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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남산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고두영
충북 영동 천태산(天台山 714.7m)을 가다.
글 쓴 이 牧 鼎 高 奉 雋
10월26일, 안개가 자욱 자욱한 아침이다! 반월당을 출발하여 칠곡IC에서 최종 출발하니 오늘은 자리가 남아돈다(37명). 잔치다, 편찮으시다, 급한 볼일로~ 동참을 약속한 님들이 밤새 20여 명이나 불참하셨다 한다.
차창 밖으로 다가오는 머~언 산천의 풍광들은 그새 황엽(黃葉)으로 물들어서~ 누~릿 누~릿~ 보기에도 황홀하며, 들녘에는 벌써 가을 걷이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도다! 날씨가 얼마나 좋을려나! 새벽 안개가 천지를 감싸고 있구나!
김천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을 들고는 주위를 둘러보니, 아침 날씨는 제법 쌀쌀하여 한기가 느껴진다. 넓은 주차장에는 차와 사람들로 넘쳐나고,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들은 짙은 안개로 분별(分別)이 쉽지 않도다!
차내에서 간단한 진행을 마치고 황간(黃澗)에서 4번국도를 타고 영동(永同)을 지나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 영국사” 방향으로 진입하니, 저만큼 다가오는 “천태산”의 모습이 장엄하고도 빼어나도다!
“충북(忠北)의 설악(雪嶽)”이라 드니 과연 허언(虛言)이 아니로다! 전체가 돌산(石山)으로 사이 사이 나무들로 가리워져 있으며, 찬란한 아침 햇쌀에 반사되어 서광(瑞光)이 뿜어져 나오니~ 보는 눈이 다 부시도다!
그럭저럭 천태산 영국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 내에는 차와 사람들로 넘쳐나서 그야말로 인산차해(人山車海)로다! 기념촬영을 하기위해 사방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대구차들로 붐비고 간혹 부산, 서울에서 오신 등산객들이 보인다.
지나는 길에 언뜻보니 “내당산악회”라는 전광판이 보여 확인 해 보니 필자가 사는 본동(本洞)의 산악회이며, 이강덕(현 재건축조합장)님과 총무님 등 몇 몇 분들에게 뜻 밖의 해후(邂逅)에 반가운 인사를 드리고, 단체 기념촬영을 한 후 일열로 오르시니~ 탐방객들과 등산객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우리 남산님들을 찾기조차 힘듬니다.
사하촌(寺下村)을 지나 울긋불긋 우거진 단풍숲길에는 하얀천에 많은 시(詩)들을 써서 전시해 놓았으며, 10여 분을 걸어 오르니 거대한 자연석에 “충북의 설악 천태산계곡”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러 회원님들이 비문을 배경으로 차례 차례로 기념촬영을 한 뒤에 한 굽이를 지나서 “삼신할멈바위”가 우람하게 돌출되어 그 아래로 올망졸망 작은 돌탑들이 쌓아져 있는데~ 오고가는 길손들이 정성을 올림니다.
우리민족은 천손족(天孫族)이라! ‘거대한 바위와 아람드리 노거수(老巨樹)’에도 금줄을 치고 소원을 비는 전래의 풍습이 있으며, 또 제를 올리고 마을의 평온과 안녕을 기원하여 위안을 받슴니다.
선채로 예를 올리고 계곡을 따라 잠시 오르니 “영국사 삼단폭포(옛명-용추폭포)”가 가느다란 물줄기를 쏟아 내리며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 합니다 그려! 하기사 용추폭포(龍湫瀑布)라 하기엔 깊은 소(沼)가 없으니... 개명(改名)이 필요 했을 것이야!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매표소에 이르니 오늘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영문을 몰라 행운이구나! 했는데... 저만큼 “영국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호)”에 오색휘장이 감기워져 있으며, 그 앞에는 행사준비로 많은 의자와 농악(農樂) 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가까이 다가 가서 보니 “영국사은행목당산제”를 모시는 행사다. 옛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드니... 오늘은 이래저래 행운의 날입니다. 안내문에 이 은행나무는 높이가 31m, 둘레가 11m이고 수령(樹齡)이 천살(600년추정) 정도라 적혀있다.
그 많은 가지중에 서쪽 한 가지는 밑으로 자라서 땅에 닿았는데, 여기서 자라난 새로운 나뭇가지는 높이가 5m 이상이나 되고 지름이 20cm가 넘는다고 하며, 또 이 나무는 나라에 국난(國難)이 있을 때는 소리내어 운다고 한다.
아직은 단풍이 80% 정도 들어서 절정은 못되나 그 장엄하고 신비함에 놀라 저만큼 언덕위에 물러나서 이윽히 바라보는데... 도량(道場) 한켠에선 승무(僧舞) 복장을 한 스님 다섯분이 열지어 ‘바라와 피리’를 치고 불면서 은행나무 쪽으로 내려 오시는 광경이 보이고 그 뒤를 이어 풍물단이 흥을 돋우며 따르신다!
변산반도의 “내소사”에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나무에 정월대보름에 제를 올린다는 자료는 봤으나, ‘영국사은행목당산제’는 처음보는 일이라! 황홀하고 장엄한 풍광에 온 몸에 전율(戰慄)이 일어 남니다.
가까이 계신 행사장 노장(老長)님에게 올해로 몇회째냐고 여쭈어 보니, 모르겠다고 하시며 첫회는 아니라 하신다. 오래 오래 머무르면서 행사의 진행을 보고 싶지만 일정상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천태산’을 우측으로 오름니다.
능선에 오르니 혈장(穴場)이 크고 상당한 크기의 묘(墓) 한기가 모셔져 있는데, 조선시대 정헌대부(正憲大夫), 형조판서 겸 성균관 제주(祭酒)를 지낸 문간공(文簡公)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선생의 묘이다.
천태산(天台山)에서 흘러내린 지맥이 단단히 뭉쳐있고, 청룡과 백호가 중후(重厚)하게 감싸고 있으며,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대단한 길지(吉地)임을 알겠슴니다.
선두는 홍현문님과 염종우님을 비롯한 5~6명이 한 조를 이루고, 중간에는 벽송대장님과 능선님이 진행하며, 후미에는 김광열님을 비롯한 필자와 김해진님, 바보김서방(김종갑)님, 황고문님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지런히 오름니다.
오를수록 경사는 가팔라서 모두들 가쁜숨을 몰아쉬며 암벽에 매달아 논 밧줄에 몸을 의지하여 조심 조심 잘도 오르며, 날씨도 화창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들이 줄지어 로-프(Rope)에 대롱~ 대롱~ 아슬~ 아슬~ 합니다!
600고지 부근에 이르러서는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기념촬영에 바쁘시다. 지나온 등산로를 내려다 보는 풍광이 시원하고도 아름다워서 가슴이 다 후련하며, 산 정상에서부터 오색단풍으로 서서히 물들어 내려오는 산색(山色)의 비경(秘境)이 한폭의 동양화로다!
오르다 쉬고 쉬다 오르면서 드디어 마지막 ‘암벽등반(75m)’ 지점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며 앞서 오르는 등반객들과 함께 용을 쓰고 있슴니다. 후미에 우리 남산님들은 대부분 우회길로 올라가시고 필자를 비롯하여 새로오신(김명숙부회장님 친구분) 3명만이 도전합니다.
힘겹게 힘겹게 외밧줄에 의지해 올라서 적당한 곳에서 천하를 내려다 보니, 산기슭에는 도란도란 절집(영국사)의 풍광들이 정겨웁게 다가오며, 더 멀~리 주차장의 지세(地勢)는 배가 나아가는 형국(形局)이다.
‘천태산(天台山)’이라는 이름도 고려시대 천태종(天台宗)의 본산(本山)이었기 때문이라 하며, 또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大覺國師)가 ‘국청사(國淸寺)’라 했으나, 공민왕(恭愍王 1351~1374)이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을 피하여 이 곳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였으므로 ‘영국사(寧國寺)’라 했다 한다.
연하여 다른 자료에는 중국 북제(北齊)의 혜문선사(慧文禪師)의 종지를 받들어 중국 수(隨)나라 때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에서 지의(智顗)가 창립한 종파이며, “법화경(法華經)과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또 신라의 현광(玄光), 법융(法融), 고구려의 파야(波若), 고려의 체관(諦觀) 등이 천태종을 연구 하였으며, 이어서 의천(義天)은 송(宋)나라에 가서 종지(宗旨)를 배우고 돌아와서 1097년(고려 숙종2년) ‘개성에 국청사(國淸寺)’를 창건 천태교(天台敎)를 강설(講說)하여 천태종이 성립 되었고, 그 문하에 덕린, 익종, 경란, 연묘 등이 그 교법을 전하여 ‘남숭산(인동 금오산), 북숭산(해주 수양산)’ 등이 그 소속 도량(道場) 이었다 하니, “국청사”의 서로 다른 기록에 의문이 갑니다.(불교대사전 참조)
다시 20여 분을 더 올라 정상부근에 도착하니, 선착한 남산님들이 점심을 들면서 함께 들자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답례(答禮)를 드리면서 후미에 여러 회원님들과 눈앞(0.2Km)에 솟은 정상에 오르니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에 분주하여서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로다!
얼마를 기다려 기념촬영을 마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곳에도 ‘아이스-께끼’를 팔고 있는분이 있으며, 그 옆으로 ‘방명록함’ 위에는 ‘방명록(芳名錄)’이 비치되어 있어 특이하다.
정상은 사방이 나무숲에 싸여있어 조망(眺望)이 쉽지 않으며, 이 곳 “천태산(天台山. 海拔 741.7m)”은 백두대간의 영취봉 부근에서 뻗어나온 ‘금남정맥’을 따라 장안산, 팔공산, 진안의 마이산, 주화산(조약봉)을 거쳐 다시 왕사봉, 인대산, 금성산, 닭이봉, 국사봉을 지나 천태산에 이르고 그 잔여지맥은 마성산에서 대청호(금강)에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식장지맥’이라 한다.
아울러 동남으로는 민주지산 일대와 서북으로 계룡산 일대, 남쪽으로는 운장산 부근을 조망(眺望)할 수 있다고 하나 다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하산을 하여 남산님들과 다시 합류해서 맛나게 점심을 드심니다.
모두들 빙~ 둘러 앉아서... 필자를 비롯하여 김해진님, 황고문님, 서부장님, 구윤서님, 윤상복님, 김미소님, 벽송님, 능선님, 금복주님, 박현숙님, 바보김서방(김종갑)님, 윤교장(갑용)님 등 아휴~ 숨차다!
밥은 한 그릇에 반찬은 20가지도 넘어서 어느 것을 먼저 먹어야 할지~ 시장하던 터에 한참을 정신없이 먹었드니, 새로 기운이 솟아나고 마음에 여유가 생김니다. 게다가 식후 디저트(dessert)까지 겸하니 신선(神仙)이 따로 없슴니다 그려!
이런 저런 여담(餘談)으로 얼마를 쉬다가 하산길로 접어드니, 배도 든든하고 등산길도 안전하여서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나려갑니다. 684고지를 지나 전망대, 헬기장, 삼거리를 거쳐 400여 고지 부근에는 암릉지대가 있는데... 묘하게 생긴 바위가 하나 있어 곱게보면 ‘달마바위’요! 잘못보면 ‘똥-자루’라!
여러 회원님들에게 저마다 포:즈(pose)를 취하게 해서 사진촬영을 해 드리니 모두가 생불(生佛)입니다. 다시 30여 분을 걸어서 삼거리, 남고개를 지나 영국사로 접어드니 등산로 옆에는 전국산악회에서 다녀간 흔적의 ‘꼬리표’가 수 천, 수 만개가 걸려 있도다!
이래 저래 천태산은 작지만 크게 느껴지며, 경치 또한 설악에 버금할 것이로다! 경내(境內)에 도착하여 이정표를 따라 왼편 언덕빼기로 몇 걸음을 오르니, 고즈넉하고 따사로운 곳에 ‘원각국사비(圓覺國師碑:보물 534호)’가 모셔져 있으며, 정면3칸, 측면3칸의 우진각지붕 건물안에 모셔져 있다.
원각국사(1119~1174)는 고려 명종 때의 왕사이며 천태학의 대가였던 그는 문하에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고, 비(碑)는 입적한 지 6년 후인 명종 10년(1180)에 세워졌으며, 지대석 위에 돌거북이 앉았고 등 가운데 비석을 세웠다. 돌거북은 씩씩하고 강건하게 생긴 한편 조각 솜씨는 단순하고 둔중하다.
비각 뒤로는 두기의 부도(浮屠)가 모셔져 있으며 주인공이 누구인지 언제 건립되었는지 그 기록이 없으나 원각국사비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고려시대 팔각원당형 부도이며 ‘보물 제5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채로 예를 드리고 대웅전 방향으로 나아가니 아름다운 목탁소리가 고요의 정적(靜寂)을 깨뜨리며 도량(道場)을 울림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에 들어 간단히 예를 드리고 얼마간 주위를 둘러 봅니다.
안내문에 대웅전(大雄殿)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양식이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신장탱과 삼장보살도 등이 걸려 있으며 1980년에 해체 복원되었다고 한다.
뜰 앞에는 약간 북쪽으로 비켜서 ‘3층석탑(보물 제533호)’이 세워져 있는데, 본래는 동쪽으로 약 100m쯤 떨어진 옛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42년에 주봉선사가 이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상륜부에는 보주(寶珠) 모양의 돌이 올려져 있으나, 노반(露盤)은 없어졌고 앙화(仰花), 보륜(寶輪), 보개(寶蓋), 수연(水烟) 등 각 부분이 온전히 남아 있지만 따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높은 축대(築臺)위에 오르니 주산(主山)은 약간 비켜 웅장하고 찬란하며, 청룡(靑龍)은 중후(重厚)하나 간극(間隙)이 넓고 비스듬히 누워 있어 지근한 거리에 비보숲(裨補林)을 조성하였고, 백호는 웅장하고도 지근(至近)한 거리에서 감싸고 있어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도다!
연하여 백호의 끝 자락에 수구(水口)가 허(虛)하여 은행나무를 심어 비보하였고, 그 나무가 장성하여 오늘날엔 영국사(寧國寺)의 대명사가 되었도다! 축대를 내려와 ‘사진전시회(충북영동지회)’를 하는 만세루(萬歲樓)를 한바퀴 돌아 내려오니 “평화의 불 분화기념비”가 한켠에 세워져 있다.
뒷면에 “선묵혜자 스님과 108산사순례기도회”는 2013년 4월 19일 네팔 “야다브 대통령”으로부터 룸비니에 있는 “평화의 불”을 이운 받아 5월2일 임진각 “평화누리광장”에서 ‘가정평화, 남북평화, 세계평화’를 위해 이 불씨를 밝힌 기념비이다.
은행나무를 지나서 일주문 방향으로 걸어 나오니 “당산제”는 끝나고 “제1회 천태산 은행나무 전국 시낭송 대회”가 열리고 있다. 등산할 때 ‘하얀 플랑카드’에 많은 시(詩)가 전시되어 있어 영문을 몰라 했드니... 이제사 알겠슴니다 그려!
김해진님과 둘이서 5분 여를 걸어 망탑봉(望塔峰)에 도착하니 우리 남산님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볼록 솟은 봉우리에 기이(奇異)한 바위들이 3개나 있으며, 그 가운데 쯤에 거대한 자연석 위에 ‘3층석탑(보물 제535호)’이 세워져 있다.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으며 기단석(基壇石) 없이 자연석 위에 세운 것이 특이하고,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졌으며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망탑봉은 3면이 폭 싸여 있어 아늑한 곳이며 그 터의 모양이 구슬 같아서 용(龍)이 여의주(如意珠)를 희롱하는 형국이다. 아마도 짐작컨대 초기 영국사의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한 곳이라 생각되며, 달리 기념촬영을 할 님들도 없어 서로간에 한 컷씩 찍어 드리고는 하산길로 접어 듭니다.
천태산의 가을은 오색으로 물들어 찬란한데
속살은 흰 이빨을 드러내고 흐드러지게 웃는구나!
만물의 본 바탕은 여여(如如) 하건마는
겉 모습은 변화 무쌍하여 볼 때 마다 다르구나!
단기 4347년(서기 2014년) 10월 26일
충복 영동 천태산(天台山.7147m)을 가다.