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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나 가슴 조이며 찌그려 지내다보면 평생 가족들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없었던 그곳을 나혼자 제발로 뛰쳐나온지 벌써 6개월째다.. 직장 떠나면 남남이라는데 난 아직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고 나를 걱정해주는 전화도 한두번씩 오는걸 보면 인생 헛살지 않았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몰려오는 고독감이 마치 광야에 홀로 서 있는것처럼 나를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건 한국을 떠난지 두달이 지난 지금에 있어 한번쯤 찾아오는 일종의 향수병이 아닐런지..
핑계는 그럴듯했다.. 비엔티엔이 덥다는 이유로 그곳을 떠난 내가 어쩌면 한국에서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라오스에 온것처럼 내가 한곳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을 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한참을 걷는데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하염없이 옷을 적시고 숨을 쉴수 없을 만큼 뿌연 먼지를 마시며 걷고 있는 내가 왜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애써 지으며 물한모금 마시고는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그곳에는 어둑해진 하늘과 먼지에 가려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물체들로 가득해 내가 살아온 날도 살아갈 날도 지금처럼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가시밭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루앙프라방에 가기 위해 북부터미널로 걸어가는 도중에 감상에 빠진 내 모습이었다..
약 먹어야겠다.. 처방전은 이런 생각을 잊게 해주는 비어라오와 비어라오와.. 음.. 비어라오뿐이네.. 에잇..
말로만 들었던 슬리핑 버스를 처음 타봤다.. 태국여행하는데 버스를 오래 타서 엉덩이가 너무 아팠던 안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장거리 여행은 무조건 편하게 가야한다는 몸소 체험을 한게 뇌리에 박혀있었다.. 180센티의 체형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릎을 굽혀야만 하고 덩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두사람이 눕기에는 비좁은, 어쩌면 동남아시아 사람의 체형에 맞게 설계된 버스였다.. 나는 180이 안되고 뚱뚱한 체격이 아니었기에 하룻밤 이동식 숙소로는 불편함이 없었다.. 왜소한 체격의 내 옆자리 동승자도 도와주었고..
10시간의 장거리 이동끝에 도착한 루앙프라방은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다.. 처음에 왔을때는 라오스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왔는데 하늘에서 기류를 잘못만나 비행기가 수직 낙하하는 경험을 두번이나 해봤다.. 그땐 정말이지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서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었고 내 삶이 여기서 끝나는줄 알았다.. ytn뉴스에서는 산자락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비행기의 잔해가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탑승객중 한국인은 있는지, 있으면 몇명인지 조사가 끝나는데로 소식을 전하겠다는 앵커의 멘트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행기는.. 무서워..
어쨌거나 나는 무사히 도착했고 또 숙소까지 4킬로 되는 거리를 걸었으며 불편하고 모자랐던 수면을 취했으며 늦은 아침겸 저녁을 먹기 위해 시장에 들러 밥과 반찬을 사서 숙소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메콩강을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라오스에 머물면서 귀동냥을 해서인지 몰라도 느릿느릿하게나마 라오스 말이 나왔다.. "커이 약 스 니, 타오다이?" "렁 낀 다이버?" , "하판킵 팽 냐이, 커이 약 스 성판킵".. 빨간 앞치마를 두른 아줌마들이 웃는다.. 나도 웃었다..
사탕수수를 담았던 빈 플라스틱 컵이 일회용 밥그릇이 되어주었다.. 밥과 반찬을 넣어 비볐는데 양이 많아서 저녁에 먹을려고 남겨두었다.. 13000킵에 두끼의 식사가 해결되는 셈이었다..
비엔티엔과 달리 이곳 루앙프라방에는 울창한 나무들로 도시를 감싸고 있다.. 나무를 베어내고 집을 지은게 아니라 나무 아래 틈을 비집고 집을 지은 형국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보면 나무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아무리 강렬한 태양이 비추더라도 이 나무 아래에 있으면 엄마품에 안긴것처럼 아주 편안하다.. 가끔씩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은 엄마의 자장가처럼 느껴져 눈이 저절로 감긴다.. 이 안에서 나는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
버스여행, 오토바이여행을 해봤으니 이젠 자전거여행을 해볼 차례였다.. 그래서 숙소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예전에 둘러보았던 장소들이 조금씩 떠올랐다.. 조마베이커리, 야시장, 지금과는 반대편에 머물렀던 숙소.. 그래 나 여기 와봤었지.. 한번 오기도 힘든 바쁜 한국의 삶인데도 나는 두번이나 와서 둘러보고 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많은 돈과 시간의 대부분을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다른 곳에 할애한것은 아니었을까..
광시산, 서울로 치면 남산같은 곳에 올라가봤다.. 루앙프라방을 사방으로 다 볼수 있는 전망 좋은 산에서 난 잊고 있었던, 아니 잊을수 밖에 없었던 등산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주말이면 멀든 가깝든 산을 찾아다녔던 내가 어쩌면 두달만에 처음으로 마운틴에 올랐던 것이다.. 느끼는 바가 각자 다르겠지만 난 산에 올라 낮은곳을 바라볼때면 항상 풍요로움을 느낀다.. 많이 가졌다는 의미의 풍요로움보다는 산이라는 거인의 어깨너머로 세상을 바라볼때의 내 마음이 더이상 가지고 싶은것도 이루고 싶은 욕망도 없는 그런 풍요로움의 순간을 나는 정상에 오를때마다 느꼈던 것이다.. 비록 외국이었고 야트막한 야산이었지만 산은 내게 있어서 모두 같은 그런 존재였다..
내 마음속에 늘 동경해왔던 풍경.. 너나 할것없이 옹기종기 모여 맛있는것 나눠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이웃들이 모여 살것같은 그런곳에서 한달이든 두달이든 욕심이라면 내 원하는 만큼 머물며 살고싶은 마을이 내 두눈에 들어왔다.. 붉게 물들어가는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보는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다.. 순간,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생각.. 왜 사람들은 라오스를 후진국으로 생각하나.. 이렇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질서를 지키며 문화를 만들며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허구한날 치고박고 싸우는 한국을 라오스 사람들이 본다면 어쩌면 우리를 후진국이라 말하지 않을까..
아기자기한 산들이 산넘어 산이 있다.. 해질녘 석양을 보기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정상주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일몰을 기다리면서 음악을 들었다..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이 지금 이 순간 이 공간과 어울렸다.. 피아노의 선율과 여기저기서 켜지는 현악기의 운율이 조화를 이루어 나의 귀와 마음을 행복하게 해줬다.. 음악처럼 까만 사람 하얀 사람 누런 사람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게 다르겠지만 지금은 오직 같은 마음 같은 생각으로 여기 모였을거라 생각한다.. 그들이 있음에 내가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줄수 있지 않을까 하는 넉넉한 마음을 얻고서 나는 석양의 절정을 몇분 남겨둔채 먼저 내려왔다..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을 렌즈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넘치지 않을만큼 꽉꽉 담아가길 바라며..
지금 루앙프라방은 비수기다.. 장사하는 사람에겐 아쉽겠지만 한적함속에 아주 편안히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살까말까 망설이는 나와 팔까말까 망설이는 아줌마와의 밀고당기는 재미.. 사람이 많았다면 이런 밀당은 없었겠지.. 결국 3만킵의 정가를 한번의 망설임에 2만5천킵, 또한번의 망설임에 2만2천킵에 반바지를 하나 샀다.. 세번 망설였다면.. 이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지도.. 이로써 지금 소유한 바지는 긴바지 하나, 운동복인 7부바지 하나, 반바지 두벌을 소유한.. 바지만 봐서는 다 갖춘.. 풉..
종일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온 나는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 처음 마시는 비어라오.. 그런데 안주가 없어서 망설였는데 독일 사람처럼 보이는 노신사 한분이 자기가 먹던 음식을 나 먹으라고 다 넘겨주셨다.. 감탄을 연발하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푸짐하게 차려놓은 음식을 보고있으니 마냥 행복했다.. 이게 만킵이다.. 어디가서 이렇게 먹을수 있을까.. 역시 난 어딜가도 굶어죽지는 않을것 같다.. 이참에 그냥 이 길로 나가볼까..
광시산에서 본 내일 아침의 달리기 루트를 확인했고 달려야 했기에 맥주는 다 마시지 못하고 12시가 넘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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