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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류에게는 끝없는 역사적 질곡이 있었다.
전쟁과 기근, 전염병 등이 창궐해서 문명을 쓸어가며 역사의 단절도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짓이겨진 문명의 폐허 위에는 누군가가 ‘우뚝’ 섰고
다시 집을 세우고 가족을 꾸리며, 집단을 형성해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열어나가곤 했다.
이러한 인류 역사의 역동성은 단순한 인간의 의지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생태계’(자연)와의 위대한 공존이 덕분이었다.
즉 대지가 있기에 인간은 그 위를 밟고 설 수 있었던 것이고,
하늘이 있기에 자신의 존재를 세울 기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고,
동식물의 순환작용 속에서 그것을 이용해 ‘생활’이 가능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가 고도화되어지고, 그 고도화된 이성이
‘욕망의 하녀로 전락’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착취를 당연시하기 시작했고,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는 욕망’의 ‘조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의해 인간의 ‘감성’ ‘가치’ ‘상상력’ ‘우열감’ ‘생활습관’ ‘문화’ ‘교육’ 등이
그 욕망의 극대화를 위해 인간의 정신을 탄압하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욕망작용은 거대사회조직/국가로 보편화되고 있는데,
이로 인한 국가 간의 경쟁/분쟁/전쟁 빈도(가능성)는 점점 높아지고 있고,
이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극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로 인한 후손의 존립가능성 없음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과거 우리 인류가 겪었던 그 어떤 ‘질병’ ‘전쟁’ ‘자연재해’ 보다도 더욱 파괴적인,
역사상 전무후무한 존립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의 ‘위기’는 과거 폐허 속에서도 인류문명의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했던
대지와 하늘을 훼손하고, 동식물을 전멸시키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재앙을 몰고 올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도 또한 상상할 수 없는 굳은 결의와 희생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한번 발동되면 끝 간 데 모르고 일방적으로 작용되는 인간의 욕망은
이러한 파국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빼앗아 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들이 빚어놓은 문제와 그 작용의 일말도 들여다보지 못 한 체
그들 자신과 그들의 동시대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멸망으로 이끌 야만적인 욕망의 실현에만
더욱 ‘기술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야만적인 사회/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야를 가진 이들은
급진적인 움직임으로 그 대세에 맞서야 한다.
그 인류 파괴와 생태계 전멸에 아랑곳 않는 ‘야만적인 욕망’을 당연시 하는 - 흐름, 일상,
가치에 맞서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은 인류-생명 파괴적인 ‘대중소비사회’에 대한 확고한 문제의식을 가진 깨인
이들로부터 시작되는 ‘일상의 혁명’을 통해 우선 시도되어야 한다.
현대 대중소비사회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급진적인 혁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은 힘이 뭉쳐져서 실질적인 사회변화의 작용으로 현현되기 전까지 깨인 이들의 사력을
다한 ‘일상의 혁명’이 요구된다.(일상의 혁명 : 기존의 채우고 높아지려는 욕망,
소유-소비주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저항하면서 기존의 적응된 삶의 틀을
깨며 새로운 존재양식을 만들어가는 삶)
우리 앞에 놓인 장벽은 너무 높고 굳건하다.
하지만 이를 넘기 위한 노력이 성공하지 못할 지라도 그러한 노력의 와중에 피를 토하고라도
쓰러져야 하는 것은,
앞서간 이들이 그렇게라도 해줘야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이 그 시체라도 밟고
그 높은 벽을 넘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후 이동지] 청양-> 홍성-> 태안 -> 서산 -> 당진 ...
차후 이동지에서 만나봐야 할 활동가/어르신이나,
묵을 수 있는 단체사무실 등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1월 1일
청양군을 향해서~
활동비가 떨어져서 10월 중순부터 며칠 돈 벌기 위해서 내려왔었다.
더불어 각종의 잡다한 볼일 보고 나서 11월 1일 오후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
보령으로 돌아왔다. 다음 이동 지역은 ‘청양’이었다.
[ 0010 시가지에 청양 가는 안내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
[ 0020 이곳 보령시내의 큰길 가로수는 감나무여서 혹시나 떨어져서 손에 쥐어질까
하여 나무를 쥐어흔들어 댄다 ]
[ 0030 보령 시내를 빠져나가기 직전의 은행나무 길 / 노랗게 물든 낙엽은 바닥까지
물들이고... ]
보령 시내를 빠져나가기 위한 마지막 사거리인 신설네거리에 신호대기하고 있었다.
BM스쿨이라는 상호가 붙은 봉고차 한대가 횡단보도를 가로질러서 신호를 받고 나아가는데,
뒤편에 앉아있는 아이들 두 녀석이 내 쪽을 보고 히히덕거리면서 뭔가를 들어 보이는 것이다.
[ 0032 인터넷 블로그의 firstlove852 님 사진 펌 ]
녀석들은 미국에서 수입된 신형 삿대질 ‘Fuck you'를 나에게 해 보이고 있었다.
해맑을 미소를 띤 두 녀석은 차가 좌회전 신호를 받아 멀리 사라질 때까지 줄곧
그리하고 있었다.
5,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내가 잡다한 글자가 써 붙여진 배낭을 매고 길 한편에 그리 서있으니
광대쯤으로 여기고 그런 듯싶었다.
해당 학원에 전화를 해서
‘그렇게 좋은 것을 나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학교 선생님들과 나누면 좋지
않을까?’하는 제안을 하려했는데, 상호가 전호번호부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이를
제안할 수 없었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한국인들 인심이 메말라 있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것을 서로 권하며 나누는 습관은 아직 여전함을 느낀다.
[ 0035 인간의 적인 ‘환경’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중장비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다 파헤치고 깎고 뒤집고 메우고..세상에 온전한 자연 상태가 한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돼야
아마 인간은 행복하리라. 그 상태를 위해서 인간은 오늘도 밤낮 안 가리고 인간의 ‘적’인
환경과 맞서서 싸운다. ]
[ 0040 도로 옆에 새 한 마리가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녀석이 길바닥 한쪽에 저리 누워서 잘만도 하다.
천지 사방 어디 자연 상태로 머물러 쉴 곳이 없음에야
피곤한 마당에 저렇게라도 쉬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0050 나무는 잘려지고 수풀은 메워지고, 땅은 파헤쳐지고
어느 한곳 마음 놓고 몸을 둘 곳이 없는 상황에 염치 불구하고,
목숨 걸고 저렇게라도 쉬지 않을 수 없으리라.
언제쯤 깨어날까 해서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깨어날 기미가 없다.
녀석은 너무 많이 지친 듯 했다.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히 쉬어 앉을 나무도 없고,
배를 채울 먹이도 바닥났으며,
함께할 짝도 사라졌음에...
아마 영영 저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는 듯 했다.
혹시나 잠을 방해할 까 해서 뒤꿈치를 살포시 들고 옆으로 피해 간다. ]
[ 5시 반이 좀 넘었는데, 해가 짧아진 터에 구름까지 낀지라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
[ 0080 도로와 인도를 경계하는 연석 한편으로 뭔가 작고 빠른 것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엄지 손가락만한 생쥐였다. 욘석도 어딘가 빨리 갈 일이 있는가 보다.
아마 두 달 전에 헤어진 그의 부모가 청양으로 향하던 이삿짐센터 차량의
귀퉁이가 갉아 먹혀진 장롱 속에 그대로 있었음을 바람에 실려 온 꽃잎의 이야기를 통해서 듣고,
청양으로 향하는 최단거리 코스인 36번 국도에 오른 듯 했다.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둥글이 괜한 심술이 난다.
그래서 양손으로 살포시 그릇을 만들어 녀석을 들어 올려
근처 풀숲으로 돌려보낸다. ]
[ 0090 그로부터 10여 발짝 걸었을까? 죽은 고양이의 시체가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눈에 띈다.
생쥐 녀석의 짓이 틀림없는 듯 했다.
아마 헤어진 부모를 찾아 떠나려는 생쥐를 고양이가 함께 살자고 가로막고 서자,
생쥐 녀석은 고양이를 살해해서 이렇게 길 한편 갓길에 파묻었던 듯싶다.
걍팍한 생쥐의 짓이 아니라면 누가 도대체 이곳에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나뒹굴게 했겠는가? ]
[ 0100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족상봉을 이루지 못한 들쥐의 애절함이 하늘을 감동시켜 눈물을 쏟아내게 했으리라.
어느 음식점 한 켠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 ]
[ 0110 한바탕 조용히 빗방울을 쏟아낸 비구름이 걷히면서
‘물웅덩이에 발을 빠트리지 않게 조심히 경계하며 걸으라’는 황색등 신호가 깜박인다. ]
[ 0120 웅덩이에 발을 빠트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서 걷고 있는데 길 한편으로
거대한 느티나무가 그 앞에 팔을 드리운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
듬성듬성 비가 내렸다 말다를 반복했다. 더군다나 가로수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하창고 같은 어둠 속에서, 한발 앞이 안 보이는 질펀히 젓은 빗길을 걸으려니
신발 앞 꼭지가 푹 젖어갔다. 낑낑대면서 걷다가 일곱 시 반쯤 되어서 ‘청보초등학교’ 에 도착했다.
교무실 쪽에 아직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누군가 야근을 하시는 듯 했다.
그래서 발각되지 않도록 발소리를 줄여서 살금살금 학교로 진입했다.
마침 입구 옆에 주차장이 있고,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까지 널찍이 쓰여 있었다.
약 10여 년 전에 이곳 주차장 확장 공사를 하면서 지붕을 널찍이 씌워주신
교장선생님의 혜안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10년 후의 어느 날 이름 모를 나그네가 이곳을 지나다가 비를 피해서 하루 묵을 것을
내다보시고 굳이 그렇게 지붕을 씌우셨으리라.
하여간 텐트를 펴고 안에 들어가 있으니 긴장이 싹~ 풀린다.
그 후로 선생님 두 분이 옆으로 지나갔는데,
한분은 정체불명의 텐트를 확인하고 잠시 멈춰 섰지만
(텐트에 비치는 사람그림자로 그가 멈춰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텐트에 써 놓은 ‘환경’관련한 글귀를 보시고, 그냥 문제 삼지 않고 지나가셨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있다가 혹시 쫓겨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긴박감을 잠시 가졌었다.
[ 0130 청보초등학교 주차장 한편에서 / 멀리 산 위로 구름이 걷히면서 별이 초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
텐트 안에 들어와서 짐을 풀며 냄비, 쌀 주머니, 슬리퍼주머니, 빵모자, 옷가지 등을 꺼내고 있는데,
뭔가 동그란 것이 손에 잡힌다.
[ 0140 짐을 풀다 발견한 미확인 물체 ]
물건을 손에 올려서 ‘이게 무엇이지?’하며 2.7초간 진지하게 사색했고,
다시 2.1초간 ‘내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했다.
‘그렇담 왜 이것이 이곳에 들어있는가?’에 대해서는 5초 이상 진지하게 숙고해야 했다.
‘그렇담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근래 2주가량의 기억들을 순식간에 검색해내던 차에
‘조카 녀석들’의 짓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그랬다. 서울에 잠시 볼일 보기 위해서 올라갔던 동안 형네 집에서 머물렀었는데,
녀석들이 장난한다고 내 배낭에 몰래 숨겨 놓은 것이다.
=> 조카 녀석들과 함께 찍은 SF 작품???
11월 2일
[ 0150 길가한편으로 이색적인 목공예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
[ 0160 마법의 포장도로가 만들어낸 괴생물체 -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생물들이
이곳 도로에서는 창조되고 있다. ]
[ 0170 길가는 드믄 감나무에 홍시가 몇 개씩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인간의 손에 닿지 않는 높은 위치에 매달려 현기증을 감내하고,
비바람과 병충해와 까치의 습격 등을 견디며
3개 계절을 관통해 온 막바지에나 저런 은근한 붉은 빛을 풍겨 낼 수 있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미스 홍시에 당선되어 수줍어하며 발그레하게 볼이 타는 모습이 아름답다 ]
[ 0180 철의 요새 한켠에서 경계근무에 충실해 있는 견공
/ 견공을 위해서 일부로 벽을 뚫어 놓았는지... ]
[ 0190 ‘청양고추’의 고장 청양군 경계면 ]
[ 0200 행복이 풍기는 닭 가정 - 엄마/아빠/애기(알)가 평온한 모습으로 함께하고 있는 모습
이라고 생각하면 착각~~~ ‘치킨 집’ 홍보 조형물임. ㅠㅜ 불쌍한 닭들...]
[ 0210 타들어가는 가을 ]
[ 0220 도로변 옹벽 위편의 다양한 이끼의 모양 / 작은 우주 ]
[ 0235 청양까지 10km 표지 - 세 시간은 걸어야~]
10km 라...
보폭을 70cm로 하고
100m에 130번을 걸어야 한다면,
1000m는 1300번의 발걸음을 해야 하니까
10km(10000m)는 13000걸음만 하면 되겠군.
[ 이 발로 13000여 걸음 걸으면 청양에 당도. ]
[ 청양 10km 표지가 있는 곳에서 1730여 걸음 걷고 난 후.
(이러한 정확한 수치 제시는 대체로 뻥임 ㅠㅜ )
갓길 한편 경사로에 ‘어떤 놈’께서 침대 매트를 깔아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국도상
갓길 옆에서 시끄러운 찻소리를 듣고 뿌려지는 매연과 먼지를 마시면서 독서를 하기
위해 깔아 놓은 것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여간 대한민국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니깐... ]
카메라 배터리 앵꼬~ ㅠㅜ
길 가는 중간에 배터리가 뚝~ 떨어져서 청양 도착할 때까지의 장면을 못 담음ㅠㅜ
하여간 여차 저차 해서 청양에 도착함~
청양군
[ 0295 청양군의 지리적 위치 ]
[ 0296 청양군청 전경 ]
충남 중앙부에 위치한 청양은 인구 3만 4천의 지역으로
그 맵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청양고추’로 유명하고
유행한 노래의 무대가 되는 ‘칠갑산’의 고장이다.
군의 마스코트는 특산물인 고추와 구기자를 의인화한 ‘푸르미와 발그미’이다.
[ 0297 청양군 마스코트 ]
주요 지역 행사로는 [칠갑산 장승문화제]와 [청양고추구기자축제] 등이 있다.
[ 0298 청양군 시가 전경 ]
자각수면
점심 즈음 청양에 도착 한 후 인근 도서관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켜 놓고 볼일을 보는데,
피곤이 밀려와서 책상 바닥에 엎드려서 두어 시간을 잤다.
약간의 감기 기운을 동반한 상태로 전날부터 7,8시간을 힘겹게 걸었더니 몸이 무리가 갔나보다.
엎드렸다 팔에 머리를 기댔다 팔짱을 끼었다가 하는 등으로 자세를 바꿔가면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귓속으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아차~ 그리고 보내 내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은 체 잠이 들어서
도서관 내에 이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는 듯하다.
잠결에 이에 대한 극진한 반성을 끝낸 후에 컴퓨터를 끄고 다시 자려고 했다.
그래서 눈을 떴는데...
‘어라~’ 이거 몸이 안 움직이네... ㅠㅜ
축 늘어진 다리와 팔짱낀 팔이 눈에 들어오기는 하는데
이거 도무지 몸이 안 움직이는 것이다.
그랬다. 자각수면 상태였던 것이다.
(자각몽 : 꿈을 꾸면서 꿈인지 아는 상태. 자각수면 : 자면서 깨인 상태? )
요 며칠 돈 번다, 서울 볼일보로 간다 해서 몸이 풀린 상태에서
보령에서 청양 넘어오며 무리하다 보니 또 몸이 부조화했나보다.
눈을 뜬 상태에서 내 몸을 멀쩡히 내려다보면서도 도무지 움직일 수 없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컴퓨터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요란히 들리고 있는 이유로 다른 사람 방해받기 전에(사서 아
저씨 혼자 계셨음) 빨리 깨어나서 컴퓨터를 꺼야한다는 막대한 의무감이 필사적으로 깨어나
게끔 발버둥 쳤지만, ‘그랬다’고 생각하고 나서 다시 보면 다리 늘어트리고 팔짱낀 모습
그대로였다.
한참 좀 푸닥거리고 나니까 몸의 족쇄가 풀리고 잠이 온전히 깨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깨어 보니 들리는 ‘모터’소리는 컴퓨터 냉각기 소리가 아니라,
도서관 환풍기 소리였다.
‘제길... 괜히 깼네. ㅜㅡ’
가위눌림
10대, 20대 때는 이러한 경험을 많이 했었다.
몸이 경직되고 의식만 깨어나는 이러한 상태에서는 주로 ‘가위’눌리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가위눌리는 것을 ‘귀신이 밟고 있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할 ‘경직성’과 ‘공포감’이 동반되곤 한다.
그 ‘공포감’은 외부에서 주워지는 자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와서 내 자신의 존재감을 휘감아 버리기에 더욱 가공한 그것이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1주일에 몇 번씩 가위눌리고 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리했던
적도 있었다.
한 번씩 가위 눌리고 나면 인생만사가 전혀 다른 각도로 보이곤 한다.
그리고 진이 빠져서 생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곤 했다.
가위눌리는 경험이 계속되었다면 지금쯤은 내 생이 상당히 우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위눌리면서 느끼던 공포감이 사라졌던 ‘결정적인 계기’를 재수하던 독서실에서
갖게 되었다.
독서실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날과 다름없이 ‘스르르’ 눈이 떠지는 것이다.
귓속에는 별의별 잡음-환청이 들리고 눈앞에는 오만가지의 형상들이 다차원적으로 교차했다.
그리고 뒷골이 당기면서 누군가 무서운 존재가 지켜보고 있는 듯 한 원초적인 공포감이
나를 엄습했다.
가위눌림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내 뜨여진 눈으로 현실과 접목된 잡다한 환영을 대하며
그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몸을 뒤틀고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몸이 좀 일으켜 세워진 듯 했다가도 다시 보면 그 모습 그대로였고,
소리를 지른 것 같다가도 아무소리도 울리지 않는 상태를 접하며
그 공포 속에 내 자신을 그대로 두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 내 자신을 더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빠트렸다.
특히나 눈앞에 보이는 여러 가지 환영의 변화는 정말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는데,
기하학적인 모양의 끝없는 반복과 변화는 나를 공포의 극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여차 저차 해서 가위눌림으로부터 해방되었는데, 나는 순간 ‘앗!’하고 탄성을 질렀다.
눈에 보였던 그 공포스러운 기하학적 모양은 독서실 천장의 반복된 모양이었다.
나름대로의 ‘공포감’이 그 천장의 모양을 계속 변화시키면서 ‘공포감’을 증폭시켰던 것이었다.
내 내면의 넘쳐나는 에너지가 이성이 추슬러지지 않는 반수면상태에서
불분명한 현실상황을 접하고 나서 그것을 ‘공포스러운 것’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공포감’이 외부에서 나를 공격하며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 공포감을 자처해서 만들어 스스로를 옭아맸던 것이다.
이 통찰 이후로는 가위 눌림이 없어졌다.
이 날까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위를 눌리며 허걱거리곤 했었는데
이 후로는 한두 달이 지나도 한번 가위 눌릴까 말까 했다.
이것은 내가 내 내면의 에너지의 흐름의 ‘골’을 새롭게 틔어놓은 결과였다.
내가 그러한 기회를 통해 통찰을 얻지 못하고, 내부적 에너지가 그냥 과거와 같이
흐르도록 놔뒀다면 내 내면의 에너지는 기존의 관성대로 흘러서 시시때때로 ‘공포감’을
자극하고 확대하면서 내 현실적 삶을 방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 중심을 세워서 내 자신을 스스로 관리할 힘이
생기다 보니, 나의 에너지는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투입된 것이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초이성적인 대상(귀신 등)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진 것만 해도
나에게는 커다란 성과이다.
과거에는 그러한 존재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해서 어둑어둑한 길을 걸으면서도 뒷골이
땅기곤 했는데, 지금은 혼자서 산길을 다니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해도 그에 대한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접한 것이다.
기계적인 효율성의 추종과 맹목적 합리성은 분명 경계되어야할 그것이지만,
내 자신의 감성과 열정, 에너지가 흘러갈 바른 길을 이성의 작용으로 온전히 트여 놓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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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비몽사몽 허우적거리면서 피로를 풀고 나서 군청으로 안내지도 얻기 위해 가는 길에
‘청양군’다운 가로등 디자인이 눈에 띈다.
[ 0300 청양군 가로등 디자인 ]
청양군청 앞에는 농민단체들이 걸어 놓은 플랭이 눈에 띈다.
[ 0310 0320 ‘비정규직 철폐’ ‘국가보안법 철폐’ 플랭.]
농민-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
질문 : 그렇담 왜? ‘농민단체’들이 자신들과 상관없는 내용의 저런 플랭을 걸어놓았을까?
답 : 그것은 실은 비정규직, 국가보안법 문제가 그들과도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더욱 증가시키기 위해서
‘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있는 자들이 배불리는 세상’을 구조화 한다.
이는 FTA다 세계화다 해서 가진 놈들은 더욱 많이 갖고 없는 놈들은 더욱 없이 살게 만드는
‘20대 80의 사회’(가진 자들 20 없는 자들 80)를 강화하려는 모든 조직과 무리들이 지향하는 세상이다.
이에 대항해서 ‘힘없는 이들’은 서로 똘똘 뭉쳐서 단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힘 있는 이들은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경찰들 출동시켜 힘없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언론을 통제하고, 행정을 조직화 할 수 있지만,
힘없는 자들은 서로 간에 단결해서, 머리빡이 터질 것을 감수하면서라도 나서서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힘없는 ‘농민단체’들은 힘없는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각종의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며 약자들을 탄압할 빌미를 얻는
기득권세력에게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농민단체들도 ‘비정규직 노동자’ ‘국가보안법/자주통일’ 문제에 관심 갖는
것이 마땅하고, 반대로 노동자들 역시 농민의 문제, 국가보안법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 지당하다.
하지만 실상 자신들 생업의 문제가 우선 급한 이유로 현실적으로 유기적인 연대활동은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저렇게라도 플랭이라도 걸어서 서로간의 연대의 의지를 고취시키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양군 농민 단체에서 걸어 놓은 노동자,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을
배려한 저 플랭은 참으로 소중하다.
참고로 농민, 노동자 등의 민중조직의 자본과 권력에 대한 저항은 다소 과격할 수가 있다.
‘법’과 ‘행정’ ‘정치권력’ ‘언론’을 손에 쥐고 교묘히 민중을 휘두르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실력행사가 필요하다.
폭력을 싫어하는 이들은 그들의 과격한 저항에 대해서 무턱댄 ‘반감’을 갖곤 하는데,
이는 극히 현실감각이 없는 편한 생활과 사고가 불러일으키는 착각의 결과이다.
‘폭력이 싫다’는 원론과 ‘폭력이 필요한’ 힘없는 약자의 현실을 정확히 구분해서
폭력 자체에 대한 반감을 가져야 하지, 어쩔 수 없는 물리력을 휘두르며 생존권을 외치는
이들을 비하하거나 매도해서는 안 된다.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이 - 돈과 권력, 언론, 법, 정치 제도를 이용해서 ‘있는 자들 더
배불리 먹게 살게 하고, 없는 이들을 더욱 굶주리게 만들게 하는 현실’이 만들어지는데,
이 상황에서 지금 당장 굶어죽게 생긴 마당에서 힘없는 민중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목숨 걸고 나서서 피 튀기면서 싸우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과격히 나선 결과 팔다리 부러지고 종종 목숨을 잃는다는 것도 알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앉아서 죽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나서고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종종 tv를 통해서 전경과 맞서는 농민, 노동자 집단들에게 오히려 연민과
지지의 의지가 솟구칠 것이다.
야영
청양 있는 동안에는 내내 청양초등학교 한편 현관입구 앞쪽에 텐트를 치고 묵었다.
날이 추워져서 누워 자려면 얼굴이 시리었고 새벽에는 한기에 종종 깨곤 했다.
[ 1000 청양초등학교 한편의 야영장 ]
첫날에는 현관 경사로에 텐트를 치고 잤는데, 잠자는 내내 균형을 잡기 위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추운데다가 숙면도 못 취하다 보니 다음날 저녁에는
몸살기운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찜질방이나 사우나를 찾아 들어가려고 했더니, 청양에는 그런 시설이 없다.
없으면 없는 데로...
[ 1010 날이 추워져서 서리가 낀 차창 ]
셋째 날 저녁에는 방한 마스크를 사왔다.
호흡하는 데는 좀 방해 스럽기는 하지만, 얼굴이 시린 통에 숙면을 취할 수 없다.
진즉부터 사다가 쓰고 잤어야 했다.
[ 1011 낮에 구입한 방한마스크 ]
새로운 식구가 늘어서 머리에 쓰고 자는 빵모자와 통성명을 시켰다.
[ 1102 빵돌이(빵모자)와 마순이(마스크)가 손을 부여잡고 둥글이를 따듯이 품어 줄 것에 대한
다짐하고 있다. 오호호~~~ 귀여운 것들... ]
그리고 장비의 신구의 교체도 있었다.
[ 전역을 눈앞에 둔 면병장은 그간 6개월간 둥글이 배낭의 세면대 속에서 한결같은 충성심
을 과시했다. 종종 적들의 섬멸을 위한 과도한 의지가 피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피부
를 갈라 피를 쏟게 하기도 했지만, 그의 충성심은 한결 같았다. 다만 말년에 들어서면서 군
기가 빠지는 통에 적들을 단칼에 날려버리지 못하는 노쇠한 모습을 보여 왔었다. 더군다나
‘잘리지 않으면 잡아 뽑는다’는 신념에 불타던 그의 의지는 오히려 둥글이의 심기를 불편이
만들어 내기까지 했고 결국 전역을 앞당기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 위 사진은 면 병장 전역
식 및 신병환영식에서 둘이 덕담을 나누는 모습. ]
이들 빵돌이와 마순이, 면병장과 면이병이 서로 상견례를 나누고 있는 동안,
슈퍼에서 팔려온 오징어 다리는 둥글이의 입 속에서 우걱우걱 씹히기를 자처하며
둥글이의 다음날 활동을 위한 영양을 보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풍찬 노숙
노숙을 하는 이에게 가장 큰 고통은 10월 말경부터 엄습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추위’이다.
텐트 하나 세워 놓고 그 안에 침낭 깔고 그 속에서 잠을 청해야하는 처지이다 보니,
그 냉기가 쏟아내는 고통은 수월히 버텨낼만한 것이 아니다.
옷은 옷대로 껴입고, 머리에 빵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하며 완전무장 상태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천지를 지배하는 ‘냉기의 힘’은
숨을 빨아들일 때 마다 마스크가 피부와 맞닿는 틈 사이로 밀려들어오며 얼굴을 할퀴고,
밤새 허파를 딱딱하게 굳어내게 만들곤 한다.
그 냉기의 잔혹함은 두꺼운 침낭 사이를 어느새 스며들어와 이 가련한 자의 몸을 휘감으며
단꿈에 젖어있는 것을 방해하고 뜬 눈으로 새벽을 웅크리게끔 만들어 내는데
이는 참으로 혹독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저녁에 수돗가를 오가면서 밥을 해 먹는 일,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냄비에 남은 밥 반절을
입에 털어 넣고 나서 이빨을 닦고 몸을 씻어야 하는 일 역시 수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없는 이들에게는 ‘잔혹함의 계절’인 겨울이 선사하는 고통이 단지 추위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텐트 내에 결루가 생기는 것 역시 큰 문제다.
(결루 : 온도차이로 인해서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
텐트 안은 내 몸의 열기 때문에 텐트 밖보다 약간 온도가 높다.
이렇다 보니 새벽에 기온이 확 떨어질 때 텐트 천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텐트가 흠뻑 젖어 버리는 것이다.
텐트만 젖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젖은 침낭 위 아래로 맞닿는 침낭이 그 물기를 또 빨아들이게 된다.
이로 인해서 10월 말경부터 11월, 12월은 오후에 한두 시간씩
텐트와 침낭을 깔아 놓고 햇빛에 말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구름이 껴서 해가 뜨지 않는 날에는 축축이 젖은 텐트와 침낭을 그대로 묵혔다가
저녁에 그대로 펴고 덮어야 한다.
공포의 11월... 12월...
오죽 했으면 작년 겨울에 고생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훤히 떠올라서,
한여름에 땀 뻘뻘 흘리고 다니면서도 닥쳐올 11월, 12월을 걱정했을까...
이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묻는다.
왜? 더욱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며 덜 고통스러울 방법이 있음에도
이 추위에 그렇게 길바닥에서 이 고생을 하냐?고...
1. 자가용이 있었으면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좀 더 수월한 활동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가용을 불신하기 때문에 차는 물론이고 운전면허증도 없는 상황이기에
부득이 도보로 이동하면서 노숙을 하며 캠페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2. 인류와 생태를 망가트리는 ‘대중소비사회’에 대한 저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내 자신으로부터의 ‘일상의 해체’를 위해서 부득이 기존의 적응된 삶을 떠나서
길바닥에서 스스로를 다듬지 않을 수 없다.
거듭 하는 얘기지만,
이렇게 힘겨운 길바닥 생활을 하는 것은 내 자신이 ‘인류’와 ‘환경’을 위해서 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내 자신이 엮어진 세상/생태의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나서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세상의 변화가 없으면 앞으로 닥칠 (내 자신의 일이기도 할)
세상의 파국을 막을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세계의 파국을 막아낼 수 있는 보편타당한 기준으로 세우는 것은,
내 자신의 행복 속에 세상의 행복이 있고 세상의 행복이 내 자신의 행복과 둘이 아님을
아는 자가 자연스럽게 취해야할 행동이리라.
허구와 가식이 만연하고 눈에 보여지는 단편이 존재의 진실을 전복하는
이 거짓과 허무와 욕망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설령 길바닥에서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고 가장 나답게 존재하기 위한 길을 가야 한다.
상가 캠페인
토요일 오후 사람으로 붐벼야 할 상가에 파리만 날리고 있어서 그런지,
설문 조사 겸 해서 인간-생태문제를 홍보하기 위한 청양에서의 토요일 오후
상가캠페인 활동은 죽을 쒔다.
무작정 찾아간 다섯 곳 가게에서마다 싸늘한 냉대를 받아야 했다.
상가 캠페인 다니면서 초반에 들린 가게에서 (다섯 곳씩이나) 그렇게 죄다 냉대를
당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청양주민들이 원래 그렇게 퍽퍽하고, 쌀쌀 맞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음식, 생리학적인 측면으로 톡 쏘는 자극적인 음식(청양고추)속에서 살아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싸늘함을 배여 나올 수도 있는 문제였다.
뭐 하지만 고작 다섯 곳의 가게를 거치고 나서 이를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으리라.
좋은 날이 있으면 확률적으로 이런 날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게를 한 곳 더 들렀다.
가게 아주머니는 정당에서 설문조사 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어떤 단체에서 왔냐’고 물어보신다.
적당한 이름 둘러대는데 몇 번이나 물어보신다.(그 후로 세 번 더)
한국내의 환경단체 이름을 구분하시고 그 세세한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이 한 얘기 또 하게 만드시는 버릇 같았다.
아주머니는 스스로 ‘환경에 대한 관심도 많이 있고 실천도 잘 한다. 재활용등을 잘한다.’고
하신다. 또한 ‘앞으로는 환경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누군가 훌륭한 정치인들
이 나서서 세상을 바꿔 놓을 것’이라 하신다.
그랬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말이 통하시는 분이다.
더군다나 환경에 대한 관심도 많으시다니 시간 내서 좀 말씀 드려야겠다.
그래서 환경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지 않고, 더욱 더 큰 극심한 오염상태로 다가가고
있음을 각종의 자료로 설명 드렸다.
또한 ‘재활용’ 등을 잘한다고 해서 환경파괴가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소비, 소유 습관 자체가 환경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 자체를
설명 드리려 했다.
내 딴에는 흥에 겨워서...
그런데 아주머니는 갑자기 귀찮다는 듯이 말을 끊으시더니
‘여보세요. 어디단체에서 왔다고 하셨어요?’ 하고 다시 묻는다.
^^‘
아주머니는 ‘알았으니 되었다’고 하신다.
갑자기 뒤통수 맞는 기분이 들어서
백배 사죄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하면서 가게를 나섰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으시는 분들에게 뭘 더 얘기할 수 있으리오.
고민의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스스로 벌려 놓은 일들을
온전히 대하게 할 것인가...
다음 들리는 가게와 다다음 들릴 가게에서 계속 저런 대접을 받으면
스트레스가 올라올 것 같아서 상가캠페인을 접고 다른 볼일을 보기 위해서
상가로부터 벗어났다.
소심한 A형이여~~ ㅠㅜ
청양 초등학교 활동(11울 5일)
몇 일간 묵었던 청양초등학교 후문에서 캠페인을 준비한다.
[ 2000 청양초등학교 후문 전경 / 왼쪽 아래 사열된 스티커 ]
날이 싸늘해서 아침에 일어나서 수돗가에서 머리감고 세수하느라 애로가 많았다.
기온이 떨어져서 스티커를 손에 끼고 아이들에게 나눠주는데
손가락이 원활이 움직이지 않았다.
중간에는 한 뭉텅이 스티커를 떨어뜨렸는데, 제대로 줍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리 추운 편은 아니어서 별 무리 없이 활동을 했고,
‘그냥 들어가’라는 부모님의 지시에 스티커를 안 받고 그냥 들어가는 아이를 비롯한
두 명을 제외한 아이들은 다들 잘 받아서 들어갔다.
중간 중간 돌아와서 스티커를 받아가는 아이들과
청소하기 위해서 몰려왔던 아이들이 활동에 관심을 보여주며
앙증맞은 표정을 보이며 갔다.
[ 2010 골라~ 골라~ 골라 가져가~~ ]
- 2005년 11월 5일 충청남도 청양에서 ...
청양에 깔리는 어둠
운명은 우연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