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장 강해 시대의 지도자 참된교회
요즘 나라가 희망과 불안이라는 두가지 가능성이 혼돈스럽습니다.
북핵의 문제를 해결하려 북미가 모여 싱가폴에서 회의를 하고 또 선거시즌이라 민심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 정치인들은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를 만나면 우리는 저마다 옛말처럼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영웅을 기대합니다.
인터넷에서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북한은 핵을 가졌다고 핵보유국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문재인을 가졌다고 문재인 보유국이랍니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꼬였던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긴 표현인 것 같습니다.
글쎄 그렇게 될는지 아닐 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할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은 시대적 상황이 대단히 어려운 지경입니다. 국론은 분열되어있고, 종교는 사두개 바리새 에세네파로 나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혜성같은 지도자가 등장했습니다.
그야말로 난세의 영웅이십니다.
죽은자를 살리는 사람, 5000명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수준높은 가르침으로 백성을 매혹하는 사람, 순교자 세례 요한이 감히 나는 그의 신들메도 풀 자격이 없다고 선언한 사람
동정녀의 신비한 탄생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이 사람에게 민족의 운명을 기대하지 않는 다면 그가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숨이 꼴깍 넘어가는 질문입니다.
세례 요한 엘리아 선지자 중의 하나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에 주님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이라는 새이름을 주시고 이 반석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걸어가야할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뭇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난세의 영웅은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민족인 유대인 뿐이니라 온 인류를 구원할 은혜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서
나는 나의 십자가 지고간다. 그러니 너도 너의 십자가 지고가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도 그리하지 마옵소서라고 했고 그도 그의 십자가 지고갈 마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시대의 메시아를 바라기는 했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하여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음 주간에 북미회담과 단체장선거들이 치루어집니다.
어쩌면 우리도 북미회담에서는 난세를 평정하고 이끌어갈 영웅이 등장하길 바라고
선거에는 또 영웅이 될만한 사람이 누군고하며 누구를 뽑아야하는가? 하는 정도에서 우리는 우리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할 런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무릇 지도자는 자기 희생의 길을 걸어야한다며 본인의 십자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주님의 제자된 이들에게 너희 몫의 희생의 길도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시" 라고 제목을 붙인 시(詩)가하나 있습니다.
"오! 나의 십자가여! 내가 버렸던 십자가여! 내 그토록 다시 보고싶던 나의 십자가여! 주께서 달려 돌아가신 그 십자가에 오늘 나 또한 죽게되니 감격으로 그대를 맞노라. 나 얼마나 그대를 그리워했던가! 나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던가! 그대는 오늘 나를 주님의 곁으로 인도하니 나 이제 그대의 품에 오늘 달리겠노라."
오늘날에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죽이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신앙 생활을 한다고 사회적으로 왕따가 될 염려도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리는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만은 네가..." 그것이 곧 십자가입니다. "너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저 같은 사람은 하늘나라 갈 때가지 이 목회를 해야 되는 것이 나의 십자가입니다. 각양 각색의 은사 따라 하나님은 십자가를 주십니다. 베드로의 시처럼 "오! 나의 십자가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내가 지고 순례의 길 가다가 함께 주님 곁으로 갈 나의 십자가여! 십자가 없는 나의 인생의 존재는 의미가 없노라. 사랑의 나의 십자가여!"
예수만이 참 길이라면서 그 길만을 걷는 자 적으며
예수만이 참 진리라면서 그 기쁨을 말한 자 적다네
예수만이 참 생명이라며 소중하게 모신 자 적으며
예수만이 참 구주라면서 그 사랑을 전한 자 적다네
시대가 암울하여 십자가를 지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나라를 지탱하는 데는 네 가지 권위가 존재합니다.
정치인들의 권위,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사들의 권위,
성직자들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입니다.
이 네 가지의 권위가 흔들리거나 무너질 때 나라가 흔들리는 위험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분명 권위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 땅을 이끌고 있는 정치인들을 존경하며 따르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선생님들의 권위마저도 땅에 떨어진 실정입니다. 더욱 권위의 보루인 성직자들마저 세속에 물든 직업인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아버지의 모습은 위축돼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 시대는 분명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절망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조국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뿌려 기도하며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과 조국은 이러한 남은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3 . 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남궁억 선생님은 암울한 역사에 한 줄기 빛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황성신문 사장, 현산학교 설립자, 관동학회 회장 등으로 나라를 위해 일했습니다. 찬송가 371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특히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개해 나라 사랑과 독립의지를 일깨웠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아 순국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시체를 불살라 곱게 가루 내어 무궁화나무에 거름으로 주게 하라"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가?"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세상이 어수선한 때는 더욱 애국자가 필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애국자인 것 같은데 사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애국자로 자처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향을 묻지 말자 우리가 고국에 돌아가게 되면 피차 고향을 묻지 말고 일하자. 인화와 단결이야말로 국권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나라가 독립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다.(조만식)
도산 안창호
"나는 밥을 먹어도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잤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일본의 실력을 모르는가?"
"나는 일본의 실력을 잘 안다.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나라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무력만한 도덕력을 겸하여 갖기를 원한다."
"그건 무슨 뜻인가?"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인 우리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2천만에게 원한을 품게 하는 것보다 우정을 가진 2천만을 이웃으로 두는 것이 일본에게 득이 될 것이다. 내가 우리 나라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도산 안창호를 취조하던 일본인 검사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대한제국멸망사>를 썼던 헐버트선교사가
그의 책에서 ‘조선 사람들은 사회생활 할 때 보면 유교가 지배하고 있고,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를 보면 불교인데, 위기와 어려움을 만나면 샤머니즘, 즉 무속신앙가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사람들눈에 비친 우리 모습 저변에는 무속 신앙적이고 미신적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편하게 사는 사람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은 힘들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편히 살면 살수록 사람은 점점 약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위가 있습니다.
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1. 천국의 열쇠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2.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적의 문을 취하는 권세입니다
3. 하늘과 땅을 묶고 푸는 권세입니다.
교회가 무엇인가?
1. 바른 신앙고백이 있는 공동체
스탠리 존스라는 분이 마하 트마. 간디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마하 트마 간디씨 당신이 아시다시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과 당신의 운동을 서구사회에 알리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당신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이제는 바꿔야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약간의 원리를 파악하였고 당신의 원리들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또 그 때문에 당신은 그만큼 유명해졌습니다. 당신은 캘커타에서 위로 받기위해 산상수훈을 의지하지 않고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트기타를 의지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물론 나도 산상수훈을 의지해서 위로받진 않습니다. 나는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그분을 의지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당신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원리를 파악했지만 바로 그분을 놓쳤습니다. 그 원리를 넘어 그 분을 만나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후 다시 와서 당신이 찾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십시오…….
기독교인의 원리를 발견하고 그 원리대로 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산상수훈을 근거로 인생철학을 펼쳤으나, 생명의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의 왕이라는 사실, 주님은 나의 선지자라는 사실, 주님은 나의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삶 속에는 주님이 그의 진정한 구세주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공동체
"베드로의 시" 라고 제목을 붙인 시(詩)가하나 있습니다.
"오! 나의 십자가여! 내가 버렸던 십자가여! 내 그토록 다시 보고싶던 나의 십자가여! 주께서 달려 돌아가신 그 십자가에 오늘 나 또한 죽게되니 감격으로 그대를 맞노라. 나 얼마나 그대를 그리워했던가! 나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던가! 그대는 오늘 나를 주님의 곁으로 인도하니 나 이제 그대의 품에 오늘 달리겠노라."
오늘날에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죽이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신앙 생활을 한다고 사회적으로 왕따가 될 염려도 사실 없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리는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영원히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만은 네가..." 그것이 곧 십자가입니다. "너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저 같은 사람은 하늘나라 갈 때가지 이 목회를 해야 되는 것이 나의 십자가입니다. 각양 각색의 은사 따라 하나님은 십자가를 주십니다. 베드로의 시처럼 "오! 나의 십자가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내가 지고 순례의 길 가다가 함께 주님 곁으로 갈 나의 십자가여! 십자가 없는 나의 인생의 존재는 의미가 없노라. 사랑의 나의 십자가여!"
예수만이 참 길이라면서 그 길만을 걷는 자 적으며
예수만이 참 진리라면서 그 기쁨을 말한 자 적다네
예수만이 참 생명이라며 소중하게 모신 자 적으며
예수만이 참 구주라면서 그 사랑을 전한 자 적다네
시대가 암울하여 십자가를 지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3. 이런 교회에 주시는 권위 : 주님이 함께 하신다
천국의 열쇠 / 묶고푸는 권세
대구가면 목사님들이 여기는 동화사 파계사 절들이 많아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목회가 어렵다고합니다.
경주에 가면 불국사에 남산..... 여기는 불교의 도시입니다.
심지어 교회이름 중에 한 때 불국사 교회라고 하는 교회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천엔 직지사가 있지요
경북 김천시 대항면 덕전길 308-27에는 교회이름이 직지교회가 지금도 존재합니다.
구룡포는 용이 열 마리 용 중에서 아홉 마리가 승천하고 한 마리가 떨어져서 형성된 땅이이라 안된다
만약 그런 미신과 불교세력들 때문에 교회가 힘들다면 왜 미신과 불교의 권세와 영적전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그렇게 말슴하시는 분들에게 그럼 그 불교의 권세를 깨트리는 기도를 드립니까라고 물어보면 별로 시원스러운 대답을 하는 분들을 만나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교회는 이런 교회로 자라가야 한다.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LA 은혜교회 김광신 목사은
교회성장의 요인이 밖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교회
흥해 갈보리교회
이런교회를 만들어가는 주님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