기쁘고 넉넉하고 소중한 문학여행이었지요. 많은 분들이 가족과 함께 (김유정문학촌)으로 문학여행을 떠났으면----
우리네 삶이 바로 여행이지요.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문학현장을 통해 알아가는 그 기쁨-- 그들과 정을 나누며 울고 웃고-- 지혜도 얻어 넉넉하게 돌아오는 우리들 모습-- 참 아름답지요. 봄내 실레로 가보세요.
답답하고 우울할 때 김유정이 고향을 그리며 밤새워 글을 썼듯이 금병산에서 찍어온 실레마을 풍경을 봅니다. 그리운 고향--- 삼악산도 보이네요.
삼새 이현철님이 2004년 봄에 노란 동백꽃 보러 오라고 하네요. <<김유정 문학촌 소식>>에 일정을 잡을 테니 많이 오라고 하네요. 전 열 두 번째 실레마을 문학여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행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