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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제 18 구간(시목치 ~ 봇재)
1. 산행일자 : 2009년 4월 25(토)
2. 산 행 지 : 전남 장흥 - 제암산(785m),
3. 출발일시 : 4월 25(토) 04 : 00시
4. 출발장소 : 경기도 여권 민원실 앞
5. 산행개요 :
전라남도 장흥군과 장동면 그리고 보성군과의 경계선상에 놓인 제암산(778.5m)은 호남정맥상의 시목치에서 남쪽의 사자산(667.5m) 사이에 치솟은 바위산으로 남성적인 골산과 여성적인 육산이 어우러진 상당히 골 깊은 명산이다. 이 산 주능선을 장악한 삼 만여 평의 초원지대에 봄철이면 철쭉꽃 붉은 물결이 산상화원을 이루어 오월 초순이면 철쭉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을철 억새 또한 장관이어서 온 능선을 하얀 은빛물결로 가득 채우기도 하고, 도처에 산재한 기암괴석들은 한결같이 임금바위로 불리는 정상 암봉을 향해서 임금을 향한 신하들의 읖조린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올라설 수 있는 이 바위는 흡사 임금 제(帝)자를 닮아 있기도 하다.
갑낭재(시목치)에서 출발하여 오름길에선 시종일관 수인산과 월출봉의 실루엣을 바라보면서 진행할 수 있고, 정상에선 천관산도 볼 수 있는데 하산 길엔 남해바다가 쫙 펼쳐지기도 한다.
서북쪽 산동천과 서쪽 부동천은 탐진강 따라 완도가 있는 강진만으로, 장흥읍 안량면 회천면 계곡수는 곧장 득량만으로 흘러들고, 동쪽의 대산천은 보성강을 따라 주암호를 거쳐 섬진강으로 합류하여 광양만으로 빠져든다.
지금껏 남진 해 내려오던 호남정맥길도 사자산 이후론 동북진하면서 광양 망덕산까지 해안선따라 이어가다가 순천지방에서 조계산을 비롯한 내륙 속으로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다.
보성군의 차 재배역사는 서기 369년(근초고왕)에 복홀군(보성)이 마한으로, 백제로 통합되면서 차를 이용했다는 기록들이 보성군사등에 전해진 것으로 보아 보성군의 차 재배는 160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관련 보성이 차 재배 적지로 알려짐에 따라 1930년 후반기부터 농특사업 일환으로 차가 확대 재배되어 현재는 전국 생산량의 약40%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리적 표시전국 제1호로 등록되어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산악대장제공자료>
6. 산행 참가자 : 노승애, 박봉하, 박상호, 설경자, 안상경, 이용준, 장현옥(7명)
7. 날 씨 : 짙은 안개, 흐림
8. 총 산행 거리 및 소요 시간 : 총 산행 약 22.1km, 10시간 50분 정도 소요
9. 일정 및 소요시간
[1] 구간별 거리 및 주요 산 높이
갑낭재(220m, 시목치, 2번국도)--4.4km--제암산(785m)--1.6km--곰재(510m)--2.0km--사자산(666m)--3.4km--골치(440m)--1.6km--삼비산(667.5m)--1.5km--일림산(626.8m)--2.0km--아미봉(418m)--0.7km--895번도로--3.1km--활성산(445.2m)--1.8km--붓재(250m, 18번국도)
[2] 산행일정
① 산행 출발지(갑낭재) 가는 길
수원(04:00) ∼ 천안논산간, 호남고속 ∼ 동광주IC ∼ 화순 이양(07:20/아침/08:00) ∼ 29번 ∼ 보성 ∼ 갑낭재(08:40)
②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갑낭재(시목치, 08:50) → 소공원(09:10) → 682봉(09:55/10:15) → 제암산(11:10/11:20) → 곰재(11:50) → 곰재산(12:10) → 간재(12:20/12:30) → 사자산(12:55/13:05) → 골치(14:10/점심/14:50) → 일림산(15:35/15:45) → 626.8봉(16:25) → 아미봉(17:05/17:15) → 895번도로/삼수마을(17:40) → 활성산(18:35/18:45) → 봇재(19:40, 18번국도)
③ 산행 후
봇재(19:30) ∼ 보성, 식사 및 숙박(20:00 ∼ )
[4] 탈출로 및 편의사항
♣ 녹차먹인돼지식당(061-372-9537), 보성개인택시(061-852-1414)
♣ 드므포산장(061-857-9992, 짱뚱어), 갯벌식당(061-858-3322, 꼬막)
♣ 보성양탕(061-852-2412)
10. 산 행 기
[1] 호남정맥 종주 1주기 회상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분기하는 『주화산』을 출발(2008년 5월 24일)하여 18, 19구간 산행(2009년 4월 25, 26일)으로 만 일 년이 되었다. 「장수, 진안, 완주, 임실, 정읍, 순창(이상 전라북도), 그리고 장성, 담양, 곡성, 광주, 화순, 장흥, 보성」까지 호남 내륙을 관통하는 동안 주로 오지의 야산 줄기를 산행 했지만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등 명산도 오르내렸고 때로는 호남정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천관산, 월출산’등도 틈을 내 산행을 했다. 멀다, 힘들다, 어렵다하면서도 계획대로 산행을 실시하여 9정맥 중 가장 긴 430km의 大長征의 完走를 이제 몇 구간 앞두고 있다.
돌이켜 보면 백두대간, 금북정맥을 종주할 때만 해도 한 구간이라도 빠져서는 종주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피치 못해 빠지면 다른 날에라도 채움 산행을 했는데 금남정맥 때 두어 번 호남정맥 때는 힘들다 싶으면 다반사로 빠지다 보니 채우려 해도 채울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매 구간마다 산행에 참여 해 호남의 산줄기를 探査하고 風物을 눈에 담았으며 南道의 人情과 맛을 느껴 볼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의 큰 소득이 아니었나 싶다.
대간을 종주할 때처럼 한배 산꾼들이 많이 참여하지 못한 점과 마을 구석구석에 산재되어 있는 풍물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走馬看山으로 지나친 것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2] 비 山行을 대비한 準備
이번 구간은 봄철이면 삼 만여 평의 초원지대에 철쭉꽃 붉은 물결이 山上花園을 이룬다는 제암산(785m), 사자산(666m), 일림산(626.8m)을 한꺼번에 산행하게 된다.
2009년 4월 20일, 18, 19구간 산행 계획이 카페에 올랐다. 열일을 제쳐 두고 기필코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산행일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주간 일기 예보를 들어보니 산행 당일(토) 비가 오겠다고 하며 산행 전날 ‘전남 보성지역 토요일 오전에 비 올 확률 60%입니다. 대비하세요.’라는 산악대장의 예고도 카페에 올랐다.
모처럼 철쭉의 饗宴을 滿喫하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걱정을 하며 雨中 산행을 대비한 준비를 했다. 평소보다 배낭의 부피가 배가 되는 것 같다.
[3] 山行 들머리 『匣囊재』가는 길
4월 25일 03시 55분경, 출발지 경기도 여권 민원실 앞 도착. 04 : 00시를 전후하여 오늘 산행에 참여하기로 한 ‘노승애, 박봉하, 박상호, 설경자, 안상경, 이용준, 장현옥’ 등 7명이 모두 도착했다.
차에 승차, 곧 바로 출발이다.
07 : 00시경, 이양면 「녹차먹인돼지식당(061-372-9537)」도착. 아침식사를 하고 산행 출발지 『갑낭재』로 이동을 했다.
[4] 산행 들머리 갑낭재
08 : 40분, 갑낭재 도착, 舊 道路에 주차를 시키고 짐을 최소화 하기 위해 배낭을 재점검했다. 60% 이상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 질 듯 잔뜩 찌푸린 날씨에 짙은 안개까지 끼였지만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산신령의 가호가 있어 안개 낀 날씨로나마 산행을 했으면 싶다.
08 : 45분, 늘 그렇듯 갑낭재를 출발하면 선, 후가 나누어져 산행 중 만나기 힘들어 갑낭재(匣囊峙) 里程標를 배경으로 단체 촬영을 하고 출발을 한다.
이정표(국사봉 23.8km, 가지산 17.7km, 용두산 7.2km ←[현위치 : 갑낭재]→ 제암산 5.2km, 사자산 9.0km, 삼비산 14.0km)에 『제암산』5.2km표시되어 있는데 오늘 산행의 첫 관문인 帝岩山을 2 시간 정도 오르면 한 고비를 넘길 것 같다.
[5] 帝岩山 오르는 길
[5-1] 철쭉 植栽 안내 표지판
제암산을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가? 초입부터 훤하게 뚫린 등산로다. 등산로 양편으로 철쭉길이 잘 조성이 되어 있다.
「제암산 등산로 변에 심어진 나무와 철쭉은 장동면민의 뜻을 모아 헌수금으로 植栽하였습니다. 등산객 여러분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커오를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십시오. / 장동면민 하나 되기 추진위원장」이라 쓴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오늘 산행은 호남정맥 종주가 되지만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의 만개한 철쭉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는 것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산행 목적인데 안내문을 대하니 더 기대가 되어 걸음을 재촉한다.
[5-2] 소공원
잠시 완만한 오름 길을 따라 작은 봉에 올랐다가 급경사 나무계단, 짧은 능선을 지나 09 : 10분경, 능선 봉에 올랐다. 장동면에서 정자와 쉼터를 마련해 놓은 소공원이다. 이정표에 「제암산 3.2km / 주차장 1.8km」라 표시되어 있다.
쉼 없이 진행, 가파른 오름길을 극복하고 송전탑과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 도착(09 : 17분)했다. 갑낭재를 출발하여 30여분 산행을 했는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잠시 휴식.
[5-3] 큰산(682봉)
휴식도 잠시, 다시 출발하여 바위 전망대가 있는 곳을 지나 잠시 내려섰다 싶은데 다시 오름길로 이어진다. 산죽 밭, 바위, 산죽 밭을 지나 봉에 오른 것이 09 : 30분, 맑은 날이면 주변 경관을 살피며 오르는 재미도 여간 이닐듯 싶은데 안개가 시야를 가려 眺望의 福은 누리지 못하고 묵묵히 『제암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09 : 50분, 임금바위 2.2km지점 통과하고 10분 뒤, 현 위치『큰산』이라 표기된 이정표(가지산 20.2km / 용두산 9.7km / 갑낭재 2.5km ← [큰산] → 제암산 2.7km / 사자산 6.5km / 일림산(삼비산) 11.5km)를 세워 놓은 곳에 도착(10 : 00)했다. 지도상에 682봉이라 표기된 곳이다.
[5-4] 不忘碑가 있는 바위지대
682봉에서 우측으로 꺾어 5분여를 진행하니 헬기장이 있고 오름길도 한풀 꺾여 능선으로 이어지고 제암산 정상이 가까워지는지 바위지대에 도착했다. 바위지대를 진행하다보니 「님은 생전에 무척도 산을 좋아하시더니 끝내 이곳에서 산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1995. 10. 29. 동부고속 호남정맥 산우회 일동」이라 새긴 ‘권중웅’ 山友의「不忘碑」가 눈에 띈다. 生面不知지만 마음으로나마 冥福을 빌고 제암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 진행하다보니 바위壇 위에 거대한 사각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태고적 제암산이 생겨날 때 自然스럽게 만들어진 立石인데도 인위적인 힘을 가한 듯 정교하게 세워진 것에 절로 감탄이 터진다. 오묘한 자연의 조화다.
[5-5] 병풍바위 삼거리
10 : 45분에 제암산 정산 오르기 직전의 안부에 도착했다. 현위치 『병풍바위』이정표(임금바위 0.6km, 휴양림 1km, 감나무재 3.7km, 관광농원 3.6km)를 세워 놓은 삼거리다. 이곳에서 「제암산 휴양림」으로 하산할 수 있는 곳으로 제암산 정상을 600m만 오르면 오늘 산행의 첫 고비를 넘기게 된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제암산』으로 향했다.
[6] 帝岩山(807m)
금수강산(고품격 산악매거진) 홈페이지에 『帝岩山(807m)』전남 장흥군과 보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소백산맥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성적이고 웅장하며 사면의 바위들이 정상의 바위를 향해 엎드린 것 같이 보인다 하여 임금 바위산이라 부른다. 이 산은 東으로 보성을 지나 고흥반도까지 지맥이 이어져 있고 西쪽으론 ‘사자산’, ‘억불산’을 이어준다. 전망과 운치가 대단하며 장동면의 시목재 등정로는 산오름의 멋이 마치 1천미터 이상의 고산을 오르는 느낌을 준다.
정상부는 3평정도의 넓고 평평한 바위로 되어있어 인상적이다. 특히 제암산과 사자산(666m) 사이에 위치한 3만여평의 철쭉 단지는 붉은 빛으로 온산을 장식하여 산행객의 혼을 빼놓으며 1991년부터 매년 5월 1일에서 10일 사이의 휴일에 「제암철쭉제」가 열린다.
휴양림, 형제바위, 철쭉과 억새, 남으로 펼처진 다도해 풍경들 북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들... 장흥군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남쪽 산록에는 제암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제암산은 정상은 임금제(帝)자 모양의 3층 형태로 높이 약 30m정도 되는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수십명이 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정상바위를 향하여 여러 바위와 주변 봉우리들이 임금에게 공손하게 절을 하고 있는 형상이어서 임금바위(제암)라고 부른다.」고 소개를 하고 있다. (http://www.mauntin.co.kr/bbs/zboard.php?id=mauntin&no=330)
또 「이대흠(월간 Mountain)」기자는‘南道의 上帝 帝岩山’이라는 글에서 그의 문단 데뷔작인 「제암산을 본다」에서
제암산을 보면 장흥 땅 전체가
그 산으로 집중된 느낌이 든다 과장하면
전라도가 한반도가 그곳으로 모아져
탱탱히 부풀어 오른 산
남해는 여인처럼 찰랑거린다.
길게 혀 빼어
그 산을 핥아댄다 몸을 뒤채며
잠이 오지 않는다는 듯 거칠게
숨을 토한다
산등성이 자진모리로 꿈틀거린다.
지가 무슨
지가 무슨 한반도의 자지라고
산꼭대기 햇살 받아 흰 바위 상대바위
절정에 다다른 산이 참지 못하고 뜨겁게
토해 낸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산을 닮고 태어나
산이 되어 죽는다.
라고『제암산』을 묘사를 해 놓았다.
빨리「임금바위」에 올라 주변 峰들이 揖을 받아 볼 料量으로 걸음을 빨리한다.
[7] 제암산 『임금바위』
11 : 00시, 左右로 두개의 큰 바위가 우뚝 솟은 암봉 아래에 도착을 했다. 이정표(가지산 22.7km, 용두산 12.2km / 갑낭재 5.2km, 큰산 2.5km ←[현위치 : 제암산 정상(임금바위), 해발 807m]→ 간재 3.0km, 철쭉제단(철쭉군락지) 2.5km / 사자산(미봉), 3.7km, 삼비산 8.7km)에 『제암산(임금바위)』이라 표기가 되어 있다.
다소 뒤처지기는 했지만 선두 팀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이미 떠나고 없다. 너무 지체를 한 것 같다.
우선 배낭을 내리고 급한 숨을 진정시킨 후 주변 경관을 조망해 보기 위해『임금바위(제암산 정상)』에 오른다. 10m는 족히 될 듯싶고 直岩壁이고 계단이나 사다리도 없어 오르기가 만만해보이지 않았지만 암벽 가까이 접근해 보니 발을 딛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틈이 있어 오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임금바위」』에 올랐다. 아래서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넓고 평평하여 2, 3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盤石으로 「해발 807m 제암산」라 쓴 頂上石과 「이 제암산 바위는 보성과 장흥과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807m의 정상에 위치한 장엄하고 신령스런 바위로 우리 지방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우리 모두 근면성실하게 복지 농촌을 추구하는 소망에서 면민의 뜻을 모아 삼가 이 표지석을 세운다.」라는 장동면민의 소망이 담긴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先行者들에 따르면 이 바위에 올라서면「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 '호남의 금강' 으로 불리우는 월출산,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과 팔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고 하여 조망이 壓卷이라 했는데 짙은 안개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임금바위는 이번 한 번으로 조망의 복을 안겨 줄 뜻이 없는 모양이다.
조망의 福을 누리지 못하고 바위에서 내려와 人口에 膾炙되고 오늘 산행 중 가장 기대가 되는 山上花園 철쭉 군락지로 이동을 했다.
[8] 778.5봉(산동마을 갈림 길)
능선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니 또 하나의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아마도 임금바위를 우회하는 등산객들에게 정상임을 알려주기 위한 배려에서 세운 모양이다.
11 : 15분, 「제암산/산동마을」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가지산 22.9km / 용두산 12.4km / 갑낭재 5.2km ←[현위치 : 제암산/산동마을 갈림길] →산동마을 1.7km / 철쭉평원 1.9km / 사자산 3.8km / 일림산 8.8 km)와 삼각점(장흥 22/1990재설), 헬기장 그리고 이동기지국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778. 5봉이다.
이정표에 표시해 놓은 「산동마을」은 제암산 아래 위치한 마을로 삼거리에서 1.7km 떨어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장흥군 용계면의 노산리에 속했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동, 연하, 척동을 병합하여 연하와 산동의 이름을 따서 「하산리」라 부른다고 한다.
척동마을은 장흥군청에서 동쪽으로 약 12㎞거리의 목포~여수간 국도 2호선과 인접하고 있으며 산동마을은 척동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4㎞를 거슬러 올라간 제암산 기슭의 산간마을로 마을 중앙으로 제암산에서 이어지는 맑고 깨끗한 계곡이 관통하고 있으며 시원한 물이 흐른다.
척동마을은 임금이 사용하는 자(尺)의 형국으로 전하며, 산동마을은 큰 뱀이 물을 먹으려는 형국이라 하는데, 특히 뱀의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척동의 북쪽에 연하동이 있었는데 지대가 높아 항상 안개가 많은 지역이라 하여 ‘연하동’이라 하였으며 산동마을은 6ㆍ25전쟁 이전에는 70호 정도가 터를 잡고 살았으나 전쟁 때 마을이 불타고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입주해 들어왔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은 제암산 중턱에 있는「형제바위」를 효심과 형제간 우애의 표상으로 자랑을 한다.
[9] 제암산 형제바위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철쭉 꽃망울이 부풀어 광활한 山野가 붉게 물들어 있는데 일주 후쯤이면 산 전체가 燎原의 花園으로 바뀔 것 같다.
11 : 25분경, 돌탑과 이정표에「형제바위 0.3km / 곰재 0.8km」라 표시된 삼거리에 도착했다.
척동과 산동마을 사람들이 부모에 대한 효심과 형제간의 우애를 표상으로 삼는『형제바위』가 300m라. 뛰는 걸음으로 걸으면 금방『형제바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 사진으로 담아 올 수 있는데도 ‘힘들다. 시간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다 보니 바위기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김새가 비슷한 두 개의 큰 바위가 나란히 서 있는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형제바위」다.
「먼 옛날 제암산 아래에 있는 ‘산동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형제가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단란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아버지가 앓아눕게 되었고, 흉년까지 겹쳤다. 형제는 제암산으로 산나물을 캐러 갔다가 동생이 험한 산길에 미끄러졌는데 형이 아우를 구하려고 손을 내밀다가 함께 떨어져 죽었다. 동네사람들이 시신을 발견하고 양지 녘에 묻어주었는데 며칠 후 형제가 죽은 장소에 새로운 바위가 솟아났다. 그 모양이 죽은 형제의 다정한 모습과 너무 닮아 마을 사람들이「형제바위」라고 불렀으며, 그 이후 제암산에 나물을 캐러 다니다 사람들이 다친 일이 없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다.
지척에 「형제바위」를 두고 지나치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먼발치에서나마 눈에 담고 갈 수 있어 다행이다.
형제바위를 눈에 담고 내려오다 잠시 휴식(11 : 40분)을 취하며 間食 시간을 가진다. 짙은 안개와 매섭게 부는 바람으로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오래 머물 수가 없다. 간식으로 휴식을 대신하고 바로 출발을 한다.
[10] 곰재 사거리
11 : 55분, 제암산 철쭉군락지 안내문과 등산 안내도, 그리고 이정표(가지산 24. 2km, 용두산 13.7km, 갑낭재 6.7km, 제암산 1.5km / 제암산 주차장, 공설공원묘지 1.6km, 철쭉공원 0.7km ←[현위치 : 곰재]→ 철쭉제단(철쭉군락지) 1.0km, 간재 1.5km, 사자산(미봉) 2.2km, 삼비산 7.2km)를 세워 놓은『곰재』안부 사거리에 도착을 했다.
『곰재』는 장흥과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제암산에 곰바위가 있어서 이 고개를 『곰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보성군「雄稚面」의 이름 역시 「곰재」라는 우리말을 한자음인 웅치(雄峙)로 표기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출처> 보성군 홈> 3경3보향> 일반정보> 지명유래
『곰재』는 제암산 철쭉의 군락지로「장흥군 장동면 하산리 감나무재에서 제암산을 지나 안양면 기산리 사자산 기슭까지 약 60여 ha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철쭉군락지는 전국 최대 규모로 5월 내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제암산(807m)과 사자산(666m) 중간에 위치한 해발 487m고지 주변에는 50년생 이상의 철쭉 10만여 그루가 집단군락을 이루어 온 산을 붉게 장식하며 매년 5월 초순이면 철쭉제가 열린다.
산철쭉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높이가 1~2m가지 자라며 기본종은 겹산철쭉으로 홍자색이나 이곳에는 백색꽃이 피는 흰색 철쭉도 자생한다.」는 안내판을 장흥군에서 세워 놓았다.
[11] 산상화원 제암산 철쭉평원(곰재산)
『곰재』를 뒤로하고 10여분을 빡시게 오른 곳이 『620봉(철쭉평원 바위봉)』이다. 이곳에도 이정표를 세워 놓았는데 「철쭉재단 0.2km / 간재 1.0km / 사자산 1.9km」라 표시되어 있고 보성(좌측)과 장흥(우) 시가지가 안개 속에 희미하게 조망이 되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개화를 일주 정도 앞둔 철쭉 꽃망울의 붉은 기운이 온 산에 퍼져 장관을 이룬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상화원이 그려지며 내 몸도 철쭉의 일부가 되어 붉게 물들어 가는 것 같다.
12 : 20분, 헬기장을 지나 5분여를 더 진행하여『철쭉 평원봉 / 제왕산 / 630m』라 표기된 표지석이 있고 그 뒤로 돌탑이 있는 봉에 올랐다. 이정표에 현위치『제암산 곰재산(철쭉군락지)』라 표기 되어 있다.
『곰재산』정상을 확인하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오니 헬기장이 연이어 두 개나 있고
이정표도 세워 놓았는데 「간재 0.5km / 사장봉(尾峰) 1.2km / 삼비산 6.2km」라 표기되어 있다.
[12] 간재 삼거리
12 : 30분, 암봉을 지나 『간재』삼거리에 도착했다. 억새가 무성한 평원으로 철쭉제를 대비해 표지판을 설치하고 있다. 사자산 미봉 700m, 오늘 산행의 두 번째 고비『獅子山(尾峰)』도 지척에 두고 있다.
[13] 사자산(獅子山)
간재 삼거리를 뒤로하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7분여를 진행하여 사자산 초입에 도착했다. 급 오름길이다. 다리에 힘을 주고 숨 거칠게 몰아쉬며 사자산에 오른다.
『사자산(獅子山, 666m)』은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와 비동리에 있는 산으로 「제암산(帝岩山·807m), 억불산(億佛山·518m)과 함께 장흥을 굽어보고 있는 산이라 하여 장흥의 삼산(三山)이라 부르며 사자산 두봉(560m)에서 정상을 거쳐 남쪽으로 뻗는 주릉의 형상이 하늘 향해 울부짖는 사자의 모습 같다 하여 사자앙천형(獅子仰天型)의 산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누어서 고개만 들고 있는 거대한 사자형상을 하고 있는 이 산은 장흥을 지키는 스핑크스와도 같은 모습으로 일본인들은 후지산을 닮았다하여 장흥 후지산이라 했다. 또한 장흥읍에서 우뚝 솟구쳐 강렬함을 주고 있는 사자산 두봉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아주 부드럽고 철따라 색다른 인상을 주고 있으며, 특히 탁 트인 남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천혜의 패러글라이딩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이착륙장이 있고 매년 9월이면 전국 패러글라이딩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출처> 전남 장흥 천관마을
12 : 52분, 獅子山 尾峰에 올랐다. 사자의 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尾峰」으로 부른다고 한다.
정상에는 이정표와『사자산 간재봉 / 666m / 장흥군』이라 쓴 정상석 세워져 있는데 정상석을 세워 놓은 암봉에 올라보니 사방이 툭 터져 장흥과 보성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보성만에 흩어져 있는 섬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를 펼쳐보듯 조망되며 사자산 등줄기의 끝머리에 위치한 頭峰도 뚜렷이 보인다. 맑은 날이면 일림산과 천관산 등도 조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사자산 정상에서 주변 경관을 조망하고 바위 능선 길을 따라 내려가니「철쭉평원 1.0km, 골치산 3.5km」라 표시된 이정표가 있고 마루금은 좌측으로 90도로 방향을 꺾어 이어진다. 지금가지 南進하던 마루금이 백운산을 향하여 東進하게 되며 산상화원을 이룬 제암산의 철쭉군락지도 끝나고 잡목과 송림이 숲을 이루는 평상시 마루금으로 이어진다.
[14] 561.7봉
12 : 58분, 이정표를 뒤로하면 곧바로 로프가 설치된 협소한 바위 길을 지나게 되고 급경사 바위지대를 내려서면 다시 완만한 숲길로 진행을 하게 된다. 계획된 시간(사자산 도착시간 : 12 : 55분)에 따라 진행하고 있지만 점심시간을 감지했는지 배가 슬슬 고파온다. 선두는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적당한 장소를 찾아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13 : 20분, 보성군에서 설치한 「사자산 / 휴양림 / 일림산」방향을 표시한 이정표를 세워 놓은 곳에 도착했다. 이제 장흥군에서 보성군 지역으로 넘어서게 된 모양이다.
완만한 오름 길, 546봉 직전 좌로 꺾어 진행, 묘 1기를 지나 안부에 내려섰다 우측 斜面을 진행, 산죽 밭이 계속 이어지고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봉(561.7봉)에 올라보니(13 : 55분경) 등산 안내도(제암산 4km, 사자산 2.4km ←[현위치(561.7봉)]→ 골치 1km, 일림산 1.7km / ↓용추폭포 1.5km / 한치재 5.1km <산불ㆍ산악구조대 1688-3119 / 보성군850-5423~4)가 설치되 있다.
앞으로 30여분만 더 진행하면 점심 식사 장소가 된다. 안개와 바람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먼저 『골치』에 도착해 있을 선두대원들이 추위에 떨며 「골치대원」이라 핀잔을 늘어놓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미안한 마음으로 쉼 없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15] 570봉(점심시간)
14 : 05분, 급경사를 이룬 봉(570봉)에 올랐다. 『골치』에서 대기하고 있을 줄 알았던 선두 대원들이 도시락을 꺼내놓고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30여분이나 떨며 기다렸다고 한다.
오늘을 박사장이 특별 메뉴를 준비했다고 한다. 도루묵에 묵은지를 넣어 만든 찌개다. 버너에 가스에 불을 붙이고 냄비를 올려놓고 끓기를 기다리는데 한기가 몸으로 파고들어 온 몸이 덜덜 떨린다. 30분을 기다린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찌개가 채 끓기도 전 밥 한술을 입에 떠 넣으니 얼음 조각을 씹는 기분이다. 보온밥통에 밥을 담아 와야 하는데 봄날을 믿은 것이 잘못이다.
드디어 찌개가 끓기 시작,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그제야 몸에 온기가 돌고 먹을 만하다. 대원들을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도루묵」찌개를 준비해 온 박사장이 고맙다.
찬 날씨로 느긋한 식사시간을 갖지 못하고 바로 오후 산행에 들어갔다. 대장과 노부장, 장부장은 『봇재』까지 완주하고 나머지는 『삼수마을』에서 산행을 접기로 하고 배낭을 챙겨 출발(14 : 30)을 했다.
[16] 골치 사거리
14 : 45분, 『일림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골치』사거리에 도착했다. 넓은 공터, 낙엽송 숲을 이룬 곳으로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장흥, 안양 / 제암산 7.5km, 사자산 3.4km ←[현위치 : 골치 사거리]→ 일림산 1.8km,한치재 6.5km」라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1.4km를 내려가면 『용추폭포』다. 『용추폭포(龍湫瀑布, 웅치면 용반1리)』는 보성군에서 자랑하는 관광 명소다.
<龍湫瀑布>
「보성읍에서 서쪽으로 약 9km를 가면 거대한 제암산 봉우리의 아름다운 숲속에 龍湫가 있으니 이름하여 "용추골" 또는 "용골"이라고 불리운다. 웅치면 동편에 있는 형제봉 『사자산』으로 부터 시작되는 비래샘이 그 근원이 되며 이 용추의 입구부터 울창한 숲과 거목이 밀집하여 있고 이 곳에서 시원한 용추의 폭포소리를 들을 수 있다. 좁은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유창한 물소리는 무더운 삼복더위에도 이마의 땀을 저절로 식히게 된다.
큰 바위와 반석을 뒤로하고 비단폭을 드리워 놓은 듯한 70도 경사의 물길이 튀어 오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다.」고 소개(보성군 문화관광 홈)를 하고 있으며 많은 전설을 지니고 있는데 「용이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고 전해지는 용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풀어 못 속에 넣어도 끝이 닿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이 龍沼 바로 옆에는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10여 평 규모의 선녀탕이 있고, 목욕에 사용했던 비누통 자리가 바로 옆에 나란히 있다.
또 용소 바로 위에 있는 용바위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들이 그 바위 위에서 돌을 폭포에 던지면 아이를 갖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욕심 같아서는 짬을 내 70도 경사면으로 시원하고 힘차게 쏟아지는 龍湫의 모습을 보고 싶지만 공연한 욕심이라 『일림산』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17] 日林山 가는 길
골치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림산』으로 향하고 있다. 아마도 『용추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우리도 사람들 틈에 끼여 『일림산』으로 향했다.
15 : 07분, 작은봉(골치산,骨峙山 : 장수리 뒷산) 이정표(골치 0.8km ←[작은봉]→ 0.8 정상)를 세워 놓은 곳에 도착.
15 : 15분, 『큰봉』이정표(임도 0.3km, 골치 1.1km ←[현위치 : 큰봉우리]→정상 600m)를 세워 놓은 갈림길에 도착했다. 정면으로 『일림산』이 우뚝 솟아 있고 산죽 밭 사이로 길이 뚜렷이 나 있다.
15 : 32분, 일림산 정상을 직전의『철쭉 군락지』삼거리, 이정표(골치 1.6km, 사자산 5.0km ←[현위치 : 철쭉군락지] → 절터 0.5km, 한치재 4.3km / 일림산 정상 0.1km)를 세워 놓은 곳에 도착했다. 직진해서 100m를 오르면『일림산』정상이다.
[18] 『日林山』인가 『三妃山』인가
[18-1] 일림산(日林山)
『일림산』은 해발 667.2m로 보성군 웅치면 용반리, 대산리, 회천면 봉강리,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와 경계에 위치한 호남정맥 중 가장 남녘에서 기운차게 우뚝 솟아 백두기운을 다시 북으로 돌리는 산이다.
2000년부터 개발된 일림산철쭉은 100ha 이상으로 전국최대의 철쭉군락지를 자랑하며, 제암산과 사자산으로 연결되는 철쭉군락지의 길이는 12.4㎞에 달하여 가히 세계적이라 추켜 세울만 하고 남도 전역을 빨갛게 물들이고 봉우리마다 분홍빛으로 얼룩진 모습은 어머니의 가슴보다도 더 아름다워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아가 두 번 이상 보아야 빼앗긴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일림산 철쭉의 특징은 어른 키만큼 크고, 매서운 해풍을 맞고 자라 철쭉꽃이 붉고 선명하다. 滿開時 산철쭉 군락지를 걷노라면 마치 꽃으로 된 터널을 걷는 듯하다.
일림산은 해발 667.2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호남정맥 대간답게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은 장엄하다. 또한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바닷가 회천에서 바라보면 남성처럼 억세게 보이지만, 웅치에서 바라보면 포근한 어머니처럼 한없이 보드랍게 느껴진다.
일림산 정상에 서면 제암산(807m), 무등산(1,186.8m), 월출산(809m), 천관산(723m), 팔영산(609m) 등 전남의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와 마치 호남 남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하다.
남으로 보면 득량만 쪽빛물결과 그 물결을 가로 지르며 가날프게 떠가는 고깃배가 마치 바다에서 노니는 고기처럼 한가하게 보이고, 북으로 보면 첩첩산중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작은 마을이 한없이 정겹게 보인다.
일림산은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한양으로 소식을 전하는 봉수대, 섬진강 600여리의 발원지, 민족의 한을 담은 서편제 胎動地,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녹차 밭,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용추폭포, 전국최대의 산철쭉 군락지 등 오직 일림산 만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으로 다양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남도의 명산이다.」라고 보성군 문화관광에서 소개를 하고 있다.
[18-2] 『일림산』인가 『삼비산』인가
『日林山』을 장흥사람들은 『三妃山』으로 부른다. 그래서인지 장흥과 보성의 경계가 되는 『골치』를 넘어서면서 이정표에 『三妃山』이 사라지고 『日林山』이 나타난다. 『三妃山』인가『日林山』인가? 헷갈려 산행 후 자료를 찾아보았다.
「"일림산(日林山)으로 통일합니다."
전남 보성군과 장흥군 사이에서 3년여간 논란을 벌였던 산 이름 논쟁은 일림산으로 결정됐다. 전남도는 24일 보성군 웅치면과 장흥군 안양면 경계에 위치한 해발 667.5m의 산 이름에 대한 지명심의위원회를 열고 일림산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3년여 끌어 온 지명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으며 조만간 중앙지명위원회 심의와 고시를 거쳐 국토지리원 지도에 표기하게 된다.」라고 보성-장흥 산 이름 논쟁 일단락 2005. 8. 24일[연합신문]에발표된 기사다.
<참고자료>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오류로 헷갈리는 일림산 위치
삼비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점점 흩어진 철쭉꽃길이다. 무덤 1기가 자리 잡고 있는 정상은 제법 넓은 공터다. 커다란 정상 표지석이 쓰러진 채 흉물스럽게 비치되어 있다. '일림산 664.2 보성군' 이라 새겨진 이 정상석은 산 이름에 대한 논란으로 누군가 일부러 쓰러뜨린 듯하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5만분의 1 지형도에서 664.2봉의 이름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보성군에서 설치한 등산안내판과 철쭉제단 등은 이 산을 일림산으로 표시하고 있어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의 일림산은 삼비산 북동쪽 1.5km 거리의 626.8봉으로 대부분의 지형도와 일치한다. 이러한 오류는 2003년 1월 이전 발행된 국토지리정보원 2만5천분의 1 지형도에 664.2봉을 일림산으로 잘못 표기한 때문이다. 이후 발행된 2만5천분의 1 지형도에는 일림산을 626.8봉 현재 위치로 수정해 표기하고 있다.
장흥군의 향토 사료와 마을 유래지 등을 살펴보면 664.2봉을 중심으로 회룡봉과 상제봉 등 세 개의 봉우리가 삼각형으로 둘러서 마치 세 황비가 노는 듯 하다하여 삼비산이라 부른다는 대목이 있다. 안양면 수락리와 장수 마을의 노인들 역시 삼비산 또는 참비산이라 부르며 늘 안개가 끼어 있어 현무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삼비산 정상에서 회룡봉과 일림산에 이르는 지역 일대는 온통 철쭉밭이다. 또한 사방으로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제암산과 사자산은 물론이고 일림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은 푸른 초원을 연상케 한다. 또한 남쪽으로는 득량만과 고흥반도 팔영산까지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러나 지금은 아쉬움만 남긴 채 돌아서야 했다.
<출처> 사네드레 산행정보입니다.
(http://user.chollian.net/~pjycys/%BB%E7%C0%DA%BB%EF%BA%F1%BB%EA.htm)
[18-3] 『일림산』과 『삼비산』의 지명 유래
지명유래 역시 보성군과 장흥군이 차이를 보이는데
「전일리의 뒤에 있는 산이라 해서 일(日)자를 따서 일림산이라 호칭 되었다(664.2m, 회천면 봉강리)」웅치면 용반리에서는「숲이 깃든 산으로 산에 들어가면 해가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일림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상제의 황비 셋이 모여 놀았다는 설화를 간직한 『三妃山』은 한편으로 하늘의 황비가 내려왔다고 해서 「천비산(天妃山)」,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물(정상부 폭포)에서 황비가 놀았다고 해서 「샘비산」또는 「천비산(泉妃山)」, 수많은 날을 신비한 안개로 뒤덮인다고 해서「현무산(玄霧山)」으로 불리어져 왔지만, 지금은 『三妃山』으로 통일되어 불리어지고 있다.<출처> 장흥군 문화관광 /「삼비산」
[18-4] 일림산 정상
삼거리 이정표를 뒤로하고 또 한 번 山上花園을 한 눈에 담기 위해 숨을 몰아쉬며 『일림산』정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15 : 35분, 일람산 정상에 올랐다. 넓은 공터, 묘 1기와 삼각점(회천 21, 1991복구), 이정표(제암산 9km, 사자산 5km←[일림산]→봉수대 3.1km, 한치재 4.1km)가 설치되 있고 정상을 오른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마루도 마련되어 있다. 멀리 바다도 조망되고 붉게 산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와 닿는다.
[18-5] 봉수대 갈림 길
『골치』를 지나면서 뒤로 처진 박사장, 『일림산』정상에 오르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아마도 산나물 채취를 위해 다른 길로 빠진 모양이다. 전화로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정상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오니(15 : 45분) 이정표(정상 0.2km, 봉수대 3.1km, 한치재 4.6km)를 세워 놓은 봉수대 갈림길인 『640봉』이다. 호남정맥 산줄기의 최남단 지점이 되는 곳이다.
[18-6] 봉강 사거리
15 : 50분,『봉강사거리』에 도착했다. 이정표(일림산정상 0.6km / 봉서동 1.7km ←[현위치 : 봉강사거리]→원지 0.5km / 한치재 3.1km, 용추골주차장 3.7km)에 보성강 발원지, 500m라 표시되 있다. 잠시 수고로움을 보태면 발원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너무 아쉽다.
<보성강 발원지>
산행 후 보성강 발원지에 대한 자료를 보성군 홈에서 찾아보았는데「이곳은 일람산 중턱 해발 540m에 위치한 보성강 300여리의 발원지이며 행정구역상으로 보성군 웅치면 용반리에 속한다.
이곳에서 시작된 물은 기암괴석의 용추폭포를 타고 내려와 웅치면 들녘과 장흥군 장평면을 돌아 다시 보성군 노동면, 보성읍 미력면을 지나 보성강 댐에 이른다. 보성강 댐을 경유한 후에는 보성군의 중심을 가로질러 율어면, 복내면, 문덕면을 지나 주암댐으로 흘러 들어간다. 주암댐을 지난 발원지의 물은 곡성군 압록에서 300여리의 보성강 여정을 마무리하고 섬진강 본류와 합류하여 경남 하동을 지나 남해로 흐르게 된다.
본 발원지의 물은 이처럼 긴 여정을 거치면서 광주, 전남시․도민의 식수와 생활용수, 농․공업용수로 사용되는 생명의 젓줄이기 때문에 이물이 지나는 주변 사람들은 항시 소중히 아끼고 관리하고 있다.」라고 소개를 해 놓았다. <출처> 보성강발원지 표지판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박사장에게 다시 통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응답이 없다.
휴식도 잠시, 다시 출발이다. 철쭉과 억새, 산죽이 어우러진 대평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너무 시원스럽다. 내년 철쭉꽃이 滿開할 때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일반산행 일정을 잡아 줄 것을 산악대장에게 건의를 해야겠다.
[19] 626봉, 626.8봉
16 : 08분, 이정표에『아미봉』라 표시된 헬기장을 지나 완만한 능선을 따라 12, 3분을 더 진행하니 현위치『626m』라 표시된 이정표가 있는 또 하나의 헬기장이 나온다. 한치재주차장(3.1km)과 용추골주차장(3.0km), 일림산(1.3km)이 나누어지는 삼거리에 도착(16 : 27분)했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잠시 후 삼각점이 있는 봉(626.8봉)에 올랐다 내려서니 우측으로 급경사 내림길이 있고 꼬리표가 여러개 달려 있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산 아래로 마을과 아스팔트 길도 눈에 들어온다. 직진을 해야 하는가, 꼬리표가 있는 우측 내림길로 가야 삼수마을로 갈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박사장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그제야 통화가 된다. 엄나무가 많아 처지 곤란이라며 되돌아오란다.
[20] 413봉, 한치재 갈림 길
『삼수마을』 가는 길을 확인하니 더 진행을 하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한다. 마을이 빤히 보이는 우측 내림 길의 유혹을 뿌리치고 몇 개의 능선 봉을 넘어 진행하니 삼거리(413봉, 한치재 갈림 길)가 나오고 좌측으로「한배」표시기가 매달려 있다. 아마도 직진 넓은 길은 『한치재』로 가는 길인 모양이다.
[21] 삼수마을
한배 표시기를 따라 급 내림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묘 1기가 나오고 길이 완만하게 바뀐다. 잠시 후 대나무 숲을 지나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니 「珍原朴公의 墓」가 있다. 우측으로 진행, 대나무 숲, 과수원을 지나 17 : 30분, 2차선 포장도로(895번 지방도로)로 내려섰다.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 쪽으로 잠시 진행하니 삼거리에 『삼수마을』표지석이 우뚝 솟아 있다.
표지석에는 큰 글씨로「三水마을」라 새기고 基壇에는 「섬진강 원천수 / 飛來泉 / 2002. 4」라 써 놓았다.
<三水마을 유래비>
「삼수 마을은 백제시대에는 보성군 계천현, 신라시대에는 계수현·장택현이었으며 고려 인종 23년 서기 1124년 장흥부로 편입되었다가 웅점소, 웅치방, 웅치면으로 행정구역이 변천하여 1914년 3월 1일 보성군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地勢(지세)는 백두대간이 호남정맥이 되어 獅子算(사자산)에서 一脈(일맥)이 오면서 남으로는 日林山(일림산) 동으로는 鶴城山(학성산)을 이루고 북쪽 糖山(당산)에 섬진강 발원지 飛來泉(비래천)을 만들었으며 서쪽 兄第峰(형제봉)의 여러 봉우리는 帝巖山(제암산)을 보고 공손히 인사하는 것처럼 보이니 君臣(군신)이 供揖(공읍)하는 형상과 같다고 한다.
마을 형국은 드들방아 형국으로 뒷산은 방아를 찧어 하얀 쌀을 쌓아 놓은 산과 같다 하여 糖山(당산)이라 하며 청룡등을 糠嶝(강등) 백호등을 방앗등이라 하고 앞산에 筆峰(필봉)과 露積峰(노적봉)이 있으니 대대로 문장과 부자가 나올 터라 하며 마을 이름은 飛來泉, 寒泉, 通泉(비래샘, 한샘, 통샘) 세 샘이 있어 삼수라 한다.
맨처음 皇甫氏, 曺氏, 白氏(황보씨, 조씨, 백씨)가 촌락을 이루다가 珍原朴氏(진원박씨)는 서기 1634년 부터 살아왔으며 현재는 珍原朴氏, 長興魏氏, 靈光金氏, 全州李氏, 全州崔氏(진원박씨, 장흥위씨, 영광김씨, 전주이씨, 전주최씨)가 거주하고 있다.
옛 文獻(문헌)과 口傳(구전)을 모아 마을 由來(유래)를 여기에 새긴다.
저희 삼수마을을 방문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서기 2005년 6월 주민일동 」이라 쓴 『삼수마을』유래비의 全文이다.
또 웅치면 봉산3리(三水)의 지명 유래에 따르면 「삼수 마을은 조선 초기에 장수황(長水黃)씨와 한양조(漢陽趙), 수원백(水原白)씨가 마을을 형성했다 전해오나 조선조 숙종 때의 박몽형이 이주해온 이래 지금까지 진원박(珍原朴)씨가 자작일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지명은 섬진강 발원지인 비래천(飛來川)과 상진천(上眞泉), 하진천(下眞泉)을 합해 삼수(三水)라고 하였다는 說이 있고 一說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모셨던 당산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현 단산) 석삼(三) 나무수(樹)자를 써서 삼수(三樹)로 불러오다 풍수지리상 마을 터가 화란(火難)이 두려우니 물수(水)로 고쳐 부르라 하여 그 후부터 『삼수(三水)』라 하였다는 말도 전해온다.
[22] 봇재다원
오늘 산행 계획으로는 『봇재』가 종료 지점이나 몸이 따라주지 않고 늦은 시간에 끝난다는 핑계로 안교장, 설부장과 함께 『삼수마을』에서 산행을 접기로 했기 때문에 마을 표지석 앞에 배낭을 내리고 일찌감치 후미로 빠진 박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택시를 타고 「용추 주차장」으로 오란다. 대장이 미리 아림 해 준 보성 택시회사에 연락, 택시를 불러 용추 주차장으로 이동을 했다.
박사장, 두릅과 엄나무 잎을 배낭에 차고 넘칠 정도로 채취했다. 중도 탈출을 해 용추골로 내려간 소득이다.
다시 아침에 차를 정차시켜 둔 『갑낭재』로 이동, 박사장 차로 옮겨 타고 『봇재』로 이동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장에게 연락을 해 보니 『봇재다원』에 도착했다고 한다. 뛰는 걸음으로 『활성산』넘어 온 모양이다.
『봇재다원』에 도착하니(19 : 00시경) 어둠이 내리고 茶園 外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보성 읍내로 이동, 숙소를 정하고 보성의 맛집 「보성양탕(061-852-2412)」집에 들려 산행 중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며 양탕(염소탕)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첫날 산행을 마무리 했다.
200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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