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하는 아름다움
상무 금요시장
이춘배/시인
지금은 새삼스러워서 신도심이라 부르기도 좀 뭐 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상무지구에는 상업용지가 모두 허허 벌판으로 남아 있었고, 주거지역도 입주가 덜 된 아파트가 많았다. 하여 상가라고 해봐야 작은 단지의 구멍가게식 슈퍼마켓 외엔 이렇다 할 유통시설이라곤 가뭇없었다. 시내버스도 띄엄띄엄 다녀서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연히 단지 내 슈퍼마켓들은 가격이 비싸고 다양하지도 않아 불편을 무릅쓰고 인접 금호지구나 가깝지 않은 양동시장을 찾기도 하지만 저녁거리 정도 장만하기 위해 차를 운행한다는 것은 큰 낭비였다.
그러던 차에 지금의 치평동성당자리 곁의 한길 가에 채소, 과일 등 너 댓 개의 난전이 들어오기 시작 하였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도 늘게 되어 있는 것이 경제의 기본. 장사가 좀 된다 싶으니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떤 사회적 합의도, 행정적 조치도 없었던 듯싶은데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주시(週市)로 정착되었고, 지금은 ‘한 사람 여기, 또 그 곁에…’식으로 채소, 과일, 옷, 신발, 생선, 한약, 잡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좌판이 구획도 없고 체계도 없이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기다랗게 5-6개 블록에 걸쳐 빼곡히 차려진다. 보도의 너비가 기껏해야 5m 안팎인 곳도 그 2/3쯤을 좌판이 차지하고 있어 두 사람이 비켜가기도 버거울 만치 길이 좁아진다. 이 길에 젖먹이를 태운 유모차, 두세 살 뒤뚱걸음 아기 손잡은 엄마, 한손잡이용 소형가트를 끄는 할머니, 레저복장의 아낙네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흥정하고 물건 챙기고 있다. 바로 인근에 여러 형태의 대형 마켓이 있건만 이 날만은 노천시장이 성시를 이룬다. 보행에 큰 지장을 주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몸 부딪쳐도 불쾌해하는 표정 없고 오히려 너끈하게 기다렸다가 나아가곤 한다.
인자한 표정으로 간소한 좌판에 앉아계신 할매에게 찾아온 어느 할머니,
“거 깻잎 한 소쿠리 얼매요?”
“2천원인디 더 드리께.”
“천원어치만 사려는디….” 돌아서는 손님 다시 불러 세우며
“물어만 보고 가면 쓴다요, 많이 드리께.” 하며 손은 벌써 검정 비닐봉지 입을 벌려 한 움큼씩 담기 시작하더니 2천원 어치라는 그 한 소쿠리를 다 담는다. 손도 바쁘지만 입 또한 바쁘다.
“밭에서 자란 놈이라 향기가 그만이지라우. 내가 삼도(광산)에서 직접 지은 농사랑께.”
가까운 풍암동에 있는 농산물 공판장에서 도매로 떼어다 파는 전문 푸성귀 장사도 있지만 이 할머닌 벌려놓고 계신 양부터 많지 않고, 생소(길이 덜 든 소)로 밭갈이 된 것처럼 아무렇게나 패인 얼굴주름이 농사하시는 순박하신 시골 할머니가 틀림없다. 손님이 자리를 떠나자 2천원 어치를 천원에 다 주어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그렇게라도 팔면 돈이 되지만 되가져 가면 시들어서 씰모 없게 되제. 이렇게 해서 한 오만 원쯤 채워지면 내가 쓰기도 하고 손지들 오면 용돈도 주고 그런 재미로 살제.”
이 할머닌 홀로 되셔서 3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가르쳐 지금은 어디 어디 근무하노라며 자랑을 늘어놓으시더니 자식들은(이런 일을)하지 말라지만, 있는 땅에 씨만 뿌리면 나오는 작물로 현금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시다며 행복해 하신다.
이처럼 푸지고 오지고 살가운 곳이 재래시장이다. 지금은 백화점이니, 대형마켓이니, 공판장이니, 상설 재래시장이니 해서 유통구조가 다양화 대형화 되고 접근성도 좋아져 이용에 편리해졌지만 규격화된 상품, 에누리 없는 각박한 인심, 무엇보다 대화할 사람은 없고 진열대 안의 물건만 일방적으로 골라가는 정나미 없는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이가 많다.
인류는 약 2백 만 년 전부터 세상살이에 알맞게 진화해 왔고 지금도 변신에 능하기에 지구상에서 무적의 동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인간이 모이는 장소에는 시장이 들어선다. 진화하는 인간이 형성하는 시장이기에 이 역시 끊임없이 변신하고 있다. 시작은 비록 ‘길거리 난전’이었지만 생명력에 따라서 전방(廛房)으로, 점포로, 혹은 시전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때 이곳 역시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슈퍼마켓 등 서양식 유통구조에 밀려 토종 가게들이 질식당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큰 돌들일수록 쌓이면 그 틈새도 크게 마련이다. 그런 틈새시장의 하나가 상무금요시장이랄 수 있다.
규격화된 포장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정과 인심이 묻어 있는 맨손으로 듬뿍듬뿍 집어주는 곳, 한 보시기 놓인 김치를 안주 삼아 자기가 마신 잔에 막걸리 따르며 “아짐, 더웅께 한 잔 하실라우.” “아니요, 마시나 다름없소.” 질박한 인심이 코끝을 시큰거리게 하는 곳, 비좁은 공간에서 다중에 시달리면서도 흐뭇해하리만치 넉넉한 곳, 사람냄새 땀냄새가 구수한 숭늉 맛처럼 개운하게 해주는 곳, 그곳이 시장이다. 서민들이 많이 찾는 노천시장이다.
<빛고을 문화> (서구문화원 발행)에 실린 글입니다.
첫댓글 도심 속의 인정미, 사람냄새, 땀냄새가 살아 움직이며 버무러지는 곳
그 곳 상무 금요시장을 저도 들러봐야겠어요
몇년 전 가고 최근엔 뜸했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소중한 글 감상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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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사시면 자주 오셔요. 사람냄새 나는 곳이랍니다.
질박한 인심이 코끝을 시큰거리게 하는 곳, 비좁은 공간에서 다중에 시달리면서도 흐뭇해하리만치 넉넉한 곳, 사람냄새 땀냄새가 구수한 숭늉 맛처럼 개운하게 해주는 곳, 그곳이 시장이다. 서민들이 많이 찾는 노천시장이다. 마치 서방시징 처럼 소박한 서민들의 따뜻한 정감이 묻어납니다.
서방시장은 더 하지요. 그곳 또한 아름다운 곳입니다.
후덕한 인심은 이제 시골 어디를 가도 찾을 수가 없다지요? 어째꺼나 옛것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지요~ㅎㅎ 구수한 시장 분위기 잘 감상합니다!~
외국에 가셔서도 그곳 인심과 풍물을 익히는 데는 재래시장만한 곳이 없지요?
사람냄새, 흙냄새 맡으며 그곳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