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우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몇년 째 한국 영화 파워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그의 힘은 그가 한국 최대 배급사인
[시네마 서비스]의 주인이라는 데서 온다.
다시 말하면, 감독 강우석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나는 그의 오만방자함이 싫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는 가차없이 짓눌러버리겠다는
그런 파쇼적인 발상이 마음에 안든다.
그가 싫으면서도 그가 가진 현실적인 힘 앞에 굴복하여
그의 앞에서 아첨떠는 자들은 더욱 싫다.
그런 자들이 부지기수다.
[공공의 적] 시사회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설경구 이성재는 물론
영화에 출연하지도 않은 신현준 신하균 차승원 등등과
임권택 정일성 황기성 등등
우리 영화계의 노장들을 불러모았다.
자기 밑의 조무래기가 아니라
자기 윗 세대의 선배들을 자신의 영화 시사회에 부른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얼굴도 나타내지 않는다.
대신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인 씨네2000의 이춘연 사장을
무대로 내보내 자기 대신 무대 인사를 하게 했다.
그리고 이춘연 사장의 입을 빌어
[공공의 적]을 비난하는 사람은 앞으로
강우석의 [공공의 적]이 될 것이라는
협박성 멘트를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그의 오만방자함이 싫다.
그리고 [공공의 적]을 보았다.
원래 [공공의 적]은 갱스터 단골 배우
제임스 캐그니 주연으로
1931년 워너 브러더스에서 제작된
윌리암 웰멘 감독의 유명한 갱스터 영화 제목에서
빌려온 것이다. [The Public Enemy]는
갱스터 영화가 장르로 자리를 막
잡아가려던 1930년대 초,
머빈 르로이 감독의 [리틀 시저]와
하워드 혹스 감독의 [스카페이스](나중에 알 파치노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등과 함께 갱스터 영화를 대표하는
명작 중의 하나이다.
강우석의 [공공의 적]은,
윌리암 웰멘의 [공공의 적]과 갱스터라는 점에서
밑바닥을 흐르는 비장미가 일품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강우석 영화를
가벼운 코미디 정도로만 생각해왔던
나같은 사람들에게도 동의를 얻어낼만큼
지금까지 강우석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다.
그리고 최근 가벼운 조폭 영화들로 넘쳐나고 있는
우리 영화계 흐름으로 봐서도
꼭 필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친부모까지 살해한 비정한 연쇄살인범 이성재.
그는 펀드매니저로서 수백억원 대의 재산가이다.
아들의 주식투자에 빌려준 돈을
고아들을 돕기 위해 회수하겠다는 부모를
그는 처참하게 살해한다.
영화는 미스터리식으로 풀려나가지 않는다.
살인범 이성재와 그와 맞부딪치는 경찰 설경구.
두 사람의 대립을 팽팽하게 끌고 가면서
정공법으로 풀어나간다.
이렇게 꼼수를 부리지 않고 밀어 붙이는 데서
[공공의 적]의 미학적 아름다움은 솔솔 일어난다.
이성재의 캐릭터는 성공한 여피족의
엽기적 살인행각이라는 점에서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어느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아들의 범행이 들통나지 않도록
죽어가면서도 현장에 떨어진 아들의 손톱 살점을
목구멍 속으로 집어삼키는 어머니의 모정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설정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설경구의 캐릭터는 독특하다. 그는 악인이면서도 선인이다.
마약을 밀거래하고 경찰의 지위를 이용하여
주위의 약자들을 괴롭히는 부패한 경찰이면서도
공공의 적인 살인범 이성재를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이제 비로소
설경구는 그의 출세작 [박하사탕]의 이미지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동안 [단적비연수]에서도, [나도 아내가...]에서도
[박하사탕]에서 쌓아올린 스스로의 그늘에 갇혀
이미지의 반복재생산이나 섬약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진짜 설경구다.
역시 그는 좋은 감독과 부딪치면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다듬기에 따라 얼마든지 더 성장할 수 있는 배우이다.
여성들이 조연급으로도 등장하지 않는 데서
강우석의 뚝심을 읽을 수 있다.
그래도 [투캅스]에서는 투캅스걸 지수원이 등장해
쭉쭉빵빵 몸매를 보여 주었었다.
그러나 [공공의 적]은 지극히 남성적인 힘으로 무장된,
강한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남성영화가 되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당초 전국 1천만을 예상하던 이 영화에 대한 소문이
과장된 것이라는 것을
상업적 먹구름을 드리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러나 적어도 전국 3백만은 넘지 않을까?
강우석은 자신이 갖고 있는 배급의 파워를 총동원할 것이 분명한데?
연출은 확실히 새로운 세대의 감각에 비해
낡았다. 그러나 [흑수선]에서 배창호 감독이
일부러 나이트 클럽씬을 끼워 넣어
자신의 세련된 감각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공공의 적]처럼 이렇게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년 감독들의 진짜 생존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공공의 적]은 영화만 봐서는 별 네 개쯤 주고 싶은데
강우석이 만들어서 별을 반개 깎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작용한 것이다.
그만큼, 나는 그가 싫다.
그래도 [공공의 적]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