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김영철 목사의 설교를 최승석 목사가 요약한 것입니다. 피남편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미문교회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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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애굽기 4:24-26 제목: 여호와의 돌변 설교: 김영철 목사 날짜: 2005년 4월 24일
본문: 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하시는지라 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24절에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만나시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모세는 애굽 땅에서 급하게 혼자 도망쳐 나왔지만 이번에는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려고 합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막중한 일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떠나기 전에 모세에게 이적을 보여주시면서 바로에게 가서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으로 가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앞으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보낼만한 자를 보내시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모세와 함께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가는 길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신 것은 모세를 죽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시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공들여 모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모세를 죽이려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25-26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 하셨는지 그 이유를 모세의 아내가 취한 행동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25절은 모세의 아내가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고 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를 살려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마치 모세의 아내가 모세를 살린 것 같지만, 실상은 모세는 그의 아내 때문에 죽을 뻔 한 것입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이었으며 또한 어려서 석 달 동안 부모의 품에서 자랐기 때문에 히브리인의 관습대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은 미디안의 제사장이었기에 그도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에게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출 3:6; 15) 소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누구든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속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끊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아마도 그의 첫 아들인 게르솜에게 할례를 행하였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모세가 첫 아들인 게르솜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은 허락하였지만,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것은 반대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십보라가 둘째 아들의 할례를 반대했던 이유는, 당시 미디안 족속도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할례를 받았었고 그러기에 십보라는 할례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모세는 자신의 둘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애굽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미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면서도 정작 자기 아들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고 애굽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할례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져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지 않은 모세를 죽이려 하신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시려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무시한 모세를 죽이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시자, 하나님께서 왜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던 십보라는 아들의 양피를 베어 던진 것입니다. 여기서 ‘던졌다’는 것은 ‘갖다 대었다’는 말입니다. 25절은 이와 같이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베어 던진 대상은 모세가 아닌 하나님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십보라는 아들의 양피를 벤 후에 그 증거를 하나님 앞에 던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보라는 이렇게 행한 후에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우선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벤 후에 그의 심정을 표현한 말입니다. 여기서 ‘피 남편’이라는 말은 히브리인들의 표현입니다. 이 말은 꼭 남편만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 말은 남편 쪽의 친척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십보라가 이렇게 말한 이유에 대하여 후에 모세는, 십보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아들에게 행한 할례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26절). 할례를 받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친척들 중에 한 사람이 할례를 담당하였습니다. 할례를 받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할례를 행하는 친척은 당연히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십보라는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십보라가 모세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없이 행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십보라는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 후에, 하나님께서 마치 할례를 행하게 한 친척과 같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향해 피남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25절의 ‘피 남편’은 모세가 아닌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가 언약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할례란 양피를 베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힘의 근원을 상징적으로 자르는 일을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뜻에서 할례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를 거절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이러한 할례를 이제 세례를 통해서 받게 됩니다. 신약 시대에는 세례 안에 할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할례를 받지 않는 자를 죽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할례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여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언약을 배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반드시 죽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자를 죽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히 속하지 않은 자에게 진노하십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겉모양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까지도 온전히 하나님께 속하는 그분의 참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피남편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치된 결론들이 말하는 바는 해석의 결정적인 동인은 어려운 것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것을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명백성에 대한 한 증거이지요. 위의 글은 부름받은 모세의 위치가 고려되지 않기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이 글은 요약된 것이라 전부는 아니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남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학자들의 견해도 다양하더군요. 그래도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의 명백성은 결국 우리들이 지켜가야 할 과제라고 여겨집니다.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것이
개혁신앙을 추구하고 세워나가야 하는 바로 우리들에게 남겨진 몫이라 여겨집니다. 먼 곳에서 단단하게 살아가시는 목사님을 볼 때 많은 위로와 격려를 느낍니다. 늘 건강하세요..
헤~ 두분의 진리를 향한 노력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도전, 격려가 됩니다. 그것 아세요?
최근 저희 모임에서 창17장(할례와 개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라서 관련 글을 유독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모세의 피 남편에 촛점이 아니고 예수로 말마암아 함께 죽고 살아나는 세례와 연관하여 구약시 할례의 중요성(언약적 측면에서)을 강조한 부분이라 사료됩니다. 관련글들을 옮겨갑니다. 매번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